마태복음 20장 — 은혜의 상급과 섬김의 나라
요약
마태복음 20장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여정에 오르시는 길에 놓인 장입니다. 앞 장 끝에서 하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을 이어받아, 이 장은 포도원 품꾼 비유로 문을 엽니다. 이어 세 번째 수난 예고와, 두 제자의 자리 청원을 계기로 주신 섬김의 교훈, 그리고 여리고에서 두 맹인을 고쳐 주신 이야기가 차례로 놓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다는 진리와, 인자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와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다는 복음의 심장이 자리합니다.
장의 흐름
- 1~7절 — 포도원 품꾼 고용: 이른 아침부터 제십일시까지 각 시간대에 일꾼을 불러 보내는 집주인.
- 8~16절 — 품삯 정산과 불평: 나중 온 자부터 한 데나리온씩 받자 처음 온 자들이 투덜거리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는 원리로 마무리됩니다.
- 17~19절 — 세 번째 수난 예고: 정죄·이방인에게 넘겨짐·조롱·채찍질·십자가형, 그리고 사흘째의 부활.
- 20~28절 — 두 제자의 청원과 섬김의 교훈: 잔과 세례, 크고자 하면 종이 되라는 원리, 대속물로 오신 인자.
- 29~34절 — 여리고의 두 맹인 치유: "다윗의 자손이여" 부르짖는 믿음과 눈을 열어 따르게 하시는 은혜.
단락별 해설
1~7절 — 부르시는 때는 달라도
제십일시쯤에 나가 보니 또 다른 사람들이 빈둥거리며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온종일 여기에서 빈둥거리며 서 있느냐?’ 하고 물었다. 그들이 그에게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그들에게 ‘너희도 포도원으로 가거라. 그러면 정당한 삯을 받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마태복음 20장 6~7절)
이 비유는 두 가지 목적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하늘 나라의 방식과 원리를 보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 장 마지막의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진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헨리] 이 비유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라는 베드로의 물음(마 19:27)에 대한 답이며, 그 첫째 교훈은 하나님 나라의 상급이 빚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풀핏]
집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장터에서 빈둥거리던 상태는 하나님을 섬기기 전의 태만한 상태를, 포도원은 각 사람이 가꾸어야 할 자신의 영혼이자 교회를 가리킵니다.[헨리·풀핏] 고용된 시간대가 저마다 다른 것은 어릴 때·중년·노년 등 삶의 여러 나이에 회심하는 이들을 나타냅니다.[헨리] 유대인의 하루는 해 뜰 때부터 질 때까지를 열두 시간으로 계산했으므로, 제삼시는 오전 9시, 제육시는 정오, 제구시는 오후 3시에 해당하며, 제십일시는 하루 일과가 끝나기 한 시간 전으로 일꾼을 부르기에는 매우 이례적인 시간입니다.[JFB·풀핏] 여기서 한 데나리온은 로마 노동자의 통상적인 하루 품삯이었습니다.[JFB·풀핏]
제십이시에 고용된 이는 없으니, 생애가 끝나면 부름의 기회도 함께 끝납니다(6절).[헨리] 그러므로 성도는 아직 부르시는 때가 남아 있을 때에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8~16절 —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으십니다
저녁이 되자 포도원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부터 시작하여 처음 온 사람까지 품삯을 주어라’ 하고 말하였다. (마태복음 20장 8절)
이 비유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이 아무에게도 빚진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헨리] 품삯을 나중 온 자부터 지급하라 하신 저녁은 주인과 일꾼 사이의 정산 시간, 곧 최후의 결산 날을 가리키며, 그 일을 맡은 관리인은 그리스도 자신에 해당합니다(8절).[JFB]
처음 온 사람들이 더 받으리라 생각한 것은 베드로의 질문(마 19:27)에서도 이미 드러났던 타산적이고 세속적인 정신이며, 이 비유는 바로 그런 정신을 그리스도의 종들 사이에서 눌러버리려는 것입니다.[JFB] 그들의 불평의 핵심은, 나중 온 자는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자신들은 더 오래, 게다가 하루 중 더 힘든 시간에 일했다는 것입니다(12절).[JFB] 그러나 이 불평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이미 합의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니 다른 일꾼과 맺은 조건은 그와 무관하며, 하나님이 자격 없는 자에게 관용을 베푸실 때 사람에게는 불평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15절).[JFB·칼빈] 시기심은 곧 "악한 눈"이며,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동시에 어기는 것입니다.[헨리] 시기심이란 자신이 더 받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덜 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풀핏] 집주인이 불평하는 자를 "친구여"라 부른 것은, 아랫사람과 다툴 때에도 부드러운 말을 써야 함을 보여 줍니다(13절).[헨리]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되고,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될 것이다"(16절)라는 결론을 두고 옛 주석가들의 설명은 결을 달리합니다. 이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부름이라는 민족적 틀로 읽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민족적 구별을 물리치고 주님은 오직 먼저와 나중이라는 시간의 차이만 두셨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헨리·칼빈·풀핏] 나중 온 자부터 임금을 준 순서 자체에서 어떤 신비를 찾을 필요는 없으며, 그것은 처음 온 자들의 불평을 드러내기 위한 서사적 장치로 이해하는 편이 낫습니다.[칼빈]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수고를 값으로 내세워 자랑하기보다, 은혜로 부르시고 은혜로 갚으시는 주인의 선하심을 감사로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17~19절 — 스스로 걸어가신 고난의 길
“보아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며, 그들은 그를 사형에 처하도록 정죄하고, 그를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주어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에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태복음 20장 18~19절)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의 날이 가까움을 아시고, 제자들이 갑작스러운 재난에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예언하시며, 곧 이루실 부활로 그들을 강하게 하십니다.[칼빈] 열두 제자만 따로 데리고 가신 것은, 무리가 이 말씀을 아직 거리낌 없이 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17절).[헨리·풀핏]
이 예고는 앞선 예고(마 16:21)보다 더 구체적이어서, 정죄받으심과 이방인에게 넘겨지심과 조롱·채찍질·십자가형을 낱낱이 말씀하십니다.[헨리] 여기서 "정죄하리니"는 공회의 행위로, 그들은 사형을 선고할 수는 있었으나 스스로 집행할 권한은 없었습니다(18절).[풀핏] 그리스도께서 세부 사항까지 정확히 예언하신 것은 그분의 신성을 더 분명히 드러내는 증거이며,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거리낌을 숨기지 않고 온 사건을 솔직히 선언하십니다.[칼빈] 부활에 대한 언급이 뒤따르는 것은 그분 자신과 제자들을 함께 격려하기 위함입니다(19절).[헨리]
십자가는 예수께 닥친 사고가 아니라 친히 내다보시고 스스로 걸어가신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인도하시는 손길을 신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20~28절 — 크고자 하거든 섬기는 자가 되십시오
너희 가운데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가운데서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마태복음 20장 26~28절)
세베대의 두 아들 이야기는 인간 허영의 밝은 거울입니다. 적절하고 거룩한 열심조차 종종 야망이나 다른 육신의 악과 함께 자란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칼빈] 그들은 어머니를 앞세워 자리를 청했으니,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높이는 체면을 저어하여 다른 이를 시켜 명예를 구하게 합니다(20~21절).[헨리]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신한 것은 믿음의 고귀한 표본이지만, 즉시 가장 높은 자리를 원한 것은 순수한 씨앗이 마음에 심기자마자 얼마나 쉽게 변질되는지를 보여 줍니다.[칼빈] 그래서 예수의 대답은 청원을 낸 어머니가 아니라 그것을 꾸민 아들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다른 이가 우리를 대신해 기도해도 그 응답은 우리의 상태를 따라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22절).[헨리] "내가 마시려는 잔"과 "내가 받는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겪으실 내적·영적 고통과 외적 박해를 가리키는 비유입니다(22절).[헨리·풀핏] 이 잔이 성만찬의 신비를 암시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므로 더 단순하게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정하신 고난의 분량으로 읽는 편이 낫다고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잔과 세례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성례를 예표한다고 더 적극적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칼빈·풀핏] 열 제자가 분개한 것은 근거가 없었으나, 주님은 이 기회로 그들 안에 잠복해 있던 같은 야망의 병을 드러내려 하셨습니다(24절).[칼빈] 이방 나라의 통치자는 백성을 지배하고 권세를 부리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서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25~27절).[헨리·칼빈] 이는 교회의 영적 통치와 세상의 제국을 구별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칼빈]
그 절정에 인자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는 선언이 놓입니다(28절). 그리스도는 종으로 사시고 제물로 죽으심으로 죄에 대한 속전을 치르셨으니, 이 한 말씀이 사람의 공로로 죄를 갚는다는 모든 헛된 주장을 무너뜨립니다.[헨리·칼빈] 이 대속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고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입니다.[헨리·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높아지려는 다툼을 내려놓고, 섬김으로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을 따라 형제를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29~34절 — 눈을 열어 따르게 하시는 은혜
보라, 두 맹인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주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마태복음 20장 30절)
여리고를 나가실 때 길가의 두 맹인이 부르짖은 기도에는 네 가지가 함께 있었습니다. 무리의 제지에도 더욱 크게 외친 간절함,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만을 구한 겸손, "다윗의 자손이여"라 부른 믿음, 그리고 책망에도 물러서지 않은 인내입니다(30~31절).[헨리]
그들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른 것은 단순한 존칭이 아니라 그분을 약속된 메시아로 인정하는 믿음의 표현이며, 이는 맹인의 눈을 열어 주실 분이라는 옛 예언(사 35:5)에 근거한 것입니다.[칼빈·풀핏] 예수께서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자비를 우리에게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자비 쪽으로 끌어당기는 기도의 원리를 보여 줍니다(32절).[헨리]
세 복음서가 전하는 맹인의 수와 장소가 서로 다른 데 대해, 이를 굳이 별개의 사건으로 나누는 억지 가정을 배격하고 복음서 기자들이 같은 사건에서 서로 다른 세부를 진술하거나 생략하는 것은 흔한 일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러 조화 가설을 소개하면서도 "복음의 신뢰성은 그런 세부의 수정에 달려 있지 않다"고 결론짓는 이도 있습니다.[칼빈·풀핏] 눈을 뜬 두 사람이 곧 예수를 따른 것은, 그분이 먼저 은혜로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시고 그렇게 마음을 그분을 따르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34절).[헨리·칼빈]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을 보게 하신 그 은혜를 좇아 주님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연결된 말씀
- 마태복음 19장 — 이 장의 포도원 비유가 앞 장 끝의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리라"(마 19:30)는 말씀을 설명하며, 비유 전체가 "우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라는 베드로의 물음(마 19:27)에 대한 답으로 주어집니다.
- 고린도전서 15장 — 늦게 부름받은 바울(고전 15:8)이 일찍 시작한 이보다 더 큰 은혜에 이른 예로, 상급이 회심의 시기가 아니라 은혜 안에서의 준비에 달렸음을 보이는 데 인용됩니다.
- 출애굽기 16장 — 만나를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던 일(출 16:18)로, 모두에게 완전한 행복이 될 품삯을 예증합니다.
- 누가복음 15장 — 맏아들이 돌아온 탕자를 받아들이는 아버지에게 불평한 일(눅 15:28)로, 처음 온 일꾼의 불평과 나란히 놓입니다.
- 마태복음 16장 — 이 장의 세 번째 수난 예고가 앞선 예고(마 16:21)보다 더 구체적임을 보이는 배경이 됩니다.
- 사도행전 12장 — 야고보가 헤롯에게 죽임당함(행 12:2)으로 그리스도의 잔에 먼저 참여했다는 해설의 근거가 됩니다.
- 이사야 35장 — 맹인의 눈을 열어 주실 메시아의 예언(사 35:5)으로, 두 맹인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른 믿음의 배경이 됩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20장은 하나님 나라의 셈법이 세상의 셈법과 다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 줍니다. 상급은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고, 위대함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에 있으며, 그 모든 원리의 뿌리에는 섬기러 오셔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신 인자가 계십니다.[헨리·칼빈]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수고를 값으로 내세우지 말고 은혜를 감사로 받으며, 높아지려는 다툼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공통] 눈을 열어 따르게 하신 그 은혜가 오늘도 성도를 부르시니,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