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장 — 벧엘로 돌아가 서원을 갚다
요약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한 성경 전체의 첫 책이며, 35장은 세겜에서 벌어진 유혈 사건(34장) 바로 다음에 놓입니다. 딸 디나의 일로 아들들이 세겜 성읍을 도륙하여 야곱이 가나안 이웃들의 보복을 두려워하던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 벧엘로 올라가라 명하십니다. 벧엘은 야곱이 오래전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치던 밤에 하나님을 만나 제단 쌓기를 서원한 곳입니다. 이 장은 세 번의 하나님과의 교제와 세 번의 장례를 나란히 담습니다. 벧엘로의 부름과 순종(1~5절), 제단 건축과 서원 이행(6~8절), 하나님의 두 번째 현현과 언약 갱신(9~15절), 그리고 드보라와 라헬과 이삭의 죽음이 그것입니다. 그 사이에 르우벤의 범죄와 열두 아들의 명단도 함께 기록됩니다.
장의 흐름
- 1~5절 —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 명하심. 서원의 상기, 이방 신상 제거와 정결 준비, 안전한 출발.
- 6~8절 — 벧엘 도착. 엘벧엘 제단 건축, 서원 이행, 유모 드보라의 죽음과 매장(알론바굿).
- 9~15절 — 하나님의 두 번째 현현. 이름 "이스라엘"의 재확증, 자손과 땅의 언약 갱신, 돌기둥 건립과 전제, 벧엘 재명명.
- 16~20절 — 라헬의 죽음. 에브랏 길에서 난산으로 세상을 떠남, 베노니에서 베냐민으로, 무덤과 묘비.
- 21~26절 — 르우벤의 죄와 야곱의 슬픔, 야곱의 열두 아들 명단.
- 27~29절 — 야곱이 헤브론의 이삭에게 이름, 이삭의 죽음과 에서·야곱의 공동 장례.
단락별 해설
1~5절 — 벧엘로 올라가라는 부르심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거기 머물러 살아라. 네가 네 형 에서의 얼굴을 피해 도망치던 때에 너에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에 제단을 쌓아라." (창세기 35장 1절)
야곱은 벧엘에서 드린 서원을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인상은 세월이 지나면 흐려지기 쉽고, 곤경이 지나가면 처음의 의무감도 예전만큼 느껴지지 않습니다.[헨리·JFB] 가정의 심한 고난으로도 서원을 기억나게 하지 못하자,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소홀히 여긴 의무를 직접 상기시키셨습니다(1절).[헨리] 그런데 하나님은 즉시 나타나지 않으시고 먼저 슬픔과 과도한 염려를 허용하셨으니, 이는 위안을 극한의 필요가 이를 때까지 미루어 인내를 배우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칼빈] 야곱을 회복시킨 주된 처방은 기적이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 성도의 삶의 주된 과업입니다.[칼빈] 그 부름의 표현이 너무도 온유하여, 세겜 사건 이후 죄책감과 보복의 불안에 시달리던 야곱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JFB]
거룩한 예식 앞에는 거룩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집안의 가장으로서 권위를 사용해 이방의 신들을 버리고 몸을 깨끗이 하며 옷을 갈아입게 하였고, 이 정결과 의복 교체는 마음의 정화와 헌신을 나타내는 상징적 예법이었습니다(2절).[헨리·JFB] 우상을 "이방 신들"이라 부른 것 자체가 오직 한 분 하나님께만 헌신해야 함을 아는 고백이었습니다.[칼빈] 참된 개혁은 온전해야 하니, 죄와는 완전히 결별하여야 합니다.[헨리] 야곱이 우상을 부수지 않고 상수리나무 아래 묻은 것은 미래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그의 연약함을 보여 주지만, 하나님은 결함이 있어도 그 순종을 받으셨습니다(4절).[칼빈] 이렇게 의무의 길로 나서자 오히려 이웃 성읍들이 초자연적 두려움에 사로잡혀 야곱의 아들들을 뒤쫓지 못하였으니, 의무의 길이 곧 안전의 길이었습니다(5절).[헨리·칼빈] 성도는 두려움 때문에 의무를 미룰 것이 아니라, 순종의 자리에서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을 신뢰해야 합니다.[공통]
6~8절 — 엘벧엘의 제단과 드보라의 죽음
그는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고 불렀다. 그가 자기 형의 얼굴을 피해 도망칠 때에 하나님께서 거기서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35장 7절)
야곱은 그곳을 "엘벧엘", 곧 "벧엘의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성도가 예식에서 얻는 위로는 벧엘이라는 장소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예식은 텅 빈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7절).[헨리] 야곱이 하나님의 명령을 넘어서는 것을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의 경배가 다른 어떤 표시보다 탁월했던 이유이니, 말씀으로 헌정되지 않은 합당한 제단은 없습니다.[칼빈] 이어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상수리나무 밑에 묻히고 그 나무는 "알론바굿", 곧 울음의 상수리나무라 불렸습니다(8절).[JFB] 늙고 신실한 종은 존중받아야 하며, 죽음은 하나님의 집에서도 찾아올 수 있으므로 성도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헨리]
9~15절 —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과 언약의 갱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만, 다시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하겠다." 그래서 그를 이스라엘이라 부르셨다. (창세기 35장 10절)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라. 한 민족과 여러 민족의 무리가 너에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몸에서 나올 것이다. (창세기 35장 11절)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심은 야곱의 제단을 인정하시고 드보라를 잃은 슬픔을 위로하시기 위함이었으며, 이름을 다시 확증하신 것은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도록 격려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9~10절).[헨리] 하나님은 야곱을 더 탁월하고 기억할 만한 신탁을 받았던 곳으로 다시 데려와 그 믿음에 새로운 확증을 주셨으니, 같은 약속의 반복은 남은 생애를 더 큰 용기로 마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칼빈]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고 좋은 땅을 얻으리라는 두 약속에는 영적 의미가 담겨 있어, 약속된 씨앗은 그리스도를, 약속된 땅은 하늘을 가리킵니다(11~12절).[헨리] 야곱은 그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를 부었는데, 이 포도주 헌주는 성경에 처음 언급되는 예식입니다(14절).[풀핏]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떠나 올라가셨으니, 성도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하나님과의 가장 달콤한 교제는 짧고 덧없이 끝나고 오직 천국에서만 영원히 함께합니다(13절).[헨리] 훗날 이 벧엘이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로 "벧아웬", 곧 악의 집이 되고 만 것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한 장소에 종교의 형식조차 영원히 남길 수 없음을 일깨웁니다.[헨리]
16~20절 — 라헬의 죽음
그가 심한 산고를 겪고 있을 때에 산파가 그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지금 당신이 또 아들을 낳을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17절)
라헬은 자기 목숨이 떠나가면서 (그가 죽어 가면서)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불렀으나, 그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35장 18절)
큰 위로를 받은 직후에 큰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라헬의 극심한 산고는 죄가 세상에 들여온 결과이며, 산파의 격려도 그를 살리지 못하였으니, 참된 두려움을 없애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16~17절).[헨리] 라헬을 잃게 하신 데에는, 레아보다 라헬을 지나치게 사랑하던 야곱의 과도한 애정을 교정하시려는 주님의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칼빈] 역경 속에서 슬픔에 너무 짓눌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배은망덕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옛 성도들이 죽은 자의 매장에 그토록 열심이었던 것은 어리석은 의식이 아니라 부활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칼빈] 라헬은 죽어 가며 아들을 "내 슬픔의 아들" 베노니라 불렀으나, 야곱은 어머니의 죽음을 아이에게 상기시키지 않으려고 "내 오른손의 아들" 베냐민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18절).[헨리·JFB]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누리는 자들도 인생 공통의 시련을 기대해야 하며, 이런 시련들의 연속을 통해 성도는 더 나은 삶에 대한 소망으로 훈련됩니다.[헨리·칼빈]
21~26절 — 르우벤의 죄와 열두 아들
이스라엘이 그 땅에 살고 있을 때에 르우벤이 가서 자기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했는데, 이스라엘이 그것을 들었다.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었다. (창세기 35장 22절)
르우벤의 죄는 야곱에게 큰 슬픔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것을 들었다"는 짧은 표현 속에 슬픔과 수치와 경악과 분노가 함께 함축되어 있습니다(22절).[헨리] 이 근친상간은 사탄이 선택받은 자들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였으나, 하나님의 값없는 선택은 그들의 가치에 근거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확고하고 효력이 있습니다.[칼빈] 이어 열두 아들의 이름이 한데 모입니다(23~26절). 열두 지파 우두머리들의 이름이 이렇게 함께 열거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며, 이후 성경 끝까지 자주 되풀이됩니다.[헨리] 다만 성경이 집단을 진술할 때에는 다수에게 사실이나 모든 개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표현이 흔하니, 베냐민은 실제로는 밧단아람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 태어났습니다(26절).[JFB] 성도는 죄가 가정에 드리운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언약이 굳게 서 있음을 신뢰해야 합니다.[공통]
27~29절 — 이삭의 죽음과 형제의 화해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숨을 거두고 죽어 자기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 지냈다. (창세기 35장 29절)
야곱은 마침내 헤브론의 이삭에게 이르렀고, 이삭은 나이가 많고 늙어 세상을 떠났습니다(27~29절). 이삭의 죽음은 여기서 미리 기록된 것으로, 실제로는 요셉이 사라진 지 여러 해 뒤에 일어났습니다.[JFB·풀핏] 이삭이 "날이 차서" 죽었다는 말은 나이뿐 아니라 감정의 상태까지 가리키니, 삶에 만족하여 평화롭게 떠났다는 뜻입니다. 긴 삶이 복이 되려면 만족하며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28절).[칼빈] 무엇보다 에서와 야곱이 아버지의 장례를 함께 화목하게 치른 것은, 하나님께서 한때 야곱을 죽이려던 에서의 살의를 놀랍게 변화시키셨음을 보여 주는 기쁜 증거입니다(29절).[헨리·JFB] 죽음은 무서운 분리자이지만 동시에 흩어진 자들을 다시 연합시키는 자이기도 하니, 아버지의 무덤에서 두 형제가 만나 화해한 것이 그러합니다.[풀핏] 성도는 언젠가 만족하며 세상을 떠날 삶의 끝을 바라보며, 다툼을 화해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공통]
연결된 말씀
- 창세기 28장 —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치던 밤 하나님을 처음 만나 제단을 서원한 곳으로, 이 장 1절의 명령이 그 서원의 이행을 되짚습니다.
- 창세기 32장 — 얍복강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사건으로, 이 장 10절의 이름 재확증이 그 만남을 다시 확인해 준다고 주석들이 나란히 읽습니다.
- 창세기 3장 — 라헬의 극심한 산고(16절)를 죄가 세상에 들여온 해산의 고통과 잇대어 설명하는 근거로 지시됩니다.
- 창세기 27장 — 에서가 품었던 살의를 하나님이 변화시켜 두 형제가 아버지의 장례에서 화해한 것(29절)의 배경으로 되짚어집니다.
- 요한계시록 7장 — 이 장 23~26절에 처음 모인 열두 지파의 이름이 성경 끝까지 이어져 열거되는 대표적 본문으로 인용됩니다.
- 마태복음 2장 — 라헬이 묻힌 에브랏 곧 베들레헴(19절)이 훗날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곳이 됨을 밝히는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마무리
창세기 35장의 중심은, 지체된 서원을 친히 상기시키시고 언약을 새롭게 확증하시며 큰 위로와 큰 시련을 교차시켜 그 백성을 훈련하시는 하나님입니다.[헨리·칼빈]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로 다시 부르시고, 그의 순종을 결함째로 받으시며, 죽음과 죄로 얼룩진 가정 가운데서도 자손과 땅의 약속을 굳게 세우셨습니다.[공통]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미루어 둔 의무를 지체 없이 이행하여, 순종의 자리에서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을 신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성도는 위로의 날과 시련의 날을 모두 하나님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받아들이며, 다툼을 화해로 바꾸시고 만족한 삶의 끝을 예비하시는 그분을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칼빈·풀핏]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