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8장 — 손님으로 오신 여호와와 아브라함의 중보
요약
창세기 18장은 아브라함이 할례의 명령에 순종한 지 며칠 뒤에 이루어진 재방문의 기록으로, 앞 장에서 세우신 언약이 실제 삶의 자리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에서 세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시는데, 이 나타나심은 지금까지 기록된 어느 신현보다 더 자유롭고 친밀하며 위엄은 다소 낮아진 방식이어서, 훗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육신을 미리 보여 준다고 옛 주석가들은 읽었습니다.[헨리·JFB·풀핏] 장은 크게 네 부분으로 흐릅니다. 아브라함의 극진한 환대(1~8절), 사라에게 갱신된 아들 약속과 사라의 불신앙의 웃음(9~15절), 소돔을 향한 심판 계획을 벗에게 알리기로 하신 결심(16~22절), 그리고 의인 열 명까지 낮추어 간구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23~33절)입니다.
장의 흐름
- 1~2절 — 마므레에서 여호와께서 세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심.
- 3~8절 — 발 씻을 물과 빵과 송아지 요리로 이어진 아브라함의 극진한 환대.
- 9~15절 — 사라에게 아들 약속이 갱신되고, 사라의 속웃음과 거짓 부인이 책망받음.
- 16~19절 — 손님들이 소돔 쪽으로 떠나며, 여호와께서 심판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알리기로 결심하심.
- 20~22절 —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말씀하시고 "내려가서 보겠다"고 하심.
- 23~33절 — 의인 오십 명에서 열 명까지 낮추어 간구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단락별 해설
1~8절 — 손님을 맞이한 아브라함의 환대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그때 아브라함은 한낮의 더위 속에서 장막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창세기 18장 1절)
이번 현현은 은혜롭고 낮아진 나타나심입니다. 천사들이 천사적 영광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손님으로 와서 아브라함의 신뢰를 곧바로 일깨웠습니다.[풀핏]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는 평지가 아니라 넓게 그늘을 드리우는 상수리나무 무리로, 정오에는 장막 안이 무더워 바람이 통하는 그늘진 앞쪽에서 쉬는 것이 그 지방의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1절).[JFB] 아브라함이 한낮 뙤약볕에 장막 문에 앉은 것은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그네를 환대할 기회를 찾기 위함이었으니, 선한 일에 가장 열성적인 사람일수록 그 일에서 가장 큰 기쁨을 얻는 법입니다.[헨리] 세 사람 가운데 한 분은 언약의 천사, 곧 하나님의 아들이며 나머지는 피조 천사라고 보는 이들이 있는데, 아브라함이 그분을 나머지와 구별하여 "여호와"라 부른 데서 그렇게 읽습니다(3절).[헨리]
아브라함의 대접은 공손함과 간청과 소박함과 부지런함, 이 네 가지가 두드러집니다.[헨리] 그는 손님을 붙들며 "빵을 좀 가져올 터이니 잡수시고 기운을 차리신 뒤에 길을 가십시오"라고 청하였습니다(창세기 18장 5절). 스스로 "빵 한 조각"이라 낮추어 말한 것은 자랑을 피하고 손님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겸손이었습니다.[칼빈] 발 씻을 물을 드리는 것은 지금도 그 지역 유목민 사이에서 가장 먼저 행하는 환대의 관습이며, 송아지를 잡은 것은 새끼 염소나 어린양을 넘어 한층 극진한 대접을 뜻합니다.[JFB] 천사들이 실제로 음식을 먹은 것은 그 방문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진정한 외적 현현이었음을 증명합니다.[칼빈·풀핏] 무엇보다 히브리서는 이 사건을 들어 나그네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권면하니, 믿음의 사람은 보상의 소망 없이 낯선 이를 섬기는 자리에서 참된 자선의 증거를 세워야 합니다.[공통]
9~15절 — 갱신된 약속과 사라의 웃음
"여호와에게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 정한 때에, 곧 내년 이맘때 내가 너에게 다시 돌아오겠다. 그때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창세기 18장 14절)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극진한 대접에 대한 보답으로 하늘의 은혜로운 메시지, 곧 아들의 약속을 전하였습니다.[헨리] 사라는 관습상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으나 들을 수 없는 곳에 있어서는 안 되었으니, 믿음은 들음에서 나므로 약속이 그녀에게도 전달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10절).[헨리] 그러나 사라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 웃음은 아브라함의 웃음과 달리 의심과 불신의 웃음이었습니다(12절).[공통]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이성과 자연법칙의 잣대로 재는 것은 언제나 그분께 무례한 일이며, 사라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감각의 한계 안에 가두었던 것입니다.[칼빈] 오랜 지연이 믿음을 약하게 만든 듯, 사라는 추궁을 당하자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며 거짓 부인까지 더하였습니다(15절).[JFB]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더 큰 부끄러움이니, 사라의 죄는 불신에 거짓말을 더한 무거운 것이었습니다.[헨리·JFB] 그럼에도 사라의 두려움은 위선자의 고집스러운 악의가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면서 떨었던 것으로, 하나님의 위엄이 진지하게 느껴질 때 사람을 무감각함에서 흔들어 깨웁니다.[칼빈] 어떤 옛 주석가는 사라의 웃음을 순전한 불신앙으로 보고, 다른 이는 의심과 기쁨이 뒤섞인 감정으로도 설명하니, 여기서는 이 두 해석을 나란히 둘 수 있습니다. 다만 사라가 남편을 "내 주"라 부른 것만은 유일하게 아름다운 부분으로, 성령께서 모든 아내가 본받도록 이를 특별히 주목하셨습니다.[헨리·칼빈]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오랜 기다림 앞에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자신의 계산으로 제한하지 않아야 합니다.
16~19절 — 벗에게 뜻을 알리시는 여호와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창세기 18장 17절)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자신의 의논에 참여시키기로 하신 데에는 두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친구요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녀와 후손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길을 지키게 할 자였기 때문입니다.[헨리] 여기서 "여호와의 길"이란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과 이웃을 향한 정의로운 행동 전체를 가리키며, "공의"란 비참하고 억눌린 자에게 손을 내밀고 약자가 부당하게 해침 받지 않도록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19절).[칼빈] 하나님이 뜻을 알리시는 것은 그 지식이 아브라함과 함께 소멸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후손에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칼빈] 하나님은 신실한 자들에게 이전에 허락된 은혜 위에 새 은혜를 점점 쌓으시되, 그 선하심의 원인을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자신에게 돌리십니다.[칼빈] 자신의 지식을 잘 사용하는 자는 더 많이 알게 되니, 믿음의 사람은 받은 진리를 후손에게 가르쳐 전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헨리]
20~22절 — 소돔의 부르짖음과 내려가서 보심
"내가 이제 내려가서, 나에게 들려온 그 부르짖음대로 그들이 정말 그렇게 행하였는지 보겠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알아보겠다." (창세기 18장 21절)
"내가 내려가서 보겠다"는 하나님이 무엇을 모르신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방식으로 표현하신 말입니다.[공통] 이는 그분의 사법적 처리의 공정성을 보이시고, 심판을 맡은 이들에게 신중한 조사의 모범을 남기시며, 아브라함에게 중보의 여지를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헨리] 하나님은 즉시 벼락을 내리지 않으시고, 죄악이 죽음을 부를 만큼 성숙한 자리에 이르렀을 때에야 마침내 형벌을 집행하십니다.[칼빈] 이 성읍들은 후대에 하나님의 준엄함을 보여 주는 본보기가 되어야 했으므로, 심판이 경솔하거나 지나치지 않았음을 입증할 근거가 함께 제시된 것입니다.[JFB] 손님들이 소돔 쪽으로 발길을 돌린 뒤에도 아브라함은 여전히 여호와 앞에 서 있었습니다(22절). 그러므로 온 땅을 심판하시는 분의 응징은 결코 서두름이나 오해에서 나오지 않으며, 성도는 그 신중하고 공정한 심판을 두려움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23~33절 —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온 땅을 심판하시는 분께서 어찌 공의롭게 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창세기 18장 25절)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갔다"는 것은 거룩한 관심과 거룩한 확신을 함께 담은 걸음이었습니다.[헨리] 그가 붙잡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확신은 세 가지였습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않으실 것, 의인이 악인처럼 되게 하지 않으실 것, 그리고 온 세상의 재판장은 반드시 공의롭게 행하실 것입니다(23~25절).[헨리] 이는 하나님께 그분의 의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격 자체에서 그분이 불의를 의도하실 수 없다고 추론하는 겸손한 논리였습니다.[칼빈] 오십 명에서 열 명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수를 낮추어 간 것은 궤변이 아니라, 소돔에 온전히 불의하지 않은 몇 사람이 있으리라는 공평한 가정에서 나온 혼란스러운 마음의 언어였습니다.[칼빈]
아브라함이 "저는 티끌과 재에 불과한데도"라고 아뢴 데에는 깊은 겸손이 배어 있습니다(창세기 18장 27절). 가장 위대하고 공이 많은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티끌과 재일 뿐이니,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때마다 이 거리를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헨리·칼빈·풀핏] 그러면서도 그의 중보는 롯 한 사람에 대한 배려에 그치지 않고 다섯 도시 백성 전체를 향한 긍휼에서 나온 것으로, 궁극적 의도를 처음에는 감추고 거리를 두고 간구를 시작하는 거룩한 영리함을 보여 줍니다.[풀핏] 이 장면은 기도와 중보의 효력을 분명하게 드러내니, 많은 죄악된 도시와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JFB] 아브라함이 왜 열 명에서 멈추었는지는, 그만한 의인도 없다면 멸망이 마땅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인지 하나님이 그 마음을 제어하셨기 때문인지 두 가지로 설명하는 이들이 있고, 구하기를 멈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허락된 자유의 한계에 이르렀다고 느낀 아브라함 자신이었다고 무게를 두는 이도 있습니다.[헨리·JFB·풀핏]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겸손과 담대함을 함께 품고 이웃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는 중보의 자리를 배워야 합니다.
연결된 말씀
- 창세기 17장 — 아브라함의 기쁜 믿음의 웃음(17:17)이 사라의 불신앙의 웃음(12절)과 대조되는 근거로 주석들이 나란히 읽는 앞 장입니다.
- 창세기 19장 — 이 장에서 예고된 소돔 심판이 실제로 집행되고 롯이 건짐받는 장면으로, 중보기도의 결말이 이어지는 본문입니다.
- 히브리서 13장 — "나그네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는 권면의 근거로 여러 주석이 이 환대 사건(1~8절)을 명시적으로 인용합니다.
- 베드로전서 3장 — 사라가 남편을 "내 주"라 부른 것(12절)을 아내의 본받을 자세로 특별히 주목하는 말씀입니다.
- 야고보서 5장 — 의인의 간구가 큰 효력을 낸다는 진리로, 아브라함의 중보(23~33절)와 함께 지시되는 말씀입니다.
마무리
창세기 18장의 중심은 벗에게 손님으로 찾아오시고 자신의 뜻을 알려 주시며 중보의 여지를 열어 두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극진한 환대를 기뻐 받으시고, 오랜 기다림에 지친 불신앙을 책망하시되 은혜로 붙드시며, 죄가 무르익은 성읍을 심판하시기 전에도 공의를 신중히 살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약속을 자신의 이성과 감각으로 제한하지 말고,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시는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둘째, 티끌과 재에 불과함을 겸손히 인정하면서도 담대함을 잃지 않고, 이웃과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서서 간구하는 중보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