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장 — 영원한 언약과 할례의 표징
요약
창세기 17장은 긍휼의 아버지 하나님과 믿음의 조상 아브람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조항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꼭 13년이 지나 아브람이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여호와께서 다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모세가 그 긴 세월을 건너뛴 것은 기억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가장 알아야 할 것을 선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알리시고, 아브람에게 흠 없이 자기 앞에서 행할 것을 명하신 뒤, 이미 세우신 언약을 확증하며 굳게 하십니다. 이 장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언약이 갱신되는 상황(1~3절), 언약 자체의 내용과 표징(4~22절, 곧 이름의 변경과 할례와 사라를 통한 아들), 그리고 아브라함과 온 집안의 할례 시행(23~27절)입니다.
장의 흐름
- 1~3절 — 언약 갱신의 상황. 아브람 99세, 여호와의 나타나심("전능한 하나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림.
- 4~6절 —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약속과 그 표로서의 개명(아브람→아브라함).
- 7~8절 — 언약의 두 핵심.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과 가나안을 영원한 소유로 주심.
- 9~14절 — 언약의 표징인 할례의 규례. 대상과 시기, 이방인 종의 포함, 불이행의 형벌.
- 15~16절 — 사래의 개명(사래→사라)과 그녀를 통해 아들을 주리라는 약속.
- 17~18절 — 아브라함의 웃음과 이스마엘을 위한 간구.
- 19~22절 — 하나님의 응답. 이삭에게 이어지는 언약과 이스마엘에게 주어지는 별도의 복.
- 23~27절 — 아브라함과 온 집안 남자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할례 시행.
단락별 해설
1~3절 — 언약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흠 없는 사람이 되어라." (창세기 17장 1절)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는 성도에게 매일 주어지는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때때로 베풀어지는 은혜입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뒤 13년 동안 특별한 계시가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가르쳐 줍니다(1절).[헨리] 이삭의 약속이 그토록 미루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급한 결혼이 바로잡히고, 아브람과 사래가 나이 든 후에야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드러나며, 오래 기다린 끝에 얻는 아이라야 참된 이삭이 되기 때문입니다.[헨리] 여호와께서 나타나신 것은 셰키나, 곧 압도적 밝기로 임하시는 영광의 가시적 계시였습니다.[헨리·JFB] 하나님은 먼저 자신을 알리시고 믿음으로 보게 하신 뒤에야 언약 안으로 이끄십니다.[헨리]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는 엘 샤다이, 곧 족장들에게 자신을 알리실 때 쓰신 이름입니다(1절). 이 이름은 스스로 충족하시며 언약 안의 백성에게도 넉넉히 충분하신 분임을 뜻합니다.[공통] 이어지는 "내 앞에서 행하여 흠 없는 사람이 되어라"는 무죄한 완전을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은혜 언약의 훌륭한 점은 진실함이 곧 복음적 완전이라는 데 있으며, 이는 하나님을 항상 앞에 두고 그분의 눈 아래 있음을 자각하며 사는 것입니다.[헨리·칼빈]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것은 신적 영광에 압도된 경외인 동시에, 자신의 자격 없음 앞에 엎드린 겸손이었습니다(3절).[헨리·JFB] 은혜에 의지하는 믿음은 순수한 양심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칼빈]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침묵이 오래 이어지는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정한 때에 임함을 신뢰해야 합니다.
4~6절 — 많은 민족의 조상과 새 이름
"이제부터 네 이름을 다시는 아브람이라 부르지 않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창세기 17장 5절)
은혜 언약은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언약이며, 그분이 이를 영광으로 여기십니다. 약속이 엄숙하게 "보아라"로 시작되는 것이 이를 드러냅니다(4절).[헨리] 아브라함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말씀은 두 겹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삭과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자손을 통한 육신의 후손이 있고, 또한 모든 시대의 믿는 자들이 그의 영적 자손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헨리·칼빈]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아브람의 뿌리에 접붙여지리라는 이 전망을 사도 바울이 신실하게 풀어냈습니다.[칼빈]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뀐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5절). 동방에서 이름의 변경은 그 사람의 이력과 지위에 새로운 상황이 생겼음을 알리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 시대와 나라의 관습에 맞게 행하셨습니다.[JFB] 이 개명은 자식이 없어 슬픔이던 이름을 이제 기쁨이 되게 하여 그의 믿음을 격려하고 견고케 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헨리]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자기 정체를 읽어야 합니다.
7~8절 — 언약의 두 가지 약속
"내가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네 자손과 함께 대대로 내 언약을 세워 영원한 언약으로 삼고, 너와 네 뒤에 오는 자손의 하나님이 되겠다." (창세기 17장 7절)
언약의 첫째 내용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7절). 이 한마디에 모든 특권과 기쁨과 소망이 집약되어 있으며, 이는 아브라함 언약의 영적 성격을 분명히 드러냅니다.[헨리·풀핏] 둘째 내용은 가나안을 영원한 소유로 주신다는 것입니다(8절). 이 땅은 이미 약속되었던 것이 여기서 "영원한 소유"로 확증된 것입니다.[JFB] 그러나 지상의 가나안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인 하늘의 영원한 안식과 기업을 예표합니다.[공통] 이 언약은 한번 세워지면 변경되거나 취소될 수 없고, 후손에게 전달되며, 복음적 의미에서 영원합니다.[헨리] 그러므로 성도는 눈에 보이는 기업 너머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친히 자기 하나님이 되신다는 약속을 가장 큰 복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9~14절 — 언약의 표징, 할례
"너희는 포피를 베어 할례를 받을 것이니,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창세기 17장 11절)
할례는 언약의 표징이자 인침입니다(11절). 이전에 언약이 돌에 조각되었듯, 하나님은 할례로 아브라함의 살에 자신의 언약을 새겨, 그의 가족을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 삼으신 입양의 엄숙한 기념으로 삼으셨습니다.[칼빈] 이 표징은 처음 보기에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 지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서 태어나는 모든 것이 오염되었음을 보이고, 또한 구원이 아브라함의 복된 씨에서 나올 것을 가리킵니다.[칼빈] 성례는 외적 고백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의 양심 사이에 개입하는 보증입니다.[칼빈]
할례를 난 지 여드레 만에 시행하게 하신 데에는 그 고통을 견딜 힘을 갖추게 하고 적어도 한 안식일이 지나게 하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12절).[헨리] 할례받지 않은 자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는 경고(14절)를 두고, 옛 주석가들은 사형 집행으로 보는 견해와 공동체에서 파문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는 계산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나란히 논하며 후자에 더 무게를 두기도 했습니다.[풀핏] 이 표징은 언약의 백성에게 온 율법을 지킬 의무를 지웠으나,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피 흘리는 모든 의례가 폐지되어 할례는 세례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헨리] 그러므로 성도는 표징이 가리키는 실체, 곧 마음의 정결과 그리스도께 속함을 언제나 앞세워야 합니다.
15~16절 — 사라의 새 이름과 약속된 아들
"내가 그에게 복을 주고, 또한 그를 통하여 네게 아들을 주겠다. 그렇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리니, 그는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고 여러 백성의 왕들이 그에게서 나올 것이다." (창세기 17장 16절)
하나님의 계획은 점진적으로 알려집니다. 오래전에 아들이 약속되었으나, 이제 비로소 그가 사라의 자녀임이 밝혀집니다(15절).[JFB] 사래에서 사라로의 개명 또한 범위의 확장을 상징합니다. "나의 왕녀"에서 "많은 이들의 왕녀"로 바뀌어, 그에게서 여러 민족의 왕들이 나올 것을 나타냅니다(16절).[헨리·칼빈] 아들에 대한 약속이 두루뭉술한 후손에서 사라라는 구체적 어머니에게로 좁혀지는 이 순간에, 오랜 슬픔의 이름이 복의 이름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밝혀 보이더라도, 그 약속이 정한 때에 가장 분명한 모습으로 이루어짐을 신뢰해야 합니다.
17~18절 — 아브라함의 웃음과 간구
"그러자 아브라함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며 속으로 말하였다. "백 살 된 사람에게서 아이가 태어나겠는가? 아흔 살이 된 사라가 아이를 낳겠는가?"" (창세기 17장 17절)
아브라함의 웃음은 불신앙의 비웃음이 아니라,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에 대한 기쁨의 웃음이었습니다(17절).[공통] 이 반응에는 큰 겸손과 큰 기쁨과 큰 경이가 함께 있었으며, 이때 그는 멀리 그리스도의 날을 고대하며 기뻐하였습니다.[헨리] 다만 이 웃음이 전적으로 기쁨에서만 흘러나왔다고 보기 어렵다는 신중한 견해도 있으니, 뒤따르는 질문이 보여 주듯 부분적으로 경탄이 섞여 있었으나 그것이 믿음의 흔들림은 아니었습니다.[칼빈] 이스마엘을 위한 아브라함의 간구는 그를 더 원해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을까 두려워한 것입니다(18절).[헨리] 자녀를 위해 부모가 가장 간절히 구할 것은 그들이 "주 앞에서 살게" 되는 일입니다.[헨리·풀핏]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녀를 향한 최고의 소원을 그들의 회심과 영적 성장에 두어야 합니다.
19~22절 — 이삭에게 이어지는 언약
"아니다,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여라. 내가 그와 더불어 내 언약을 세워 그의 뒤에 오는 자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겠다." (창세기 17장 19절)
하나님은 언약을 이삭에게 세우시되 이스마엘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스마엘에게는 번성과 열두 지도자와 큰 민족이라는 일반적 복이 풍성히 약속됩니다(20절).[JFB] 그러나 이스마엘에게 약속된 것은 부와 존엄과 현재 삶에 속한 것들인 반면, 이삭과 맺으신 언약은 세상과 이 덧없는 삶 위로 솟아오르는 특별한 것입니다.[칼빈] 일시적 선물은 영의 아들들에게 약속되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오직 믿음으로 소망 중에 소유되는 영원한 복이 약속됩니다.[칼빈] 이삭이라는 이름이 "웃음"을 뜻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이 아들의 약속에 기뻐했기 때문입니다.[헨리]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기쁨이 되면, 약속된 긍휼은 때가 되어 넘치는 기쁨이 됩니다.[헨리] 하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아브라함을 떠나 올라가셨습니다(22절). 그러므로 성도는 눈에 보이는 형통이 아니라 언약 안에 담긴 영원한 몫을 참된 유업으로 여겨야 합니다.
23~27절 — 즉각적이고 온전한 순종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자기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가운데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날로 그들의 포피를 베어 할례를 행하였다." (창세기 17장 23절)
아브라함의 순종은 여러 면에서 모범이 됩니다. 그것은 이유를 묻지 않는 묵시적 순종이었고, "그날로" 이루어진 즉각적 순종이었으며, 자신마저 면제하지 않은 보편적 순종이었습니다(23~24절).[헨리] 모세는 아브라함이 예리한 고통과 생명의 위험이 따르는 상처를 자신에게 입히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 일을 다음 날로 미루지 않은 것을 칭찬합니다.[칼빈] 이 순종은 고통과 수치와 이방인의 비웃음이라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헨리] 아흔아홉 살의 아브라함과 열세 살의 이스마엘, 그리고 집안의 모든 남자가 같은 날에 함께 할례를 받았습니다(25~27절).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이유를 따지기보다 즉시, 온전히, 자신부터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연결된 말씀
- 로마서 4장 — 아브라함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고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며, 그의 웃음이 불신앙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근거로 주석들이 거듭 인용합니다(5절·17절).
- 히브리서 11장 — 가나안의 "영원한 소유"가 더 나은 본향인 하늘의 기업을 예표함을 보여 주는 말씀으로 함께 지시됩니다(8절).
- 출애굽기 6장 —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 족장들에게 자신을 알리실 때 쓰신 이름임을 밝히는 병행 구절입니다(1절).
- 요한복음 8장 — 아브라함이 그리스도의 날을 고대하며 기뻐하였다는 말씀으로, 17절의 웃음을 푸는 근거로 인용됩니다.
- 갈라디아서 5장 — 할례가 사람을 온 율법의 채무자로 만든다는 뜻을 밝히는 말씀으로 지시됩니다(9~14절).
- 사도행전 7장 — 할례가 "언약의 표징"으로 불리며 신약의 세례에 대응함을 보여 주는 근거로 인용됩니다(10절).
마무리
창세기 17장의 중심은 스스로 충족하신 "전능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에 이름의 변경과 할례라는 표징을 더하신 사건입니다. 이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약속이며, 그것은 지상의 가나안을 넘어 하늘의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게 합니다. 언약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오며, 그 표징은 마음의 정결과 그리스도께 속함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친히 자기 하나님이 되신다는 약속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기며, 형통이 아니라 언약 안의 영원한 몫을 유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둘째,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이유를 따지기보다 즉시, 온전히, 자신부터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은 복되며, 그 약속은 정한 때에 넘치는 기쁨으로 이루어집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