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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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장 — 결혼과 재물 앞에서 드러나는 마음

마태복음 19장 · 일반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마태복음 19장은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유대를 향해 내려가시는 전환점에 놓인 장입니다. 이 갈릴리를 떠나심은 공생애의 매우 엄숙한 순간으로, 그리스도는 부활 후를 제외하고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요단강 건너편, 곧 바리새인의 완고함에 덜 물든 베레아를 경유하는 더 길지만 안전한 노선을 택하십니다. 이 장은 크게 다섯 장면으로 흘러갑니다. 이혼에 관한 바리새인의 시험과 창조 질서에 근거한 답변(3~9절), 독신을 둘러싼 제자들과의 대화(10~12절), 어린아이를 영접하시는 축복(13~15절), 부유한 청년과 영생에 관한 문답(16~22절), 그리고 부자의 구원과 모든 것을 버린 자들에게 주시는 상급(23~30절)입니다. 결혼과 재물이라는 삶의 두 자리에서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붙들려 있는지가 차례로 드러납니다.

장의 흐름

  • 1~2절 —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 건너편 유대로 가시어 무리를 고쳐 주심.
  • 3~9절 — 이혼 논쟁: 창조 때의 "둘이 한 몸" 질서로 돌아가 결혼의 불가해소성을 가르치심.
  • 10~12절 — 독신: 모든 사람이 아니라 허락된 사람만 받는 은사, 세 종류의 고자.
  • 13~15절 — 어린아이를 막지 말라 하시며 안수하심, "하늘나라는 이런 이들의 것".
  • 16~22절 — 부유한 청년: 계명을 다 지켰다는 자부심과 소유를 향한 사랑의 정체.
  • 23~26절 — 부자의 구원: 낙타와 바늘귀, 사람에게 불가능하나 하나님께 가능함.
  • 27~30절 — 베드로의 질문과 상급: 열두 보좌, 백 배,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

단락별 해설

1~2절 —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 건너편 유대 지방으로 가셨다. 많은 무리가 그분을 따라왔고, 그분은 거기서 그들을 고쳐 주셨다. (마태복음 19장 1~2절)

그리스도께서 갈릴리를 마지막으로 떠나심은 결코 가벼운 장면이 아닙니다. 이는 사실상 갈릴리에 대한 작별 여행이었으나, 마태와 마가가 워낙 간략히 다룬 탓에 이 사실을 눈여겨보는 독자가 드뭅니다.[JFB·풀핏] 여기에는 하나의 원리가 담겨 있으니, 신실한 일꾼도 맡겨진 증언을 다 마치기 전에는 그 자리에서 옮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헨리] 무리가 어디든 따라오는 것은 그분을 향한 경의인 동시에 끊임없는 수고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의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헨리] 그러므로 성도는 사역의 자리에서 자기 안일이 아니라 맡겨진 일의 완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3~9절 — 이혼과 창조의 질서

그러니 이제 그들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19장 6절)

바리새인들이 이혼을 물은 것은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답해도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산된 딜레마였습니다.[헨리·칼빈] 당시 힐렐 학파는 어떤 이유로든 이혼이 가능하다 했고 삼마이 학파는 음란의 경우만 인정했으니, 두 학파가 갈린 이 민감한 자리에 질문이 던져진 것입니다.[JFB·풀핏] 그리스도는 논쟁의 관습이 아니라 인간의 원래 구조로 그들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 곧 한 쌍으로 지으셨고, 하와는 아담의 실체에서 취해져 다른 모든 인간관계보다 더 가까운 결합을 이루었습니다.[JFB·풀핏] 그리스도는 창조와 결혼의 기본 법칙과 계약의 본질이라는 세 논거로 임의적 이혼에 반대하는 논증을 세우십니다.[헨리] 특히 "한 몸"이라는 중성 단수 표현은 아담과 하와의 경우만이 아니라 모든 결혼에 이 원리가 적용됨을 분명히 합니다.[풀핏] 모세가 이혼 증서를 명령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기에 잠정적으로 허용한 것일 뿐이며, 이는 이스라엘의 완악함에 대한 수치스러운 증언이었습니다.[공통] 그 허용조차 부당하게 내침당한 여인들을 보호하고, 아내를 학대하거나 해칠 위험을 막으려는 차선책이었습니다.[칼빈·풀핏] 음행의 경우에만 이혼이 언급되는 것은 그 경우 "한 몸이 됨"이라는 근거가 이미 깨어졌기 때문입니다.[헨리] 다만 이 예외 구절의 재혼 허용 범위를 두고 옛 주석가들은 결을 달리 읽어, 비교적 단순하게 이혼과 재혼을 인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말의 의미를 신중히 따져 재판상 별거만 허용하고 재혼은 금하신 것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헨리·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함부로 갈라놓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10~12절 — 독신이라는 은사

어머니 태에서부터 그렇게 태어난 고자도 있고, 사람에게서 고자가 된 이도 있고, 하늘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고자가 된 이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마태복음 19장 12절)

제자들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반응한 데에는 타락한 본성이 규제를 견디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매임을 끊으려는 성향이 드러납니다.[헨리] 그 말은 결혼이 이런 관점에서는 오히려 덫이 될 터이니 아예 피하는 것이 낫겠다는 뜻이었습니다.[JFB] 그러나 독신은 우리 손에 달린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히 주시는 은사이며, 절제의 은사는 아무나 스스로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칼빈] 이는 몸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헨리] 그리스도는 세 종류의 고자를 구별하시니, 체질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자, 타인에 의해 그렇게 된 자,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향한 온전한 헌신을 위해 스스로 독신을 택한 자입니다.[JFB] 훗날 오리게네스가 이 말씀을 문자적 거세로 오해하여 스스로를 훼손한 일은 교회의 판결로 정죄받았습니다.[풀핏] 그러므로 이 말은 받을 수 있도록 허락된 사람만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13~15절 — 어린아이를 막지 말라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을 그냥 두어라. 그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아라. 하늘나라는 이런 이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19장 14절)

제자들이 어린아이 데려온 이들을 꾸짖은 것은 그리스도 안의 은혜의 풍성함을 과소평가한 처사였습니다.[헨리] 아기를 데려가 랍비의 기도와 복을 받게 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었으며, 예수께서는 이를 막지 않으셨습니다.[풀핏] 어린 나이와 이성의 미성숙은 그리스도의 복을 받는 데 장애가 되지 않으니, 믿는 부모의 자녀는 나이에 있어서도 하늘나라에 속한 "이런 이들"에 포함됩니다.[헨리] 옛 주석가들 가운데는 이 사건을 유아 세례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강한 반박 근거로 전면에 내세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논거로 언급하되 그만큼 논쟁적으로 다루지 않는 이도 있습니다.[칼빈·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연약한 자에게도 미침을 믿고, 어린 영혼이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길을 막지 않아야 합니다.

16~22절 — 부유한 청년과 영생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완전해지기를 원한다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 보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떠나갔다. 그는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9장 21~22절)

이 청년이 "선한 선생님"이라 부른 말을 두고 옛 주석가들은 초점을 달리 두었습니다. 그 호칭 속에 담긴 어느 정도의 믿음을 인자하게 찾아내어 더 높은 데로 이끄시는 것으로 읽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정교하게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진리를 인정하도록 인도하려는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헨리·칼빈] 청년이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한 것은 율법을 외적 행위로만 이해했음을 보여줍니다. 그 영적 의미를 알았다면 오히려 자신의 죄를 자백했을 것입니다.[헨리] 그리스도가 이웃에 관한 둘째 돌판의 계명을 인용하신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이 위선자에 의해 자주 가장되므로 사람의 성품을 파악하기에는 그편이 더 적합하기 때문입니다.[칼빈·풀핏] 여기서 "완전하다"는 것은 영생을 위해 요구되는 것에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음을 뜻하며, 이 권고는 모든 사람에게 부과된 의무가 아니라 이 특정한 문의자에게 맞춘 것이었습니다.[풀핏] 그리스도의 명령은 율법에 대한 추가가 아니라, 청년이 자랑하던 순종의 이면에 숨은 재물에 대한 사랑을 정확히 겨냥한 것이었습니다.[헨리·칼빈] 그가 근심하며 떠난 것은 그가 유난히 인색해서가 아니라, 마음속으로는 그리스도를 떠나기 싫으면서도 부자의 취향과 지위와 자신감을 내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헨리·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겉으로 드러난 순종에 안주하지 말고, 마음이 진정 붙들려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살펴야 합니다.

23~26절 — 부자와 하늘나라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복음 19장 24절)

부자의 구원이 어려운 것은 그들에게 요구되는 의무가 많고 마주치는 시험도 많기 때문입니다.[헨리]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간다는 말은 인간의 기술로는 전혀 불가능함을 나타내는 속담으로, 이런 과장과 역설은 어느 언어에나 흔한 표현입니다.[헨리·풀핏] 이를 문자적으로 풀어 보려는 여러 억지 해석이 있었으나, 그것들은 도리어 말씀의 뜻을 흐릴 뿐입니다.[풀핏] 제자들은 이 말씀에 몹시 놀랐으나, 그 놀라움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교훈에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근심하며 떠난 부자 청년과 달리 그들은 절망을 이기기를 원했습니다.[칼빈] 그리스도는 위험을 완화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증폭시키시는데, 이는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무릎 꿇게 하신 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존하도록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칼빈]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니, 부자의 구원 또한 전능하신 은혜의 역사로 가능하며, 하나님은 때로 재물을 제하시거나 그 신뢰를 재물로부터 자신에게로 돌이키시기도 하십니다.[헨리·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구원을 맡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27~30절 — 버린 자에게 주시는 상급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누구나 백 배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되고,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마태복음 19장 29~30절)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것에 대해 무엇을 얻겠느냐고 물었을 때, 제자들이 실제로 버린 것은 세속적으로는 보잘것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전부였으므로 그리스도는 이를 비난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상급을 약속하십니다.[헨리·칼빈·풀핏] 열두 보좌에 앉아 심판한다는 것은 문자적 통치라기보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권위를 나누어 받는 영광을 가리키며, 열둘이라는 수는 사도직의 완전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헨리·풀핏] "만물이 새로워질 때"의 그 새롭게 됨을 두고, 세상이 죽음의 어둠에서 생명의 빛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그리스도의 첫 오심으로 읽는 이가 있는가 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로 보는 편에 무게를 두는 이도 있습니다.[칼빈·풀핏] 백 배의 보상은 반드시 같은 종류의 물질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신앙 안의 형제자매의 애정과 영적 위로로 세속적 유대의 상실을 넉넉히 갚는 것입니다.[헨리·풀핏]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하늘의 유산이 세상의 출생 순서나 자기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어짐을 가르칩니다.[헨리·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지금의 앞자리를 자랑하지 말고, 부르심의 끝까지 인내로 달려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연결된 말씀

  • 창세기 2장 — 예수께서 이혼 논쟁에서 "사람을 처음 지으신 분"이 남자와 여자를 한 쌍으로 지으시고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셨음을 인용하시는 창조 기사의 근거입니다.
  • 말라기 2장 — 하나님이 "둘"이라는 수를 강조하신다는 것으로, 일부다처를 정죄하고 한 남편 한 아내의 불가침적 연합을 증명하는 근거로 지목됩니다.
  • 욥기 — 하나님이 부자의 구원을 위해 그 재물을 제하실 수 있음을 보이는 예로,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의 예증으로 언급됩니다.
  • 이사야·요한계시록 — "만물이 새로워질 때"(28절)의 새롭게 됨을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로 보는 해석이 근거로 삼는 말씀입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19장은 결혼과 재물이라는 두 자리에서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매여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결혼은 창조 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한 몸의 연합이므로 사람이 함부로 갈라놓을 수 없고, 독신은 하늘나라를 위해 특별히 허락된 은사입니다. 영생은 계명을 지켰다는 외적 자부심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붙들린 재물에서 놓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있습니다. 부자의 구원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가능하듯,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능하신 은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겉으로 드러난 순종에 안주하지 말고 마음의 참된 주인이 누구인지 살피며,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버리든 백 배와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부르심의 끝까지 인내로 달려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