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장 — 되풀이된 속임과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요약
창세기 20장은 아브라함이 소돔이 멸망한 뒤 마므레를 떠나 남쪽 그랄 지방으로 옮겨 가면서 벌어진 사건을 담습니다. 성경은 아무리 유명한 인물이라도 그 허물을 공평하게 기록하니,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에도 흠이 있고 태양에도 흑점이 있는 법입니다.[헨리]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이미 한 번 저질렀던 잘못(창 12장)을 되풀이하여 아내 사라를 "누이"라 하였고,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밤중에 꿈으로 개입하시어 사라를 지키시고, 이방 왕에게까지 죄를 막아 주시며, 마침내 아브라함의 기도로 아비멜렉 집안을 회복시키십니다. 이 장은 네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의 속임과 사라를 빼앗김(1~2절), 하나님의 꿈속 경고와 아비멜렉의 변론(3~7절), 아비멜렉의 책망과 아브라함의 변명(8~13절), 예물과 함께 사라를 돌려보냄과 아브라함의 기도로 태가 풀림(14~18절)입니다.
장의 흐름
- 1~2절 — 아브라함이 그랄로 옮겨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감.
- 3~7절 — 하나님께서 꿈으로 아비멜렉에게 위험을 알리시고, 그의 변론을 들으신 뒤 사라를 돌려보내라 명하심.
- 8~13절 — 아비멜렉이 신하들에게 알리고 아브라함을 불러 책망함, 아브라함이 세 가지로 변명함.
- 14~18절 — 아비멜렉이 예물과 함께 사라를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이 기도하여 아비멜렉 집안의 닫힌 태가 풀림.
단락별 해설
1~2절 — 되풀이된 속임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두고 "그는 내 누이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 사라를 데려갔다." (창세기 20장 2절)
아브라함이 마므레를 떠나 그랄로 옮긴 이유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1절).[헨리] 소돔 멸망의 참상을 피하려 했다고 보는 이도 있고, 함께 살던 사람들의 악의에 내몰렸다고 추측하는 이도 있으며, 목초지와 이웃의 적대, 가나안이 영구한 거처가 아님을 상기시키려는 하나님의 뜻 등 여러 학설이 나란히 제시되기도 합니다.[칼빈·풀핏] 분명한 것은, 나그네와 순례자로 사는 이 세상에서는 늘 한곳에 머물 수 없으며 어디에 있든 자신을 나그네로 여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헨리]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겪은 큰 위험을 잊고 다시 같은 돌에 걸려 넘어져(창 12장), 아내를 "누이"라 하였습니다(2절).[칼빈] 이는 갑작스러운 압박에서 나온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계획된 속임이었고, 같은 종류의 두 번째 죄였습니다.[JFB] 아내를 부인한 것은 단순한 거짓 꾸밈에 그치지 않고, 마땅히 보호자가 되어야 할 남편이 도리어 아내의 순결과 명예를 위험에 내던진 일이었습니다.[헨리] 더욱이 사라는 약속의 씨를 잉태할 시점에 있었으니, 아브라함은 바로 이때 그녀를 특별히 보호했어야 했습니다.[헨리] 한 사람의 죄는 종종 다른 사람의 죄를 불러오는 법이어서,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울타리를 허무는 자는 얼마나 많은 어귀를 열게 될지 스스로도 알지 못합니다.[헨리] 그러나 선한 사람도 육체의 연약함과 시험의 위력 앞에 같은 죄에 다시 빠질 수 있으니, 넘어진 자는 절망하지 말고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헨리]
3~7절 — 꿈으로 개입하신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께서 밤중에 꿈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보아라, 네가 데려온 그 여자 때문에 너는 죽은 목숨이다. 그는 남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20장 3절)
하나님은 언약과 교회 밖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계시하십니다.[헨리] 옛적에 꿈은 중요한 진리를 전하는 수단으로 자주 쓰였으니, 바로의 꿈에서 요셉을, 느부갓네살의 꿈에서 다니엘을 지키신 것처럼, 이번에는 사라를 보전하시려고 이 방법을 쓰셨습니다(3절).[헨리·JFB] 하나님이 "너는 죽은 목숨이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3절).[헨리] 아비멜렉은 "의로운 백성까지도 죽이시렵니까"라고 항변하는데(4절), 이는 소돔과 자신을 견준 것이 아니라, 알고서 지은 죄가 아니라 실수로 범한 죄 없는 이에게도 진노가 쏟아지겠느냐는 물음으로 읽는 것이 적합합니다.[칼빈] 마음이 자신을 정죄하지 않을 때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이처럼 담대할 수 있습니다.[헨리]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깨끗한 마음으로 한 일임을 인정하시면서도, 바로 그 손대는 일을 친히 막으셨다고 밝히십니다(6절).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힘 받는 것은 큰 은혜이며, 계획되고 의도된 죄 가운데 실행되지 못하는 것이 많으니 그 막으심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헨리] 이어 하나님은 사라를 돌려보내라 명하시며 세 가지 이유를 드십니다. 아브라함은 선지자요, 그가 너를 위해 기도할 것이며, 돌려보내지 않으면 죽음의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7절).[헨리] 다만 아비멜렉을 책망하심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의 아내를 넘보는 일을 금하시는 하나님의 큰 불쾌감을 온 인류에게 나타내신 것이기도 합니다.[칼빈]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안에서 막아지고 절제된 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헤아려야 합니다.
8~13절 — 이방 왕의 책망과 족장의 변명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사람들이 내 아내 때문에 나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0장 11절)
아침 일찍 일어난 아비멜렉은 신하들에게 이 일을 알렸고, 사람들은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8절). 즉시 순종한 이 모습은 하나님의 신탁이 얼마나 효력 있게 임했는지를 보여 줍니다.[칼빈] 이어 왕은 아브라함을 불러 책망하는데, 그 꾸짖음은 강력하면서도 온화하여 그를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이라 부르지 않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였다고만 말합니다(9절).[헨리] 언약의 족장이 이교의 왕에게 꾸중을 듣는 이 장면은 참으로 굴욕적이니, 이 순간 아비멜렉의 자리보다 아브라함의 자리에 있기를 바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JFB] 아브라함은 세 가지로 변명합니다. 첫째,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는 판단입니다(11절). 그러나 이는 충분한 근거가 없는 부당한 단정이었습니다.[공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곳과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명칭이 다르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부당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헨리] 둘째, 사라가 실제로 자신의 이복 누이라는 항변입니다(12절). 그 말에 사실의 조각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오해하도록 만든 이상, 곧고 절대적인 거짓말의 책임은 벗을지언정 속이려는 의도가 있었으므로 도덕적으로는 거짓이었습니다.[JFB] 셋째, 나그네 생활 초기부터 맺어 온 약속이라는 변명입니다(13절). 이 약속 자체가 죄악스러운 것이었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자녀를 주지 않으신 것이 그 징벌이었을지도 모릅니다.[헨리] 정직이 언제나 최선의 방책이니, 아브라함의 생명은 속임수 없이도 넉넉히 보호받았을 것인데 그는 자신에게 수치를, 하나님께 불신을, 신앙에 불명예를 자초하였습니다.[JFB]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알지 못하는 이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두려움 앞에서도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헨리·JFB]
14~18절 — 회복과 중보의 기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들을 고쳐 주셔서 그들이 다시 아이를 낳게 하셨다." (창세기 20장 17절)
아비멜렉은 양과 소와 종들을 아브라함에게 주고 사라를 돌려보내며, 자기 땅 어디든 마음에 드는 곳에 머물라 청합니다(14~15절). 이 선물은 두 가지 뜻을 지닙니다. 사라를 데려간 잘못에 대한 배상이자, 아브라함의 기도를 구하기 위함입니다.[헨리] 하나님과 교류하는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헨리] 왕은 사라에게 은 천 개가 "눈을 가리는 표"가 되리라 말합니다(16절). 이를 두고 남편이 베일처럼 아내를 다른 시선에서 가려 주는 것을 뜻한다고 보는 주석도 있고, 배우자가 서로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가려 지켜 주는 신의의 표로 읽는 주석도 있으며, 옛 주석가들은 속죄의 선물을 비롯한 여러 해석을 나란히 두기도 합니다.[칼빈·헨리·풀핏] 이윽고 아브라함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 집안을 고쳐 주셨습니다(17절). 여호와께서 사라의 일로 그 집안의 모든 태를 닫으셨던 까닭입니다(18절). 남의 것을 자기에게 빼앗은 자가 잃게 되는 것보다 더 적합한 벌이 어디 있겠습니까.[풀핏] 눈여겨볼 것은, 사라를 돌려보낸 뒤에도 아브라함의 기도가 있기 전에는 그 심판이 거두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헨리] 미리암이 모세의 기도로, 욥의 친구들이 욥의 기도로 회복된 것과 같은 이치이니, 선한 사람들의 기도는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도 큰 친절이 됩니다.[헨리] 아비멜렉을 위해 중보한 아브라함은 하늘의 대제사장이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를 해한 이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심을 신뢰해야 합니다.[풀핏]
연결된 말씀
- 창세기 12장 — 아브라함이 이집트에서 아내를 "누이"라 한 같은 죄를 처음 저질렀던 사건으로, 네 주석이 모두 이 장의 되풀이를 여기에 견줍니다.
- 창세기 21장 — 이 책망 직후 사라가 임신하는 기록으로 이어져, 다시는 같은 일을 하지 않기로 한 회개의 열매를 보여 준다고 헨리가 읽습니다.
- 시편 105편 —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위하여 이방 왕들까지 책망하시며 지키심을 노래한 말씀으로, 칼빈이 이 장의 개입과 나란히 인용합니다.
- 히브리서 7장 — 아비멜렉을 위해 중보한 아브라함이 늘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밝히는 근거로 풀핏이 지시합니다.
마무리
창세기 20장의 중심은, 자기 종의 허물 가운데서도 언약을 지키시고 이방 왕에게까지 죄를 막으시며 마침내 중보의 기도로 회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번째로 같은 죄에 넘어졌으나, 하나님은 그 연약함을 덮으시고 약속의 씨를 보전하셨습니다.[칼빈] 이 이야기는 두 가지를 함께 가르칩니다. 첫째, 선한 사람도 시험 앞에 다시 넘어질 수 있으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두려움에 몰려 참된 것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헨리·JFB] 둘째, 죄를 막으시고 악에서 선을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성도는 그 막으심과 회복을 그분의 은혜로 헤아리며 자기를 해한 이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헨리·풀핏]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