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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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 작은 자를 품는 겸손과 끝없는 용서

마태복음 18장 · 일반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마태복음 18장은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직후에 놓인 장입니다. 슬픔과 당혹 속에서도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를 두고 다투었고, 그 다툼은 성전세를 낸 베드로가 다시 합류한 뒤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에서 벌어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자리에서 네 가지를 차례로 가르치십니다. 어린아이로 상징되는 겸손(1~6절), 작은 자를 실족시키지 말라는 경고(7~14절), 형제의 죄를 처리하는 절차(15~20절), 그리고 끝없는 용서(21~35절)입니다. 장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 시선은 세상이 하찮게 여기는 "작은 자"를 향한 하늘 나라의 관심입니다. 높은 자리를 다투던 제자들 앞에 예수께서는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낮아지는 자가 가장 크며 그런 작은 자를 잃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님을 밝히시며, 마침내 셈할 수 없는 자비를 받은 자는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 함을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장의 흐름

  • 1~6절 — 겸손: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크다.
  • 7~9절 — 걸림돌: 실족하게 하는 일에 대한 화, 손과 발과 눈을 찍어 내는 결단.
  • 10~14절 — 작은 자: 그들의 천사,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기쁨.
  • 15~20절 — 형제의 죄: 개인 권고에서 교회에 이르는 세 단계와 매고 푸는 권세.
  • 21~35절 — 용서: 일흔 번을 일곱 번, 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무자비한 종의 비유.

단락별 해설

1~6절 — 어린아이처럼 낮아지는 자가 가장 큰 사람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마태복음 18장 4절)

이 장은 뒤틀린 질문으로 열립니다. 제자들이 물은 것은 성품으로 누가 큰가가 아니라 이름과 수위 자리로 누가 큰가였으며, 그들은 여전히 세상 나라의 화려함을 꿈꾸고 있었습니다.[헨리] 그리스도의 죽음 예고로 슬프고 당혹스러웠던 이들이 순식간에 서열 다툼을 시작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 야심에 너무도 깊이 빠져 있어 눈앞의 근심마저 쉽게 잊음을 보여 줍니다.[칼빈] 예수께서는 이 자리에 어린아이 하나를 표징으로 세우시니, 겸손은 배우기가 너무 어려워 온갖 방법으로 배워야 하는 교훈이기 때문입니다.[헨리]

어린아이가 겸손의 본보기가 되는 까닭은 그들이 누가 높은지 다투는 경쟁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칼빈] 여기서 "돌이켜야 한다"는 것은 교만과 야망과 명예를 좇는 성향을 회개하고 죽이라는 뜻이며, 처음 회심 외에도 특정한 배반의 길에서 다시 돌아서는 후속적 회심이 있음을 가리킵니다.[헨리] 이는 습관적인 죄에서 거룩함으로 옮겨 가는 회심이라기보다, 현재의 마음 상태를 바꾸어 생각과 소망에 새로운 방향을 부여하는 것으로 좁혀 읽을 수도 있습니다.[풀핏] 참된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 어떤 공로도 주장하지 않고, 형제들을 교만하게 멸시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지체 중 하나임에 만족하는 것입니다.[칼빈] 그러므로 가장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와 가장 닮았고 그분의 은총 안에서 가장 높은 자입니다.[헨리] 반면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시키는 자에게는 목에 큰 맷돌을 매달아 바다에 빠뜨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예비되어 있습니다(6절).[헨리] 여기서 맷돌은 나귀가 돌려야 할 만큼 큰 돌이며, 물에 빠뜨리는 형벌은 큰 범죄자에게 시행되던 관행으로 돌의 무게 때문에 시신이 떠오르지 못해 매장 기회조차 없는 것이었습니다.[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낮아지기를 힘쓰고, 연약한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7~9절 — 걸림돌을 찍어 내는 결단

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매달아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그에게 더 나을 것이다. (마태복음 18장 6절)

실족하게 하는 일은 세상에서 반드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자와 불완전한 자가 드러나도록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걸림돌을 허락하시지만, 그것이 걸림돌을 놓는 자의 변명이 되지는 않습니다(고전 11:19).[헨리] "화가 있도다"는 말씀은 실족이 사탄의 활동과 세상의 상태로 인해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음을 한탄하는 것이지, 원인 제공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이 아닙니다.[칼빈] 곧 실족은 의로운 자가 시험받고 정화되며 쭉정이가 밀에서 분리되도록 허용되는 것입니다.[풀핏]

또한 여기서 "실족하게 함"은 형제를 멸시하는 것 이상을 포함하니, 우리의 잘못으로 누군가 걸려 넘어지거나 바른 길에서 벗어나거나 지체된다면 우리가 그를 실족케 한 것입니다.[칼빈] 그러므로 손이나 발이나 눈처럼 소중한 것이라도 불가피한 죄의 기회가 된다면 찍어 내버려야 하니,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고 모세가 파라오의 궁정을 떠난 것이 그 예입니다(8~9절).[헨리] 여기서 말하는 "지옥 불"은 앞 절의 "영원한 불"과 같은 뜻이며, 세례 요한이 경고한 "꺼지지 않는 불"과도 같은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풀핏] 성도는 가장 아끼는 것이라도 영혼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단호히 끊어 내야 합니다.

10~14절 —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말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태복음 18장 14절)

작은 자는 하늘의 시선 아래 있습니다. 세상의 큰 자에게 명예로운 호위가 따르듯, 교회의 작은 자에게는 영광스러운 천사들이 동행하니 이것이 그들을 멸시하는 자의 위험을 말해 줍니다(10절).[헨리] 왕실의 자녀를 돌보는 자가 왕 앞에 특별히 나아가는 특권을 갖듯, 그리스도의 어린 신자들을 돌보도록 임명된 이들도 하나님 앞에 특별한 자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JFB] 다만 이 "천사들"의 뜻을 두고 옛 주석가들은 결을 달리 읽었습니다. 이를 두고 각 개인에게 저마다의 수호천사가 배정된다고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해석은 근거가 없으며 성경은 많은 천사가 경건한 자 주위에 진을 치고 온 교회를 함께 돌본다고 가르친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시 34:7).[풀핏·칼빈]

인자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작고 연약한 믿는 자를 멸시하거나 실족시켜서는 안 되는 좋은 이유입니다(11절).[헨리] 이어지는 잃은 양의 비유는 형제의 결점을 참고 그들이 방황할 때 길로 데려와야 함을 가르칩니다.[칼빈] 그 논거의 점층이 주목할 만하니,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의 종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의 구원자이며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친구이십니다.[헨리] 이 작은 자 하나라도 잃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면, 그들의 영혼을 위험에 빠뜨리는 걸림돌들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어찌 가만히 계시겠습니까(14절).[JFB]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작은 자를 결코 업신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15~20절 — 형제의 죄를 처리하는 세 단계

만일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 둘만 있는 자리에서 그의 잘못을 지적하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너는 네 형제를 다시 얻은 것이다. (마태복음 18장 15절)

형제의 죄를 다루는 데에는 정해진 길이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사적으로 온화하게 해야 하며, 뒤에서 욕하러 갈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이 오직 "형제를 얻는" 데 있어야 합니다.[헨리] 예수께서는 개인적 충고, 증인들 앞에서의 충고, 교회의 공개적 결정이라는 세 단계를 명확히 제시하시니, 이는 뜨거운 열심을 구실로 사랑이 침해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칼빈] 이 가르침 역시 누가 가장 큰가를 두고 벌어진 최근의 논쟁을 염두에 두신 것으로, 교제 안에서 생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JFB] 마지막 단계에서도 그리스도는 그를 마귀처럼 여기라 하지 않으시고 이방 사람이나 세리처럼, 곧 다시 회복될 수 있는 처지의 사람처럼 여기라 하십니다(17절).[헨리] 여기서 "교회"는 유대 회당과 혼동될 수 없는 가시적 공동체이니, 예수께서는 이미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칭찬하시며 이 용어를 준비시키셨습니다.[풀핏]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복음 18장 18절)

매고 푸는 권세를 두고도 강조점이 갈립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서 베드로에게 주어진 듯 보였던 이 말씀이 이제 모든 제자에게, 나아가 세상 끝까지 모든 신실한 교회 직분자에게 확증됩니다.[헨리·JFB] 이는 마태복음 16장 19절과는 의미가 다르니, 거기서는 교리에 있어서 사도의 권위를 세우셨고 여기서는 그 교리의 부속물인 치리를 정하시는 것입니다.[칼빈]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것만 선포하고 그분이 명하신 것만 집행할 때, 하나님의 권위에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습니다.[칼빈] 이 권세의 실제 적용은 바울이 음행한 자를 매고 회개한 뒤 다시 받아들인 데서 볼 수 있습니다.[풀핏] 그러므로 교회 권징의 권한은 한 사람에게 있지 않고 최소 두 사람이 관련되며, 기도가 언제나 권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19절).[헨리]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그분이 함께 계신다는 이 약속은 곧 그리스도의 편재와 전지를 함의합니다(20절).[풀핏] 성도는 형제를 사랑으로 바로잡되, 그 모든 절차를 겸손과 기도로 감당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21~35절 — 마음으로부터 하는 끝없는 용서

그때 베드로가 나아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입니까?" (마태복음 18장 21절)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하는 것을 대단한 일로 여겼으니, 우리의 부패한 본성은 선한 것에도 한계를 두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헨리] 사실 그는 육신의 자연적 감정을 따라 이 물음을 던진 것이며, 용서받기를 강하게 원하는 자가 정작 다른 이에게는 그만큼 너그럽지 못한 법입니다.[칼빈] 당시 랍비들의 일반 규정은 세 번만 용서하고 네 번째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풀핏] 그러나 예수께서 답하신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는 필요하고 요청받는 한 계속하라는 뜻으로, 용서가 진심으로 구해지는 한 거절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안 됨을 가리킵니다(22절).[JFB] 형제가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의 횟수를 세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니,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계산하시지만 우리는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헨리]

그 종의 주인은 불쌍히 여겨 그를 놓아 주고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 (마태복음 18장 27절)

이어지는 비유는 세 가지 대조 위에 서 있습니다. 주인과 종의 대조, 큰돈과 작은돈의 대조, 비범한 친절함과 극단적 잔인함의 대조입니다.[칼빈] 왕이 종과 결산하듯 하나님은 우리의 양심을 통해 우리와 결산하시며, 죄의 빚은 만 달란트처럼 우리가 갚을 수 없이 크지만 무한한 자비의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는 자를 순전한 연민으로 용서하십니다(23~27절).[헨리] 만 달란트는 한 지방의 전체 수입에 해당할 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24절).[JFB·풀핏] 주인은 먼저 불쌍히 여기고, 다음으로 채무자를 옥에서 풀어 주며, 그런 뒤 빚을 완전히 탕감해 주는 세 단계를 밟습니다.[JFB] 그러나 그토록 큰 은혜를 입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붙잡았으니, 두 사람은 본래 동등한 처지였고 그 빚은 극히 작은 금액이었습니다(28절).[JFB] 형벌을 내리기 전에 주인은 그의 행동이 얼마나 수치스럽게 불합리하고 냉정했는지 차분히 지적함으로써 형벌에 이중의 고통을 더합니다(32절).[JFB] 마지막에 그를 넘긴 "형리들"은 단순한 간수가 아니라 죄수를 고문하는 자들로, 그 처우의 가혹함을 나타냅니다(34절).[JFB·풀핏] "다 갚을 때까지"라는 말을 붙들어 연옥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우스운 일이니, 그리스도께서 가리키신 것은 일시적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칼빈]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도 주기도문을 드릴 때마다 스스로를 저주하는 셈입니다(35절).[헨리]

연결된 말씀

  • 고린도전서 11장 — "너희 중에 당파가 있어야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드러나리라"는 말씀으로, 걸림돌이 의로운 자를 시험하고 정화하도록 허용된다는 7절 해설의 근거로 인용됩니다.
  • 마태복음 16장 — 베드로에게 주어진 매고 푸는 권세(16장 19절)와 교회라는 용어(16장 18절)의 출처로, 18장이 그 권세를 모든 제자에게 확대함을 보여 줍니다.
  • 고린도전서 5장 — 바울이 음행한 자를 매고 회개 후 다시 받아들인 사례로, "매고 푸는" 18절 권세의 실제 적용으로 지목됩니다.
  • 창세기 4장 — 라멕의 복수(가인의 칠 배, 라멕의 칠십칠 배)를 담은 대목으로,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라는 말씀이 옛 복수를 뒤집는다는 22절 해설의 배경이 됩니다.
  • 시편 34편 — 천사가 경건한 자 주위에 진을 친다는 말씀으로, 각 개인의 수호천사설을 반박하며 많은 천사가 온 교회를 돌본다고 보는 근거로 인용됩니다.
  • 누가복음 — 같은 잃은 양의 비유를 다른 적용으로 사용한 곳으로, 마태복음의 비유가 형제를 길로 데려오는 데 초점을 둔다는 대비의 배경이 됩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18장의 중심은 하늘 나라가 세상과 정반대의 저울을 쓴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높은 자리로 크기를 재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낮아지는 자가 가장 크고, 세상이 하찮게 여기는 작은 자를 잃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야망과 명예를 좇던 마음을 돌이켜 낮아지고, 연약한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기보다 온화한 권고와 기도로 다시 얻으려 힘써야 합니다.[헨리] 둘째,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자로서 형제의 사소한 잘못을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칼빈] 셈할 수 없는 자비를 받은 사람은 셈하지 않는 용서로 살아가야 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