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청소년어린이일반

마태복음 8장 — 권세로 다스리시고 믿음을 보시는 주님

마태복음 8장 · 일반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마태복음 8장은 산상수훈 직후에 놓인 장입니다. 앞의 여러 장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길게 요약했다면, 이 장은 그 가르침을 그분의 일상 사역으로 보완합니다. 마태는 여기서 연대기적 순서보다 주님의 삶의 여러 면모를 드러내는 데 더 관심을 둡니다. 이 장에는 나병 환자와 백부장의 종과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시고, 성급한 추종자를 시험하시며,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고, 두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여섯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 모든 장면을 관통하는 것은 질병과 거리와 자연과 마귀에 대한 예수님의 절대적 권세이며, 동시에 그 권세 앞에 서는 사람의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장의 흐름

  • 1~4절 — 나병 환자를 만지시고 즉시 깨끗하게 하심.
  • 5~13절 — 백부장의 큰 믿음과 이방인의 부르심.
  • 14~17절 — 베드로의 장모와 많은 병자를 고치시니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됨.
  • 18~22절 — 성급한 율법학자와 또 다른 제자를 향한 따름의 요구.
  • 23~27절 —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심.
  • 28~34절 — 가다라의 두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

단락별 해설

1~4절 —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심

그런데 한 나병 환자가 다가와 그분께 절하며 말했다.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원한다.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마태복음 8장 3절)

산에서 내려오심은 산상수훈의 엄격한 책망 직후로 이어집니다. 그런데도 무리는 흩어지지 않고 그분을 따랐으니, 그리스도를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그분을 더 알기를 갈망하는 법입니다.[헨리] 나병이 첫 기적의 대상으로 기록된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나병은 하나님 진노의 특별한 표시로 여겨졌고, 의사가 아니라 제사장의 감독 아래 두어져 오직 하나님만 고치실 수 있는 병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헨리] 나병이 죄의 상징으로 읽힌 것은 그것이 더럽고 전염성이 있으며 깊이 자리 잡아 치료하기 어렵고, 그 치료가 사람의 능력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JFB] 그래서 나병은 죄를 형상화한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부정하다 선언할 뿐 없애지 못하나, 그리스도는 그 죄를 없애십니다.[헨리]

병든 사람을 만지는 것은 율법상 부정을 가져왔으나, 예수께서는 그것을 초월하셨습니다(3절).[공통] 그분이 우리 육신을 취하신 것은 팔을 뻗은 정도가 아니라 우리와 한 몸으로 연합되신 것이므로, 나병 환자를 만지셔도 더러움을 받지 않으십니다.[칼빈] 역청을 만지면 더러워지지만, 그리스도는 죄인들 가운데 거하시면서도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계셨습니다.[헨리] 환자의 청원 "원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는 예수님의 더 작은 기적에서 더 큰 것을 추론한 말로, 믿음의 뚜렷한 발전을 보여 줍니다.[풀핏] "내가 원한다"는 값없이 베푸시는 친절의 말씀이요, "깨끗하게 되어라"는 권위와 효력이 함께 담긴 능력의 말씀입니다.[공통] 다만 이 환자가 침묵의 명령을 어긴 것은 오히려 책망받아야 할 일이니, 감사를 표현하려 했다면 순종보다 나은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칼빈]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는 것은 검사를 위함이요 예물을 드림은 감사의 표현이며, 이는 하나님이 그 백성을 찾아오셨다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JFB·풀핏] 모세의 첫 이적은 자기 나병을 고치는 것이었으나 그리스도의 첫 이적은 다른 사람의 나병을 고치는 것이었으니, 그분께는 씻을 죄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헨리]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의 뜻과 능력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5~13절 — 백부장의 믿음과 이방인의 부르심

백부장이 대답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8절)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라시며 따르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마태복음 8장 10절)

백부장은 군인이었으나 경건한 사람이었으니, 어떤 직업이나 지위도 불경건의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헨리] 그가 지휘하는 군대는 가버나움에 수비대로 주둔했을 것이며, 유대인을 위해 회당을 지은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습니다.[칼빈] 그의 겸손은 곧 그의 믿음의 크기였습니다(8절). 자신에 대한 의심이 클수록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는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헨리] "말씀만 해 주십시오"라는 고백은 그의 믿음의 절정으로, 이 병과 관련된 모든 자연의 힘이 예수님의 완전한 지배 아래 있음을 그가 느낀 것입니다.[풀핏] 그가 그리스도께 돌린 권능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위임하신 사명으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칼빈]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라신 것을 두고 옛 주석가들은 결을 달리 읽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육신과 인간의 감정을 입으셨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보는 주석도 있고, 그분의 정신적 인식조차 비자연적 방식이 아니라 인간적 능력으로 마음을 아신 것으로 읽는 주석도 있습니다.[칼빈·풀핏]

마리아의 믿음이 절대적으로는 더 컸겠으나, 그리스도께서 이 이방인의 믿음을 더 높이 평가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벼운 교리 접촉에서 그토록 풍성한 열매가 났고, 이 사람은 표적을 구하지 않고 말씀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입니다.[칼빈] 이렇게 이방인의 큰 믿음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드러내는 대조로 쓰입니다.[공통] "함께 앉을 것"이라는 표현은 안식과 지속적인 거함, 곧 잔치의 충만한 교제를 상징합니다.[헨리] 동쪽과 서쪽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와 아브라함과 함께 앉는 일과, 나라의 본 자손들이 바깥 어둠으로 쫓겨나는 일은 짝을 이루어 함께 선언됩니다.[공통] "동쪽과 서쪽에서"라는 사상은 이미 구약에 잘 알려진 것이었고,[풀핏] "나라의 자녀들"이라는 관용구는 본성상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인 유대인이 그럼에도 배제된다는 뜻을 시사합니다.[풀핏] "바깥 어둠"에는 빛의 어떤 잔여나 희망도 없으니, 지옥에는 불은 있으나 빛이 없습니다.[헨리]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흔히 제한적인 까닭은, 우리의 불신앙이 그분의 너그러움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칼빈]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표적이 아니라 말씀 한마디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14~17절 — 베드로의 장모와 많은 병자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곧 "그분이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짊어지시고 우리의 질병을 떠맡으셨다"라고 한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8장 17절)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지신 것은(14~15절) 의사가 맥박으로 병을 진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이 말씀을 전하고 성령이 그 손길을 더하시는 영적 치유의 방식을 보여 줍니다.[헨리] 이 장면은 베드로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도 증언하니, 사역자의 결혼을 금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그 사도의 실제 삶과 반대로 행하는 셈입니다.[헨리]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병자를 데려온 것은, 안식일이 끝난 해질녘이 되어서야 자유로이 병자를 옮길 수 있게 된 시각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습니다.[풀핏] 그리스도는 죽음의 공로로 죄를 지우시고, 삶의 이적으로 질병을 지워 내셨습니다.[헨리]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방식을 두고 옛 주석가들은 강조점을 달리 두었습니다. 그 예언이 본래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영적이고 영원한 은혜를 가리키며 마태가 그 목적과 연결해 육체의 질병에 적용했을 뿐이라고 보는 주석도 있고, 치유의 기적 자체가 그리스도께 도덕적 노력이자 짊어지심이었다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주석도 있습니다.[칼빈·풀핏] "친히 짊어지시고"와 "떠맡으셨다"는 서로 구분되는 두 동사이니, 예언은 그분이 병 고치실 것과 자기 자신의 희생으로 병들을 짊어지실 것을 함께 지적합니다.[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연약함을 친히 짊어지신 주님께 그 짐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18~22절 — 성급한 율법학자와 따름의 요구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태복음 8장 20절)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라. 죽은 자들의 장사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어라." (마태복음 8장 22절)

한 율법학자가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나섰습니다(19절). 그는 그리스도가 세상 나라를 세우실 것을 기대하며 그 몫을 미리 신청한 것이니, 빨리 익는 것은 빨리 썩는 법입니다.[헨리] 이 사람은 예수님의 설교에 감동받아 순간적인 열심에서 따르겠다고 한 것으로 보이며, 예수님의 대답은 그의 동기가 지적 감동이나 일시적 충동이었음을 드러냅니다.[JFB] 마태만이 그가 서기관이었다는 직분을 기록합니다.[풀핏] 이렇게 값을 미리 헤아리지 않은 성급한 헌신을 그리스도는 경계하십니다.[공통] 즉시 따르겠다고 나선 그는 추종자의 힘들고 비참한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 이는 편안한 삶을 꿈꾸며 그늘에서 싸우고 싶어하는 것과 같습니다.[칼빈] 여우와 하늘의 새 비유는 낮은 피조물의 풍족함과 그리스도의 가난함을 대비시켜, 세상 재물의 허영을 가르치기 위해 선택된 것입니다.[헨리] "인자"는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키시는 대표적 칭호이며,[JFB] 여기서는 하위 피조물과의 대조를 위해 쓰였습니다.[풀핏] 또 다른 제자에게 하신 "죽은 자들의 장사는 죽은 자들에게"라는 말씀은 매장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을 헌신하지 않는 세속적인 사람이 영적으로 죽어 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칼빈]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값을 헤아려 각오한 뒤에 그분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23~27절 —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심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그러고 나서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해졌다. (마태복음 8장 26절)

배 안에서 주무시던 예수께서 제자들의 부르짖음에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이 사건은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의 절대적 주권, 곧 그분의 신성을 증명합니다.[공통] 제자들이 책망받은 것은 두려워한 것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이 육적 잠에 압도되지 않음을 믿지 못한 채 지나치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칼빈] 마태가 승선의 순서를 기록한 것은, 이때 주님이 제자 중 누구의 것도 아닌 배를 사용하셨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개연성 있습니다.[풀핏] "이분이 어떤 분이기에"라는 사람들의 반응은, 거룩함이 기적의 필수 조건임을 인정하면서도 예수 안에 그 조건이 충족되어 있음은 아직 깨닫지 못함을 보여 줍니다.[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이 함께 계신 배 안에서 풍랑을 만나더라도 그분의 신성을 신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28~34절 — 두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심

그런데 그들이 소리쳐 말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 오셨습니까?" (마태복음 8장 29절)

가다라 지방에서 두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28절). 그들이 무덤 사이에 거한 것은 사망의 권세를 가진 마귀가 죽은 시신들 사이를 거닐기 좋아했기 때문이니, 이는 훗날 해골의 장소 골고다에서 그리스도가 그를 정복하신 것과 대구를 이룹니다.[헨리] 마귀도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고백하나, 이것은 지식이지 사랑이 아닙니다.[헨리] 두 사람을 마태만 언급하고 다른 복음서는 한 명만 언급하는 것은, 그중 한 사람이 더 잘 알려져 있었고 그 심각성이 더 주목할 만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칼빈] "예수여"라는 이름이 병행 구절에는 있으나 마태가 생략한 것은,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간극을 이어 주시는 그 이름을 귀신의 발화에서 의도적으로 뺀 것으로 보입니다.[풀핏] 귀신들이 "때가 되기도 전에"라고 말한 데서,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최후 심판의 때를 예감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공통]

귀신들이 돼지 떼로 들어가기를 구한 까닭을 두고 옛 주석가들은 여러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 손실로 가다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저주하도록 자극하려는 더 먼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도 하고, 무저갱행을 피하려 긴 유예를 바랐을 가능성을 함께 두기도 합니다.[칼빈·풀핏] 이 돼지 떼 사건 자체의 해석에서도 결이 갈립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어기고 돼지를 길렀을 가능성과 그 손실이 징벌이었을 가능성을 함께 언급하는 주석도 있고, 그들이 유대인이며 돼지 기르는 것이 불법이었다는 두 전제 모두 성경으로 명확히 증명되지는 않는다고 신중하게 선을 긋는 주석도 있습니다.[헨리·풀핏] 분명한 것은, 우리 주님이 결코 직접 돼지를 파괴하신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에게 허락을 주어 그들이 스스로 그 목적을 이루도록 두셨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마귀조차 그분의 허락 밖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함을 알고 오직 그분을 경외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연결된 말씀

  • 창세기 49장 — "그에게 만민이 모여들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으로, 무리가 산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님을 따른 데서 그 성취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 출애굽기 4장 — 모세가 먼저 자기 나병을 고침받은 사례로, 그리스도의 첫 이적이 남의 나병을 고치신 것과 대비됩니다.
  • 열왕기하 5장 — 나병을 오직 하나님만 고치실 수 있다는 근거로, 나병이 첫 기적의 대상이 된 이유를 밝혀 줍니다.
  • 로마서 8장 — 율법이 죄를 없애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나병이 죄를 형상화한다는 해설의 근거가 됩니다.
  • 이사야 53장 —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짊어지시고"라는 예언으로, 17절이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인용됩니다.
  • 다니엘 7장 — "인자"라는 칭호의 유래로 지목되어, 20절 말씀의 배경을 밝혀 줍니다.
  • 말라기 1장 — "동쪽과 서쪽에서"라는 사상이 이미 알려져 있었음을 보이는 근거로 인용됩니다.
  • 욥기 42장 — 욥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자신이 회복된 사례로, 중보하는 이에게도 격려의 응답이 주어짐을 예증합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8장은 질병과 거리와 자연과 마귀를 모두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권세를 한자리에 모아 보여 줍니다. 그 권세는 나병 환자를 만져 깨끗하게 하시고, 멀리 있는 종을 말씀만으로 고치시며, 풍랑을 꾸짖어 잠잠하게 하시고, 사나운 귀신을 한마디로 쫓아내십니다. 동시에 이 장은 그 권세 앞에 선 사람들의 믿음을 나란히 비춥니다. 표적을 구하지 않고 말씀만으로 만족한 이방 백부장의 큰 믿음이 있고, 신성이 잠에 압도되지 않음을 믿지 못한 제자들의 적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친히 짊어지신 주님께 그 짐을 온전히 맡기고, 표적이 아니라 말씀 한마디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값을 미리 헤아려 각오한 뒤에 그분을 따르며, 풍랑 가운데서도 함께 계신 그분의 권세를 신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