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8장 — 요셉의 두 아들에게 손을 얹어 복을 빈 야곱
요약
창세기는 성경 전체의 첫 책이며, 48장은 야곱의 생애가 저물어 가는 마지막 대목에 놓입니다. 이집트에 내려와 살던 야곱은 병이 깊어졌고, 총리가 된 요셉이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옵니다. 이 장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받아들이는 입양 선언(1~7절)과, 야곱이 두 손자에게 복을 빌며 요셉에게 예언을 남기는 축복 장면(8~22절)입니다. 야곱은 손을 엇갈리게 얹어 동생 에브라임을 형 므낫세보다 앞세우는데,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른 의도적인 행위였습니다. 임종을 앞둔 노족장의 마지막 관심은 이집트의 부와 영예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계승이었습니다.
장의 흐름
- 1~2절 — 병환 소식과 요셉의 방문. 야곱이 힘을 내어 침상에 일어나 앉음.
- 3~7절 — 야곱의 회상. 벧엘에서 받은 언약, 두 아들 입양 선언, 라헬의 죽음.
- 8~14절 — 어두운 눈으로 손자들을 만나 손을 엇갈리게 얹은 축복 준비.
- 15~16절 — 삼중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축복 기도.
- 17~20절 — 요셉의 이의와 야곱의 거절, 에브라임의 우위 예언.
- 21~22절 — 가나안 귀환의 예언과 요셉에게 준 세겜 땅.
단락별 해설
1~2절 — 병든 아버지를 찾은 요셉
"누군가 야곱에게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 요셉이 당신에게 옵니다" 하고 전하자, 이스라엘은 힘을 내어 침상 위에 일어나 앉았다." (창세기 48장 2절)
요셉은 이집트에서 높은 명예와 공무를 지녔으나 연로한 아버지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경의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헨리] 병상 문안은 우리의 본분이며, 그가 두 아들을 함께 데려간 것은 임종하는 할아버지의 복을 받게 하고 그 자리에서 보고 들은 것이 어린 마음에 오래 새겨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헨리] 세상을 떠나가는 하나님의 늙은 종을 세상에 막 들어오는 젊은이와 만나게 하는 일은 다음 세대에 큰 격려가 되는 유익한 일입니다.[헨리] 요셉이 그토록 아버지 뵙기를 원한 것은 야곱의 아들이라는 것을 큰 왕국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큰 특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칼빈] 소식을 들은 야곱은 힘을 내어 침상에 일어나 앉습니다(2절). 병든 이와 노인이 낙심하지 않고 스스로 기력을 돋우려 힘쓰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며, 스스로 힘을 내면 하나님이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헨리]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쓰인 것은 그가 신정 가문의 수장으로서 내면적으로 수행해야 할 일을 위해 힘을 낸 것을 보여 줍니다.[풀핏]
3~7절 — 언약을 되새기며 두 아들을 입양함
"이제 내가 이집트로 너에게 오기 전에 이집트 땅에서 네게 태어난 너의 두 아들은 내 것이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아들이 될 것이다." (창세기 48장 5절)
야곱은 먼저 벧엘(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타나 주신 언약을 되새깁니다(3~4절). 그가 주로 마음에 둔 것은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는 길에 벧엘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었습니다.[풀핏] 이 입양의 헌장에는 세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번성한 자손과 가나안 기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구체적으로 회상한 것,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명시적 선언, 그리고 이후 태어날 자녀는 두 형의 이름으로 편입된다는 단서 조항입니다(5~6절).[헨리] 야곱이 두 손자를 받아들인 것은 이집트에서 요셉의 권세와 영화를 잇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상속자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난하나 교회 안에 있는 것이 부유하나 교회 밖에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헨리] 칼빈도 같은 취지로, 이 입양은 두 아들을 이집트의 부와 영예에서 끌어내어 잠시 떠나 있던 거룩한 족속으로 다시 연합시키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칼빈] 이렇게 요셉이 얻은 두 몫은 사실상 르우벤에게서 빼앗긴 장자권이 요셉에게 부여된 것입니다.[풀핏] 이집트와의 연고가 두 아들을 그 땅에 붙들어 둘 수도 있었으나, 그들은 기꺼이 이 입양을 받아들였습니다.[JFB] 마지막으로 야곱은 임종의 자리에서도 라헬의 죽음과 매장을 언급합니다(7절). 이는 그 슬픔이 얼마나 깊이 그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는지를 보여 주며[헨리], 어머니의 이름이 요셉의 마음을 자극하여 이집트에 작별을 고하는 유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칼빈]
8~14절 — 어두운 눈으로 손을 엇갈리게 얹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른손을 뻗어 동생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은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다. 므낫세가 맏아들이었으나 그는 손을 일부러 엇갈리게 놓은 것이다." (창세기 48장 14절)
야곱의 눈은 나이가 들어 어두워져 손자들을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8, 10절). 요셉이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제게 주신 제 아들들"이라 답하자(9절), 이 고백은 기쁨이 하나님의 손에서 온 것으로 볼 때 갑절로 달콤해짐을 보여 줍니다.[헨리] 태에서 나오는 열매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귀한 선물 중 하나로 여겨져야 합니다.[칼빈] 노인이 자기 자녀보다 손자에게 더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흔한 일이며, 육신의 눈이 흐려졌을 때에도 믿음의 눈은 매우 맑을 수 있습니다.[헨리] 요셉은 형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손 쪽에, 동생 에브라임을 왼손 쪽에 세워 가까이 데려갔습니다(13절). 그러나 야곱은 오른손을 뻗어 동생 에브라임에게, 왼손을 형 므낫세에게 얹었습니다(14절). 이는 눈이 어두워 생긴 우연이 아니라 일부러 엇갈리게 놓은 것입니다.[헨리] 모세는 그가 알면서도 손을 인도했다고 말하며, 성령이 이 행위의 지도자이셨습니다.[칼빈] 손을 얹어 복을 비는 안수가 축복의 상징으로 쓰인 첫 사례가 바로 여기이며, 이후 제사장을 세우거나 교회의 직분자를 세울 때 쓰이는 공인된 방식이 되었습니다.[풀핏]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의 관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이 진행됩니다. 야곱 자신도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보다 앞섰습니다.[헨리]
15~16절 — 삼중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축복
"모든 악에서 나를 건져 주신 천사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빕니다.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이 이 아이들에게 이어지고, 이들이 이 땅 한가운데서 큰 무리로 번성하기를 빕니다." (창세기 48장 16절)
야곱은 두 손자를 위해 세 가지를 구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 주시기를, 자신과 조상들의 이름이 그들에게 이어지기를, 이 땅 한가운데서 큰 무리로 번성하기를 비는 것입니다(15~16절).[헨리] 복을 빌기 전에 그는 태어난 날부터 오늘까지 자신을 먹여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먼저 되새깁니다(15절). 평생 먹여 주신 분은 마지막에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헨리] 야곱은 손자들을 복 줄 수 있었으나 자신에게 아무것도 귀속시키지 않고 겸손히 기도에 호소했습니다. 여기서 교회의 모든 목사와 사역자를 위한 규칙이 도출됩니다.[칼빈] "모든 악에서 나를 건져 주신 천사"는 평범한 피조물 천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이 영원한 중보자이신 까닭에 천사의 칭호를 헛되이 지니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헨리·칼빈] 이 대목에서 속량하는 자를 뜻하는 "고엘"이라는 말이 처음 쓰이는데, 이는 시간적이고 영적인 악에서 구원하시는 분,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최초의 용례로 풀이됩니다.[풀핏] 다만 "내 이름이 그들에게 불려지게 하시며"라는 표현을 두고, 칼빈은 이것이 단순히 입양의 표시일 뿐이라고 못박으며, 이를 죽은 자에게 기도해야 한다는 근거로 삼는 해석을 명시적으로 반박합니다.[칼빈]
17~20절 — 요셉의 이의와 야곱의 확신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거절하며 말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안다. 이 아이도 한 백성이 되어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동생이 그보다 더 크게 될 것이며, 그의 자손은 여러 민족의 무리를 이룰 것이다."" (창세기 48장 19절)
요셉은 아버지가 오른손을 동생 에브라임에게 얹은 것을 실수로 여겨 그 손을 형에게로 옮기려 했습니다(17~18절). 그러나 야곱은 거절하며, 형 므낫세도 한 백성이 되어 크게 되겠으나 동생 에브라임이 그보다 더 크게 되리라고 선언합니다(19절). 요셉은 이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야곱은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에 순응하여 하나님의 영을 비밀스러운 안내자로 따른 것이었습니다.[칼빈] 믿음의 눈이 육신의 눈보다 더 잘 봅니다. 훗날 에브라임 지파가 북 이스라엘 왕국에서 지배적 지파가 되어 역사가 이 예언을 확인해 주었습니다.[헨리] 실제로 모세 시대의 인구 조사에서 두 지파의 수가 엎치락뒤치락했으나, 가나안 정복 후에는 에브라임의 우위가 회복되어 북방 열 지파의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습니다.[풀핏] 야곱은 두 청년 중 누가 더 합당한지를 다투지 않고 하나님이 각각에게 작정하신 것을 선언할 뿐입니다. 우리의 존엄함은 하나님의 작정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칼빈] 이 복이 얼마나 탁월했던지, "하나님께서 너를 에브라임과 므낫세처럼 되게 하시기를"이라는 말이 이스라엘의 축복 관용구가 되었습니다(20절).[헨리]
21~22절 — 죽음을 앞두고 남긴 예언과 세겜 땅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했다. "보아라, 나는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하셔서 너희를 네 조상들의 땅으로 다시 데려가실 것이다." (창세기 48장 21절)
야곱은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예고합니다(21절). 이는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헨리] 그는 침착하게 죽음을 말할 수 있었지만, 요셉과 남은 가족이 받을 충격을 미리 준비시키기 원했고, 오직 가나안으로의 회복에 대한 확실성만을 강조했습니다.[JFB] 이어 야곱은 형제들보다 요셉에게 한 몫을 더 주는데, 그것은 세겜 근처의 땅입니다(22절).[JFB] 이는 이집트에서 온 가족을 부양한 요셉의 수고에 대한 보답이며, 훗날 요셉의 뼈가 바로 이 세겜에 장사됩니다.[헨리]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의 손에서 빼앗았다"는 말은 해석이 갈립니다. 칼빈은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에서 저지른 잔인한 학살을 전제로, 야곱이 그 사악한 행위에서 나온 권리를 그들에게서 박탈하여 자신에게 이전한 것으로 풀이하며, 그는 늘 그들의 사악함을 혐오했다고 강조합니다.[칼빈] 반면 풀핏은 무장한 군졸로 성읍을 점령한 것, 평화롭게 샀다가 무력으로 되찾은 것, 가나안 정복을 가리키는 예언적 발언 등 여러 해석을 나열하고 예언적 발언 쪽에 무게를 둡니다.[풀핏]
연결된 말씀
- 창세기 28장 — 야곱이 3~4절에서 되새기는 벧엘의 언약이 처음 주어진 장으로, 여러 주석이 나란히 지시합니다.
- 역대상 5장 — 요셉이 두 아들을 통해 장자의 두 몫을 받게 된 근거로 인용되는 말씀입니다(5~6절).
- 히브리서 11장 — 야곱의 이 축복을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믿음의 사례로 꼽는 말씀입니다.
- 창세기 49장 — 영예의 장자권이 유다에게로 이어지는 다음 장으로 함께 읽힙니다.
- 여호수아 24장 — 야곱이 요셉에게 더 준 세겜 땅에 훗날 요셉의 뼈가 장사되는 성취의 말씀입니다(22절).
- 민수기 6장 — 15~16절의 삼중 축복이 제사장의 삼중 축도와 상응한다고 잇는 말씀입니다.
- 마태복음 28장 — 같은 삼중 축복을 세례의 삼위일체 문구와 견주는 근거로 지시됩니다.
마무리
창세기 48장의 중심은 죽음을 앞둔 노족장이 이집트의 영화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언약을 자기 후손에게 물려주는 데 온 마음을 쏟는 모습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탁월함이나 부와 권력을 자랑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언약을 손자들 앞에 놓았습니다.[칼빈] 손을 엇갈리게 얹은 장면은 하나님이 사람의 공로 요구에 묶이지 않으시고 자신의 기쁨에 따라 자유롭게 은혜를 베푸심을 보여 줍니다.[칼빈] 믿음의 사람은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 때에도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며, 자신이 받은 언약의 복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을 마지막 순간까지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을 떠나가는 하나님의 종과 세상에 막 들어오는 젊은 세대가 만나 임종의 증언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유익한 일입니다.[헨리]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