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청소년어린이일반

마태복음 9장 — 긍휼로 부르시고 죽음을 이기시는 인자

마태복음 9장 · 일반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마태복음 9장은 산상수훈을 마치신 예수께서 여러 기적과 부르심을 잇달아 행하시는 장입니다.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신 그분은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죄를 사하는 권세를 드러내시고(1~8절), 세관에 앉은 마태를 부르시며 죄인과 함께 음식을 잡수십니다(9~13절). 이어 금식을 두고 벌어진 논쟁에 새 시대의 성격을 밝히시고(14~17절), 죽은 소녀를 일으키시며 혈루증 여인을 낫게 하시고(18~26절), 두 맹인의 눈을 여시며 말 못 하는 사람을 고치십니다(27~34절). 마지막으로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추수할 일꾼을 위해 기도하라 명하십니다(35~38절). 이 모든 사건은 죄와 질병과 죽음을 다스리시는 인자의 권세, 그리고 낮고 멸시받는 자에게 임하는 긍휼을 한 흐름으로 보여 줍니다.

장의 흐름

  • 1~8절 — 중풍병자 치유와 죄를 사하는 권세.
  • 9~13절 — 마태를 부르심과 세리·죄인과의 식사.
  • 14~17절 — 금식 논쟁과 새 천·새 포도주 비유.
  • 18~26절 — 회당장의 딸을 살리심과 혈루증 여인의 치유.
  • 27~31절 — 두 맹인의 눈을 여심.
  • 32~34절 — 말 못 하는 사람을 고치심과 바리새인의 비방.
  • 35~38절 — 목자 없는 양을 불쌍히 여기심과 추수의 기도.

단락별 해설

1~8절 —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치시는 인자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예수께 데려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안심하여라! 네 죄가 용서받았다." (마태복음 9장 2절)

이 장은 스스로 올 수 없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합니다. 중풍병자는 침상에 실려 왔고, 예수께서는 그를 데려온 이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2절). 그 믿음은 병자를 공개적으로 데려온 강한 믿음이요, 왕진을 청하지 않고 몸소 나아온 겸손한 믿음이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실천하는 믿음이었습니다.[헨리] "아들아, 안심하여라"라는 부름은 다정한 호칭이자 은혜로운 격려이며, 이 말에는 부르시는 분과 부름받는 이 사이의 깊은 공감이 담겨 있습니다.[헨리·풀핏] 병을 고치시기 전에 먼저 "네 죄가 용서받았다" 선언하신 것은, 죄가 모든 병의 뿌리이므로 그 원인을 먼저 제거하려 하심입니다.[칼빈] 몸의 치유는 죄를 사하는 권세를 증명하는 표징이었습니다.[공통]

율법학자들은 이 선언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로 여겼습니다(3절). 하늘의 가장 큰 은혜의 표현이 도리어 지옥의 가장 검은 낙인을 받는 역설이 여기 있습니다.[헨리] 남을 중상하려는 열심이 그들을 이토록 사악한 결론으로 이끌었으니, 정말 비난할 것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묻지 않았겠습니까.[칼빈] 예수께서 그들의 은밀한 생각을 아시고 드러내신 것 자체가 신성의 증거입니다. 사람 속에 있는 것을 아는 이는 오직 하나님의 영뿐이기 때문입니다.[칼빈] 그분은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물으십니다(5절). 눈에 보이는 증상을 없애 보이심으로 보이지 않는 원질병을 고치는 능력을 증명하신 것입니다.[헨리] 그러면서 "나"가 아니라 "인자"라 하시니, 이는 다니엘서가 예언한 하늘의 권세가 미래만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도 행사됨을 알리는 칭호입니다.[풀핏] 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게 하신 것은 완전한 치유를 보이심이요, 오래 짐이 되었던 가족에게 도리어 복이 되게 하심입니다.[헨리] 그러므로 성도는 몸의 회복보다 죄 사함을 먼저 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9~13절 — 세리를 부르시고 죄인과 함께 잡수심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자 그가 일어나 예수를 따랐다. (마태복음 9장 9절)

멸시받던 한 사람을 부르시는 장면이 뒤를 잇습니다. 마태는 곧 레위이며, 세관은 착취와 불의로 악명 높은 자리였습니다.[헨리·칼빈] 그를 부르신 것은 마태 안에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앞서 찾아온 은혜였습니다.[헨리] 마태는 훗날 이 일을 기록하며 자기 잔치를 자랑하지 않고 "그 집에서 음식을 잡수셨다"고만 겸손히 적었습니다.[헨리·JFB]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자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에게 트집을 잡았습니다(11절). 그들은 그분께 직접 대들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헨리·JFB]

예수의 대답은 병과 의사의 비유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에게 필요하니(12절), 죄는 영혼의 병이요 그리스도는 영혼의 위대한 의사이십니다.[헨리] 이어 그분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호세아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13절).[공통] 이는 제사를 절대적으로 물리치는 말이 아니라, 형식적인 준수보다 타락한 자를 일으키려는 사랑을 더 원하신다는 상대적 표현입니다.[칼빈·JFB] 바리새인의 잘못은 율법을 지킨다는 이유로 죄인과의 접촉을 끊은 데 있었습니다.[JFB] "회개하게 하려" 부르신다는 말씀은, 용서가 죄를 가볍게 여기게 함이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다시 부르는 것임을 일러 줍니다.[칼빈]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의를 앞세워 낮은 자를 밀어내지 말고 긍휼을 앞세우는 것이 마땅합니다.

14~17절 — 신랑이 함께 있는 새 시대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 신랑의 친구들이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니, 그때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마태복음 9장 15절)

새것과 옛것의 관계가 다음 물음의 주제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을 두고 묻자, 예수께서는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 친구들이 슬퍼할 수 없다고 답하십니다(15절). 제자들은 신랑의 방 자녀와 같아서, 신랑이 곁에 계시는 지금은 기뻐할 때입니다.[헨리]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바리새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었습니다.[칼빈] 이어지는 새 천과 새 포도주의 비유는 모든 종교적 의무가 똑같이 무겁지 않으며, 아직 약한 이들에게는 그 약함을 헤아려 훈련을 지워야 함을 가르칩니다.[헨리] 여기서 낡은 옷과 낡은 부대는 오래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약하고 힘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칼빈] 그리스도의 새로운 삶은 옛 유대교에 덧댄 한 조각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옷이기 때문입니다.[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새 포도주를 낡은 틀에 억지로 담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공통]

18~26절 — 죽음을 이기시는 생명의 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한 관리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말하였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셔서 손을 얹어 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18절)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이 단락을 엽니다. 한 관리가 나아와 절하며 죽은 딸을 살려 달라 청합니다(18절). 그는 겸손히 몸소 나아와, 예수께서 손을 얹어 주시면 딸이 살아나리라 믿었습니다.[헨리] 가시는 길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뒤에서 그 옷자락을 만졌습니다(20절). 그 옷술은 이스라엘 사람이 율법을 따라 겉옷 귀에 달던 술이었습니다.[풀핏]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으리라 여긴 그 생각에는 얼마간 오류와 상상이 섞였을 수 있으나, 그리스도는 이해의 약함을 너그러이 보아 넘기시고 믿음의 신실함을 받아들이셨습니다.[헨리·칼빈] "딸아, 안심하여라"라는 말씀은 그 믿음의 주저함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칭찬하여 새 힘을 더해 주신 것입니다.[칼빈]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니 피리 부는 자들과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가 있었습니다(23절). 이들은 소망 없는 자들의 슬픔을 나타내니, 참된 신앙은 위로의 강장제를 주지만 소망 없는 슬픔은 도리어 아픔을 더할 뿐입니다.[헨리] 예수께서 "이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신 말씀은(24절), 이 소녀에게 특별히 참될 뿐 아니라 주 안에서 죽는 모든 이에게 죽음이 곧 부활의 소망을 동반한 잠임을 뜻합니다.[헨리] 율법 아래 대제사장은 죽은 자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으나, 죽음을 이기시는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만지셔도 더럽혀지지 않으십니다.[헨리] 그러므로 성도는 죽음을 마지막으로 여기지 말고, 생명의 주 앞에서 잠으로 바라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27~31절 — 믿음대로 열리는 눈

그때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말씀하셨다.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마태복음 9장 29절)

믿음은 종종 시험을 거쳐 응답됩니다. 두 맹인이 "다윗의 자손이여" 부르며 따라온 것은(27절), 메시아를 알아보는 믿음의 눈이 그들에게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헨리] 이 부름은 맹인의 눈이 밝으리라던 옛 예언에 근거한 믿음으로 보입니다.[JFB] 예수께서 처음에 곧바로 응답하지 않으신 것은 그들의 믿음과 인내를 시험하려 하심이었습니다.[헨리·JFB]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하시며 눈을 여신 그 치유는 믿음의 크기에 비례한 삯이 아니라 믿음에 응답하여 주어진 선물이었습니다.[JFB]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명하신 데에는 겸손의 본을 보이심과 수혜자 자신을 위한 배려 등 여러 이유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헨리·풀핏]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응답이 더딜 때에도 인내로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32~34절 — 극에 달한 신성모독

그러나 바리새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가 귀신의 우두머리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마태복음 9장 34절)

반대는 마침내 극에 이릅니다. 말 못 하던 사람은 본래 벙어리가 아니라 귀신 들린 뒤에 말하는 능력을 잃은 것이었습니다.[JFB·칼빈] 귀신이 영혼을 지배하면 사람은 기도와 찬양에서도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헨리] 귀신이 쫓겨나 그가 말을 하자 무리는 놀랐으나, 바리새인들은 그분이 귀신의 우두머리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했습니다(34절). 이는 예수의 기적을 악한 세력의 힘으로 돌리는 이론이 처음 등장한 것이며, 가장 극렬한 반대자조차 기적 자체가 실재함은 부인하지 못했습니다.[JFB] 사악함이 눈멂의 지경에 이르면 왜곡하지 못할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니, 무리의 놀람과 바리새인의 모독이 나란히 놓여 그들의 광기를 더욱 뚜렷이 드러냅니다.[칼빈] 이 비방은 앞선 다툼들, 곧 죄 사함과 세리와의 교제와 금식을 두고 벌어진 논쟁보다 한층 악의적인 단계였습니다.[공통]

35~38절 — 목자 없는 양과 추수의 기도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니,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시달리며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9장 36절)

긍휼은 마침내 추수의 기도로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외딴 성과 마을까지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신 것은(35절), 낮은 처지의 영혼도 귀히 여기심을 보여 줍니다.[헨리]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것은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시달리며 흩어져 있었기 때문인데(36절), 이 "시달림"은 원문에서 괴롭힘을 당해 내던져진 채 쓰러져 있음에 가깝습니다.[JFB·풀핏] 그 처지의 책임은 백성을 돌보아야 할 지도자들에게 있었으니, 곧 게으른 목자들이 도리어 백성을 방치한 것입니다.[헨리·칼빈] 예수의 시선은 이미 유대 땅을 넘어 온 세상의 밭으로 확장되고 있었습니다.[JFB]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므로, 그분은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 달라 기도하라 명하십니다(37~38절). 아무도 스스로 신실한 사역자가 되지 못하며, 주님이 일으키시고 성령의 은사로 세우실 때에만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칼빈] 그러므로 성도는 무리의 곤경 앞에서 팔짱을 끼지 말고, 추수의 주인께 일꾼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연결된 말씀

  • 호세아 6장 —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죄인과의 식사를 트집 잡는 바리새인을 향해 예수께서 인용하신 근거입니다.
  • 이사야 35장 — 맹인의 눈이 밝으리라는 예언으로, 두 맹인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른 믿음의 바탕이 됩니다.
  • 다니엘 7장 — 인자 같은 이가 하늘의 권세를 받는 환상으로, 예수께서 "인자"의 권세로 이 땅에서 죄를 사하심을 뒷받침합니다.
  • 마태복음 13장 — "세상의 밭"이라는 표현으로, 목자 없는 무리를 향한 예수의 시선이 이미 온 세상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 누가복음 10장 — 칠십 명을 보내시며 하신 추수 일꾼의 기도가 그대로 되풀이되어, 이 장 마지막 명령과 이어집니다.
  • 마태복음 12장 — 예수의 기적을 귀신의 힘으로 돌리는 같은 비방이 다시 나타나, 바리새인의 적대가 반복됨을 보여 줍니다.
  • 레위기 21장 — 대제사장이 죽은 자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규정으로, 죽은 소녀를 만지고도 더럽혀지지 않으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돋보이게 합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9장은 죄와 질병과 죽음을 다스리시는 인자의 권세를 한 장 안에 모아 보여 줍니다. 그분은 죄를 사하는 권세로 중풍병자를 일으키시고, 멸시받던 세리를 부르시며, 죽은 소녀를 잠에서 깨우듯 살리시고, 목자 없는 무리를 긍휼로 품으십니다. 이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긍휼을, 자격이 아니라 은혜를 앞세우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공통]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몸의 필요보다 죄 사함을 먼저 구하며 죽음마저 잠으로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헨리] 둘째, 목자 없이 흩어진 이웃을 불쌍히 여겨, 추수의 주인께 일꾼을 보내 달라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칼빈]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