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 — 베드로의 고백과 십자가의 길
요약
마태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사역이 큰 전환점을 맞는 장입니다. 여기서부터 예수께서는 이전에 없던 명확함과 빈도로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앞부분은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책망하시고(1~4절),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누룩에 비유해 경계하십니다(5~12절). 이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과 반석 위에 세울 교회, 천국 열쇠의 약속이 나옵니다(13~20절). 뒷부분에서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수난을 예고하시고 이를 만류한 베드로를 엄히 꾸짖으신 뒤(21~23절),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제자도의 길을 가르치십니다(24~28절). 영광의 고백과 십자가의 예고가 한 장 안에 나란히 놓여, 참된 메시아 신앙이 무엇인지를 드러냅니다.
장의 흐름
- 1~4절 — 표적: 하늘의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사두개인을 책망하시고 요나의 표적만 남기심.
- 5~12절 — 누룩: 빵으로 오해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사두개인의 가르침을 경계시키심.
- 13~20절 — 고백: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반석 위에 세울 교회, 천국 열쇠의 약속.
- 21~23절 — 수난 예고: 첫 번째 고난 예고와 이를 만류한 베드로를 향한 책망.
- 24~28절 — 제자도: 자기 부인과 십자가, 목숨의 역설, 인자의 재림.
단락별 해설
1~4절 — 표적을 구하는 자들을 향한 책망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요나 선지자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는 그들을 떠나 가셨다. (마태복음 16장 4절)
참 신앙은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완악해서 막힙니다. 신학적으로 정반대였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서로 원수였으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에서만은 하나가 되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했습니다.[헨리·칼빈] 그들이 원한 것은 이미 받은 것과 다른, 자신들이 고른 표적이었습니다. 병들고 슬픈 자를 위한 표적은 무시하면서 교만한 자의 호기심을 채울 표적만 고집한 것입니다.[헨리] 그 속셈은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시험하여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었습니다.[헨리] 표적을 보여 주어도 따르지 않기로 이미 작정해 놓고 증거만 있으면 믿겠다는 듯 요구했기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선자라 부르셨습니다.[칼빈]
예수께서는 날씨는 능숙하게 분별하면서 정작 자기 영혼의 문제에는 어리석고 둔한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2~3절).[헨리] 여기서 "시대의 표적"이란 메시아가 오시기로 예언된 결정적 때가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여러 정황을 가리킵니다.[풀핏] 그러나 그들에게는 오직 요나 선지자의 표적만 남겨졌습니다(4절). 요나가 사흘 만에 살아난 일이 예표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그들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눈앞의 표적을 탐하기보다 이미 주어진 부활의 증거 앞에 무릎 꿇는 것이 마땅합니다.
5~12절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
"바리새 사람들과 사두개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조심하여라." (마태복음 16장 6절)
작은 잘못된 가르침도 방치하면 온 삶을 물들입니다. 예수께서 누룩을 경계하라 하신 것은, 발효제가 신선한 반죽을 시게 하고 부풀리며 퍼뜨리듯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부패한 원리도 그렇게 번지기 때문입니다.[헨리]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빵을 가져오지 못한 일로 오해하고 말았습니다(7절). 예수께서는 빵을 잊은 것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들의 믿음이 적음을 꾸짖으셨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의지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8절).[헨리]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두 번이나 보고도 빵을 염려한 것은, 선생님이 늘 같은 능력을 지니셨음을 잊은 부끄러운 배은망덕이었습니다(9~10절).[칼빈]
거두어들인 광주리들은 만나 항아리처럼 하나님의 공급을 기념하도록 남겨진 것이었습니다.[헨리] 마침내 제자들은 예수께서 조심하라 하신 것이 빵의 누룩이 아니라 두 무리의 가르침임을 깨달았습니다(12절). 여기서 대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람이 스스로 고안해 낸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고안물을 섞는 자는 그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거부되어야 합니다.[칼빈] 오늘도 무신론과 이신론은 사두개인의 누룩이요 로마 교황주의는 바리새인의 누룩이니,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둘을 함께 경계해야 합니다.[헨리]
13~20절 — 베드로의 고백과 교회의 약속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
신앙의 절정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바로 아는 데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적어 조용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과 사적으로 이 물음을 나누셨는데, 이곳은 분봉왕 빌립이 후원자 티베리우스를 기려 이름 붙인 팔레스타인 북쪽 끝의 지역입니다(13절).[헨리·풀핏] 사람들은 예수를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가운데 하나로 여겼습니다(14절). 엘리야설은 말라기의 예언에서, 예레미야설은 옛 전설에서,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견해는 신명기의 예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풀핏]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물음은 전에 없던 것이었으나, 이제 나아가야 할 중요한 시점이 이 질문을 적절하게 만들었습니다(15절).[JFB]
베드로는 무식한 어부가 어찌 감히 판단하겠느냐고 물러서지 않고, 주님의 영광의 빛이 그 영혼 안에 비쳤기에 힘차게 나아가 고백했습니다.[JFB] 이 고백은 그리스도의 본성과 직분과 인격에 관한 것이며, 베드로 한 사람만이 아니라 나머지 제자 모두를 대표한 것입니다.[헨리·풀핏]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영원한 왕국과 제사장직을 함께 품고, "살아 계신"이라는 말은 아무것도 아닌 죽은 우상들과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칼빈] 이런 고백은 사람의 자연적 이성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천상의 지혜의 신비를 깨닫는 통찰이 본래 사람의 마음에 없기에, 이것을 알게 하신 분은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17절).[공통] 그러므로 다른 이보다 앞선 자리도 자신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헨리]
이어 예수께서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18~19절). "이 반석"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두고 옛 주석가들은 견해를 달리했습니다. 세 견해(베드로 자신·그리스도 자신·베드로의 고백)를 소개하며 그리스도 자신 쪽에 무게를 두는 이가 있고,[헨리] 베드로 개인과 함께 모든 신자가 산 돌로서 반석에 해당한다고 넓게 보는 이가 있으며,[칼빈] 언어와 신약의 용례로 보아 베드로 자신이 반석이라는 해석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논증하는 이도 있습니다.[풀핏] 다만 이 권한이 곧 열두 사도 전체에게 확대되므로 베드로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JFB] 어느 견해를 따르든,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은 특정 교회나 지도자의 무오류를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의 계승이 결코 끊어지지 않음을 뜻합니다.[헨리·칼빈] 열쇠와 매고 푸는 권세의 성격도, 교리의 열쇠와 권징의 열쇠 둘로 보거나,[헨리] 복음을 통한 죄 사함의 선언으로 보거나,[칼빈] 입법권과 사죄권의 두 분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풀핏] 예수께서 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당부하신 것은, 자신의 메시아 되심이 제자들의 말보다 기적과 부활로 증명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20절).[헨리]
21~23절 — 첫 수난 예고와 베드로 책망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게 걸림돌이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 (마태복음 16장 23절)
바른 고백을 한 사람도 곧바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위대한 고백을 한 바로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이전에 없던 명확함과 빈도로 예루살렘에서 받으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보이기 시작하셨습니다(21절).[JFB·풀핏] 이렇게 늦추어 밝히신 것은 제자들의 지식과 믿음이 성숙해진 만큼만 감당하도록 점진적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헨리]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만류했습니다(22절). 방금 받은 탁월한 지위에 힘입은 놀라움과 관대한 분노였고, 다른 이들 앞에서 차마 꾸짖지 못해 한쪽으로 데려간 것은 그에게 품은 존경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JFB·칼빈]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 도리어 지식을 가르치려는 격이었으니, 고난 없이 편히 지내려는 욕망은 부패한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다.[헨리]
예수께서 베드로를 향해 물러가라 하신 이 엄한 말씀은, 방금 반석이요 열쇠를 받은 바로 그 사람을 향한 것이었습니다.[공통] 사탄이 일찍이 하와와 욥의 아내를 통해 공격했듯, 여기서는 가장 사랑받는 제자를 통해 그리스도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말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23절).[헨리] 이 꾸지람은 마가의 기록대로 베드로만이 아니라 모든 제자에게도 필요한 것이었고,[JFB] 광야에서 마귀를 물리치실 때 쓰신 말씀과 거의 같은 것이었습니다.[풀핏·칼빈]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의 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24~28절 —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복음 16장 24절)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가 없듯 십자가 없는 제자도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사람을 향한 책망을 곧 모든 이를 위한 부르심으로 바꾸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명하셨습니다(24절).[JFB] 이 세 가지는 제자도의 세 요소이며, 십자가는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준비하신 것에 자신을 맞추어 짊어지는 것입니다.[공통] 자기 부인은 매우 넓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살아 다스리시도록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자리로 낮아지는 데까지 이릅니다.[칼빈]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을 되찾겠느냐?" (마태복음 16장 26절)
여기에는 목숨을 구하려다 잃고 잃으려다 찾는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25절). 한 영혼은 온 세상보다 값진데,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을 값 주고 사셨으므로 그 값을 아십니다.[헨리] 사람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 며칠 즐기려고 지어진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하늘에서 불멸을 얻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26절).[칼빈]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천사들을 거느리고 다시 오셔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27절). 선한 행위에 상이 약속되는 것은 값없이 주어지는 칭의와 맞서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확증하는 것입니다.[칼빈] 끝으로 자기 나라에 들어오는 인자를 볼 자들이 있다는 말씀(28절)을 두고, 성령의 부어짐과 복음 교회의 세워짐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함께 가리킨다고 보는 이도 있고,[헨리] 약 사십 년 뒤 청중이 살아서 볼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킨다고 결론짓는 이도 있습니다.[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잠시의 세상을 좇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 마땅합니다.
연결된 말씀
- 요나서 — 요나가 사흘 만에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일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 주는 표적으로 이 장 4절에 인용됩니다.
- 다니엘서 — 예수께서 자신을 낮추어 부르신 "인자"라는 호칭이 메시아를 가리키는 예언의 말로 지목됩니다.
- 말라기 4장 — 사람들이 예수를 엘리야로 여긴 근거가 된,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는 예언입니다.
- 신명기 18장 — 예수를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본 견해의 바탕이 되는, 한 선지자를 세우시리라는 예언입니다.
- 마태복음 4장 — 예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실 때 쓰신 말씀이, 광야에서 마귀를 물리치실 때 쓰신 말씀과 거의 같음을 밝히는 데 견주어집니다.
- 사도행전 15장 — 베드로가 천국 열쇠의 권세를 실제로 행사한 예로, 이방인이 교회에 들어오는 자리에서 지목됩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16장은 참된 신앙이 두 축 위에 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바른 고백이요, 다른 하나는 그 그리스도를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순종입니다. 고백은 하늘 아버지의 계시로만 주어지고, 순종은 목숨을 잃어 도리어 얻는 역설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표적을 탐하지 않고 이미 주어진 부활의 증거 앞에 서야 하며,[풀핏] 사람의 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지 않고 잠시의 세상보다 영원한 나라를 좇아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 마땅합니다.[칼빈]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