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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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 새 세상의 언약과 무지개

창세기 9장 · 일반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창세기 9장은 홍수 심판이 끝난 뒤 하나님께서 노아의 한 가정을 통해 새 세상을 다시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세상과 교회가 노아의 가정 하나로 줄어들었고 오늘의 모든 사람이 그 후손이므로, 이 장은 더욱 주의 깊게 읽어야 합니다.[헨리] 앞 장에서 노아가 제단을 쌓아 하나님을 찬양했고(창 8:20), 하나님은 이제 복으로 응답하십니다.[헨리] 이 장은 크게 네 부분입니다. 생명과 지배권을 다시 정하시는 규례(1~7절),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언약과 그 표징인 무지개(8~17절), 노아와 세 아들 사이에 벌어진 사건과 예언(18~27절), 그리고 노아의 남은 생애와 죽음(28~29절)입니다.

장의 흐름

  • 1~4절 — 생육·번성의 복 재확인, 두려움에 근거한 지배권, 육식 허용과 피 금지.
  • 5~7절 — 사람의 생명 보호,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한 살인 금지, 번성 명령의 반복.
  • 8~11절 — 노아 언약의 확립. 다시는 홍수로 온 땅을 멸하지 않으심.
  • 12~17절 — 언약의 표징으로 세우신 무지개.
  • 18~19절 — 세 아들 셈·함·야벳과 온 땅에 퍼진 사람.
  • 20~23절 — 노아의 포도원과 취함, 함의 조롱과 두 형제의 덮음.
  • 24~27절 — 노아의 예언. 가나안의 저주, 셈의 축복, 야벳의 확장.
  • 28~29절 — 노아의 남은 350년과 950세의 죽음.

단락별 해설

1~4절 — 새 세상의 헌장과 먹거리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 채워라." (창세기 9장 1절)

새 세상은 복 위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복 주심은 그분의 선하신 뜻과 은혜로운 의도를 확인하신 것이며, 제단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에게 하나님도 은혜로 갚으신 응답입니다(1절).[헨리] 이 복은 단순한 다산의 회복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난 것이며, 구원받은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남았는지 의심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습니다.[칼빈] 이제 노아는 자연의 새 왕국을 위한 대헌장을 받습니다. 홍수로 몰수된 옛 질서 위에 새 왕국이 세워지고 체계가 잡힌 것입니다.[헨리] 하나님은 땅의 짐승과 하늘의 새가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시어 지배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2절). 다만 무죄한 사람은 사랑으로 다스렸으나 타락한 사람은 이제 두려움으로 다스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공통] 짐승들이 사람에게 순종하는 데에는 그 폭력을 억제하시는 하나님의 은밀한 재갈이 있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사나운 짐승들이 세상을 홍수만큼이나 효과적으로 멸했을 것입니다.[칼빈·헨리]

이어 하나님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먹거리로 주십니다(3절). 육식이 이때 처음 허락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립니다. 홍수가 땅의 영양분을 씻어 내려 열매만으로는 부족해졌기에 이제 허락되었다고 보는 주석도 있고[헨리·JFB], 타락 이전에 이미 허락된 것이 여기서 명시적으로 갱신되었을 뿐이라고 보는 주석도 있으며, 어느 쪽이든 결론은 중요하지 않으니 단정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유보하는 주석도 있습니다.[칼빈·풀핏] 분명한 것은 고기를 먹는 것이 하나님의 친절로 허락되었다는 사실입니다.[칼빈] 그러나 그 생명이 되는 피가 든 고기는 먹지 말라는 제한이 따랐습니다(4절). 피를 금하신 뜻은 사람이 창조자에게 매여 있음을 새기고, 음식에 탐욕을 부리지 않으며, 하등 피조물에 잔인해지지 않게 하고, 피가 영혼을 속죄하던 제사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헨리] 피 자체가 생명은 아니지만 생명의 기운이 주로 피에 거하므로(4절), 성경은 생명의 신성함을 이 규례로 지켜 세웁니다.[칼빈·풀핏]

5~7절 — 생명의 신성함과 번성 명령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그 피를 사람에게 흘림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9장 6절)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생명을 마음대로 끝낼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려놓아야 합니다(5절).[헨리] 하나님이 우리 생명의 방어를 맡으시고 죽음의 보복자가 되겠다고 선언하신 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작지 않은 증거입니다.[칼빈] 이를 위해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새로운 권세, 곧 시민 통치자의 제도가 세워집니다. 이전의 족장 사회에는 없던 것입니다.[JFB] 사람의 피를 흘린 자를 사형에 처하는 근거는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6절).[공통] 이 형상은 타락으로 훼손되었으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기에,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의 생명에도 높은 가치가 주어집니다.[JFB] 그러므로 살인에 대한 형벌을 한낱 정치적 법률로만 여기는 사람은 속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 새겨진 자기 형상이 침해당할 때 그 인격 안에서 자신이 침해당한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칼빈] 이렇게 생명의 질서를 세우신 뒤, 하나님은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풍성히 늘어나라 명하십니다(7절). 믿음의 사람은 생명을 주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이의 생명을 함부로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8~11절 — 다시 멸하지 않으시는 언약

"내가 너희와 내 언약을 세우니, 다시는 모든 육체가 홍수의 물로 끊어지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땅을 멸할 홍수가 없을 것이다." (창세기 9장 11절)

하나님은 심판 뒤에 언약으로 위로하십니다. 하나님과 맺으신 모든 언약은 그분 자신이 세우신 것이어서, "보라, 내가 세운다"는 말씀은 경이를 불러일으키고 언약의 효력에 대한 확신을 굳게 합니다(9절).[헨리] 이 언약은 노아와 그 후손만이 아니라 방주에서 나온 모든 생물에게까지 미칩니다(10절). 스스로 동의를 표현하지 못하는 짐승들도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가 그 혜택을 누립니다.[헨리] 언약에는 여러 단계가 있어, 노아 가족과 맺으신 현재의 언약, 후손에게 전해지는 언약, 그리고 짐승에게는 생명 보존을 내용으로 하는 언약이 함께 있습니다.[칼빈]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의 물로 모든 육체를 끊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1절). 세상이 여전히 더럽고 도발적임을 아시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옛 세상은 정의의 기념비로, 이 세상은 오늘까지 긍휼의 기념비로 남습니다.[헨리] 이 언약은 새로 맺는 것이 아니라 아담부터 이어진 언약(창 6:18)을 다시 확립하고 영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풀핏]

12~17절 — 언약의 표징 무지개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운 언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창세기 9장 13절)

하나님은 언약에 눈에 보이는 표징을 더하십니다. 무지개는 홍수 전에도 존재했을 자연 현상이지만, 이제 표징과 서약으로 성별되어 새로운 직무를 맡았습니다(13절).[칼빈·풀핏] 말씀에서 표징을 떼어 내는 것은 잘못입니다. 무지개는 마술적 힘이 아니라 믿음을 굳세게 하는 말씀에 매인 표징이기 때문입니다.[칼빈] "구름 속에 두었다"는 것은 그것을 제정하고 임명하셨다는 뜻이며, 이 평범하고 친숙한 현상이 평화의 보증으로 삼아졌습니다(13절).[JFB] 무지개의 위로는 여러 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비가 두려울 때 위로의 인을 보이시고, 구름이 짙을수록 무지개는 더 밝으며, 활 모양이면서도 시위와 화살이 없어 위협이 아니라 위로를 뜻합니다.[헨리] 이 표징은 온 세상에 두루 미치는 보편적이고 시의적절한 표징이었습니다.[풀핏] 하나님이 무지개를 보고 언약을 기억하시겠다 하심은(16절),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에 맞추어 확신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18~23절 — 노아의 실수와 두 아들의 경건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둘의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쳐 들어가 그들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덮었다. 그들은 얼굴을 뒤로 돌려서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보지 않았다." (창세기 9장 23절)

경건한 사람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에게서 온 땅에 사람이 퍼졌으니, 온 세상이 이 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은 신적 축복의 능력이었습니다(18~19절).[헨리] 노아는 위대하고 부유하며 하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으나 게으르지 않고 겸손히 농부의 일로 돌아갔습니다(20절).[헨리] 그런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누웠습니다(21절). 이 취함은 큰 죄이며, 큰 구원 직후의 일이었기에 더욱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오랜 경건에 남은 유일한 오점으로서, 나이와 방심의 결과로 보는 것이 옳고도 자비로운 해석입니다.[헨리·JFB·풀핏] "완전했다"(창 6:9)는 말은 죄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진실함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 일이 보여 줍니다.[헨리] 가나안의 아버지 함은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보고 밖에 있는 형제들에게 알렸습니다(22절). 그의 죄는 본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광경을 악하게 기뻐하고 조롱조로 폭로한 데 있습니다.[공통] 반면 셈과 야벳은 옷을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쳐 들어가 얼굴을 돌린 채 아버지의 수치를 덮었습니다(23절).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으니, 두 아들은 사랑의 외투와 공경의 가운으로 아버지를 가렸습니다.[헨리]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며, 형제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덮는 것이 마땅합니다.

24~27절 — 노아의 예언

"그가 말하였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자기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 것이다." (창세기 9장 25절)

술에서 깬 노아는 예언의 영으로 아들들의 미래를 말합니다. 그는 함이 아니라 그 아들 가나안을 향해 종들의 종이 되리라 저주합니다(24~25절). 무고해 보이는 손자에게 형벌이 미치는 것은 하나님이 무고한 이에게 분노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가나안 역시 잘못 안에서 발견되며, 후손에게까지 형벌을 연장하심으로 그 죄의 심각함을 더욱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칼빈] 여기에는 가나안 자손이 훗날 이스라엘을 위해 땅에서 뽑혀야 했던 목적이 담겨 있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헨리] 이어 노아는 셈이 아니라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합니다(26절). 선한 일의 영광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야 하며, 여호와가 "셈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은 온 세상에 증거가 됩니다.[헨리·칼빈] 끝으로 노아는 야벳의 창대함과 그가 셈의 장막에 거함을 예언합니다(27절). 이 성취를 두고는 결이 갈립니다. 야벳 후손의 정치적 확장에서 이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고 읽는 주석이 있는가 하면[JFB], 이방인과 유대인이 복음 안에서 한 믿음으로 모이는 데서 이루어진다고 읽는 주석도 있습니다.[칼빈·풀핏] 두 해석을 나란히 두고 판단을 유보하는 주석도 있습니다.[헨리]

28~29절 — 노아의 마지막

"노아의 모든 날은 구백오십 년이었고, 그 후에 그가 죽었다." (창세기 9장 29절)

노아의 생애는 경건의 긴 여정으로 마칩니다. 그는 홍수 후에도 350년을 더 살아 950세에 죽었습니다(28~29절). 이 긴 생명은 그의 경건에 대한 보상이었고, 그는 옛 세상과 새 세상 두 세상을 다 보았으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떠났습니다.[헨리] 한 사람의 믿음 위에 온 인류가 다시 세워졌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남은 자를 통해 자기 계획을 이어 가시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연결된 말씀

  • 창세기 1장 — 1절 "생육하고 번성하여"가 창세기 1장 28절 말씀의 재선포임을 주석들이 나란히 짚습니다.
  • 창세기 8장 — 노아가 제단을 쌓아 하나님을 찬양한 일(8장 20절)에 하나님이 복으로 응답하신 것으로 읽는 근거입니다.
  • 레위기 17장 — 피가 생명이 거하는 자리이며 속죄에 쓰인다는(17장 11절) 피 금지의 근거로 인용됩니다.
  • 디모데전서 4장 — 하나님의 말씀이 음식을 거룩하게 하여 순수하게 먹을 수 있게 한다는(4장 5절) 근거로 인용됩니다.
  • 고린도전서 10장 — 노아의 취함을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10장 12절)는 경고로 읽는 근거입니다.
  • 에베소서 1장 — 죄로 잃은 세상 지배권이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회복된다는(1장 22절) 근거로 지시됩니다.
  • 에베소서 2장 —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함을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일(2장 14~15절)로 읽는 근거입니다.

마무리

창세기 9장의 중심은 심판 뒤에도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언약으로 새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규례로 사람의 존엄을 지키시고, 무지개로 다시는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눈에 보이게 하셨습니다. 옛 세상이 정의의 기념비라면 이 세상은 긍휼의 기념비이며, 그 긍휼은 사람의 형상 안에 하나님을 향한 존귀가 담겨 있음을 다시 확인해 줍니다.[헨리] 동시에 이 장은 가장 경건한 노아조차 넘어지는 모습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신과 이웃의 생명을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귀히 여겨야 합니다. 둘째,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넘어질 수 있으니, 우리는 늘 깨어 절제하고 형제의 허물을 덮는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