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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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장 — 대를 이어 흐르는 언약과 우물

창세기 26장 · 일반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창세기 26장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야기 사이에서 이삭을 홀로 주인공으로 세운 유일한 장입니다. 앞서 아브라함을 시험했던 기근이, 이번에는 그의 아들 이삭에게 다시 찾아옵니다.[헨리·칼빈] 장은 흉년으로 그랄에 이주한 이삭이 하나님의 지시와 언약을 재확인받는 데서 열립니다. 이어 아내를 누이라 속인 실수와 책망, 백 배 수확의 형통과 블레셋 사람의 시기, 우물을 둘러싼 다툼과 물러섬, 브엘세바에서의 하나님의 재현현과 예배, 아비멜렉과의 언약, 에서의 이방인 결혼으로 인한 근심이 차례로 이어집니다.[헨리] 한 장을 관통하는 중심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이삭에게 그대로 흐른다는 사실이며, 우물을 다시 파는 이삭의 손길은 그 이어짐을 눈에 보이게 하는 표지입니다.

장의 흐름

  • 1~5절 — 흉년으로 그랄로 이주. 이집트행을 금하시는 하나님의 지시와 아브라함 언약의 재확인.
  • 6~11절 — 이삭이 리브가를 "누이"라 속임. 아비멜렉에게 발각되고 책망받음.
  • 12~17절 — 백 배 수확과 형통. 블레셋 사람의 시기와 추방.
  • 18~22절 —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팜. 에섹과 싯나의 다툼을 지나 르호봇에 이름.
  • 23~25절 —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의 재현현. 제단을 쌓고 예배함.
  • 26~33절 — 아비멜렉 일행과 언약을 맺음. 브엘세바 이름의 유래.
  • 34~35절 — 에서의 헷 사람 결혼과 부모의 근심.

단락별 해설

1~5절 — 흉년과 언약의 재확인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가지 마라.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땅에 머물러 살아라." (창세기 26장 2절)
"이 땅에 머물러 살아라.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하며 너에게 복을 주겠다.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이 모든 땅을 줄 것이며,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그 언약을 이루겠다." (창세기 26장 3절)

기근은 이삭의 믿음을 시험했습니다. 약속의 땅이 빵조차 주지 못할 때에도 이삭은 언약을 붙들었고, 가나안이 무가치해 보일수록 오히려 그 참된 가치를 더 깊이 깨달았습니다.[헨리] 하나님은 세 족장에게 기근 때마다 서로 다른 지시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었고, 야곱은 훗날 이집트로 내려가라는 허락을 받았으나, 이삭에게만은 이집트행이 금지되었습니다(2절).[헨리·풀핏] 헨리는 그 까닭을 세 사람의 성품과 힘의 차이에서 찾아, 이삭이 고난을 감당하도록 지음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헨리] 칼빈은 이삭에게 아버지보다 더 큰 연약함이 있음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이라고 봅니다.[칼빈] 하나님은 신실한 자의 모든 결점을 한꺼번에 고치지 않으시고, 그 연약함을 도우시며 빠질 함정을 미리 막으십니다.[칼빈]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시나, 그렇다고 우리가 자신의 연약함을 잊고 경솔하게 위험으로 달려들어서는 안 됩니다.[칼빈]

하나님이 언약을 재확인하시는 근거로 아브라함의 순종을 드십니다(5절). 그 순종은 "내 말·내가 명한 바·내 계명·내 율례·내 법도"라는 여러 표현으로 강조되어, 본성의 법칙에서 이삭을 바치는 일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인 순종이었음을 보여 줍니다.[헨리·풀핏] 다만 그 순종이 약속을 확증한 원인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저 베푸신 은혜를 때로 그들의 공로처럼 돌리시어, 신실한 자를 더욱 헌신하게 하십니다.[칼빈] 애굽으로 향하려던 마음의 숨은 뿌리는 결국 불신앙이었습니다.[풀핏] 믿음의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머물 자리를 정해야 합니다.

6~11절 — 아버지의 실수를 되풀이하다

"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묻자, 이삭은 "그는 내 누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 아내입니다"라고 말하기를 두려워했는데, '리브가가 보기에 아름다우니 이곳 사람들이 그녀 때문에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6장 7절)

이삭은 아버지가 두 번 저지른 실수를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매우 선한 사람도 큰 허물을 범할 수 있으며, 존경하는 이의 약점조차 따라 하려는 경향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헨리] 오히려 이삭은 아버지의 잘못을 모방하기보다 피했어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정절이 두 번이나 위험에 처했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변명할 수 없는 부주의였습니다.[칼빈] 여기서 "누이"라는 말은 여성 친척 일반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친남매임을 암시하려는 명백한 얼버무림이었습니다.[풀핏] 리브가는 이복누이도 아닌 사촌이었기에, 이삭의 거짓말은 아브라함의 것보다 변명의 여지가 더 적었습니다.[풀핏]

거짓의 혀는 잠깐뿐입니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어서 때가 되면 반드시 드러나며, 한 죄는 종종 많은 죄의 문이 됩니다(9절).[헨리]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한 관용은 이삭의 이중적 잘못을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이방인 왕을 움직여 조용히 그 어리석음을 바로잡게 하셨습니다(9~10절).[칼빈] 하나님은 때로 이방인을 신자의 스승이자 책망자로 세우십니다. 무지의 어둠에 싸인 불신자조차 우리의 아둔함을 나무라지 않도록, 성도는 하나님이 밝혀 주신 빛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칼빈] 아내의 아름다움이 부른 위험에서 이삭이 보전받은 것은 섭리의 시의적절한 개입 덕분이었습니다.[JFB]

12~17절 — 백 배의 수확과 시기

"이삭이 그 땅에 씨를 뿌렸더니, 그해에 백 배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6장 12절)

기근이 든 바로 그해에 이삭은 백 배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12절). 이것은 "내 종들은 먹겠고 너희는 굶주릴 것이다", "기근의 날에도 그들은 만족을 누릴 것이다"라는 말씀의 성취였습니다.[헨리·JFB] 이삭의 기술과 근면 위에 하나님의 복이 임한 결과였으며, "백 배"는 그 땅에서도 드문 풍작의 상한이었습니다.[JFB·풀핏] 다만 이삭이 씨를 뿌린 밭은 그의 소유가 아니라 빌린 땅이었습니다. 이방인으로 거하라는 그의 소명에 비추어, 그것은 토지의 매입이 아니라 임차로 보아야 합니다.[칼빈]

재산과 영향력이 급격히 늘자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시기했습니다(14절). 이 시기심은 가질수록 시기받는 세상의 허무함과, 이웃의 잘됨을 슬퍼하는 본성의 부패함을 동시에 증거합니다.[헨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은 결코 순수하고 완전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이 섞이는데, 안일과 방종이 우리를 나태하게 만들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칼빈] 커지는 이삭 자손의 힘에 대한 두려움은, 훗날 바로가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은 것과 같은 동기였습니다.[풀핏] 그러나 이삭은 자신의 권리를 무력으로 다투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습니다(16~17절). 다툼보다는 권리와 편리를 모두 양보하는 편이 낫습니다.[헨리] 중간 정도의 처지가 오히려 더 평화롭고 유용하기 때문입니다.[칼빈]

18~22절 — 다시 판 우물, 에섹에서 르호봇까지

"이삭이 그곳을 떠나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이번에는 그들이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넓은 곳을 주셨으니, 우리가 이 땅에서 번성할 것이다." (창세기 26장 22절)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파고,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 그대로 불렀습니다(18절). 이는 옛 길을 찾아 원수가 막아 놓은 것을 다시 여는 원리이니, 진리의 샘을 찾을 때에도 이전 세대의 발견을 이어받아야 합니다.[헨리] 우물을 되찾을 힘이 이삭에게 없지 않았으나, 그가 복수를 구하지 않은 것은 특별한 관용의 증거였습니다.[칼빈] 고대에는 누군가를 사회에서 제거하려 할 때 물과 불의 사용을 금하는 관습이 있었으니,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메운 것은 사실상 이 방식으로 아브라함의 가문을 몰아내려 한 것이었습니다.[칼빈]

에섹과 싯나라는 이름은 다툼과 대적을 뜻합니다(20~21절). 세상적인 것의 본질은 다툼거리여서,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운 사람도 이 세상에서는 다툼의 대상이 됩니다.[헨리] 이에 견주어 마지막 우물 르호봇, 곧 "넓은 곳"은 앞의 두 우물이 보여 준 세상의 협소함과 다툼 너머, 하늘의 넓음과 평화를 미리 보여 줍니다(22절).[헨리] 풀핏은 이 우물 파기를 구원의 우물을 찾는 일로 넓혀 읽으며, 많은 사람이 정작 파려 하지 않고 소원하는 것으로만 만족한다고 지적합니다.[풀핏] 성도는 다툼의 자리에서 물러설 줄 알아야 하고, 넓은 곳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로써 우물을 계속 파야 합니다.

23~25절 — 브엘세바에서의 재현현

"그날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하며 너에게 복을 주고,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네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 (창세기 26장 24절)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실망당할 때가 바로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은혜로우심을 보여 주시는 때입니다(23~24절).[헨리] 하나님의 현현에는 참된 것과 사탄의 유사한 현현을 확실히 구별하도록 명확한 표식이 새겨져 있습니다.[칼빈]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는 서두는, 아브라함이 이미 죽었으나 그 언약 관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내어 이삭의 믿음을 언약의 연속성 위에 세웁니다(24절).[칼빈·풀핏] 이에 이삭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25절). 어디를 가든 사람은 예배를 함께 가지고 가야 합니다.[헨리] 이 제단은 이삭 자신만이 아니라 온 가족을 위한 것이었으며, 경솔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의 규범을 따른 것이었습니다.[칼빈] 이는 이삭에게 귀속된 제단 건축의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풀핏]

26~33절 — 아비멜렉과의 언약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우리와 당신 사이에 맹세를 세우고, 당신과 언약을 맺자'고 말하였습니다." (창세기 26장 28절)

이삭을 내쫓았던 아비멜렉이 이제 화친을 청하러 찾아옵니다(26~27절). 아비멜렉이 왕의 자존심을 잊고 한 개인에게 스스로를 낮추어 우정을 구한 것은, 하나님의 은밀한 충동에 의한 것임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칼빈] 이삭이 지난 적대를 지적하며 불평한 것은 인내와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다. 복수의 마음과 손은 억제하되, 불의를 지적하는 것은 온유함을 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칼빈] 상처를 과장하면 반목이 도리어 악화되므로, 우정을 보존하려면 서로에 대한 표현을 최선으로 다듬어야 합니다.[헨리] 다만 "우리가 당신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아비멜렉의 말은, 자기 잘못을 최선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관습이기도 합니다(29절).[칼빈·풀핏]

선한 사람의 너그러움은 베푸는 일과 용서하는 일을 함께 행하는 데 있습니다. 이삭은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우정의 언약을 맺었습니다(30~31절).[헨리] 이 화해에 섭리가 미소 지었으니, 언약을 맺은 바로 그날 종들이 새 우물의 물을 찾았다는 소식이 왔습니다(32~33절).[헨리] 이 모든 일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이삭에게서 성취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며, 소심하던 아비멜렉조차 평화를 사랑하는 성품으로 잘못을 접고 우정을 청하게 되었습니다.[JFB]

34~35절 — 에서의 결혼과 근심

"에서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그는 헷 사람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사람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창세기 26장 34절)
"이들은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26장 35절)

장은 밝은 화해 뒤에 어두운 근심으로 닫힙니다. 에서는 헷 사람 아내 둘을 맞아들였고, 성경은 그를 "망령된 자"라 부릅니다(34절).[헨리] 부모의 동의 없는 결혼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내들이 부모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습니다.[헨리] 이교도 아내를 들인 것은 그가 하나님의 복도 원하지 않고 그분의 저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또 다른 증거였습니다.[JFB] 그러나 이 며느리들에 대한 부모의 소원함은, 선택된 가족을 이교의 위험에서 멀리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에 사용되었습니다.[JFB·칼빈] 근심의 뿌리는 며느리들의 개인적 품성보다 주로 가나안 혈통에 있었으며, 다처제 자체가 이미 결혼의 근본 법칙을 어긴 것이었습니다(35절).[풀핏] 언약이 대를 이어 흐르는 이 장의 한편에서, 에서의 선택은 그 언약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길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경고합니다.

연결된 말씀

  • 창세기 12장 —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아내를 누이라 부른 첫 사건으로, 이삭의 반복(7절)을 비추는 병행 본문입니다.
  • 창세기 20장 — 아브라함이 그랄에서 같은 일을 겪은 기록으로, 이삭의 그랄 사건(6~11절)과 나란히 읽힙니다.
  • 창세기 21장 —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우물을 두고 언약을 맺은 사건으로, 우물이 메워진 배신(15절)과 브엘세바 명명의 배경이 됩니다.
  • 이사야 65장 — "내 종들은 먹겠고"라는 말씀으로, 백 배 수확(12절)의 성취로 인용됩니다.
  • 시편 37편 — "기근의 날에도 만족을 누린다"는 말씀으로, 형통(12절)의 근거로 지시됩니다.
  • 출애굽기 1장 — 이삭 자손의 힘을 두려워한 것(16절)이 훗날 바로가 이스라엘을 억압한 것과 같은 동기임을 보여 줍니다.
  • 마태복음 5장 — 물러서고 다투지 않는 이삭의 온유(17~22절)를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읽는 근거입니다.
  • 히브리서 12장 — 에서를 "망령된 자"라 부른 말씀으로, 그의 결혼(34~35절)을 평가하는 근거로 인용됩니다.

마무리

창세기 26장의 중심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이삭에게 그대로 이어지며, 그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이삭의 모든 형통과 화해의 뿌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기근으로 그를 시험하시면서도 언약을 재확인하시고, 실수를 이방인의 입으로 바로잡으시며, 시기와 다툼 가운데서도 넓은 곳으로 그를 이끄셨습니다. 이 장이 그려 내는 이삭은 무력으로 권리를 다투지 않고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이며, 어디를 가든 제단을 쌓아 예배를 지니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두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 다툼의 자리에서 물러서고 넓은 곳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둘째, 형편이 기울 때에도 예배를 손에서 놓지 말고, 대를 이어 흐르는 언약의 하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