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0장 —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과 요셉의 유언
요약
창세기 50장은 성경 첫 책의 마지막 장으로, 야곱의 장례와 요셉의 죽음을 통해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출애굽기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습니다. 창세기가 야곱 가족의 이집트 이주로 나아갔다면, 이 장은 요셉의 확신에 찬 유언으로 닫히며 이어질 구원의 역사를 예고합니다. 야곱은 이집트에서 세상을 떠나고, 요셉은 아버지를 가나안의 조상 무덤에 장사한 뒤 다시 돌아옵니다. 아버지가 떠나자 형제들은 지난날의 죄가 되돌아올까 두려워하지만, 요셉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로 그들을 위로합니다. 장은 세 부분으로 흐릅니다. 야곱의 죽음과 성대한 장례(1~14절), 형제들의 두려움과 요셉의 용서(15~21절), 그리고 요셉의 노년과 유언과 죽음(22~26절)입니다.
장의 흐름
- 1~3절 — 야곱의 죽음. 요셉의 애도와 방부 처리(사십 일), 이집트인의 칠십 일 애도.
- 4~6절 — 요셉이 측근을 통해 바로에게 가나안 매장의 허락을 구하고, 바로가 허락함.
- 7~11절 — 성대한 장례 행렬, 아닷 타작마당에서의 이레 애곡, 아벨미스라임이라는 지명의 유래.
- 12~14절 — 막벨라 굴에 매장하고 이집트로 돌아옴.
- 15~18절 — 아버지 사후 형제들의 두려움, 대리인을 통한 용서 요청과 직접 엎드림.
- 19~21절 — 요셉의 응답.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심, 형제들을 부양하겠다는 약속.
- 22~23절 — 요셉의 노년. 백십 년을 살며 삼 대의 후손을 봄.
- 24~26절 — 요셉의 유언과 뼈에 대한 맹세, 요셉의 죽음.
단락별 해설
1~3절 — 야곱의 죽음과 애도
"요셉은 자기 아버지의 얼굴에 엎드려 그 위에서 울며 입을 맞추었다." (창세기 50장 1절)
요셉이 눈물과 입맞춤으로 아버지와 작별하는 것은 깊은 효심에서 나온 사랑의 표현입니다(1절).[헨리·JFB·칼빈] 떠난 영혼은 이미 눈물과 입맞춤이 닿지 않는 곳에 있으나, 부활을 기다리는 육신에 존경을 표하는 것은 합당합니다.[헨리] 방부 처리는 이집트의 관습이기도 했지만, 가나안까지 운구하는 긴 여정 때문에도 필요했습니다(2절).[헨리] 영혼이 떠난 몸은 며칠만 지나도 부패하는 비천한 것이니, 여기에 육체의 연약함을 성찰할 자리가 있습니다.[헨리] 사십 일의 방부 처리와 그에 이어진 애도로 이집트 사람들은 칠십 일을 슬피 울었으니, 이는 왕족의 죽음에 버금가는 공식 애도였습니다(3절).[JFB] 이 오랜 애도는 이집트인들이 요셉에게 품은 존경심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헨리·JFB] 다만 옛 주석가들은 장사의 거룩한 의식이 조상들에게서 내려온 부활의 거울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요셉이 이집트의 방식에 자신을 맞춘 것은 판단의 승인에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처지가 남만 못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칼빈]
4~6절 — 바로에게 매장을 구함
"올라가서, 네 아버지가 네게 맹세하게 한 대로 그를 장사하여라." (창세기 50장 6절)
요셉이 바로에게 직접 나서지 않고 측근을 통해 청한 데에는 예의와 경건이 함께 있었습니다(4절).[헨리·JFB·풀핏] 상중이라 왕 앞에 나설 수 없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고, 이집트 관습상 수염과 머리를 기른 채로는 왕을 뵐 수 없었을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JFB·풀핏] 옛 주석가들 가운데는 이를 종의 두려움에 눌려 믿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못한 아쉬운 태도로 읽은 이도 있으니, 관점이 여기서 갈립니다.[칼빈] 요셉이 아버지의 맹세를 근거로 든 것은 교만이 아니라 맹세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경건함에서였습니다(5절).[헨리] 바로 자신은 맹세하지 않았으나 남의 맹세를 존중해야 한다고 여겼으니, 불신자들 사이에도 맹세에 대한 존경이 있었음을 여기서 봅니다(6절).[칼빈] 믿음의 사람은 자신이 세운 서약을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지키는 자여야 합니다.
7~11절 — 성대한 장례 행렬
"그들이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고 비통한 통곡으로 애곡하니,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애도하였다." (창세기 50장 10절)
야곱의 장례는 유다 왕들의 짧은 장례 기록과 견주어 훨씬 상세히 기록되어, 하나님이 야곱에게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셨음을 보여 줍니다(7~14절).[헨리] 바로의 신하와 나라의 지도자들이 호위하는 성대한 행렬은 요셉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히브리 민족을 향한 이집트인의 인식이 달라졌음을 드러냅니다(7~9절).[헨리] 이 장례 여정은 먼 길이었고 귀족과 군대와 수행원으로 이루어진 장엄한 행렬이었습니다.[JFB] 아닷 타작마당에서의 애곡은 "비통한 애도"로 불릴 만큼 슬픔에 넘쳤으며, 아벨미스라임이라는 이름이 붙어 훗날 이스라엘을 압제한 이집트 후손에게 증거가 되었습니다(10~11절).[헨리] 다만 요셉의 이레 애곡이 지나쳤다고 보아 책망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평한 이도 있으니, 애도의 정도를 두고 평가가 갈립니다.[칼빈] 그럼에도 주님이 이 장례를 영예롭게 하신 것은 야곱의 믿음의 기억을 후세에 전할 기념물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칼빈]
12~14절 — 막벨라 굴의 매장
"그를 가나안 땅으로 옮겨 막벨라 밭의 굴에 장사하였으니, 그 굴은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매장지로 삼으려고 사들인 것으로 마므레 앞에 있었다." (창세기 50장 13절)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명한 그대로 순종하여 그를 조상의 무덤에 장사했습니다(12~13절). 요셉의 일행이 매장 후 다시 이집트로 돌아간 것은 하나님이 아직 그들을 가나안에 자유로이 거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14절).[칼빈] 그들은 자기 백성이 나그네가 되어 사백 년을 지낼 것이라는 하나님의 신탁을 신실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칼빈] 믿음의 사람은 약속의 성취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자리를 신뢰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15~18절 — 형제들의 두려움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으려 할지도 모른다." (창세기 50장 15절)
아버지가 떠나자 형제들은 요셉이 지난날의 악을 갚을까 두려워했습니다(15절). 이 두려움은 요셉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죄책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헨리·칼빈·풀핏] 죄책감이 있는 양심은 공포가 없는 곳에서도 두려움을 만들어 냅니다.[헨리] 옛 주석가들은 "악인은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간다"는 말로 이 심리를 설명하며, 형제들이 요셉의 온화함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지 않고 자기들의 성품으로 그를 판단한 왜곡을 지적했습니다.[칼빈] 그들은 대리인을 보내 아버지의 유언을 전하고, 이어 직접 요셉 앞에 엎드려 종이 되겠다고 간청했습니다(16~18절). 대리인과 직접 엎드림 둘 다로 용서를 구한 이 장면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절하리라던 요셉의 꿈이 이루어진 것으로 읽힙니다(17~18절).[헨리] 성도는 형제가 상처를 입혔을 때 그 잘못을 용서하는 자여야 합니다.[칼빈]
19~21절 —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
"여러분은 나를 해치려고 악을 꾀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이루셨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요셉의 말은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겸손을 나타냅니다(19절).[헨리·칼빈·풀핏] 이는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일어나라 나도 사람이라" 한 것과 같은 겸손이며, 요셉이 신적 섭리를 헤아려 자신의 감정을 자제한 태도입니다.[헨리·칼빈] 20절은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악한 의도를 통해서도 선한 결과를 이루신다는 이 장의 신학적 중심입니다.[공통] 요셉이 팔린 일은 형제들의 사악한 동의와 하나님의 은밀한 섭리 양쪽에 의한 것이었으니, 하나님은 인간의 악을 통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시되 악의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습니다.[칼빈] 그러므로 하나님이 악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은 결코 악을 행해도 좋다는 면허가 아니며, "선이 오도록 악을 행하자"는 논리는 경계해야 합니다.[풀핏] 요셉은 두려워하지 말라 하며 형제들과 그 어린 자녀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약속하고 따뜻한 말로 그들을 위로했습니다(21절). 이 강력한 용서의 보증은 요셉의 경건한 성품이자 훗날 오실 구세주의 예표입니다.[JFB]
22~26절 — 요셉의 노년과 유언
"나는 죽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돌보시고, 이 땅에서 여러분을 인도하여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그 땅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24절)
요셉은 이집트에서 백십 년을 살며 에브라임의 삼 대와 므낫세의 손자를 자기 무릎에서 보았습니다(22~23절). 모세가 요셉의 생애의 길이를 기록한 것은 그의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보여 주기 위함이며, 지상의 존귀함이 그를 하나님 나라에서 분리시키지 않았음을 증언합니다.[칼빈] 요셉은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이 반드시 그들을 돌보시고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 확언했습니다(24절). 그리고 자기 뼈를 그 땅으로 메고 올라가라 맹세하게 했으니, 이는 부활과 가나안 약속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명령입니다(25절).[헨리·JFB·풀핏] 이 열성적인 염려는 후손에게 구원의 인이 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칼빈] 요셉이 백십 세에 죽어 관에 안치된 것으로 창세기는 닫히지만(26절), 이 마지막 장면은 창세기가 요셉의 확신의 말로 끝나 출애굽기로 이어지는 다리가 됩니다.[헨리] 성도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다음 세대에 그 믿음을 물려주는 자여야 합니다.
연결된 말씀
- 마태복음 8장 — 요셉이 업무를 멈추고 장례를 치른 일과 대조되어,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의 긴박함을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으로 밝히는 본문입니다.
- 잠언 28장 — "악인은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간다"는 말씀으로, 형제들의 근거 없는 두려움이 죄책감에서 나온 것임을 설명하는 병행 구절입니다.
- 이사야 10장 — 사람이 정반대를 뜻해도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선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말씀으로, 20절의 섭리를 밝히는 데 인용됩니다.
- 창세기 15장 — 요셉 일행이 가나안에 머물지 않고 이집트로 돌아간 이유를 밝히는 신탁으로, 14절의 순종을 설명합니다.
- 히브리서 11장 — 요셉이 뼈에 대한 명령을 남긴 것을 믿음의 본보기로 기리는 말씀으로, 25~26절의 유언을 잇는 근거입니다.
- 여호수아 24장 — 요셉의 뼈가 훗날 세겜에 안장되어 그 유언이 이루어졌음을 기록하는 성취의 본문입니다.
마무리
창세기 50장의 중심은 "여러분은 나를 해치려고 악을 꾀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많은 생명을 구원하셨다는 요셉의 고백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형제들의 악한 동의를 통해서도 자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셨으나, 그 악의 책임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으니, 이는 악을 행해도 좋다는 면허가 결코 아닙니다.[칼빈·풀핏] 요셉은 이 섭리를 헤아려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고 형제들을 부양함으로, 훗날 오실 구세주의 용서를 미리 그려 보였습니다.[JFB] 창세기는 야곱 가족의 이집트 하강으로 나아가다가 요셉의 확신의 말로 닫히며, 하나님이 반드시 그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예고합니다.[헨리]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자기를 해한 자를 향해서도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악한 일 가운데서도 선을 이루시는 분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둘째,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 요셉이 자기 뼈를 두고 맹세하게 했듯 다음 세대에 그 믿음을 물려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