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3장 —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이집트로
요약
창세기 43장은 요셉 이야기(37~50장)의 한복판에 놓여, 야곱 집안의 두 번째 이집트 방문을 그립니다. 앞선 42장에서 요셉은 곡식을 사러 온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자신을 숨긴 채,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는 조건을 걸고 시므온을 인질로 붙잡아 두었습니다. 기근이 그치지 않고 처음 사 온 곡식마저 바닥나자 야곱은 다시 양식을 구하라 명하지만, 베냐민 없이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조건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43장은 유다의 간곡한 설득으로 야곱이 마침내 베냐민을 내주고, 형제들이 예물과 갑절의 돈을 지니고 내려가 요셉의 뜻밖의 환대와 시므온의 회복, 그리고 감격에 겨운 식사에 이르는 과정을 담습니다.
장의 흐름
- 1~2절 — 기근이 계속되어 곡식이 소진되고, 야곱이 다시 양식을 사 오라 명합니다.
- 3~10절 — 유다가 베냐민 없이는 갈 수 없음을 알리고, 스스로 보증인이 되어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 11~14절 — 야곱이 결단하여 예물과 갑절의 돈과 베냐민을 함께 보내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 15~17절 — 형제들이 요셉 앞에 서고, 요셉이 그들을 집으로 맞아 잔치를 준비하게 합니다.
- 18~24절 — 형제들이 자루 속 돈 때문에 두려워하다가 청지기의 위로로 안심하고 시므온을 되찾습니다.
- 25~30절 — 형제들이 절하며 아버지의 안부를 아뢰고, 요셉이 베냐민을 보고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삼킵니다.
- 31~34절 — 나이순으로 앉은 형제들이 요셉과 함께 먹으며, 베냐민에게 다섯 배의 몫이 돌아갑니다.
단락별 해설
1~2절 — 그치지 않는 기근
"그 땅에 기근이 심했습니다." (창세기 43장 1절)
기근이 물러가지 않고 처음 사 온 곡식마저 다 떨어졌습니다(2절). 양식은 썩어 없어지는 것이므로, 선한 가장 야곱은 다시 마련하는 일에 힘을 씁니다.[헨리] "양식을 조금 사 오너라"는 말은 결핍의 때에 작은 것으로 만족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헨리] 야곱이 이집트로 다시 사람을 보내기로 한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으나, 가족의 생계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가 다른 모든 고려를 압도했습니다.[JFB·풀핏] 옛 주석가 가운데는 야곱이 그 적은 곡식으로 많은 가솔을 어떻게 먹였는가를 물으며, 종들은 도토리와 풀과 뿌리로 연명했으리라 추정하되 그것이 불확실한 추측임을 스스로 인정한 이도 있습니다.[칼빈] 이 기근은 하나님이 돌보시겠다 약속하신 족장에게 임한 혹독한 시험이었습니다.[칼빈] 믿음의 사람도 약속과 현실이 어긋나 보이는 시련의 자리를 지날 수 있으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3~10절 — 유다의 설득과 보증
"제가 그를 위해 보증이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손에서 그를 찾으십시오. 만일 제가 그를 아버지께 데려와 아버지 앞에 세우지 못하면, 제가 영원히 그 허물을 짊어지겠습니다." (창세기 43장 9절)
유다가 겸손하고 온유하게 아버지를 설득합니다(3절). 자녀가 부모에게 조언하는 것은 공경과 효도에 어긋나지 않습니다.[헨리] 요셉이 "너희 동생이 함께 오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고 엄히 경고한 것은, 우리가 믿음의 팔로 그리스도를 안고 나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얼굴을 편안히 뵐 수 없음을 빗댄 것으로도 읽혀 왔습니다.[헨리] 유다가 베냐민의 안전을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보증을 서는 것은, 앞서 요셉에게 저지른 일에 대한 양심의 가책(창 42:21)을 조금이나마 갚으려는 태도이며, 그의 회개가 진실하다는 증거입니다.[헨리] 이 서약은 앞서 르우벤이 내놓았던 말(창 42:37)보다 한층 더 강조적입니다.[풀핏] 모세가 야곱과 아들들이 나눈 긴 논쟁을 기록한 것은, 야곱이 베냐민을 얼마나 힘겹게 내주었는지 알게 하려는 뜻이라 볼 수 있습니다.[칼빈] 가정을 지키는 자리에는 이렇게 책임을 대신 짊어지려는 사랑과, 지난 잘못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회개가 함께 필요합니다.
11~14절 — 야곱의 결단과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그가 너희의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너희에게 돌려보내 주시기를 바란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된다면, 잃는 것이지." (창세기 43장 14절)
야곱은 아랫사람의 권유라도 이치에 맞으면 받아들입니다(11절). 상황이 달라졌을 때 결심을 바꾸는 것은 지혜이자 의무이며, 변하지 않음은 오직 하나님의 특권입니다.[헨리] 야곱이 준비하게 한 예물은 향유와 꿀 같은 가나안의 산물로, 이집트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었습니다(11절). 은밀한 선물은 분노를 가라앉히므로(잠 21:14), 억울한 처지에서도 평화를 위해 비용을 아끼지 않는 지혜가 여기 있습니다.[헨리·JFB] 자루 속에서 되돌아온 돈을 다시 가져가게 하며 "어쩌면 착오였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현명한 해석이니, 정직함은 다른 이의 실수로 얻은 것도 돌려주도록 요구합니다.[헨리·JFB] 무엇보다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를" 기도합니다(14절). 사람에게서 긍휼을 구하는 자는 먼저 하나님께 그것을 구해야 합니다.[헨리] "내가 자식을 잃게 된다면, 잃는 것이지"라는 말은, 가장 가혹한 고난 앞에서도 스스로를 화해시키고 최선을 다하는 지혜의 고백입니다(삼하 15:25~26).[헨리] 다만 이 구절의 원문에는 "자식을"이라는 말이 없이 단순히 "내가 잃으면 잃으리라"이며, 이는 에스더 4장 16절의 "죽으면 죽으리이다"와 유사하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 표현일 수 있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칼빈] 믿음의 사람은 모든 수단을 다하면서도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이 두 자세를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15~17절 — 요셉 앞에 서다
"그 사람들은 그 예물을 가지고, 손에 돈을 두 배로 가지고, 베냐민도 데리고 일어나 이집트로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섰습니다." (창세기 43장 15절)
형제들이 마침내 베냐민과 함께 요셉 앞에 섭니다(15절). 요셉은 베냐민을 보고 크게 반가웠으나, 업무 시간에는 그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16절). 아무리 가까운 사람을 위해서라도 자기 본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헨리] 요셉은 청지기에게 형제들을 집으로 데려오고 짐승을 잡아 준비하라 명합니다(16절). 부유한 이집트인의 집에서는 상급의 남자 종 한 사람이 집안 살림 전체를 위임받아 관리했으며, "짐승을 잡아 준비하라"는 말은 큰 잔치가 벌어질 것을 암시합니다.[JFB] 뜻밖의 환대가 시작되지만, 형제들은 아직 그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18~24절 — 두려움과 뜻밖의 위로
"그가 말했습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기를 바란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너희 자루에 보물을 주신 것이다. 나는 너희 돈을 이미 받았다." 그러고는 시므온을 그들에게 데리고 나왔습니다." (창세기 43장 23절)
형제들은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자 도리어 두려워합니다(18절). 죄지은 자는 겁이 많아 모든 것을 최악으로 헤아리기 마련입니다.[헨리]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루 속 돈을 스스로 내놓으며 자신들의 정직함을 입증합니다(21~22절). 이 두려움의 근본 원인은 결국 지난날의 죄책감입니다.[공통] 청지기는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너희 자루에 보물을 주신 것이다"라고 답합니다(23절). 속여서 얻은 것을 두고는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할 수 없으니, 경건한 가정에서 섬기는 이들도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헨리] 그가 건넨 인사말 "평안"은 단지 다툼 없음만이 아니라 번영과 기쁜 일까지 포함하는 말이며, 이 청지기는 요셉을 통해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리라 짐작됩니다.[칼빈] "너희 하나님 곧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그가 히브리인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도록 가르침 받았음을 드러냅니다.[풀핏]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리에는 이렇게 뜻밖의 위로와 회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25~30절 — 베냐민과의 재회
"요셉은 동생을 보고 마음이 북받쳐 올라 급히 울 곳을 찾았습니다.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거기서 울었습니다." (창세기 43장 30절)
형제들이 예물을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26절). 이로써 요셉이 오래전 꾸었던 꿈이 점점 이루어져 갑니다(창 37:10의 성취).[헨리] 요셉이 "너희 아버지는 평안하시냐, 아직 살아 계시냐"고 물은 것은 마땅한 일이니, 우리는 날마다 죽음을 향해 가므로 노인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은혜입니다.[헨리]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보고 "하나님께서 네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란다"고 먼저 기도합니다(29절). 이는 통치자의 은총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도록 이끄는 축복입니다.[헨리] 그러고는 마음이 북받쳐 울 곳을 찾아 방으로 들어가 웁니다(30절). 따뜻한 마음과 애정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위대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도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은혜로운 눈물은 은밀해야 합니다(렘 13:17; 마 26:75).[헨리] 요셉이 이렇게 감정에 압도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첫 번째는 형제들이 자신에게 저지른 잔인한 행위를 이야기할 때였습니다(창 42:24).[풀핏] 사랑은 이렇게 스스로를 다스리면서도 감출 수 없이 넘칩니다.
31~34절 — 함께한 식사
"그는 자기 앞에서 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보냈는데, 베냐민의 몫은 다른 누구의 몫보다 다섯 배나 많았습니다. 그들은 그와 함께 마시며 즐거워했습니다." (창세기 43장 34절)
상은 셋으로 따로 차려집니다. 요셉에게 따로, 형제들에게 따로, 이집트 사람들에게 따로였습니다(32절). 이집트인이 히브리인과 겸상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종교와 관습이 그것을 부정하게 여겨 꺼렸기 때문입니다.[공통] 요셉은 그런 별난 관습까지 배려하는 너그러움을 보이며, 이 장면은 언약 백성과 이방 사람이 일찍부터 갈라져 있었음을 드러냅니다.[헨리] 형제들이 나이 순서대로 앉아 서로 놀라워한 것을 보면(33절), 이 좌석 배치는 그들 스스로의 관례가 아니라 요셉이 미리 정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헨리] 베냐민에게 돌아간 다섯 배의 몫은 요셉의 특별한 총애를 나타내는 표시입니다.[공통] 권세 있는 자 앞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는 식욕을 절제하고 진귀한 것을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잠 23:1~3).[헨리] 형제들이 "마음껏 마셨다"는 것은 절제 없는 방종이 아니라, 뜻밖의 친절과 시므온의 회복과 베냐민을 향한 관심 속에서 두려움과 근심이 사라져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졌다는 뜻입니다.[칼빈·풀핏] 오랜 불안이 걷힌 자리에 비로소 참된 기쁨이 찾아옵니다.
연결된 말씀
- 창세기 37장 — 형제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이 장의 장면을, 주석은 오래전 요셉이 꾼 꿈(창 37:10)의 성취가 시작되는 자리로 읽습니다.
- 창세기 42장 — 첫 번째 이집트 방문과 시므온 억류·자루 속 돈의 사연이 이 장의 배경이며, 형제들의 두려움이 그때의 죄책(창 42:21·42:24)에서 비롯됨을 주석이 짚습니다.
- 잠언 21장 — 은밀한 선물이 분노를 가라앉힌다는 말씀(잠 21:14)으로, 야곱이 예물을 준비한 지혜를 설명합니다.
- 에스더 4장 — "내가 잃으면 잃으리라"는 야곱의 말을, 주석은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와 나란히 두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고백으로 풀이합니다.
마무리
창세기 43장의 중심에는 사람의 회개와 정직 위에서 조용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놓여 있습니다.[풀핏] 유다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동생을 위해 보증을 서고, 야곱은 모든 수단을 다한 뒤에 결과를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며, 요셉은 넘치는 사랑을 다스리면서도 형제들을 환대합니다. 이 모든 만남과 식사의 배후에서, 하나님은 흩어졌던 한 가족을 다시 모으시는 큰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억울하고 두려운 자리에서도 정직을 지키고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하되 그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뜻밖의 위로와 회복을 예비하시는 그분의 섭리를 신뢰해야 합니다. 오랜 근심이 걷힌 형제들의 식탁이 보여 주듯,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백성에게는 마침내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임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