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4장 — 언약 백성 가운데 벌어진 수치와 피의 복수
요약
창세기 34장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세겜 성읍 근처에 머무는 동안 그의 집안에 닥친 어두운 사건을 기록합니다. 앞선 33장에서 야곱은 형 에서와 화해하고 세겜 땅을 사서 정착하였는데, 그 낯선 도성과의 접촉이 이 장의 비극을 불러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야곱의 자녀들로 인한 고난 이야기가 시작되며, 이는 이 세상의 가장 소중한 것이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음과, 은혜가 혈통을 따라 저절로 흐르지 않음을 함께 보여 줍니다. 장의 내용은 네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디나가 세겜에게 욕을 당함(1~5절), 하몰과 세겜의 청혼과 야곱 아들들의 속임수 응답(6~17절), 세겜 사람들의 할례(18~24절),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의 학살과 형제들의 약탈(25~29절)이며, 야곱의 책망과 아들들의 항변(30~31절)으로 닫힙니다.
장의 흐름
- 1~5절 — 디나의 수치. 그 땅 여자들을 보려고 나간 디나, 세겜의 폭행과 뒤이은 구애, 야곱의 침묵.
- 6~17절 — 혼인 협상. 하몰과 세겜의 솔직한 청혼과, 할례를 조건으로 내건 야곱 아들들의 속임수 응답.
- 18~24절 — 세겜 사람들의 할례. 하몰과 세겜의 설득, 성문에서의 공개 동의, 모든 남자의 할례 시행.
- 25~29절 — 학살과 약탈. 셋째 날 시므온과 레위의 기습 살육, 형제들의 성읍 노략과 포로.
- 30~31절 — 야곱의 책망과 아들들의 항변. "나를 가증한 자가 되게 하였다"와 "누이를 창녀처럼 대해도 되느냐"의 맞섬.
단락별 해설
1~5절 — 디나의 수치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여자들을 보려고 나갔다. (창세기 34장 1절)
그 땅의 추장인 히위 사람 하몰의 아들 세겜이 그녀를 보고, 그녀를 데려다가 함께 누워 욕보였다. (창세기 34장 2절)
가장 소중히 여긴 자녀가 도리어 가장 큰 슬픔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헨리] 레아가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여자들을 보려고 나갔고(1절), 그 땅 추장의 아들 세겜이 그녀를 욕보였습니다(2절). 주석들은 디나가 나간 일을 무해한 나들이로 읽지 않습니다. 헛된 호기심이자 경솔함으로 보며, 어머니의 눈 아래 장막 안에 있었어야 할 처녀가 밖으로 향한 데에도 사건의 한 원인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공통] 그러나 폭력으로 욕을 당한 디나조차 오염되었다고 말해진다면, 자발적으로 죄에 뛰어드는 이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무겁게 말해야 하는지를 이 본문은 생각하게 합니다.[칼빈] 세겜의 폭행은 명백한 죄이나, 그가 그녀를 창녀처럼 멸시하여 버리지 않고 마음이 깊이 끌려 사랑하며 정식 혼인으로 배상하려 한 점은 다소 경감 요소로 언급됩니다(3절).[공통] 이 점에서 그는 욕보인 뒤 도리어 미워한 암논과 다르게 행하였습니다.[헨리] 야곱이 아들들이 돌아올 때까지 잠잠히 있은 것을(5절) 두고는 슬픔 때문이었다는 견해, 신중함 때문이었다는 견해, 어떻게 처신할지 몰라 당혹스러웠다는 견해, 동복 형제들에게도 발언권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라는 견해가 함께 제시됩니다.[풀핏] 집 밖으로 향한 작은 호기심이 큰 올무가 될 수 있으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기 자리를 지키는 절제를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헨리]
6~17절 — 혼인 협상과 속임수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이 자기 누이 디나를 더럽혔으므로, 세겜과 그 아버지 하몰에게 속임수로 대답하여 말하였다. (창세기 34장 13절)
종교가 가면이 될 때 위선과 기만은 한층 더 죄악스러워집니다.[JFB] 하몰은 두 가족의 연합을 위해 혼인을 솔직하게 제안하였고(8~10절), 세겜은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다 드리겠다며 그 처녀만은 아내로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11~12절).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누이가 더럽혀진 일로 마음이 상하여, 속임수로 할례를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13~17절). 하몰과 세겜의 제안이 처음에는 솔직해 보여 우리의 감정도 그들 편으로 기울게 되는데, 부끄럽게도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헨리·JFB] 할례받지 않은 자에게 언약의 표를 지닌 누이를 줄 수 없다는 명분 자체는 정당하였으나, 그 진짜 의도는 세겜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학살하려는 배신적 계략이었습니다.[공통] 이것은 생명의 영적 표징을 그것이 나타내는 진리에서 악하게 떼어 내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거짓 핑계로 사용한 이중의 신성모독이었습니다.[칼빈] 결정권이 야곱에게 있었으나 그가 아들들의 격렬한 충동에 지나치게 양보한 것도 큰 나약함이었습니다.[JFB] 거룩한 명분이 악한 의도를 덮는 도구로 쓰이지 않도록, 우리는 언제나 행위에 앞서 그 동기를 살펴야 합니다.[헨리]
18~24절 — 세겜 사람들의 할례
성문으로 드나드는 모든 사람이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들었고, 성문으로 드나드는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았다. (창세기 34장 24절)
이익의 소망 때문에 종교를 쉽게 바꾸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경멸을 드러냅니다.[칼빈] 하몰과 세겜은 성문에 이르러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였는데(20~22절), 그 설득의 핵심에는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모든 짐승이 우리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탐욕이 놓여 있었습니다(23절). 그리하여 성문으로 드나드는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았습니다(24절). 세겜 사람들이 이 표를 받으려 한 동기는 재물이 자기들 것이 되리라는 계산이었으니, 탐욕이 경건의 모양을 입고 세속적 이익에 지배되는 경우였습니다.[헨리] 명예로운 명분보다 유익함이 대중을 움직이는 힘이 훨씬 크며, 하몰과 세겜도 공익을 원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사적 이익을 좇았습니다.[칼빈] 백성이 그토록 쉽게 복종한 데에는 지배 가문에 대한 애정이나, 족장의 뜻이 절대적 명령이 되는 동방의 관습도 작용하였을 것입니다.[JFB] 세겜이 이 일을 지체하지 않고 행한 것은 야곱의 딸을 기뻐하였고 그가 아버지 집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19절).[풀핏] 세속적 이익이 신앙의 동기가 될 때 그 신앙은 사람을 지키지 못하므로, 믿음의 사람은 이익이 아니라 진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헨리]
25~29절 — 학살과 약탈
사흘째 되는 날, 그들이 아직 아파하고 있을 때에 야곱의 두 아들, 곧 디나의 오라버니인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들고 방심하고 있던 성읍을 기습하여 모든 남자를 죽였다. (창세기 34장 25절)
한 사람의 사적인 잘못을 빌미로 온 성읍을 살육한 것은 세겜의 죄보다 훨씬 더 크고 잔인한 죄입니다.[공통]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를 받은 지 사흘째, 상처의 염증과 통증이 가장 심하여 위기의 날로 여겨지던 때를 노려 방심한 성읍을 기습하였습니다(25절).[풀핏] 그들은 하몰과 세겜을 칼날로 죽이고 디나를 데리고 나왔으며(26절), 형제들은 시체가 있는 곳에 이르러 성읍을 약탈하고 어린아이와 아내들까지 사로잡았습니다(27~29절). 이 잔혹함을 가중시킨 것은 극도의 배신적 책략이었으니, 방금 맹세로 벗이 되고 한 백성이 되기로 한 자들을 원수처럼 친 것입니다.[헨리] 누가 그들을 온 백성의 재판관으로 세웠는가를 물어야 하며, 살인자에서 강도로 나아간 그들의 행로는 한 가지 악에 자신을 풀어놓은 자가 곧 다른 악으로 터져 나옴을 보여 줍니다.[칼빈] 다만 세겜 사람들이 목적을 위하여 거룩한 의식에 복종하였으므로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 처벌에 정의가 있었다고 읽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합의된 판단은 아닙니다), 이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틀로 보지 않고 순전히 잔인하고 배신적인 학살로만 평가하는 견해도 있습니다.[헨리·칼빈] 이 학살에 야곱의 모든 아들이 가담한 것은 아니어서, 요셉은 아직 어렸고 베냐민은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시므온과 레위만이 이 피의 비극의 주역이었습니다.[JFB] 옳은 분노라도 절제되지 않으면 더 큰 죄로 번지므로, 우리는 분노를 다스리는 특별한 경계를 지녀야 합니다.[JFB]
30~31절 — 야곱의 책망과 아들들의 항변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나를 괴롭게 하여,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에게 나를 가증한 자가 되게 하였구나. 나는 수가 적은데, 그들이 함께 모여 나를 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할 것이다." (창세기 34장 30절)
그들이 말하였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처럼 대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창세기 34장 31절)
악한 자녀의 비행은 경건한 부모에게 슬픔이자 수치가 됩니다.[헨리] 야곱은 아들들이 그에게 안겨 준 치욕과, 수가 적어 멸망할지 모른다는 위험을 한탄하였습니다(30절). 그가 죄의 본질이 아니라 눈앞의 결과만을 말한 까닭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나란히 제시되는데, 육적인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동기여서라는 설명, 자신의 기만적 행위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는 설명, 영적 기상이 저하된 탓이라는 설명 등이 함께 놓입니다.[풀핏] 냉담하고 양심이 굳어진 아들들을 일깨울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이 그것뿐이었고, 사람은 처벌의 두려움에 의해서가 아니고는 좀처럼 회개로 이끌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되기도 합니다.[칼빈·JFB] 이에 대한 아들들의 대답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은근히 아버지를 비난한 것으로, 절제되지 않은 분노가 사람의 감각마저 빼앗았음을 드러냅니다(31절).[헨리·칼빈] 야곱은 이 잔인한 악행을 끝내 변명하지 못하였고, 훗날 임종의 예언에서 이 행위를 단죄하였습니다.[공통] 정당한 억울함조차 복수의 근거가 될 수 없으므로, 성도는 원한을 스스로 갚지 말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겨야 마땅합니다.[JFB]
연결된 말씀
- 창세기 49장 — 야곱이 임종의 예언에서 시므온과 레위의 분노와 잔인함을 결국 단죄하는 본문으로, 주석 전체가 이 장의 결말로 함께 인용합니다.
- 창세기 35장 — 하나님의 억제하시는 힘이 아니었다면 야곱의 집이 주변 성읍의 복수로 멸망하였을 것임을 보여 주는 말씀으로 지시됩니다(30절).
- 창세기 30장 — 디나가 레아의 소생이며 시므온과 레위가 그 동복 형제임을 밝혀, 이 두 사람이 사건의 주역으로 나선 배경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 사무엘하 13장 — 욕보인 뒤 도리어 미워한 암논과 대비하여, 세겜이 디나를 계속 사랑한 점(3절)을 읽을 때 나란히 인용되는 본문입니다.
- 디도서 2장 — "정숙하며 집을 지키기를"이라는 권면으로, 디나가 자기 자리를 벗어나 나간 일(1절)의 교훈을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 에베소서 4장 —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으로, 옳은 분노조차 복수로 번져서는 안 됨(25절)을 경계하는 근거로 지시됩니다.
마무리
창세기 34장은 언약 백성 가운데서 벌어진 정욕과 기만과 잔혹한 복수의 기록이며, 은혜의 언약이 사람의 공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 위에 서 있음을 어두운 배경으로 증언합니다.[칼빈] 이 장의 어느 인물에게서도 의를 찾을 수 없으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억제하시는 손이 야곱의 집을 지키지 않으셨다면 이 가문은 이미 멸망하였을 것입니다.[JFB] 그러므로 성도는 거룩한 명분으로 악한 의도를 덮으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하며, 정당한 억울함을 만나더라도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복수하기를 삼가고 그 억울함을 정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마땅합니다.[헨리·JFB]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