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 경배하러 온 이방인과 피신하시는 아기 왕
요약
마태복음은 유대인 독자를 향해 예수께서 구약이 약속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는 책입니다. 1장이 족보와 성령 잉태로 메시아의 자격과 신적 기원을 세웠다면, 2장은 탄생 직후의 사건들을 네 가지 예언의 성취로 엮어 그 논증을 이어 갑니다. 베들레헴에서 나신 일, 이집트에 머무신 일, 유아들이 학살당한 일, 나사렛에 사신 일이 각각 선지자의 말씀과 맞물립니다. 동시에 이 장은 하나의 대조를 그립니다. 먼 동방의 이방 학자들은 별 하나를 보고 찾아와 경배하는데, 성경을 손에 든 예루살렘은 동요만 할 뿐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방인에게 받아들여지고 자기 백성에게 거부당하실 그리스도의 생애가 이 한 장에 미리 그려져 있는 셈입니다.
장의 흐름
- 1~8절 —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와서 새 왕을 찾고, 불안해진 헤롯이 미가의 예언으로 베들레헴을 확인한 뒤 살해 음모를 감춘 채 그들을 보냅니다.
- 9~12절 — 별의 인도로 아기를 찾은 박사들이 엎드려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린 뒤, 꿈의 경고를 받아 다른 길로 돌아갑니다.
- 13~15절 — 천사의 지시로 요셉이 밤에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합니다.
- 16~18절 — 속은 것을 안 헤롯이 베들레헴과 주변의 두 살 이하 사내아이들을 학살하고, 라마의 통곡이 성취됩니다.
- 19~23절 — 헤롯이 죽은 뒤 가족이 돌아오되, 아켈라오를 피해 갈릴리 나사렛에 정착합니다.
단락별 해설
1~8절 — 별을 따라온 학자들과 흔들리는 왕좌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복음 2장 2절)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유대 목자들에게는 천사를 보내셨고, 하늘을 연구하던 이방 학자들에게는 별을 주셨습니다(1~2절). 박사, 곧 마고이는 페르시아와 갈대아 등 동방에서 점성술과 학문에 종사하던 제사장 계급을 부르던 이름입니다. 그들의 출신지는 아라비아,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등으로 거론될 뿐 분명하지 않으며, 수가 셋이고 신분이 왕이었다는 후대의 전승은 옛 주석가들이 근거 없는 이야기로 물리쳤습니다. 기록된 것 이상의 지혜를 탐내지 않는 것이 성경을 읽는 바른 자세입니다.[헨리·칼빈] 당시 로마 역사가들도 동방에서 세계를 다스릴 자가 나오리라는 기대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별의 정체를 두고는 견해가 갈립니다. 발광하는 유성으로 보는 주석가도 있고, 하늘이 아니라 공중에 낮게 있던 혜성 같은 것으로 설명하는 주석가도 있으며, 순전한 기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 현상으로 다 풀리지 않는 특별한 인도였다는 데에는 일치하며, 별만으로는 그리스도께 이를 수 없고 성령의 특별한 계시가 함께했다고 보았습니다.[공통] 주목할 것은 질문의 내용입니다. 박사들은 태어나셨는지가 아니라 "어디 계십니까"를 물었습니다(2절). 그리스도를 조금 아는 사람은 그분을 더 알기를 갈망합니다.
헤롯은 에돔 사람으로 로마가 유대의 왕으로 세운 자였습니다(1절). 이방인이 유다의 왕좌에 앉았다는 사실 자체가, 홀이 유다를 떠날 때 오시기로 약속된 이가 이제 오실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창 49:10).[헨리·JFB] 새 왕의 소식에 헤롯은 왕위를 빼앗길까 불안해했고, 예루살렘은 그로 인한 소요를 두려워하며 함께 동요했습니다(3절). 악하고 육적인 마음에는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두려운 소식이 없습니다. 오랜 고난에 무뎌진 백성이 약속된 구원을 도리어 무겁게 여기는 배은망덕이라고 탄식한 주석가도 있습니다.[칼빈] 헤롯이 모아 놓고 물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성경에서 정직하게 답을 냈습니다(4~6절). 선지자가 기록한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진리가 자기 야망과 충돌하기 전에는 악인도 일반 원칙에 동의합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이니, 하늘에서 내려온 참 만나가 태어나시기에 합당한 곳입니다. 인용문이 선지자의 원문 "너는 작을지라도"를 "결코 가장 작지 않다"로 되울린 것은(6절), 보잘것없는 마을을 가장 큰 왕의 탄생지로 삼으신 은혜를 높인 표현입니다. 이방인은 별로 탄생의 때를 알았고 유대인은 성경으로 탄생의 곳을 알았으니, 아는 것을 서로 나눌 때 지식이 크게 자랍니다. 그러나 헤롯은 박사들을 은밀히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캐묻고, 자신도 가서 경배하겠다는 말로 살기를 감추었습니다(7~8절). 가장 큰 악이 종종 경건의 가면 뒤에 숨습니다. 지략가 헤롯이 밀정 하나 딸려 보낼 생각조차 못 한 것은 하나님이 원수를 혼미하게 하신 일이었습니다.[헨리·칼빈] 성도는 경배의 말과 경배의 실제를 분별해야 합니다.
9~12절 — 엎드린 경배와 세 가지 예물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 아기와 그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자기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그에게 드렸다." (마태복음 2장 11절)
의무의 길을 끝까지 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보이지 않던 별이 길을 떠난 박사들 앞에 다시 나타나, 아기가 있는 곳 위에 멈추어 섰습니다(9절). 성경이라는 일반 수단이 답을 주는 곳에서는 특별한 표적을 기대할 것이 아니지만, 의무의 길에 들어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십니다.[헨리] 별을 다시 본 그들은 매우 크게 기뻐했습니다(10절). 그런데 베들레헴이라고 성경으로 정확히 답했던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옛 주석가들은 이것을 게으름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폭군의 노여움보다 가볍게 여긴 배은망덕이라고 입을 모아 지적했습니다.[공통] 가까이서 알던 자들은 머물렀고, 멀리서 어렴풋이 안 자들이 찾아와 만났습니다.
박사들이 만난 광경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궁궐이 아니라 평범한 집이었고(11절), 가난한 어머니가 수행원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낮은 베일 너머에 계신 영광을 분별하고 엎드렸습니다. 이 절에는 세 단계가 이어집니다. 보고, 엎드려 경배하고, 보물을 드립니다. 먼저 자신을 드리고 그다음에 예물을 드린 순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본문이 아기와 그 어머니만 언급할 뿐 마리아를 경배의 대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도 옛 주석가들이 짚었습니다.[JFB·풀핏] 예물의 뜻을 두고는 견해가 갈립니다. 황금은 왕께 드리는 공물, 유향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 몰약은 죽으실 인간을 위한 향품으로 읽어 왕이시요 하나님이시요 죽으실 분이라는 고백으로 보는 주석가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상징 풀이에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보고 동방에서 왕을 알현할 때 자기 땅의 특산물을 바치던 관습으로 설명하는 주석가도 있습니다.[헨리·풀핏·칼빈] 어느 쪽을 따르든 요점은 같습니다. 우리의 의무는 그분을 영적으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박사들은 꿈에 경고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습니다(12절).
13~15절 — 이집트로 피신하시는 왕
"그들이 떠난 뒤에, 보라,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하여, 내가 너에게 이를 때까지 거기 머물러 있어라.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할 것이다."" (마태복음 2장 13절)
하나님은 원하시면 가장 나쁜 곳도 가장 좋은 목적에 쓰십니다.[헨리] 옛 종살이의 집 이집트가 하나님의 아들의 피신처로 지명되었습니다(13절). 거기에는 실제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에서 가깝고, 유대인이 많이 살았으며, 헤롯의 관할 밖이었습니다. 박사들이 드린 황금은 이 피신의 여비가 되었으니, 예물까지 미리 준비하신 섭리를 보게 됩니다. "내가 너에게 이를 때까지"라는 말씀은 유배의 시간에도 하나님이 보호자가 되신다는 보증이었습니다(13절). 요셉의 순종은 그 밤으로 즉각적이었습니다(14절). 순종을 확실하게 하려면 빠르게 해야 합니다. 갓 나신 왕이 도망자가 되신 이 장면은 십자가의 어리석음의 일부이지만, 세상의 모든 지혜를 능가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표시를 주시면서도 그것을 연약함의 모습 아래 감추는 절제를 지키셨습니다. 마태는 이 일에서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의 성취를 봅니다(15절). 이 말씀은 본래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가리키지만, 옛 주석가들은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고 일치하여 읽었습니다.[공통] 이스라엘이 겪은 일을 메시아가 다시 밟으시며,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집트에서 나옵니다. 택함받은 모든 사람이 영적 이집트에서 불려 나온다는 적용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성도는 가장 어두운 장소와 시간까지 선한 목적에 쓰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16~18절 — 라마의 통곡과 꺾이지 않는 섭리
"그때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정확히 알아낸 때를 따라, 베들레헴과 그 모든 주변 지역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다." (마태복음 2장 16절)
폭군의 분노는 하나님의 계획을 한 치도 바꾸지 못합니다. 헤롯은 자신이 단지 속은 것이 아니라 조롱당했다고 여겨 몹시 노하였고, 베들레헴과 그 주변의 두 살 이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16절).[풀핏] 박사들이 온 시점을 두고는 계산이 갈립니다. 탄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왔다고 보는 주석가도 있고, 방문은 탄생 직후였으며 두 살이라는 기준은 오래 품어 온 분노를 넉넉하게 터뜨린 것이라고 논증하는 주석가도 있습니다. 학살의 규모에 대해서는, 베들레헴이 작은 마을이었으므로 희생자를 스무 명 이하로 추산하는 이들이 있으며, 만 명이 넘게 죽었다는 후대의 전승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배척되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가 이 일을 기록하지 않은 이유를 두고도, 마을이 작아 사건이 묻혔다고 보는 쪽과 의도적인 누락의 가능성을 말하는 쪽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아기 예수 대신 죽음으로써 그분을 보호했고, 자신들을 위해 피 흘리실 분을 위해 먼저 피 흘린 순교자가 되었다고 옛 주석가들은 읽었습니다.[헨리·풀핏] 섭리의 또 다른 결과도 지적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베들레헴에서 난 아이들 가운데 예수만 살아남으셨다면, 그분 외에는 아무도 그 예언의 아기로 자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마태는 이 참극에서 라마의 통곡을 듣습니다(17~18절). 민족의 어머니 라헬이 무덤에서 자식들을 위해 우는 이 그림은 인격화의 수사이지만, 그 울음이 놓인 예레미야 31장 전체는 위로로 가득합니다. 재앙은 곧 다가올 구원의 전주곡이었습니다. 위로받기를 거절한 라헬처럼, 잃은 자녀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먼저 간 것임을 잊으면 위로의 가장 좋은 근거를 잃습니다. 성도는 통곡의 자리에서도 이 근거를 놓지 않아야 합니다.
19~23절 —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실 것이다
"그리고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가서 살았다. 이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 한 것을 이루려 하심이었다." (마태복음 2장 23절)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십자가의 훈련 아래 사셨습니다. 그분의 위험은 우리의 안전이 되었고 그분의 두려움은 우리의 확신이 되었다고 옛 주석가는 고백했습니다.[칼빈] 헤롯이 죽자 천사가 다시 나타나 돌아가라고 명했습니다(19~20절).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라는 명령은 정착할 곳을 밝히지 않았으니, 요셉은 갈 곳을 다 알지 못한 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출발했습니다(21절). 그러나 유대에는 아버지의 잔인함을 이어받은 아켈라오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22절). 그는 즉위하면서부터 학살을 저질렀고, 끝내 그 잔인함 때문에 폐위되어 유배된 자입니다. 요셉은 꿈의 경고를 따라 더 안전한 갈릴리로 물러가 나사렛에 정착했습니다(22~23절). 마태는 여기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의 성취를 봅니다. 이 말은 어느 한 구절의 인용이 아니라 여러 선지자들이 그린 예언의 정신 전체를 가리킨다고 옛 주석가들은 설명합니다. 나사렛이라는 이름은 이사야가 말한 이새의 줄기에서 나올 '가지'(히브리어 네체르)와 이어지고(사 11:1), 동시에 멸시받던 무명 동네의 이름이었으므로 멸시받고 버림받으실 종의 모습과도 이어집니다(사 53:2~3).[공통]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되어 드려진 나실인의 예표로 읽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늘의 별이 증언한 왕이 경멸당하는 이름을 지니고 자라나셨습니다. 성도는 낮은 이름과 낮은 자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연결된 말씀
- 미가 5장 —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나리라는 예언으로, 5~6절이 이를 인용합니다.
- 창세기 49장 — 홀이 유다를 떠날 때 오실 이에 대한 예언으로, 이방인 헤롯의 즉위(1절)가 그 때가 찼다는 신호로 읽혔습니다.
- 호세아 11장 —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으로, 15절이 그 성취를 선언합니다.
- 예레미야 31장 — 라마에서 우는 라헬의 통곡으로, 17~18절이 인용하며 그 장 전체는 위로의 약속입니다.
- 이사야 11장 — 이새의 줄기에서 나올 가지(네체르)의 예언으로, 23절 "나사렛 사람"의 어근이 여기에 닿습니다.
- 이사야 53장 — 멸시받고 버림받으실 종의 노래로, 나사렛 사람이라는 경멸의 이름이 이 예언과 연결됩니다.
- 에스겔 34장 — 목자이신 왕의 그림으로, 6절 "내 백성 이스라엘을 목자처럼 이끌 것이다"의 배경입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2장의 중심은 예언을 이루시며 아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별과 꿈과 성경 말씀이 함께 일했고, 폭군의 칼은 그 계획을 한 치도 넘지 못했습니다. 성도는 여기서 두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 답을 알고도 머문 예루살렘이 아니라 어렴풋이 알고도 찾아온 박사들이 경배에 이르렀으므로, 성도는 아는 데 머물지 않고 찾아가 엎드리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왕은 태어나자마자 도망자가 되셨고 멸시의 이름을 지니셨으므로, 우리는 낮아짐의 길이 섭리의 실패가 아니라 구원의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경배와 순종, 이 둘이 이 장이 성도에게 요구하는 합당한 반응입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