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 말씀하신 대로 정한 때에 이루시는 하나님
요약
창세기 21장은 아브라함 이야기의 오랜 기다림이 마침내 열매를 맺는 장면입니다. 앞선 여러 장에서 거듭 약속되었던 아들이 백 세의 아브라함과 늙은 사라에게서 태어나고, 그 출생을 계기로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이 집을 떠나며, 이어 이방의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화평의 언약을 맺습니다. 옛 주석가들은 이 장에 네 가지가 담겨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약속의 자녀 이삭의 탄생(1~8절),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의 추방(9~21절),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언약(22~32절), 그리고 아브라함의 예배(33절)입니다.[헨리] 네 장면을 하나로 꿰뚫는 주제는 말씀하신 대로 정한 때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장의 흐름
- 1~8절 — 이삭의 출생. 약속의 성취, "웃음"이라는 이름, 여드레 만의 할례, 젖 떼던 날의 큰 잔치.
- 9~13절 — 이스마엘의 조롱과 사라의 추방 요구, 그리고 이를 승인하시는 하나님의 응답.
- 14~21절 — 하갈과 이스마엘의 추방, 광야의 위기, 하나님의 구원과 이스마엘의 성장.
- 22~32절 — 아비멜렉과 비골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언약을 맺음. 우물 분쟁과 브엘세바.
- 33~34절 —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블레셋 땅에 거류함.
단락별 해설
1~8절 — 약속대로 태어난 이삭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사라에게 이루어 주셨다." (창세기 21장 1절)
하나님의 섭리는 그분의 말씀과 나란히 놓고 볼 때 가장 빛납니다.[헨리] 1절에 "말씀하신 대로"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데에는 큰 강조가 담겨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냅니다. 그분은 결코 빈 약속으로 사람을 먹이지 않으십니다.[칼빈]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에게는 낳을 능력을, 사라에게는 잉태할 능력을, 이삭에게는 태어날 능력을 주었으니, 두 절에 걸쳐 세 번 되풀이되는 이 구절은 이삭 탄생의 초자연적 성격을 가리킵니다.[풀핏] 이삭은 자연의 통상적 법칙을 벗어나 태어났고, 그 탄생은 자연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은밀하고 특별한 능력을 드러냅니다.[칼빈] 게다가 이삭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 정한 때"에 태어났습니다(2절). 은혜는 우리가 정한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오며, 바로 그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헨리]
아브라함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3절). 그는 이름을 새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이전에 천사가 주신 이름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인간의 발상이 아무리 풍성해도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의 주권과 단순함 앞에서는 양보해야 합니다.[헨리·칼빈] "웃음"이라는 이 이름에는 여러 의미가 함께 담겨 있으니,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을 때의 기쁨의 웃음과 사라의 불신의 웃음, 곧이어 이스마엘에게 조롱받을 것에 대한 예고, 그리고 모든 시대 성도들의 기쁨의 웃음입니다.[헨리]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여드레 만에 아들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4절).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는 데 정한 때를 지키셨으므로, 아브라함도 명령에 순종하는 데 그 시간을 지켰습니다.[헨리] 이렇게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규범으로 삼고 허락된 것 이상으로 지혜롭게 되려 하지 않는 자세는 언약의 표와 관련해 특별히 요구됩니다.[칼빈]
아이가 태어나자 사라는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웃게 하셨으니, 이 소식을 듣는 사람마다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창세기 21장 6절) 오래 미루어진 은혜는 마침내 임할 때 더욱 환영받으며, 사라의 이 노래는 훗날 마리아의 찬가와 나란히 읽힙니다.[헨리·풀핏] 사라는 늙은 나이에 직접 아들에게 젖을 먹였습니다(7절). 어머니가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아이에게 직접 젖을 먹이는 것이 마땅하며, 그 수고를 편의를 위해 회피하는 것은 자연의 거룩한 유대를 스스로 깨는 일입니다.[헨리·칼빈] 아이가 자라 젖을 떼던 날에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8절). 동방에서는 아이가 젖을 떼는 데 보통 이삼 년이 걸렸고, 그날은 늘 가정의 축제였으며, 이삭은 후계자로 공식 인정을 받았습니다.[JFB·풀핏] 믿음의 사람은 여기서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9~13절 — 이스마엘의 조롱과 사라의 요구
"사라는 이집트 여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아 준 아들이 비웃는 것을 보았다." (창세기 21장 9절)
잔치의 기쁨은 곧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마엘의 웃음은 유아적이고 무해한 장난이 아니라 악의가 담긴 조롱이었으며(9절), 사도 바울은 이를 두고 이삭이 받은 "박해"라고까지 부릅니다.[공통] 하나님은 아이들이 놀며 하는 말과 행동까지 살피시니, 조롱은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헨리] 그래서 사라는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요구합니다(10절). 이 말은 격한 감정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바울은 이를 개인의 무익한 책망이 아니라 하늘의 신탁으로 인용합니다.[헨리·칼빈] 이제 두 사람을 함께 내보내는 것 외에는 가정의 화평을 지킬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JFB]
이 일은 아브라함에게 매우 괴로운 일이었습니다(11절). 자녀를 더 깊이 사랑할수록 그들의 잘못, 특히 형제 사이의 다툼은 더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헨리] 아브라함이 그토록 괴로워한 것은 이스마엘을 자연적 애정으로만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하늘이 정하신 약속의 상속자로 여겨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풀핏]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의 말을 들어주라고 말씀하시며,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불릴 것이라고 확정하십니다(12절). 이스마엘의 추방은 이삭의 언약적 권리와 특권을 세우는 데 필요한 일이었습니다.[헨리]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그 여종의 아들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13절). 그를 내보내는 것이 곧 그의 파멸은 아니니, 민족들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헨리] 이 대목을 갈라디아서의 우의(알레고리)와 어디까지 잇느냐를 두고는 옛 주석가들의 폭이 갈렸습니다. 어떤 이는 아브라함의 집이 교회의 표상이라는 제한된 의미로만 받아들여 성경 전체를 무분별하게 비유로 푸는 태도를 경계했고, 어떤 이는 이스마엘의 축출을 위선자의 최종적 배제로 비교적 적극 적용했습니다.[칼빈·헨리·풀핏]
14~21절 — 광야의 하갈과 살아난 이스마엘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갈을 불러 말하였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 (창세기 21장 17절)
아브라함의 순종은 신속하고 순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는 순간 그는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 조용히 행했습니다(14절).[헨리·JFB] 빵과 물 한 가죽 부대만 들려 보낸 것을 두고는 평가가 갈립니다. 어떤 주석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눈을 막으셨거나 그들이 멀리 가지 못하도록 양식을 제한한 것으로, 다소 엄격하게 읽습니다.[칼빈] 다른 주석은 이스마엘이 이미 열일곱 살의 장성한 소년이었고, 아랍의 관습에서는 아들을 이 나이에 며칠치 식량만 들려 독립시키는 일이 흔했다고 온건하게 설명합니다.[JFB·풀핏] 물이 떨어지자 하갈은 아이의 죽음만을 기다리며 주저앉았습니다(15~16절). 현재의 섭리가 이전의 약속을 반박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그 약속을 쉽게 잊으니, 믿음이 아니라 감각으로 살기 때문입니다.[헨리]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17절). 하나님이 들으신 것은 그들이 믿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마엘에 관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칼빈] 이제 하갈과 이스마엘은 언약의 하나님의 특별한 돌봄에서 벗어나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인도 아래 놓였습니다.[풀핏] 하나님은 하갈의 눈을 밝혀 우물을 보게 하셨습니다(19절). 위로할 이유가 충분히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지 못해 날마다 슬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헨리] 그 샘은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던 것을 하갈의 눈이 열려 보게 된 것입니다.[칼빈·JFB] 이스마엘은 자라서 바란 광야에 정착했습니다(20~21절).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는 이 세상의 광야에 자족하지만, 약속의 자녀들은 하늘의 가나안을 목표로 삼습니다.[헨리] 믿음의 사람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이미 예비해 두신 은혜를 보는 눈을 구해야 합니다.
22~34절 — 아비멜렉과의 언약과 아브라함의 예배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창세기 21장 22절)
이번에는 이방의 왕이 스스로 아브라함을 찾아옵니다. 아비멜렉이 언약을 제안한 동기는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총애였으니, 이는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는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22절).[헨리·JFB·풀핏]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헨리] 아브라함은 맹세를 받아들이면서도,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강제로 빼앗은 일을 온유하게 지적했습니다(25절). 물이 귀한 땅에서 우물은 목축하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재산이었기 때문입니다.[JFB] 그는 잘못을 부드럽게 알리고, 아비멜렉의 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우물의 소유권을 분명히 하여 훗날의 분쟁을 막았습니다. 이것은 정의일 뿐 아니라 지혜였습니다.[헨리] 자신의 수고로 얻은 것을 빼앗겼을 때에도 그는 피해의 심각성이 정당화해 주었을 법한 방식으로 다투지 않았습니다.[칼빈] 아브라함이 암양 새끼 일곱 마리로 우물을 판 증거를 삼은 것은 그 시대에 실재했던 관습이며, 그 일로 그곳은 브엘세바라 불렸습니다(28~31절).[풀핏]
언약을 맺은 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였다."(창세기 21장 33절) 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평온하고 정착된 거처의 표시이니, 이전에 그가 나무 한 그루라도 심었다는 기록은 없었습니다.[칼빈]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태어나고 죽는 이교의 신들과 달리 언약의 신실함을 영원히 보증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풀핏] 아브라함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오랫동안 나그네로 살았다는 마지막 말은 목축하는 삶의 모습이자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신앙의 상징이기도 합니다(34절).[JFB] 성도는 이렇게 다툼을 지혜롭게 그치고, 정착의 자리에서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연결된 말씀
- 갈라디아서 4장 — 이스마엘의 조롱을 "박해"로, 사라의 추방 요구를 성경의 신탁으로 인용하며(9~10절), 하갈과 사라를 두 언약의 표상으로 푸는 근거 본문입니다.
- 히브리서 11장 — 사라가 늙은 나이에 잉태할 힘을 얻은 것을 믿음의 능력으로 증언하여, 이삭 탄생의 초자연성을 밝히는 데 인용됩니다(2절).
- 로마서 9장 —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를 인용하여, 이스마엘의 추방이 이삭의 언약적 권리 확립임을 보여 줍니다(12절).
- 누가복음 1장 — 사라의 기쁨의 노래(6절)를 마리아의 찬가와 나란히 읽는 병행 본문입니다.
- 창세기 17장 — 이삭이라는 이름과 여드레 만의 할례가 앞서 주어진 언약의 명령을 그대로 따른 것임을 밝혀 줍니다(3~4절).
- 창세기 12장 — 아비멜렉이 언약을 청한 일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는 약속의 성취임을 보여 주는 근거입니다(22절).
- 베드로전서 3장 — 사라가 직접 아들에게 젖을 먹인 일을 "선한 아내"의 본으로 되짚는 말씀으로 인용됩니다(7절).
마무리
창세기 21장의 중심은 말씀하신 그대로,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이삭의 탄생은 자연의 법칙을 넘어선 은혜였고, 이스마엘의 추방마저 약속의 자녀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으며, 이방 왕과의 언약과 광야의 구원은 모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은혜가 더디 오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가장 좋은 때임을 신뢰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 다툼과 손해의 자리에서도 온유와 지혜로 화평을 좇고, 정착의 자리에서 먼저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