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6장 — 에서의 족보와 언약 밖의 번영
요약
창세기 36장은 모세가 야곱의 이야기 흐름 가운데 잠시 붓을 돌려 에서, 곧 에돔의 후손 내력을 기록한 족보 장입니다. 이 기록은 이삭의 두 아들 가운데 언약의 계보를 잇지 못한 형의 후손이 어떻게 한 민족을 이루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성경이 교회 밖에 있는 에서의 족보를 굳이 남긴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약속(창 17장 4절)과, 리브가가 태중에 받은 "두 민족이 네 태 안에 있다"는 신탁(창 25장 23절), 그리고 이삭이 에서에게 준 축복(창 27장 39~40절)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확인시키기 위함입니다. 장은 에서의 아내들과 아들들(1~5절), 세일 산 이주(6~8절), 에돔 조상 에서의 족보(9~19절), 원주민 호리 족속의 족보(20~30절), 에돔을 다스린 왕들과 족장들(31~43절)로 이어집니다.
장의 흐름
- 1절 — 표제. 에서, 곧 에돔의 족보가 시작됩니다.
- 2~5절 — 에서의 세 아내와 가나안 땅에서 낳은 다섯 아들.
- 6~8절 — 재산이 많아 야곱과 함께 살 수 없어 세일 산으로 이주함.
- 9~14절 — 세일 산 에돔 조상 에서의 족보 재서술.
- 15~19절 — 에서의 자손에게서 난 족장들의 명단.
- 20~30절 — 세일 산 원주민 호리 족속의 족보와 족장들.
- 31~39절 — 이스라엘에 왕이 서기 전 에돔을 다스린 여덟 왕.
- 40~43절 — 거주지와 가문에 따른 에돔 족장들의 재정리.
단락별 해설
1~5절 — 에서의 아내들과 아들들
"이것은 에서, 곧 에돔의 후손 내력입니다." (창세기 36장 1절)
에돔이라는 이름은 에서에게 영광이 아니라 부끄러움의 표지였습니다. 이 이름은 그가 장자권을 붉은 죽 한 그릇에 팔아 버린 사건을 두고두고 상기시키는 낙인이었습니다.[헨리] 태어날 때의 붉은 피부와 붉은 죽을 지나치게 탐한 일, 그리고 훗날 후손의 사납고 잔혹한 성정도 이 이름에 함께 얽혀 있었습니다.[JFB] 에서는 종교의 굴레를 벗어 버리고 가나안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였는데(2~3절), 그러한 부적합한 결합에서 나온 가문이 대담하고 뻔뻔한 악행으로 이름을 떨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JFB] 세 아내에게서 얻은 아들이 다섯뿐이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합니다(4~5절). 한 아내에게서 그보다 많은 자녀를 얻는 사람도 있으니, 하나님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가문을 일으키려는 자들을 종종 실망시키십니다.[헨리] 다만 에서의 세 아내에게서 자녀가 났다고 해서 일부다처가 승인된 것은 아니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악한 시작에서도 선한 결과를 이끌어 내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칼빈] 언약 밖에서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은 흐르지만, 그 은총이 사람의 그릇된 선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성도는 기억해야 합니다.
6~8절 — 세일 산으로의 이주
"그래서 에서는 세일 산지에 자리를 잡고 살았습니다. 에서는 곧 에돔입니다." (창세기 36장 8절)
에서가 가나안을 떠나 세일 산에 정착한 것은 우연한 이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밀한 섭리였습니다. 세일 산은 하나님이 에서에게 기업으로 정하여 주신 땅이었습니다(신 2장 5절; 수 24장 4절).[헨리·JFB] 본문은 에서가 형제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떠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에서는 너무나 교만하고 사나워서 자신이 동생보다 못하다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칼빈] 그런데도 두 형제의 재산이 너무 많아 함께 살 수 없게 되자(7절), 에서의 세속적 재물이 크게 늘어난 그 일이 도리어 그를 가나안에서 떠나게 하여 야곱이 약속의 땅을 온전히 차지할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JFB] 악인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은 자주 일어나며, 그들의 성급한 탐욕이 현세의 이익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도리어 그들이 밀어내려던 이들의 복이 증진됩니다.[칼빈]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기 뜻을 거스르는 듯 보이는 형편 속에서도 은밀히 일하시는 섭리의 손을 신뢰해야 합니다.
9~19절 — 에돔 족보와 족장들
"이것은 세일 산지에 사는 에돔 사람들의 조상 에서의 후손 내력입니다." (창세기 36장 9절)
에서의 아들과 손자들에 관하여는 오직 이름만 기록되고 그들의 역사는 남지 않았습니다(10~14절). 모세는 교회 밖 사람이 아니라 교회의 기록을 보존하였으니, 명성 있는 자를 배출하는 곳은 세일이 아니라 시온이었습니다.[헨리] 이 족보는 서너 대를 넘지 못하고 이름들이 이내 망각 속에 묻히는데, 하나님의 약속이 이방인 에서에게 이토록 강하게 꽃피었다면 은혜의 상속이 속한 언약의 자녀들에게는 얼마나 더 강하게 나타나겠습니까.[칼빈] 15절부터 열거되는 족장은 아마도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이었을 것인데, 에서와 그 가문이 칼로 살아가리라는 축복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15~19절).[헨리] 이 "족장"은 영국의 귀족 같은 높은 신분이 아니라 오늘날 동방의 부족장이나 씨족의 우두머리에 가까운 자리였습니다.[JFB·풀핏] 에서의 아들들이 족장으로 위세를 떨칠 때 야곱의 아들들은 평범한 목자였으니, 세상의 영예가 교회 밖에서 먼저 오래 자리 잡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예가 비교할 수 없이 귀합니다.[헨리] 성도는 눈에 보이는 지위의 앞섬을 부러워하기보다 언약 안에 있는 자기 자리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20~30절 — 호리 족속의 족보
"시브온의 자녀는 이러합니다. 아야와 아나인데, 이 아나는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창세기 36장 24절)
에돔 족보 한가운데 세일 산의 원주민인 호리 족속의 족보가 끼어듭니다(20~21절). 호리 족속은 사암과 석회암 동굴에 파고들어 살던 혈거인으로, 세일 산에 굴착된 동굴 궁전과 신전과 무덤은 지금도 그 웅장함으로 놀라움을 자아냅니다.[풀핏] 이 삽입을 두고 주석의 해석이 갈립니다. 어떤 주석은 이를 순수하게 역사적·인종적 배경 설명으로만 읽는 반면, 다른 주석은 에돔이 호리 족속과 혼인 관계를 맺어 그 방식을 배우고 스스로를 부패시켰음을 돌아보게 하려는 도덕적 기록으로 읽습니다.[헨리] 24절의 아나는 아버지의 나귀를 치던 사람이면서도 족장이라 불립니다. 높이 오르려는 자는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법이며, 미천한 일이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고 자기 일에 부지런한 자는 기대 이상의 유익을 얻습니다.[헨리] 다만 아나가 광야에서 발견한 것을 두고도 견해가 나뉘어, 이를 온천으로 보는 주석이 있고 옛 학자들 가운데는 노새라는 변종을 처음 만들어 낸 일로 읽은 이들도 있었습니다.[풀핏·칼빈] 성도는 낮은 자리에서의 신실함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주어진 일에 부지런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헛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31~43절 — 에돔의 왕들과 족장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나오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린 왕들은 이러합니다." (창세기 36장 31절)
하나님은 야곱에게 왕들이 그의 몸에서 나오리라 약속하셨으나, 정작 에서의 혈통이 야곱의 혈통보다 훨씬 먼저 왕족을 이루었습니다(31~39절).[헨리] 이는 언약 백성이 외적 번영에서 종종 뒤처지고 언약 밖 사람들이 앞서 나가는 역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버림받은 자들은 지붕 위에 난 풀처럼 뿌리가 없어 빨리 자라난 만큼 빨리 시들며, 땅에 뿌리 깊이 내리는 것이 순간의 탁월함보다 훨씬 낫습니다.[칼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에돔 왕들의 위세를 전해 들을 때 그것이 큰 믿음의 시험이 되었을 것이나, 하나님께 큰 것을 기대하는 자는 기꺼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헨리] 이 왕들의 자리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진 세습이 아니라 족장들이 왕을 세우는 선출의 방식이었고, 왕권은 족장 제도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와 나란히 존재하였습니다(40~43절).[JFB·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언약 밖의 이른 번영에 흔들리지 말고, 더디더라도 뿌리 깊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연결된 말씀
- 창세기 25장 — 리브가가 받은 "두 민족" 신탁(23절)과 에서가 장자권을 붉은 죽에 판 일(30절)이 에돔이라는 이름의 뿌리임을 밝히는 본문으로 함께 읽힙니다.
- 창세기 27장 — 에서에게 칼로 살아가리라고 한 이삭의 축복(39~40절)이 족장과 전사의 가문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는 예언으로 지시됩니다.
- 신명기 2장 — 세일 산이 하나님께서 에서에게 정하여 주신 기업임을 밝히는 근거로 인용됩니다(5절).
- 여호수아 24장 — 세일 산을 에서의 소유로 주셨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말씀으로 나란히 인용됩니다(4절).
- 창세기 35장 — 야곱에게 왕들이 그의 몸에서 나오리라 하신 약속(11절)에 비추어 31절의 에돔 왕들을 읽게 하는 본문입니다.
- 시편 102편 — 언약 백성의 기업이 뿌리 깊이 영원히 서 있음을 보여, 뿌리 없이 빨리 시드는 에돔의 번영과 대비되는 말씀으로 인용됩니다(28절).
- 역대상 1장 — 에돔의 족보와 왕들의 명단이 병행으로 다시 기록된 본문으로, 하달의 죽음 등 본장이 남긴 여백을 채워 줍니다(43절, 51절).
마무리
창세기 36장이 전하는 중심은, 언약 밖에 있는 에서의 후손조차 하나님이 이삭에게 주신 축복과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대로 한 민족을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에서의 번영은 이삭의 입에서 나온 축복이 결과로 확인된 것이었으나, 그 영화는 세상의 형태 아래 이내 사라지는 거품과 같았습니다.[칼빈] 반면 더디게 이루어지는 언약 백성의 성취는 뿌리가 깊어 영원히 견고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는 언약 밖의 이른 번영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예를 귀히 여기는 것이며,[헨리] 다른 하나는 약속의 성취가 더디게 느껴질수록 그것을 지연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준비의 과정으로 여겨 기꺼이 기다리는 것입니다.[풀핏]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