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 은밀한 경건과 하늘의 보물
요약
마태복음 6장은 산상수훈의 한복판에 놓인 장입니다. 앞 장에서 율법의 참뜻을 밝히신 예수께서 이제 시선을 종교 생활의 실제로 옮기십니다. 이 장은 바리새인의 두 가지 죄, 곧 위선(1~18절)과 세상에 대한 집착(19~34절)을 차례로 경계합니다. 앞부분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세 의무를 다루되, 그 모두를 "너희 의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는 한 원칙 아래 둡니다. 뒷부분은 땅의 보물과 하늘의 보물을 대비시키고,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음을 밝히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으로 염려를 이기라고 가르칩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모범 기도, 곧 주기도문이 자리합니다.
장의 흐름
- 1~4절 — 구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은밀한 자선.
- 5~15절 — 기도: 골방 기도의 원리, 주기도문의 여섯 간구와 송영, 용서의 조건.
- 16~18절 — 금식: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보이는 금식.
- 19~24절 — 보물: 하늘에 쌓는 보물, 성한 눈, 두 주인.
- 25~34절 — 염려: 새와 백합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결론.
단락별 해설
1~4절 —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구제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자선을 베푸는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게 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받을 상이 없다." (마태복음 6장 1절)
이 장은 하나의 표제로 열립니다. 여기서 "의"는 구제만이 아니라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아우르는 총괄 표현이며, 이를 단순히 구제로 좁혀 옮기는 것은 개연성이 낮습니다.[풀핏]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의무로, 옛 사람들은 이를 율법의 세 토대라 불렀습니다.[헨리] 그러나 이 세 의무의 가장 큰 위험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습니다. 헛된 영광을 탐하는 마음은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슬며시 파고드는 교묘한 죄이기 때문입니다.[헨리] 모든 덕에서 명성을 향한 야망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무리 칭찬받을 만한 일도 야망이 스미면 타락하고 맙니다.[칼빈]
본문이 경계하는 "위선자"는 본래 무대에서 인물을 가장해 연기하던 배우를 가리키던 말입니다.[JFB·칼빈·풀핏] 그들이 자선을 베풀며 나팔을 분다는 표현은 비유로, 나팔 모양의 헌금함을 향한 풍자적 암시로 읽히기도 합니다.[풀핏]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았다"는 말씀은 위협입니다. 세상의 칭찬은 성도에게는 길을 가는 데 쓰는 노자이지만 위선자에게는 그것으로 끝나는 월급이며, 기대에 상응하는 상을 다 받아 더 남은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헨리·풀핏] 그러므로 성도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아야 합니다.[헨리] 선행을 마음속 기억에도 오래 담아 두지 않는 것이 영적 교만의 먹이를 끊는 길입니다.[JFB] 어둠에 묻힌 선행도 하나님의 시야에는 다 열려 있으므로, 성도는 그 상을 부활의 날까지 인내로 기다리는 것이 마땅합니다.[칼빈]
5~15절 — 골방 기도와 주기도문
"그러나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 6절)
기도에서도 위험은 같습니다. 위선자는 기도 자체가 아니라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주는 기도를 사랑했습니다.[헨리] 그러므로 여기서 정죄되는 것은 공개 기도 자체가 아니라 과시하는 기도이며, 참된 기도는 은밀한 성격을 지닙니다.[JFB] 골방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두고 옛 주석가들은 결을 달리 읽었습니다. 그것을 은밀히 역사하시는 아버지의 방식을 닮으라는 실제 장소이자 원리로 강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를 문자가 아니라 비교로 보아 사람의 시선보다 물러남을 구하라는 뜻으로 좁히는 이들도 있습니다.[헨리·칼빈] 어느 쪽이든 은밀한 곳에서 성도가 마주하는 분은 모든 곳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헨리]
기도에서 금해야 할 또 하나는 빈말의 되풀이입니다. 이것은 같은 말의 반복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이 말을 쏟아내는 것을 가리킵니다.[JFB·칼빈·풀핏] 모든 반복이 정죄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리스도께서도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고 시편에도 아름다운 반복이 있습니다. 문제는 감동 없이 수만 채우는 헛된 반복입니다.[헨리]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아시지만, 그렇다고 기도가 불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깨우거나 설득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훈련하고 염려를 그분 품에 쏟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칼빈] 하나님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에 오히려 더 깊이 감동하십니다.[헨리]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사람을 용서한 것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마태복음 6장 9~13절)
주기도문은 땅에서 하늘로 보내는 한 통의 편지와 같아서, 수신자와 주소와 간구와 마무리를 다 갖추었습니다.[헨리] 여섯 간구는 두 무리로 나뉩니다. 앞의 셋은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구하고 뒤의 셋은 우리의 필요를 구하니, 이는 십계명 두 돌판의 구조와 나란히 하나님을 먼저 두는 순서를 가르칩니다.[공통] "이름"은 하나님이 기꺼이 주신 자기 나타내심을 뜻하며,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는 이미 거룩하신 분을 거룩하게 만들라는 말일 수 없고 사람의 판단 안에서 거룩하게 여겨지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풀핏] 나라가 임하기를 구함은 하나님의 통치가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확립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풀핏] 일용할 양식은 그날그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이며, 여기서 구하는 것은 육신의 음식이 확실합니다. 다만 빵에서 시작해 우리를 더 높은 것으로 이끄십니다.[칼빈] 죄가 빚으로 불리는 까닭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릴 순종을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니, 씻음 받은 자도 날마다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헨리·풀핏] 기도를 맺는 송영은 옛 성전의 회중 응답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헨리·풀핏] 이어지는 말씀은 용서의 조건을 못 박습니다.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이 기도를 드리는 것은 스스로를 저주하는 셈입니다.[헨리]
16~18절 —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보이는 금식
"또 너희는 금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슬픈 얼굴을 하지 마라. 그들은 사람에게 금식하는 것을 보이려고 자기 얼굴을 흉하게 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았다." (마태복음 6장 16절)
금식에도 같은 원리가 흐릅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는 말씀은 과장된 표현으로, 금식하는 티를 내지 말고 평소와 같이 보이라는 뜻입니다.[칼빈] 유대인은 애도하는 기간이 아니면 기름을 발랐으므로, 이는 평상의 모습을 지키라는 지시입니다.[JFB] 고대인에게 기름 바름은 특별한 기쁨의 상징이었으니, 성도의 금식은 슬퍼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감춰진 기쁨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풀핏] 금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절제와 회개 같은 다른 목적을 향할 때에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행위입니다.[칼빈] 그것은 다른 의무를 준비시키는 수단이며, 그 세 의무 사이에서 기도가 구제와 금식을 살리는 생명과 영혼이 됩니다.[헨리] 그러므로 성도는 금식을 은밀히 행하여 오직 은밀한 가운데 계신 아버지께만 보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19~24절 — 하늘의 보물과 한 주인
"오직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6장 20~21절)
마음은 언제나 보물을 따라갑니다. 나침반이 자석을 향하고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듯, 사람의 마음은 그가 쌓아 둔 곳으로 기울어집니다.[헨리] 동방에서 값진 보물은 귀한 의복을 저장하는 방식이었기에 좀이 먹을 수 있었고, 좀과 녹과 도둑은 무생물과 무의식의 생물과 의식을 지닌 원수가 차례로 재물을 갉아먹음을 보여 줍니다.[JFB·풀핏] 사람이 사랑하는 것, 바로 그것이 그의 하나님이라는 옛 격언이 여기에 꼭 들어맞습니다.[JFB] 성도가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어 예수께서는 눈을 몸의 등불에 견주십니다. 이 "눈"의 뜻을 두고 옛 주석가들은 초점을 달리 두었습니다. 어떤 이는 마음과 이해력과 목적을 함께 아우르고, 어떤 이는 온전히 하나님을 향한 단일한 목적 의식으로 읽으며, 또 어떤 이는 방향을 정해 주는 이성의 빛으로, 다른 이는 삶의 목표를 비추는 양심으로 봅니다.[헨리·칼빈] 그러나 공통된 것은, 성한 눈이란 복잡하지 않고 단일한 눈이며 갈라진 마음은 완전한 어둠이라는 사실입니다.[JFB·풀핏]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재물을 뜻하는 맘몬은 이익을 가리키는 말이며, 정죄되는 것은 재물의 소유가 아니라 재물을 섬기는 것, 곧 생각과 추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헨리·풀핏] 부가 마음의 지배권을 차지하는 순간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권위를 잃으십니다.[칼빈]
25~34절 — 염려를 이기는 믿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다. 그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 (마태복음 6장 33~34절)
한 주인을 섬기라는 명령은 곧 염려하지 말라는 권면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금하시는 염려는 앞을 내다보는 신중한 준비가 아니라 믿음 없는 불안과 조바심이며, 근면만을 신뢰하여 목적 없이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 지나친 배려입니다.[JFB·칼빈] 예수께서는 하늘의 새를 근거로 삼으십니다. 새는 씨를 뿌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먹이시니, 하늘의 상속자인 사람은 하늘의 새보다 훨씬 귀합니다. 이는 더 큰 것에서 더 작은 것으로 내려가는 논증입니다.[헨리·JFB] 아무리 염려해도 자기 수명을 한 순간도 늘릴 수 없다는 말씀에서 "키"는 사실상 수명을 가리킵니다.[JFB·풀핏]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으나 솔로몬의 온갖 영광도 이 꽃 하나만 못하니, 여기서 강조점은 꽃이 어떻게 피는가가 아니라 스스로 자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풀핏]
이 모든 지나친 배려의 어머니는 불신앙이며, 탐욕의 유일한 치료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칼빈]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불신앙만이 아니라 자기 능력에 지나치게 공을 돌리는 교만도 함께 꾸짖으십니다.[칼빈] 그런 뒤에 산상수훈의 위대한 결론이 놓입니다. 나라와 의는 이 설교를 관통하는 두 핵심 주제이며, 성도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JFB] 내일 일을 미리 앞당겨 염려하는 것은 염려를 두 배로 늘릴 뿐입니다.[JFB] 섭리가 하루씩 조각조각 나누어 주신 것을 한꺼번에 다 짊어지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헨리]
연결된 말씀
- 요한복음 1장 — "네 무화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보았다"는 말씀으로, 은밀한 기도에서 성도가 만나는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예증하는 데 인용됩니다.
- 로마서 8장 —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도우시는 성령의 기도를 말하며, 하나님이 말 이전의 탄식에 감동하신다는 해설의 근거가 됩니다.
- 역대상 29장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성전 찬양으로, 주기도문 송영의 유래로 지목됩니다.
- 시편 136편 — 후렴이 거듭되는 아름다운 반복의 예로, 모든 반복이 정죄되는 것은 아님을 보이는 데 인용됩니다.
- 마태복음 26장 — 예수께서 같은 말씀으로 거듭 기도하신 겟세마네 장면으로, 헛된 반복과 참된 기도를 가르는 근거입니다.
- 야고보서 5장 — 좀먹은 옷과 녹슨 재물을 말하며, 땅의 보물이 부패한다는 19절 해설의 배경이 됩니다.
- 다니엘 10장 — 애도하는 동안 기름을 바르지 않은 사례로, 금식할 때 기름을 바르라는 말씀의 관습적 배경을 밝혀 줍니다.
- 이사야 26장 —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라"는 말씀의 원형으로 지목되어, 은밀한 기도의 원리를 뒷받침합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6장의 중심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아버지 앞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모두 하나님만을 관객으로 삼을 때에 참된 의가 되고, 재물과 염려는 마음이 하늘이 아니라 땅에 붙들릴 때에 우리를 삼키는 두 주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 모든 경건의 동기를 사람의 칭찬에서 하나님의 인정으로 옮겨, 은밀히 행하고 부활의 날까지 그 상을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칼빈] 둘째, 하루의 염려를 하루의 하나님께 맡기고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JFB]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으니, 성도는 그 보물을 하늘에 두어야 합니다.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