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장 — 다시 넘어진 자리에서 붙드신 하나님
요약
창세기 20장은 소돔이 멸망한 19장과 이삭이 태어나는 21장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이 장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부끄러운 실수를 그대로 담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인물이라도 그 허물을 공평하게 기록하는 것이 성경입니다.[헨리] 아브라함은 그랄로 옮겨 가면서 아내 사라를 "내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이집트에서 한 번 저질렀던 것과 같은 죄의 반복이었습니다.[헨리·JFB·칼빈·풀핏] 그러나 하나님은 꿈으로 이방 왕 아비멜렉에게 나타나 사라를 지키시고, 결국 아브라함의 기도로 아비멜렉 집안까지 회복시키셨습니다. 이 장은 사람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붙드심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장의 흐름
- 1~2절 — 아브라함이 그랄로 옮겨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아비멜렉 왕이 사라를 데려갑니다.
- 3~7절 — 하나님이 밤 꿈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 위험을 알리시고, 그의 변론을 들으신 뒤 사라를 돌려보내라 명하십니다.
- 8~13절 —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 책망하고, 아브라함이 세 가지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 14~18절 — 아비멜렉이 예물과 함께 사라를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이 기도하여 아비멜렉 집안의 닫힌 태가 풀립니다.
단락별 해설
1~2절 — 같은 돌에 두 번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두고 "그는 내 누이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 사라를 데려갔다." (창세기 20장 2절)
아브라함이 마므레를 떠나 그랄로 옮긴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1절).[헨리] 다만 나그네와 순례자로 사는 이 세상에서 사람은 늘 같은 곳에 머물 수 없고, 어디에 있든 자신을 나그네로 여겨야 한다는 교훈이 여기 있습니다.[헨리]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아내를 부인한 것은 단순한 거짓 꾸밈이 아니라, 마땅히 보호자가 되어야 할 아내의 순결과 명예를 위험에 빠뜨린 일이었습니다.[헨리] 더구나 이것은 이미 이집트에서 저질렀던 죄를 그대로 반복한 것이었습니다(2절).[헨리·JFB] 칼빈은 아브라함이 이집트에서 겪은 큰 위험을 잊고 다시 같은 돌에 발을 걷어차인 것이라고 말합니다.[칼빈] 하나님의 징계와 은혜에 대한 망각이 이 거룩한 족장에게조차 얼마나 쉽게 스며드는지를 보여 줍니다.[칼빈] 게다가 사라는 이때 약속의 씨를 품고 있을 상황이었으니, 아브라함은 오히려 그녀를 더 특별히 보호했어야 했습니다.[헨리]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이 고의적이고 계획된 속임을 만들어 냈습니다.[JFB] 크게 혼났던 잘못을 시간이 지나 또 반복하는 일은 나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선한 사람도 육체의 연약함과 시험의 위력 앞에서 같은 죄에 다시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헨리]
3~7절 — 꿈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께서 밤중에 꿈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보아라, 네가 데려온 그 여자 때문에 너는 죽은 목숨이다. 그는 남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20장 3절)
하나님은 언약 밖에 있는 이방 왕에게도 꿈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3절).[헨리] 바로의 꿈이 요셉을 위한 것이었고 느부갓네살의 꿈이 다니엘을 위한 것이었듯, 이번 꿈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헨리·JFB] 아비멜렉은 "주여, 의로운 백성까지도 죽이시렵니까"라고 항변합니다(4절). 마음이 자신을 정죄하지 않을 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담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헨리]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의 깨끗한 마음을 인정하셨습니다(6절). 그러나 하나님이 그가 죄를 짓지 못하도록 직접 막으신 것 자체가 큰 은혜였고, 그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헨리] 계획되고 의도된 죄 가운데 실행되지 않는 것이 많은데, 그것을 막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헨리] 하나님이 사라를 돌려보내라 명하신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7절). 아브라함이 선지자라는 것, 그가 기도해 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돌려보내지 않으면 죽음이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헨리] 칼빈은 이 책망이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간음에 대한 하나님의 큰 불쾌감을 온 인류에게 드러내신 것이라고 말합니다.[칼빈] 나쁜 일을 하려다 이상하게 막혀 결국 못 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늘 우연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8~13절 — 이방 왕에게 꾸중 듣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사람들이 내 아내 때문에 나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0장 11절)
아비멜렉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신하들에게 이 일을 알렸습니다(8절). 하나님의 신탁을 듣고 즉시 순종한 것입니다.[칼빈] 믿음의 조상이 이교 왕에게 도리어 꾸중을 듣는 이 장면은 참으로 굴욕적입니다.[JFB] 그런데 왕의 책망은 강력하면서도 온화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을 거짓말쟁이라 부르지 않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였다"고만 표현했습니다(9절).[헨리] 이에 아브라함은 세 가지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먼저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고 했지만(11절), 이 판단에는 충분한 근거가 없었습니다.[헨리·JFB·칼빈·풀핏] 명칭이 다르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부당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헨리] 사라가 이복 누이라는 말도(12절), 실제로는 사람들이 오해하도록 만든 속임이었습니다. 말로는 거짓이 아니어도 속이려는 의도가 있었으므로 도덕적으로는 거짓이었습니다.[헨리·JFB] JFB는 여기서 "정직이 언제나 최선의 방책"이라고 못 박습니다.[JFB] 칼빈은 두려움에 밀려 아내의 명예를 지키지 못한 아브라함이 책망받을 만하다고 말합니다.[칼빈] 잘 모르는 사람을 미리 나쁜 사람으로 단정하는 것은 SNS 위에서도 매일 벌어지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나도 근거 없이 누군가를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14~18절 — 예물과 기도, 그리고 풀린 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들을 고쳐 주셔서 그들이 다시 아이를 낳게 하셨다." (창세기 20장 17절)
아비멜렉이 준 양과 소와 은 천 개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14절, 16절). 하나는 사라를 데려간 잘못에 대한 배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구하려는 것이었습니다.[헨리] "눈을 가리는 표"라는 말은(16절), 배우자가 서로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가려 지켜 주는 표시라는 뜻입니다. 혼인 언약은 눈으로 맺은 언약이기 때문입니다.[헨리] 칼빈은 이 "가리는 것"이 선물이 아니라 남편 자체를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칼빈] 두 해석 모두 배우자 사이의 신의를 향합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 사라를 돌려보냈어도, 그가 받던 심판은 아브라함의 기도 이전에는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17절, 18절).[헨리] 미리암이 모세의 기도로, 욥의 친구들이 욥의 기도로 회복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헨리] 선한 사람의 기도는 높은 사람에게도 큰 친절이 될 수 있습니다.[헨리] 칼빈은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보자이시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합니다.[칼빈] 풀핏은 여기서 아브라함이 늘 살아서 중보하시는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봅니다.[풀핏]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을 책망한 왕을 위해 기도했고, 그 기도가 왕의 집을 살렸습니다.
연결된 말씀
- 창세기 12장 — 아브라함이 이집트에서 아내를 누이라 속인 첫 사건. 이 장 2절이 반복한 "같은 죄"의 원본입니다.
- 시편 105편 — 하나님이 왕들까지 책망하시며 자기 백성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신 노래. 꿈으로 아비멜렉을 막으신 3절 이하가 가리키는 본문입니다.
- 창세기 21장 — 사라가 이삭을 임신하고 낳는 장. 이 책망 직후에 이어지는 회복이라고 주석이 연결합니다.
- 야고보서 5장 — 의인의 기도가 큰 효력이 있다는 말씀.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드린 기도(17절)와 이어집니다.
- 히브리서 7장 — 늘 살아서 중보하시는 대제사장 그리스도. 아브라함의 중보(17절)가 예표한 분입니다.
마무리
창세기 20장은 믿음의 조상도 같은 죄에 다시 걸려 넘어질 수 있음을, 그러나 하나님이 그 연약함 위에서도 붙드심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움에 밀려 거짓을 택했지만, 하나님은 꿈으로 왕을 막으시고 사라를 지키셨습니다.[헨리] 한 번 크게 혼났던 잘못을 시간이 지나 또 반복하는 것은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넘어진 자리가 곧 끝은 아닙니다. 타락한 자는 절망하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헨리] 나를 오해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시선 앞에서도, 나 역시 잘 모르는 누군가를 성급히 단정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자신을 책망한 왕을 위해 기도했듯, 나도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같은 자리에서 또 넘어질 때, 절망 대신 다시 일어나 회개하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
</content> </invo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