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8장 — 엇갈린 손, 하나님의 선택
요약
창세기 48장은 야곱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장면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온 가족을 살렸고, 야곱은 그 아들 곁에서 노년을 보내다 이제 병들어 임종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은 요셉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급히 찾아갑니다. 야곱은 이 두 손자를 자기 친아들처럼 받아들여 각각 한 지파의 머리로 삼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축복하려는 순간, 나이 들어 어두워진 눈으로도 야곱은 오른손을 일부러 동생 에브라임에게, 왼손을 형 므낫세에게 얹습니다. 요셉이 잘못된 줄 알고 손을 바로잡으려 하지만, 야곱은 거절하며 동생이 형보다 크게 되리라고 예언합니다. 이 장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세상의 순서나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뜻을 따라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장의 흐름
- 1~2절 — 야곱의 병환 소식을 들은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급히 찾아오고, 야곱은 힘을 내어 침상에 일어나 앉습니다.
- 3~7절 — 야곱이 벧엘에서 받은 언약을 되새기며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입양한다고 선언하고, 라헬의 죽음을 떠올립니다.
- 8~14절 — 어두운 눈으로 손자들을 껴안은 야곱이 손을 엇갈려 얹으며 축복을 시작합니다.
- 15~16절 — 야곱이 삼중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두 아이를 위해 복을 빕니다.
- 17~20절 — 요셉의 이의 제기와 야곱의 거절, 그리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처럼" 되기를 비는 축복의 유래.
- 21~22절 — 야곱이 가나안 귀환을 예언하고 요셉에게 세겜 땅 한 몫을 더 남깁니다.
단락별 해설
1~2절 —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
"이 일들이 있은 뒤에 누군가 요셉에게 "보십시오, 당신의 아버지가 병이 들었습니다" 하고 알렸다. 그래서 요셉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갔다." (창세기 48장 1절)
요셉은 한 나라의 총리라는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병든 아버지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경의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병상을 찾아 문안하는 일은 우리의 본분입니다(1절).[헨리] 그가 두 아들을 함께 데려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의 복을 손자들이 직접 받게 하고, 그 자리에서 보고 들은 것이 어린 마음에 오래도록 새겨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헨리] 세상을 떠나가는 하나님의 늙은 종을 세상에 막 들어서는 젊은이와 만나게 하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임종의 증언은 다음 세대에 큰 격려로 남기 때문입니다.[헨리]
요셉이 그토록 아버지를 뵙기 원한 것은, 야곱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백 개의 왕국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큰 특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칼빈] 이것이 야곱 생애의 마지막 행동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교회의 조상들을 잇는 아버지로 세워진, 평범하지 않은 사명을 지녔음을 알고 있었습니다.[칼빈] 소식을 들은 야곱은 힘을 내어 침상에 일어나 앉았습니다(2절). 선한 사람이 누워 있는 방에서는 교훈이 되고 영적인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JFB] 병든 이와 노인이 낙심하여 주저앉지 않고 스스로 기력을 돋우려 애쓰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스스로 힘을 내면 하나님께서 그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헨리]
3~7절 — 벧엘의 언약과 두 아들 입양
"이제 내가 이집트로 너에게 오기 전에 이집트 땅에서 네게 태어난 너의 두 아들은 내 것이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아들이 될 것이다." (창세기 48장 5절)
야곱은 먼저 벧엘, 곧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 언약을 받았던 일을 되새깁니다(3절, 4절). 이 입양의 선언에는 세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번성한 자손과 가나안 기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구체적으로 회상한 것,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가족으로 받아들인 명시적 선언, 그리고 이후 태어날 자녀는 두 형의 이름으로 편입된다는 단서 조항입니다.[헨리] 야곱이 두 손자를 받아들인 목적은 이집트에서 요셉의 권세와 영화를 잇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상속자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하여도 교회 안에 있는 것이 부유하여도 교회 밖에 있는 것보다 낫다는 교훈이 여기 있습니다.[헨리]
야곱은 자신의 탁월함이나 부와 권력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두 아이 앞에 내려놓았습니다.[칼빈] 쇠약한 노인이 손자들에게, 이방인으로 들어왔다가 이제 다시 유배자처럼 지내는 그 땅을 왕가의 유산으로 나누어 주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굳건한 믿음이 나타납니다. 거룩한 아버지들은 그 땅에 확실한 거처를 소유하기보다 하나님의 입술에 매달리기를 택했기 때문입니다.[칼빈] 이어 야곱은 임종의 자리에서도 라헬의 죽음을 언급합니다(7절). 그 오래된 슬픔이 얼마나 깊이 마음에 새겨져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헨리] 어머니의 이름은 요셉의 마음을 흔드는 자극이 되었을 것입니다.[칼빈]
8~14절 — 어두운 눈, 엇갈린 손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른손을 뻗어 동생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은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다. 므낫세가 맏아들이었으나 그는 손을 일부러 엇갈리게 놓은 것이다." (창세기 48장 14절)
야곱이 손자들을 처음에 알아보지 못한 것은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8절). 그러나 이것은 이 입양이 손자를 보고 자극받은 우연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내적 촉구에 따른 것임을 오히려 보여 줍니다.[풀핏] 요셉이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제게 주신 제 아들들입니다"라고 말할 때(9절), 그 기쁨은 하나님의 손에서 온 것으로 볼 때 갑절로 달콤해집니다.[헨리] 야곱의 눈은 나이 들어 어두워졌지만(10절), 육신의 눈이 흐려졌을 때에도 믿음의 눈은 매우 맑을 수 있습니다.[헨리] 노인이 자기 자녀보다 손자에게 더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성경도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라고 말합니다.[헨리]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옵니다. 야곱은 오른손을 뻗어 동생 에브라임의 머리에, 왼손을 형 므낫세의 머리에 얹습니다(14절). 눈이 어두워 누가 형인지 분별할 수 없었는데도, 그는 손을 일부러 엇갈리게 놓았습니다.[헨리] 모세는 야곱이 "알면서도 손을 인도했다"고 기록하며, 이 행위의 지도자가 성령이셨음을 알려 줍니다.[칼빈]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의 관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이 진행됩니다. 야곱 자신도 태어날 때 형 에서보다 앞섰던 사람입니다.[헨리] 손을 얹어 축복하는 이 안수는 성경에서 축복의 상징으로 사용된 첫 사례이며, 훗날 제사장을 세우거나 교회의 직분자를 세울 때 쓰이는 공인된 방식이 되었습니다.[풀핏]
15~16절 — 삼중으로 부른 하나님
"모든 악에서 나를 건져 주신 천사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빕니다.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이 이 아이들에게 이어지고, 이들이 이 땅 한가운데서 큰 무리로 번성하기를 빕니다." (창세기 48장 16절)
야곱은 두 아이를 위해 세 가지를 구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 주시기를, 자신과 조상들의 이름이 그들에게 이어지기를, 이 땅 한가운데서 큰 무리로 번성하기를 빕니다(15절, 16절).[헨리] 복을 빌기 전, 그는 태어난 날부터 오늘까지 자신을 먹여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되새깁니다(15절). 평생 먹여 주신 분은 마지막에 결코 저버리지 않으십니다.[헨리] 그런데 야곱은 손자들을 복 줄 능력이 있었음에도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돌리지 않고, 겸손히 기도로 호소했습니다. 여기서 교회의 모든 사역자를 위한 공동의 규칙이 나옵니다.[칼빈]
"모든 악에서 나를 건져 주신 천사"라는 표현은 특별합니다(16절). 이 천사는 평범한 피조물 천사가 아니라 그리스도, 곧 언약의 천사를 가리킵니다.[공통] 그분이 영원한 중보자이시기에 천사의 칭호를 헛되이 지니지 않으십니다.[칼빈] 여기서 "고엘", 곧 속량하는 자라는 용어가 처음 쓰이는데, 값을 치르고 다시 구해 내시는 이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풀핏] 한편 "내 이름이 그들에게 불려지게 하시며"라는 말은 단순히 입양의 표시일 뿐입니다. 이를 죽은 사람에게 기도해야 한다는 근거로 삼는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칼빈]
17~20절 — 요셉의 이의와 야곱의 거절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거절하며 말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안다. 이 아이도 한 백성이 되어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동생이 그보다 더 크게 될 것이며, 그의 자손은 여러 민족의 무리를 이룰 것이다."" (창세기 48장 19절)
요셉은 아버지가 팔을 엇갈리게 한 것을 실수로 여기고 손을 바로잡으려 했습니다(17절, 18절).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에 순응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을 비밀스러운 안내자로 따른 것이었습니다.[칼빈]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빚진 것이 없으시므로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자유롭게 선물을 베푸십니다. 연소자에게 영예를 주심으로써 사람의 공로 요구에 묶여 있지 않음을 보이십니다.[칼빈] 야곱은 확신 가운데 거절했고, 그의 믿음의 눈은 육신의 눈보다 더 잘 보았습니다. 훗날 에브라임 지파가 북 이스라엘 왕국에서 지배적인 지파가 되어, 역사가 이 예언을 확인해 주었습니다.[헨리] 실제로 모세 시대의 인구 조사에서 두 지파의 수가 오르내렸으나, 가나안 정복 이후 에브라임의 우위가 회복되어 북방 열 지파의 지도적 자리를 차지했습니다.[풀핏] "하나님께서 너를 에브라임과 므낫세처럼 되게 하시기를"이라는 말은(20절), 이 복이 그만큼 탁월하고 주목할 만하여 이스라엘의 축복 관용구가 되었습니다.[헨리]
21~22절 — 마지막 예언과 세겜 한 몫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했다. "보아라, 나는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하셔서 너희를 네 조상들의 땅으로 다시 데려가실 것이다." (창세기 48장 21절)
야곱은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예고합니다(21절).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헨리] 그는 침착하게 죽음을 말할 수 있었지만, 요셉과 남은 가족이 받을 충격을 미리 준비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오직 가나안으로의 회복에 대한 확실함을 강조했습니다.[JFB] 이어 야곱은 세겜 땅 한 몫을 요셉에게 더 남긴다고 말합니다(22절). 이는 이집트에서 온 가족을 부양한 요셉의 수고에 대한 보답이었고, 훗날 요셉의 뼈가 바로 그 세겜에 장사됩니다.[헨리]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에게서 빼앗았다"는 말에는 해석이 여럿입니다. 무장한 힘으로 성읍을 점령했다는 뜻으로 읽는 주석도 있고, 장차 가나안을 정복하리라는 예언적 발언으로 읽는 주석도 있습니다.[풀핏] 칼빈은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에서 저지른 잔인한 일을 전제로, 야곱이 그들의 사악한 행위에서 나온 권리를 박탈하여 자신에게로 옮긴 것이라고 풀이합니다.[칼빈]
연결된 말씀
- 창세기 28장 — 야곱이 벧엘(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 언약을 받은 장면입니다. 이 장 3~4절이 되새기는 바로 그 사건입니다.
- 창세기 49장 — 야곱이 이 축복에 이어 열두 아들 전체에게 마지막 예언과 복을 남기는 장으로, 임종 축복이 계속됩니다.
- 역대상 5장 — 르우벤에게서 옮겨진 장자의 두 몫이 요셉에게 주어진 이유를 기록한 곳으로, 두 아들 입양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 여호수아 24장 — 야곱이 요셉에게 더 남긴 세겜 땅에 훗날 요셉의 뼈가 장사되어, 22절의 약속이 성취되는 장면입니다.
- 고린도전서 10장 — 야곱을 모든 악에서 건지신 "천사"가 곧 그리스도이심을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 잠언 17장 —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라는 말씀으로, 손자를 향한 야곱의 각별한 애정을 보여 줍니다.
마무리
창세기 48장이 선언하는 중심은 하나님의 선택이 세상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형이 아니라 동생에게, 눈에 보이는 서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복이 흘러갔습니다. 야곱은 눈이 어두웠지만 믿음의 눈으로 더 멀리 보았고, 손을 엇갈려 얹으면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헨리] 하나님은 사람의 공로에 묶이지 않으시고,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칼빈] 우리는 성적순, 등수, 먼저와 나중이라는 서열에 익숙합니다. 형과 동생, 앞자리와 뒷자리를 늘 견주며 내 위치를 확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 순서로 매겨지지 않습니다. 나의 자리는 내가 몇 번째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언약의 상속자로 부르셨다는 사실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부르심을 붙드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세상의 서열로 나를 재고 있나요,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 위에 나를 세우고 있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