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청소년어린이일반

창세기 4장 — 문 앞에 웅크린 죄

창세기 4장 · 청소년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창세기는 성경의 첫 책이고, 모세가 기록하였습니다. 앞선 3장에서 사람은 죄를 지어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4장은 그 죄가 다음 세대에서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옛 주석가는 아담의 한 가정 안에 후대 모든 시대의 인류 모습이 미리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헨리] 성도와 죄인의 근본적인 구분이 가인과 아벨 안에서 처음으로 그려집니다.[헨리] 이 장은 두 형제의 서로 다른 예배로 시작해, 세상의 첫 살인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아벨 대신 주신 셋의 출생으로 닫힙니다. 핵심은 분명합니다. 죄는 문 앞에 웅크린 짐승처럼 사람을 노리지만, 하나님은 그 죄를 다스리라고 부르십니다.

장의 흐름

  • 1~2절 — 가인과 아벨의 출생, 그리고 농부와 목자라는 두 직업.
  • 3~7절 — 받으신 제물과 받지 않으신 제물, 가인의 분노, 그리고 "죄가 문에 있다"는 경고.
  • 8~12절 — 세상의 첫 살인, 하나님의 심문과 저주 선고, 그리고 부르짖는 피.
  • 13~16절 — 벌을 무거워한 가인의 탄원과 그를 지키시는 보호의 표.
  • 17~24절 — 가인의 후손과 라멕의 노래, 재능은 넘치되 경건은 사라진 계보.
  • 25~26절 — 아벨 대신 주신 셋과 에노스,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함.

단락별 해설

1~2절 — 두 형제의 출생

"내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한 남자를 얻었다." (창세기 4장 1절)

하와는 첫아들을 낳으며 기쁨과 감사를 담아 이름을 지었습니다(1절). 가인이라는 이름에는 "얻음, 소유"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헨리·JFB·풀핏] 하와가 이 아들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자로 여겨 기뻐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그렇게까지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조심스러워하는 주석도 있습니다(1절).[헨리·칼빈·풀핏] 둘째 아들 아벨의 이름은 "허무함, 연약함"이라는 뜻입니다(2절). 사람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상기시키는 이름이고, 이 이름은 사실 온 인류에게도 붙는다고 옛 주석가는 말합니다.[헨리·JFB·칼빈] 두 형제가 쌍둥이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주석도 있습니다(2절).[칼빈·JFB]

두 아들은 각각 직업을 가졌습니다(2절). 하나님은 죄가 없던 때에도 아담에게 일을 주셨으니, 부모는 자녀를 그 재능에 맞는 일로 길러야 합니다.[헨리] 특히 아벨이 목자를 택한 것은 묵상과 경건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옛 주석가는 봅니다.[헨리] 훗날 모세와 다윗도 양을 치며 홀로 하나님과 교제하였습니다.[헨리]

3~5절 — 받으신 제물과 받지 않으신 제물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가인이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창세기 4장 4~5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사람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던 오래된 제도입니다.[헨리] 그런데 위선자나 악한 사람도 겉으로는 최선의 성도만큼 종교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헨리] 그렇다면 두 제물의 차이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옛 주석가는 히브리서 11장 4절을 근거로 세 가지를 짚습니다.[헨리] 아벨은 속죄의 피를 흘리는 제사를, 가인은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는 본질의 차이입니다. 아벨은 첫 새끼의 가장 좋은 기름을, 가인은 손에 걸리는 것을 드렸다는 질의 차이입니다. 무엇보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은 남들도 하니까 체면으로 드렸다는 믿음의 차이입니다.[헨리]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받으신다는 것은 그 사람이 먼저 받아들여졌다는 뜻입니다.[칼빈]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삼상 16:7).[칼빈] 가인의 문제는 제물이 초라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순전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칼빈]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나타났을 것이라고 보는 주석도 있고, 그런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며 물리치는 주석도 있습니다(4절).[JFB·풀핏·칼빈]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가인의 분노가 하나님을 향한 적개심과 인정받은 동생을 향한 시기를 함께 드러냈다는 사실입니다.[헨리]

6~7절 — 문 앞에 웅크린 죄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웅크리고 있다.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하지만, 너는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 (창세기 4장 7절)

그토록 나쁜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토록 온유하게 다가가신 것은 놀라운 인내입니다.[헨리] 이 모습은 탕자의 아버지가 화난 큰아들을 찾아가 사정을 논한 것과 같습니다(눅 15:28).[헨리] "죄가 문 앞에 웅크리고 있다"라는 이 말씀은 오래도록 풀기 어려운 구절로 꼽혀 왔습니다.[풀핏] 이를 속죄 제물이 문에 준비되어 있다는 뜻으로 읽는 주석도 있고, 스스로 죄를 아는 사람을 에워싸는 양심의 심판으로 좁혀 읽는 주석도 있습니다(7절).[JFB·칼빈] 여러 학설을 검토한 끝에, 죄에 굴복하는 위험을 경고하는 말로 보는 것이 가장 받아들일 만하다고 결론짓는 주석도 있습니다.[풀핏]

해석이 갈려도 마지막 명령은 또렷합니다.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해도 너는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7절). 짐승처럼 문 앞에 웅크린 죄는 틈만 나면 사람을 사로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에 끌려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다스리라고 부르십니다.

8~12절 — 세상의 첫 살인과 부르짖는 피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에게 "우리 들로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였다." (창세기 4장 8절)

가인의 죄에는 여러 가중 요소가 겹쳐 있습니다.[헨리] 상대는 친형제였고, 잘못한 적 없는 선한 형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전 경고를 고집으로 무시했고, "우리 들로 나가자"라며 우정의 모습으로 살의를 감추었습니다(8절).[헨리] 위선자가 우정을 가장하며 낮추어 말할 때보다 더 두려운 순간은 없다고 옛 주석가는 말합니다.[칼빈] 그렇게 아벨은 무덤으로 간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천국으로 간 첫 사람이기도 합니다.[헨리] 순교자로서 그의 죽음에는 저주가 아니라 면류관이 있습니다.[헨리]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네 동생의 피가 땅에서 내게 부르짖고 있다." (창세기 4장 10절)

민사 법원이 아직 없던 때였으므로 하나님이 직접 재판관으로 앉으셨습니다(9절).[헨리] 가인의 "모릅니다"라는 대답은 고의적인 거짓말이었습니다(9절).[헨리·JFB] 하나의 죄는 이렇게 또 다른 죄를 낳습니다.[JFB] 하나님은 고소하는 사람이 없어도 사람의 행위를 다 아십니다(10절).[칼빈] 아무도 보지 못한 죽음을 아벨의 피가 대신 부르짖었고, 이 사실은 부당하게 괴롭힘 당하는 이들에게 놀라운 위로가 됩니다.[칼빈] 아벨의 피가 복수를 부르짖었다면, 그리스도의 피는 용서를 부르짖습니다(히 12:24).[헨리] 하나님은 가인에게 땅의 소산을 거두는 벌과,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벌을 함께 내리셨습니다(11절, 12절).[헨리]

13~16절 — 벌을 무거워한 가인과 보호의 표

"그러므로 누구든지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배로 보복을 당할 것이다." (창세기 4장 15절)

가인은 자기 벌이 감당할 수 없이 크다고 탄원했습니다(13절). 이렇게 선고를 가혹하다고만 불평하는 것은 회개하지 않은 교만한 마음의 증거입니다.[헨리] 그는 자기 죄보다 자기가 받을 형벌을 더 걱정했습니다.[헨리] 그를 짓누른 것은 자기 행위의 사악함이 아니라 압도적인 응보였습니다.[풀핏] 그런데도 하나님은 가인을 지키는 표를 주셨습니다(15절). 이 표는 그를 편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잔인한 폭력에 맞서 그를 보호하려는 것이었습니다.[칼빈] 공적인 재판에 넘겨진 사람이 사사로운 복수의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헨리] 가인이 곧바로 죽었다면 잊혔겠지만, 살려 두심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두렵게 증언하는 영구적인 기념비가 되었습니다.[헨리]

가인은 결국 여호와 앞을 떠났습니다(16절). 이 떠남은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과 종교를 포기한 자발적인 선택이었습니다.[헨리·JFB] 옛 주석가는 그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더 나빠졌다고 말합니다.[JFB]

17~24절 — 가인의 후손과 라멕의 노래

"가인을 위한 보복이 일곱 배라면, 진실로 라멕을 위한 보복은 일흔일곱 배일 것이다." (창세기 4장 24절)

가인이 성을 쌓은 것은 떠돌이가 되라는 선고에 저항하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17절).[헨리] 그가 아들의 이름을 따 붙인 에녹은 "헌신된"이라는 뜻인데, 이를 최초 살인자의 불경한 교만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오히려 삶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약속으로 정반대로 읽는 학자도 있습니다(17절).[풀핏] 몇 대를 내려가 라멕은 두 아내를 맞이했습니다(19절). 그는 결혼의 법을 처음으로 어긴 사람이며, 훗날 선한 사람들조차 이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헨리·JFB·칼빈·풀핏]

라멕의 자녀들은 경건함이 아니라 재능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20절, 21절, 22절).[헨리] 유목의 조상도 있었고 음악의 조상도 있었으며 쇠붙이 기술의 조상도 있었지만, 믿음의 조상은 없었습니다.[헨리] 그렇다고 그 재능이 무가치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가족에게도 뛰어난 기예의 재능을 뿌리셨으니, 거듭나게 하시는 영은 거두셨어도 이런 선물까지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칼빈] 반면 라멕의 노래는 자기를 해친 사람을 죽였다고 아내들에게 자랑하며 가인보다 훨씬 큰 복수를 외치는 소리였습니다(23절, 24절). 성경에서 숫자 칠은 흔히 많음을 뜻하므로, 그가 말한 일흔일곱 배는 끝없는 복수의 다짐이었습니다.[칼빈]

25~26절 — 아벨 대신 주신 셋

"하나님께서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내게 다른 자식을 주셨다" (창세기 4장 25절)

가인의 계보가 폭력과 자랑으로 치닫는 동안,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다른 아들을 주셨습니다(25절). 셋이라는 이름에는 "세움, 정착"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헨리] 배교의 우두머리 가인이 방랑자가 되어 떠도는 사이, 참된 교회가 나올 셋은 정착하는 자로 세워졌습니다.[헨리]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창세기 4장 26절)

셋에게서 에노스가 태어난 뒤,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26절). 이를 가인과 라멕의 배교 이후 신앙이 되살아나고 하나님의 예배자들이 스스로를 구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주석이 있습니다.[헨리] 참되고 순수한 예배가 회복된 것으로 밝게 읽는 주석도 있고, 오히려 "여호와의 이름으로" 자신을 부른 것이라 옮기며 세상이 경멸하여 붙인 이름으로 보는 주석도 있습니다(26절).[칼빈·JFB] 어둠이 짙어 가던 계보 곁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연결된 말씀

  • 히브리서 11장 —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밝히는 말씀. 아벨의 제물이 받아들여진 까닭(4절)을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 히브리서 12장 —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그리스도의 피. 땅에서 부르짖는 아벨의 피(10절)를 용서의 피와 잇는 본문입니다.
  • 누가복음 15장 — 화난 큰아들을 찾아가 달래는 아버지. 분노한 가인을 온유하게 부르시는 하나님(6절)의 모습이 이어지는 본문입니다.
  • 마태복음 18장 —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는 말씀. 일흔일곱 배 복수를 외친 라멕(24절)과 정반대편에 서는 본문입니다.
  • 요한계시록 3장 —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는 그리스도. "죄가 문에 있다"(7절)를 속죄 제물로 읽는 옛 견해가 가리킨 본문입니다.

마무리

창세기 4장은 죄가 어떻게 마음의 문 앞에서 사람을 노리는지를 보여 줍니다. 가인은 자기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하나님을 미워하고 동생을 시기했습니다.[헨리] 하나님은 그런 가인에게도 먼저 다가와 어찌하여 화를 내느냐고 물으시며,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6절, 7절). 나보다 친구가 더 인정받는 순간, 마음이 어두워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 마음을 그대로 키우면 시기가 되고, 시기는 미움으로 자랍니다. 죄는 바로 그 문 앞에 웅크리고 있습니다(7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에 끌려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다스리라고 부르십니다. 아벨을 잃은 자리에도 하나님은 셋을 다시 주셨고, 사람들은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25절, 26절).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새로 시작하게 하시는 분입니다.[헨리] 나는 마음의 문 앞에 웅크린 죄를 알아채고 있나요? 그리고 그 죄에 끌려가는 대신, 하나님이 부르시는 대로 그것을 다스리려 애쓰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