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장 — 입술의 경건과 마음의 믿음
요약
마태복음 15장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하시던 때,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 사람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이 장은 두 얼굴을 나란히 세워 놓고 보여 줍니다. 하나는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멀리 떠난 종교 지도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멸시받던 이방 땅에서 낙담을 뚫고 예수님께 매달린 한 여인입니다. 앞부분은 손 씻는 전통을 둘러싼 논쟁에서 시작해, 참된 더러움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밝힙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규칙을 하나님의 계명 위에 올려놓은 위선을 책망하시고,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뒷부분은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무대를 옮겨, 이방 여인의 끈질긴 믿음과 그 믿음을 향한 예수님의 칭찬을 보여 줍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사흘을 함께한 사천 명의 무리를 빵 일곱 개로 먹이십니다. 겉모습의 경건과 마음의 믿음을 견주며, 나는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묻게 하는 장입니다.
장의 흐름
- 1~9절 — 장로들의 전통 논쟁: 고르반과 위선에 대한 책망.
- 10~20절 — 참된 더러움은 마음에서 나온다.
- 21~28절 —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
- 29~31절 — 많은 병자를 고치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
- 32~39절 —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심.
단락별 해설
1~9절 — 전통이 계명을 밀어낼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마태복음 15장 3절)
이 논쟁을 걸어온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던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성읍 가운데 으뜸인 예루살렘에서 파견되어 예수님을 감시하러 온 대표단이었습니다.[헨리·JFB] 갈릴리에서 들려온 예수님의 성공 소식이 그들을 자극해, 공격할 빌미를 찾으러 내려온 것입니다.[풀핏] 그런데 외적인 특권은 제대로 쓰지 않으면 오히려 교만과 악의를 키울 뿐이어서, 그들은 수도에서 왔으면서도 더 나빴습니다.[헨리]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2절). 당시 랍비들은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을 간음만큼 큰 죄라고 가르칠 정도였습니다.[헨리] 예수님은 이 고발을 놀라운 힘으로 되받아치십니다. 오히려 그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율법을 뒤집는 무거운 죄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3절).[JFB] 그 증거가 바로 "고르반"이었습니다.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바친 예물이라고 선언하면 부모를 봉양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친 규정이었습니다(5~6절).[공통] 겉으로는 거룩한 헌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탐욕과 돈 사랑에서 나온 회피였습니다.[헨리]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계명에는 부모를 돌보고 봉양하는 의무가 담겨 있는데(4절), 그들은 전통으로 그 계명을 무효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풀핏]
그래서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 그들을 위선자라 부르십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나 있는 사람, 사람이 만든 규칙을 하나님의 교리인 양 가르치는 사람입니다(8~9절).[헨리] 그런 예배는 아무리 열심이어도 "헛되다"는 선언을 받습니다.[공통]
10~20절 —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태복음 15장 11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멸시하던 무리를 오히려 가까이 부르십니다(10절). 그리고 "들으라, 그리고 깨달으라"며 진리를 여십니다.[헨리] 참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오는 음식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감추어진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공통] 음식은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몸 밖으로 나갈 뿐, 양심이나 도덕과는 상관이 없습니다(17절).[헨리]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의 분노를 전하자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나무는 모두 뽑힐 것"이라고 하십니다(13절).[헨리] 보이는 교회 안에도 하나님이 심지 않으신 나무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헨리] 그들을 두고 예수님은 "눈먼 자를 인도하는 눈먼 인도자"라 부르십니다(14절). 오만과 무지가 만나면 치료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 되어, 인도자와 추종자가 함께 구덩이에 빠집니다.[헨리] 마침내 예수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여섯 가지 죄, 곧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을 짚으십니다(19절). 이것들은 십계명의 여러 계명과 그대로 이어집니다.[헨리·풀핏] 손을 아무리 씻어도 마음이 씻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21~28절 — 부스러기라도 붙든 믿음
그 여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주여.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7절)
이제 무대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옮겨 갑니다. 그곳에서 한 가나안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부르짖습니다(22절). 저주받은 족속의 후손이자 이방인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경건의 맛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습니다.[칼빈] 그렇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 곧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칼빈]
그런데 예수님은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23절). 그 침묵은 여인을 물리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간절히 구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헨리] 입으로는 침묵하셨어도, 그 여인의 마음 안에서는 이미 내적으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칼빈] 이어지는 말씀은 더 매섭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개들에게 던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26절). 여기서 "자녀의 빵"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특별히 베푸신 은혜를 가리킵니다.[칼빈] "개들"이라는 말도 유대인이 이방인을 낮추어 부르던 표현이었습니다.[풀핏]
그런데 여인은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하게 되돌립니다. 개들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는다는 것입니다(27절). 살아 있는 믿음은 이렇게 불리한 것마저 유리하게 만듭니다.[헨리]
그때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대답하셨다. "여인아, 네 믿음이 크구나! 네가 원하는 대로 될지어다." 그러자 그 시각에 그 딸이 나았다. (마태복음 15장 28절)
예수님이 칭찬하신 것은 그녀의 믿음의 "크기"였습니다(28절). 거듭된 낙담에도 굴하지 않고 전능한 구원자께 결연히 매달리는 것, 그것이 바로 큰 믿음입니다.[헨리] 희미한 진리의 불꽃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두려운 반대들을 뚫고 걸어갔습니다.[칼빈] 예수님이 이토록 놀라움을 표현하신 사람은 이방인 백부장과 이 여인뿐이었습니다.[풀핏]
29~31절 — 고치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그래서 무리는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상한 사람이 온전해지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눈먼 사람이 보는 것을 보고 놀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마태복음 15장 31절)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 산에 올라 앉으십니다(29절). 사람들이 다리 저는 사람, 눈먼 사람, 말 못하는 사람, 불구가 된 사람을 데리고 그분의 발 앞에 두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30절). 앞 단락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입술의 경건을 다투었지만, 여기서는 고침받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31절). 참된 예배가 어디서 터져 나오는지를 이 장면이 조용히 보여 줍니다.
32~39절 — 사천 명을 먹이심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내가 이 무리를 불쌍히 여긴다. 그들이 나와 함께한 지 벌써 사흘이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구나. 그들을 굶긴 채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으니, 그러면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 (마태복음 15장 32절)
"불쌍히 여긴다"는 이 말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완전한 인간적 동정심이 담겨 있습니다(32절).[풀핏] 그런데 제자들은 어이없게도 이 외딴 곳에서 어디서 빵을 구하겠느냐고 반문합니다(33절). 이는 이미 오병이어를 겪고도 그 경험을 지금 상황에 적용하지 못한 어리석음이었습니다.[칼빈] 그런 무관심은 우리에게도 슬그머니 다가옵니다.[칼빈]
예수님은 빵 일곱 개와 물고기를 가지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뒤 떼어 나누어 주십니다(36절). 감사 없이 음식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빼앗는 일과 같다고 여겨질 만큼, 감사 기도는 식사에 마땅히 따르는 행위였습니다.[풀핏]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찼는데, 그 광주리 수가 처음 빵의 수와 똑같아 넘침의 규모를 보여 줍니다(37절).[풀핏] 이 사건은 오병이어의 어설픈 재현이 아니라 분명히 별개의 기적입니다. 훗날 예수님이 두 기적을 따로 떠올리게 하신 데서 이 사실이 확증됩니다.[풀핏]
연결된 말씀
- 이사야서 — 예수님이 바리새 사람들의 위선을 두고 "이사야가 너희에 대해 잘 예언했다"며 인용하신 예언입니다. 8~9절이 그 예언을 그대로 옮겨 옵니다.
- 디모데전서 5장 — "공경하라"는 말이 부모를 실제로 돌보고 봉양하는 것을 뜻함을 보여 주는 본문으로, 고르반 전통이 무엇을 회피했는지를 밝혀 줍니다.
- 예레미야 2장 — 하나님이 심지 않으신 나무가 뽑힌다는 13절 말씀의 배경이 되는 "이방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 골로새서 2장 — "사람의 계명들"을 지적하는 표현이 이어지는 본문으로, 전통을 교리로 가르치는 위선과 연결됩니다.
- 마태복음 16장 — 사천 명을 먹이신 이 기적이 오병이어와 별개의 사건임을, 예수님이 두 기적을 따로 상기시키시며 확증하시는 장면입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15장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손이 아니라 마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밝힙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손 씻는 규칙에는 열심이었지만 정작 부모를 봉양하라는 계명은 전통으로 밀어냈고,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했습니다.[공통] 반면 이름도 없이 멸시받던 이방 여인은 거절의 말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부스러기라도 붙들겠다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헨리] 겉으로 드러나는 경건은 사람의 눈에는 그럴듯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크다"고 칭찬하신 것은 화려한 예배가 아니라 낙담을 뚫고 끝까지 매달린 한 사람의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나의 신앙에서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마음은 멀리 떠나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규칙과 겉모습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척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마음으로 그분께 매달리는 사람인가요? 그리고 응답이 더디 올 때, 나는 부스러기라도 붙들고 끝까지 구하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