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 남에게 보이려는 신앙과 하나님 앞의 신앙
요약
마태복음 6장은 예수님이 산 위에서 하신 긴 가르침, 곧 산상수훈의 한가운데 자리합니다. 앞 장에서 예수님은 마음의 의를 말씀하셨고, 이제 그 의가 실제 행동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이어 말씀하십니다. 이 장을 관통하는 물음은 단 하나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부분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이라는 세 가지 종교 행위를 다루면서, 사람에게 보이려는 위선을 버리고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가르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놓여 있습니다. 뒷부분은 눈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로 옮겨 갑니다. 땅의 보물이냐 하늘의 보물이냐, 하나님이냐 재물이냐를 물으며, 마지막에는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는 염려를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초대합니다. 결국 이 장은 신앙의 무대를 사람의 시선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옮기는 훈련입니다.
장의 흐름
- 1절 — 총론: 너희 의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지 말라는 표제.
- 2~4절 — 구제할 때 나팔을 불지 말고 은밀하게 하라.
- 5~15절 — 기도할 때 위선과 빈말을 버리라. 주기도문과 용서의 조건.
- 16~18절 — 금식할 때 슬픈 얼굴을 꾸미지 말라.
- 19~24절 —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 눈의 단일함과 두 주인.
- 25~34절 —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단락별 해설
1~4절 —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자선을 베푸는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게 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받을 상이 없다." (마태복음 6장 1절)
이 한 절(1절)이 6장 전체의 표제입니다. 구제도, 기도도, 금식도 모두 이 원칙 아래에서 다뤄집니다.[JFB] 문제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를 누구에게 보이려 하느냐입니다. 헛된 영광을 바라는 마음은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슬며시 파고드는 교묘한 죄여서, 세상 욕심을 이긴 사람에게도 가장 쉽게 스며듭니다.[헨리] 그래서 예수님은 위선자를 언급하십니다. 여기서 위선자란 본래 무대에서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JFB·칼빈] 겉과 속이 다른 채로 사람들 앞에서 경건한 척 연기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두고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았다"라고 하십니다(2절). 이 말은 사람의 칭찬을 목적으로 삼으면 그 칭찬이 받을 상의 전부이고, 하나님께 받을 상은 남지 않는다는 뜻입니다.[공통] 세상의 인정은 성도에게는 길 가는 데 쓰는 노잣돈이지만, 위선자에게는 그것이 곧 받을 삯의 전부입니다.[헨리] 그래서 예수님은 은밀함을 명하십니다.
"너는 자비를 베풀 때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마태복음 6장 3절)
이 말씀은 남에게 숨기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왼손은 내 몸의 일부이니, 내가 한 선행을 나 자신조차 너무 오래 의식하지 말라는 뜻입니다(3절).[헨리] 선행을 마음속 기억에 오래 담아 두면 그것이 영적 교만의 먹이가 되기 때문입니다.[JFB] SNS에 좋은 일을 올리고 반응을 기다려 본 적이 있다면, 이 말씀이 남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5~15절 — 골방의 기도와 주기도문
"그러나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 6절)
예수님은 공개 기도 자체를 금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낼 기회로 삼는 과시 기도를 경계하십니다.[JFB] 위선자는 기도 자체가 아니라 자신을 내보일 기회를 주는 기도를 사랑했습니다.[헨리] 여기서 "골방"은 반드시 특정 장소를 가리키기보다 사람의 시선에서 물러나라는 비교의 표현입니다.[칼빈] 은밀한 자리에서 우리는 모든 곳에 계신 하나님을 홀로 마주하게 됩니다(6절).[헨리]
예수님은 또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7절).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같은 말의 반복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이 말을 쏟아내며 말을 많이 해야 들어주실 줄 아는 태도입니다.[JFB] 하나님은 이방의 신들과 달라서, 깨우거나 설득해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칼빈]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아시는데도 기도하라 하시는 이유는, 기도가 하나님께 정보를 드리는 일이 아니라 우리 믿음을 훈련하고 염려를 그분 품에 쏟는 일이기 때문입니다.[칼빈] 그리고 예수님은 모범이 되는 기도를 주십니다. 이 기도는 땅에서 하늘로 보내는 한 통의 편지와 같습니다. 받는 분과 주소와 간구와 마무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헨리]
주기도문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앞의 세 간구는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향하고, 뒤의 세 간구는 우리의 필요를 향합니다. 이는 십계명의 두 돌판 구조와 나란합니다.[헨리·칼빈]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이 기꺼이 드러내 주신 자기 나타내심을 뜻합니다(9절).[풀핏] 이미 거룩하신 분을 거룩하게 만들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분이 거룩하게 여겨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풀핏]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는 하나님 통치가 온전히 세워지기를 구하는 것으로, 그 나라는 억지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 복종과 자기 부인으로 이루어집니다(10절).[칼빈·풀핏]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의 양식은 그날그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제 음식을 가리킵니다(11절).[칼빈·풀핏] "우리의 빚을 용서하여 주시고"에서 죄는 하나님께 마땅히 드릴 것을 드리지 못해 생긴 빚으로 그려집니다.[헨리·칼빈·풀핏] 이미 씻음 받은 사람도 매일 발을 씻어야 하듯, 우리는 날마다 용서를 구합니다(12절).[헨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소서"는 사실상 하나의 간구로,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심으로 악에서 건져 달라는 뜻입니다(13절).[칼빈]
이어지는 말씀은 무겁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이 기도를 드리는 것은, 기도할 때마다 스스로를 향해 저주를 부르는 셈입니다(14~15절).[헨리] 친구에게 받은 상처를 붙든 채 용서를 구하는 내 모습이 여기 겹쳐 보입니다.
16~18절 — 슬픈 얼굴을 꾸미지 말라
"그러나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마태복음 6장 17절)
금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의무를 준비시키는 수단입니다.[헨리] 위선자는 사람에게 금식을 보이려고 일부러 얼굴을 흉하게 꾸몄지만(16절), 예수님은 오히려 평소처럼 단장하라 하십니다(17절).[칼빈] 유대인은 애도 기간이 아니면 늘 기름을 발랐고, 고대인에게 기름 바름은 특별한 기쁨의 상징이었습니다.[JFB·풀핏] 힘든 절제의 시간마저 슬픔을 전시하는 무대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19~24절 —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6장 21절)
마음은 언제나 보물을 따라갑니다(21절). 나침반이 자석을 향하고 해바라기가 해를 따르듯 말입니다.[헨리] 그래서 무엇을 보물로 삼느냐가 곧 내가 어디를 향해 사는가를 결정합니다. 루터의 말처럼 사람이 사랑하는 그것이 곧 그의 하나님입니다.[JFB] 이어 예수님은 눈을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따르고 다른 쪽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복음 6장 24절)
여기서 정죄되는 것은 재물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는 것, 곧 재물을 생각과 추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풀핏] 재물이 마음의 지배권을 차지하면 하나님은 그 자리를 잃으십니다(24절).[칼빈] 미래의 안정을 위해 성적과 스펙을 쌓는 일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마음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때가 위험한 것입니다.
25~34절 —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예수님이 금하시는 "염려"는 앞을 내다보는 준비가 아니라, 믿음 없이 불안해하고 조바심 내는 마음입니다(25절).[JFB·칼빈] 예수님은 하늘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가리키시며 더 큰 것으로 더 작은 것을 설득하십니다. 이성 없는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를 돌보지 않으실 리 없다는 것입니다(26절).[JFB] 아무리 염려해도 우리는 자기 수명을 한순간도 늘리지 못합니다(27절).[JFB·풀핏] 지나친 염려의 뿌리는 결국 불신앙이며, 탐욕을 고치는 유일한 약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칼빈]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 33절)
이 말씀은 산상수훈 전체의 위대한 결론입니다. 나라와 의는 이 설교의 두 핵심 주제입니다.[JFB] 순서가 중요합니다. 다른 모든 것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나중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두면 나머지는 더하여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다. 그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 (마태복음 6장 34절)
미리 앞당겨 걱정하는 것은 염려를 두 배로 늘릴 뿐입니다.[JFB] 하나님이 하루씩 나누어 주신 짐을, 굳이 한꺼번에 다 짊어지려 할 이유가 없습니다.[헨리]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시험 결과와 진로를 오늘 미리 다 앓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연결된 말씀
- 출애굽기 20장 — 십계명의 두 돌판. 주기도문의 앞 세 간구와 뒤 세 간구가 이 두 돌판 구조와 나란합니다.
- 역대상 29장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의 송영이 유래한 다윗의 기도. 성전 회중의 응답에서 온 표현입니다.
- 다니엘 10장 — 애도할 때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는 기록. 17절에서 기름을 바르라 하신 말씀의 배경이 됩니다.
- 로마서 8장 —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 말이 없는 기도에 하나님이 더 깊이 감동하신다는 8절과 이어집니다.
- 야고보서 5장 — 좀먹은 옷과 녹슨 재물. 땅에 쌓은 보물이 무너진다는 19~20절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6장은 신앙의 무대를 사람의 시선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옮기라고 초대합니다. 구제도 기도도 금식도,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만을 관객으로 삼을 때 비로소 참된 의가 됩니다.[공통]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이시기에, 우리는 내일을 미리 앓지 않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습니다.[헨리] 남에게 보이려는 신앙은 사람의 박수를 상으로 받지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은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아버지의 갚으심을 바라봅니다. 오늘 내가 드리는 기도와 선행의 관객이 사람인지 하나님인지, 잠시 멈추어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사람의 시선을 얻으려고 신앙을 연기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한 사람인가요? 그리고 나는 내일의 걱정을 먼저 짊어지는 사람인가요,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