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7장 — 나그네로 서서 바로를 축복한 야곱
요약
창세기 47장은 요셉 이야기의 마지막 대목에 놓여 있습니다. 앞 장에서 야곱의 온 집안이 기근을 피해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왔습니다. 이제 47장은 그들을 이집트의 최고 권력자 바로 앞에 정식으로 세우는 장면으로 문을 엽니다. 요셉이 형제 다섯을 소개하고, 늙은 아버지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며, 온 가족은 고센의 가장 좋은 땅에 자리를 잡습니다. 장의 뒷부분은 시선을 넓혀, 기근이 이집트 전역을 삼키는 동안 요셉이 백성의 돈과 가축과 땅을 차례로 사들여 나라를 살려 낸 토지 정책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집트에서 십칠 년을 더 산 야곱이 요셉에게 자기를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맹세를 받는 임종의 부탁으로 장을 닫습니다. 이 장이 붙드는 중심은 하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 곁에 서서도 자신을 "나그네"라 부른 한 사람의 믿음입니다.
장의 흐름
- 1~6절 — 요셉이 형제 다섯을 바로 앞에 세우고, 바로가 고센 땅 정착을 허락함.
- 7~10절 — 늙은 야곱이 바로 앞에 서서 축복하고, 나이와 나그네 삶에 대해 문답함.
- 11~26절 — 가족은 라암셋 땅에 정착하고, 기근이 깊어지는 동안 요셉이 돈·가축·땅을 사들여 백성을 먹임.
- 27~31절 — 이스라엘이 고센에서 번성하고, 야곱이 임종에 이르러 가나안 매장을 맹세로 부탁함.
단락별 해설
1~6절 — 형제들을 바로 앞에 세우다
바로가 요셉의 형제들에게 "너희의 생업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기를 "주의 종들은 우리도 우리 조상들도 양을 치는 목자입니다" 하였다. (창세기 47장 3절)
요셉은 이미 아버지와 형제들이 어디에 정착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정착을 마음대로 진행하지 않고, 먼저 바로에게 아룁니다(1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 권한을 앞세우기 쉬운데, 요셉은 오히려 신하로서 왕에 대한 존경을 지켰습니다.[헨리] 그때 요셉은 이집트의 이인자였고 형제들은 보잘것없는 이방인이었지만, 요셉은 그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형제로 인정하며 바로 앞에 세웁니다(2절).[헨리] 부유하고 지위 높은 사람이 가난한 친족을 못 본 척해서는 안 된다는 도전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바로가 "너희의 생업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형제들은 미리 배운 대로 "목자"라고 대답합니다(3절). 세상에 자리를 둔 사람은 저마다 그에 맞는 직업을 가져야 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은 벌집의 수벌처럼 공동체의 짐이 되는 존재입니다.[헨리] 목자라는 고백은 이집트인에게 수치스럽게 여겨지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비천함이 이스라엘을 이집트 사람들과 뒤섞이지 않게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순결하고 구별되게 보존해 주었습니다.[칼빈] 형제들은 또 자신들이 "잠시 나그네로 살려고" 왔다고 아룁니다(4절). 고센은 영원한 정착지가 아니라 기근을 피해 잠시 머무는 거처였고, 언젠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은 그들이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희망의 표지였습니다.[헨리·JFB] 바로는 흔쾌히 가장 좋은 땅을 내주며, 형제 중에 능력 있는 사람이 있거든 자기 가축의 책임자로 세우라고 합니다(6절). 자기 일에 부지런한 사람은 결국 왕들 앞에 서게 됩니다.[헨리]
7~10절 — 야곱, 바로 앞에 서서 축복하다
야곱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나그네로 지내 온 세월이 백삼십 년입니다. 제 삶의 날들은 짧고 험난하였으며, 제 조상들이 나그네로 지낸 세월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창세기 47장 9절)
이번에는 요셉이 늙은 아버지 야곱을 모셔 들여 바로 앞에 세웁니다. 그러자 야곱이 바로를 축복합니다(7절, 10절). 관례로 보면 작은 자가 큰 자에게 축복을 받는 법인데, 여기서는 순서가 뒤집힙니다.[헨리] 야곱의 축복은 세상에서 주고받는 인사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종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경건하고 거룩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칼빈·풀핏] 바로는 야곱에게 나이를 묻습니다(8절). 노인의 위엄 있는 모습이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인데, 당시 이집트인의 수명은 이미 짧아져 있어서 히브리 족장이 누리던 장수가 놀라움으로 다가왔습니다.[JFB]
야곱의 대답에는 겸손과 믿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9절). 백삼십 년을 "짧다"고 말한 것은 지나온 세월이 되돌아볼 때 순식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고, "험난하였다"고 한 것은 그의 삶이 거의 쉼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JFB] 자신을 "나그네"라 부른 것은 겸손이며, 조상들의 나그네 세월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 것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헨리] 이 고백은 불평이 아니라, 오히려 조상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미하는 감사였습니다.[칼빈]
11~26절 — 정착, 그리고 기근 속 요셉의 정책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우리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내 주께 은혜를 입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바로의 종이 되겠습니다" 하였다. (창세기 47장 25절)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라암셋 땅에 정착시킵니다(11절). 라암셋은 고센 지역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으로 보이며, "푸른 땅"이라는 뜻의 고센은 히브리 목자들에게 더없이 알맞은 비옥한 초원이었습니다.[풀핏·JFB] 그런데 장면이 바뀌면 온 땅에 기근이 극심해집니다(13절). 통상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잠시만 멈추어도 사람은 굶주려 망하는 존재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에 얼마나 절대적으로 기대어 살고 있는지를 일깨웁니다.[헨리] 놀랍게도 그 기근 속에서 야곱의 가족은 풍족히 먹었고 이집트인은 주려 죽어 갔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그렇지 않은 자를 이렇게 구분하십니다.[헨리]
백성은 돈이 떨어지자 가축을 내놓고, 이듬해에는 몸과 땅까지 내놓습니다(16절, 18절). 가축을 받은 조치는 굶주린 짐승과 백성을 함께 살리기 위한 가장 현명한 처사였습니다.[JFB] 이 대목에서 눈여겨볼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왕의 막대한 돈을 손에 쥐고도 한 푼도 가로채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죄를 짓지 않은 이 청렴은, 그의 가슴 속에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가 살아 있었음을 드러냅니다.[칼빈] 요셉의 토지 정책이 가혹하다는 비판이 오래도록 있었지만, 그는 폭력으로 강제한 것이 아니라 백성의 자발적인 요청에 따라 거래를 맺었고, 개인의 자유는 남겨 둔 채 땅만 사들였습니다.[칼빈·풀핏] 백성을 성읍으로 옮긴 것도 곡물 창고가 있는 곳으로 이주시키기 위한 편의였습니다.[JFB] 다만 제사장들의 땅만은 사지 않았습니다(22절). 바로가 거짓 신을 섬기는 제사장까지 부양하려 했다면,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얼마나 더 큰 잘못이겠습니까.[칼빈] 마침내 요셉은 수확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바치는 소작법을 세웁니다(24절, 26절). 이는 십일조를 걷던 다른 나라 왕들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것이었고, 백성 스스로도 가혹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칼빈·풀핏] 그래서 그들은 "주께서 우리 생명을 살리셨습니다"라며 오히려 감사합니다(25절).
27~31절 — 야곱의 마지막 부탁
내가 내 조상들과 함께 잠들거든, 너는 나를 이집트에서 메고 나가 그들의 묘지에 묻어 다오." 요셉이 대답하기를 "제가 아버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였다. (창세기 47장 30절)
이스라엘은 고센에서 소유를 얻고 자식을 낳아 크게 번성합니다(27절). 야곱은 이집트에서 십칠 년을 더 살아, 자신의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노년을 누립니다(28절). 요셉이 열일곱 살에 아버지에게서 양육받았던 것처럼, 이제는 야곱이 요셉의 봉양을 받으며 열일곱 해를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노년의 필요를 이렇게 은혜롭게 예비하셨습니다.[헨리] 그러나 그 오랜 세월은 결코 가벼운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하늘 본향의 생생한 그림인 가나안 땅을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야곱에게 몹시 견디기 힘든 일이었으나, 이는 그의 인내를 연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칼빈]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야곱은 요셉을 불러,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하게 합니다(29절). 이것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뜻을 담은 옛날의 매우 엄숙한 맹세 방식이었습니다.[풀핏] 야곱이 굳이 가나안에 묻히기를 원한 것은 단순한 고향 애착도, 무덤을 신성시하는 미신도 아니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 더 나은 본향을 향한 믿음을 선언하는 행동이었습니다.[헨리·JFB] 야곱은 죽은 몸을 가나안으로 옮기라 명함으로써 아들들의 마음에 구원의 소망을 심어 주었습니다.[칼빈] 요셉이 맹세하자, 야곱은 침상 머리에서 몸을 굽혀 경배합니다(31절). 마지막 소원을 이루게 된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절한 것입니다.[헨리] 이 마지막 장면에 대해 어떤 옛 주석가들은 "지팡이 끝"에 기대어 경배했다고 옮기고, 다른 주석가들은 "침상 머리"가 옳다고 봅니다. 히브리어 두 낱말의 모양이 서로 닮아 번역이 갈리기 때문인데, 정작 중요한 것은 야곱이 마지막 숨결까지 하나님께 감사의 절을 올렸다는 사실입니다.[JFB·칼빈·풀핏]
연결된 말씀
- 히브리서 11장 —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요 이방인임을 고백했다는 말씀. 야곱의 나그네 고백(9절)과 가나안 매장 유언(29절)이 더 나은 본향을 향한 믿음임을 밝혀 주는 본문입니다.
- 창세기 15장 — "네 자손이 남의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라"던 예언. 형제들이 "이 땅에 나그네로 살려고 왔다"고 아뢴 이 장 4절에서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 이사야 65장 — 하나님의 종은 먹고 악인은 주릴 것이라는 대조. 기근 중에도 야곱의 가족은 풍족하고 이집트인은 주려 죽었다는 13~15절 해설이 가리키는 본문입니다.
- 마태복음 20장 — "이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요셉이 아버지의 정착을 미리 준비한 모습과 이어지는 본문입니다.
마무리
창세기 47장의 야곱은 이집트에서 가장 높은 권력자 앞에 서서도 자신을 "나그네"라 소개하고, 오히려 그 왕을 축복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는 땅 한 뼘 없이 떠도는 늙은 이방인이었지만, 그의 눈은 더 나은 본향을 향해 있었습니다.[헨리·칼빈] 요셉 또한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쥐고도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한 푼도 탐하지 않았습니다.[칼빈] 우리는 어디에 정착했는지, 얼마나 가졌는지로 자신을 재려 할 때가 많습니다. 성적표의 등급, 남들이 알아주는 학교, 손에 쥔 것들이 곧 나의 자리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장은 다르게 말합니다. 참으로 큰 사람은 가장 높은 곳에서도 자신을 나그네로 아는 사람이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나를 정의하고 있나요, 아니면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나그네로 서 있는 사람인가요?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나는 요셉처럼 하나님을 의식하며 정직하게 서 있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