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 말씀으로 지으신 세상
요약
창세기는 성경 전체의 첫 책입니다. 모세가 기록한 이 책은 세상 창조의 기록으로 문을 엽니다. 옛 주석가들은 이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라면 모든 것의 시작부터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첫 구절은 우주의 기원에 관해 어떤 철학자의 책보다 더 확실하고 유익한 지식을 줍니다. 1장의 짜임새는 셋으로 나뉩니다. 창조 전체의 요약(1~2절), 여섯 날 동안 하루하루 진행된 창조(3~30절), 그리고 완성된 전체를 검토하고 승인하시는 결론(31절)입니다. 이 장이 선언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세상은 우연히 생긴 것도, 영원 전부터 있던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장의 흐름
- 1~2절 — 태초의 창조 요약과, 아직 형태 없이 비어 있던 땅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
- 3~13절 — 첫째~셋째 날. 빛, 하늘(궁창), 바다와 마른 땅, 그리고 식물. 세상의 공간이 나뉘고 준비됩니다.
- 14~25절 —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 전반까지. 해와 달과 별, 물고기와 새, 땅의 짐승. 준비된 공간이 채워집니다.
- 26~31절 —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 복과 다스림의 사명, 그리고 "심히 좋았다"라는 최종 승인.
단락별 해설
1~2절 — 아무것도 없는 데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는 시간이 처음 시작된 순간을 말합니다(1절). 하나님은 왜 더 일찍 세상을 만들지 않으셨을까라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영원 속에는 더 이르고 늦음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헨리] "창조하셨다"라는 말도 특별합니다. 이 단어는 이미 있는 재료로 모양을 다듬었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데서 만드셨다는 뜻이고, 오직 하나님께만 쓰는 단어입니다. 어떤 장인도 재료 없이는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에 매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옛 주석가들은 "세계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를 첫째 원칙으로 세우자고 말합니다. 한편 '하나님'으로 번역된 이름 '엘로힘'은 복수형입니다. 여기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를 본다고 설명하는 주석도 있고, 그 근거로 삼기에는 견고하지 않다며 조심스러워하는 주석도 있습니다(1절).[헨리·JFB·칼빈]
땅은 아직 형태가 없고 텅 비어 있었습니다(2절). 모양도 쓸모도 거주자도 없는, 다듬어지지 않은 덩어리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 위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운행하다'는 새가 알을 품듯,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 감싸고 있었다는 말입니다(2절). 성령은 그 무질서한 덩어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붙들고 계셨습니다. 옛 주석가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지금의 아름답고 질서 있는 세계도 하나님이 붙들지 않으시면 스스로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칼빈] 이 혼돈을 거듭나기 전 우리 영혼의 상태로 읽는 주석도 있습니다. 빛도 질서도 없던 그곳에서 세상을 이끌어 내신 능력이, 우리 안에서도 복된 변화를 이루십니다.[헨리]
3~5절 — 첫째 날, 빛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고 말씀하시니, 빛이 생겨났다." (창세기 1장 3절)
창조의 방법은 명령 한마디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는 원하시고 명하시니 즉시, 그리고 확실하게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3절). 그 말씀의 힘은 일회용이 아닙니다. 피조물의 본성 속에 스며들어 지금도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 옛 주석가가 "일반 섭리는 지속적인 창조"라고 말한 이유입니다.[헨리]
가장 먼저 지어진 것이 빛이라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새 창조, 곧 사람이 거듭날 때에도 영혼 안에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빛입니다(3절). 성령이 먼저 이해를 밝히셔서 마음 전체를 사로잡으십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낮과 밤이라 부르셨습니다(4절, 5절). 빛과 어둠이 매일 교대하는 것은 이 세상이 빛만도 어둠만도 아닌, 섞임과 변화의 세상임을 날마다 일깨웁니다. 하늘에는 완전한 빛만 있고, 이 세상은 둘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이 나옵니다(5절). 히브리 사람들은 하루를 해질녘부터 세었기에 저녁이 먼저 옵니다.[JFB·칼빈]
6~13절 — 둘째·셋째 날, 하늘과 땅과 식물
"하나님께서 "하늘 아래의 물은 한곳으로 모이고, 마른 땅이 드러나라" 하고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창세기 1장 9절)
둘째 날 하나님은 물 한가운데 둥근 공간을 만드셨습니다(6절, 7절). '궁창'이라 불리는 이 공간의 핵심은 단단함이 아니라 넓게 펼쳐짐입니다. 구름을 떠받치고 우리가 숨 쉬는 대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머리 위의 구름은 쏟아질 듯 무거우면서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고 옛 주석가는 말합니다.
셋째 날에는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마른 땅이 드러났습니다(9절, 10절). 물이 온 땅을 덮는 것이 원소의 자연스러운 자리였으니, 바다가 물러나 사람이 살 곳이 마련된 것 자체가 빛나는 기적입니다.[칼빈] 성경에서 물과 바다는 자주 고난과 환난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그것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날 땅은 풀과 채소와 과일나무를 내었습니다(11절, 12절). 해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식물이 먼저 자랐다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태양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리도록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짐승과 사람이 지어지기 전에 먹거리가 먼저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쓰기 전에 미리 마련해 두시는 분입니다.[헨리]
14~19절 — 넷째 날, 해와 달과 별
"하나님께서 두 큰 빛을 만드셔서, 큰 빛으로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한 별들도 만드셨다." (창세기 1장 16절)
빛은 첫째 날에 이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넷째 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주석들의 대답이 일치합니다. 넷째 날은 빛을 처음 만든 날이 아니라, 이미 있던 빛을 해와 달과 별에게 맡겨 시간을 다스리는 직무에 임명하신 날입니다(14절, 16절).[공통] 하나님은 도구인 태양 없이도 우리에게 빛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능력을 도구에 묶어 두어서는 안 됩니다.
달이 "큰 빛"이라 불린 것도 흥미롭습니다. 실제 크기로 치면 달보다 큰 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우리에게 오는 빛의 몫을 기준으로 말합니다. 성경이 쓰인 목적이 우리를 천문학자로 만드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 인도하여 성도로 만드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과학이 무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천문학은 즐거울 뿐 아니라 매우 유용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낸다고 옛 주석가는 분명히 말합니다. 크기가 아니라 쓰임새 때문에 "크다"라 불린 달에서, 가장 큰 사람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고 신실하게 가장 많은 선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교훈을 읽는 주석도 있습니다(16절).[헨리] 짧지만 무거운 반전입니다. 한편 "징조와 계절"을 정하는 표가 되라는 말씀(14절)은 별자리 점의 근거가 아닙니다. 계절과 날과 해를 세게 하는 자연 질서의 표시일 뿐입니다.
20~25절 — 다섯째·여섯째 날, 생명으로 가득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우고,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창세기 1장 22절)
다섯째 날, 물과 하늘이 생명체로 가득 찼습니다(20절, 21절). 여기서 "창조하다"라는 그 특별한 단어가 다시 나옵니다(21절). 생명은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의 도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처음으로 복을 말씀하셨습니다(22절). 이 복은 좋은 말 한마디가 아니라 말씀으로 생식력을 불어넣으신 사건입니다. 그 말씀의 힘은 일시적이지 않고 생물의 본성에 뿌리내려, 지금까지 바다와 하늘을 채우고 있습니다.[칼빈] 여섯째 날 전반에는 땅의 생물들이 지어졌습니다.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이 각각 그 종류대로였습니다(24절, 25절). 거듭 반복되는 "그 종류대로"라는 말은, 각 생물이 저마다 정해진 종류를 따라 지어지고 그 종류대로 번식한다는 뜻입니다.
26~31절 —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심히 좋았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7절)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말투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있으라"라는 명령이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만들자"라는 의논입니다(26절). 권위를 가진 분의 말이 애정을 가진 분의 말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하는 주석도 있고, 사람의 탁월함에 공경을 표하신 것이라고 풀이하는 주석도 있습니다.[헨리·칼빈]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일까요? 겉모습이 아닙니다. 주석들이 한목소리로 가리키는 핵심은 영혼의 도덕적 성품, 곧 지식과 의로움과 참된 거룩함입니다. 그 형상은 사람을 땅 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신 표이기도 합니다(26절). 타락으로 일그러진 이 형상은 새 창조, 곧 거듭남으로 회복됩니다. 또 하나님이 처음에 한 남자와 한 여자만 만드신 것에서, 모든 민족이 한 핏줄에서 나왔고 결혼의 끈이 함부로 풀려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읽는 주석도 있습니다(27절).[헨리]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땅을 가득 채우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28절). 이 다스림은 마음대로 부수는 권력이 아니라, 대리 통치자로서 피조물을 맡아 돌보고 땅의 자원을 활용하라는 사명입니다. 먹거리로는 채소와 열매가 주어졌습니다(29절, 30절). 다스림의 범위는 넓었지만 식탁은 소박했고, 사람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절제와 자족의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가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심히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여섯째 날이었다." (창세기 1장 31절)
날마다 "좋았다" 하셨던 하나님이 마지막에는 "심히 좋았다"라고 하십니다(31절). 부분마다 좋았을 뿐 아니라 전체가 합쳐져 아무것도 더할 것 없이 완전해졌다는 최종 승인입니다.[헨리·칼빈]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검토하신 것은 우리에게 성찰의 모범이 됩니다. 하루를 마칠 때, 한 주를 마칠 때 자기 일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순간에 다 만드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엿새를 들이셨습니다. 사람의 역량에 작품을 맞추셔서, 우리를 멈추어 묵상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안식의 리듬도 이 여섯 날에서 나왔습니다.
연결된 말씀
- 시편 104편 — 하나님이 영을 보내고 거두심에 피조물이 달려 있다는 노래. 세계가 지금도 하나님의 붙드심으로 존속한다는 2절 해설이 가리키는 본문입니다.
- 신명기 32장 — 독수리가 새끼 위에 날개 치며 품는 그림. "운행하셨다"(2절)라는 말의 뜻을 보여 주는 본문입니다.
- 고린도후서 4장 —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도 빛을 비추셨다는 말씀. 첫째 날의 빛(3절)을 새 창조와 연결합니다.
- 마태복음 20장 —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 유용성 때문에 "큰 빛"이라 불린 달(16절)의 교훈과 이어집니다.
- 마태복음 19장 — 예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창조(27절)를 그대로 가져와 결혼의 근거로 삼으신 말씀입니다.
- 골로새서 3장 — 새 사람이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새로워진다는 말씀. 하나님의 형상(27절)의 회복을 말합니다.
- 시편 8편 —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음을 노래한 시. 28절 다스림의 사명이 남긴 "서정적 메아리"로 불립니다.
마무리
창세기 1장은 세상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작품임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하셨고, 순서대로 준비하셨고, 다 만드신 뒤 "심히 좋았다"라고 승인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세계를 붙들고 계십니다.[칼빈] 성적표의 숫자나 SNS 팔로워 수가 나의 가치를 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가치는 처음부터 다르게 매겨져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이고, 하나님은 다 지으신 세계를 보시며 "심히 좋았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형태 없고 텅 빈 혼돈 위에도 하나님의 영은 품고 계셨습니다. 그 품으심이 오늘 나의 어수선한 마음 위에도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 자신을 세상의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그리고 하나님이 그러셨듯, 하루를 마칠 때 나의 하루를 돌아보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