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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과 예복을 입은 사람

마태복음 22장 · 청소년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마태복음 22장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신 마지막 공개 가르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 장에서 시작된 종교 지도자들과의 충돌이 여기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 장은 크게 한 편의 비유와 네 번의 논쟁으로 짜여 있습니다. 먼저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풀지만 초대받은 사람들이 거절하고 심지어 종들을 죽이는 비유가 나옵니다. 그 뒤로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사가 차례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세금 문제, 부활 문제, 가장 큰 계명 문제가 그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예수님이 오히려 그들에게 다윗의 주가 누구냐고 되물으시고,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 채 논쟁이 끝납니다. 잔치 비유의 결론인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받은 사람은 적다"라는 말씀이 이 장 전체를 관통합니다. 초대를 받는 것과 그 초대에 참되게 응답하는 것은 다르다는 물음이 이 장의 심장입니다.

장의 흐름

  • 1~14절 — 혼인 잔치 비유: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 한길에서 불려 온 손님들, 그리고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
  • 15~22절 — 세금 논쟁: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 23~33절 — 부활 논쟁: 사두개인의 질문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증명.
  • 34~40절 — 가장 큰 계명: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온 율법이 달려 있다.
  • 41~46절 — 다윗의 주: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면서 어떻게 그의 주가 되는가.

단락별 해설

1~14절 — 초대받은 사람과 예복을 입은 사람

그런데 임금이 손님들을 보려고 들어왔다가, 거기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았다.
임금이 그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그대는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는가?'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마태복음 22장 11~12절)

이 비유에서 임금은 하나님이시고, 혼인 잔치를 여는 아들은 그리스도이시며, 잔치의 준비는 그리스도의 죽음, 곧 그분의 자기희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헨리] 옛 주석가들은 이 비유가 이전 비유들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아들의 신성을 암시한다고 보았습니다.[JFB] 초대하러 보낸 종들은 선지자와 세례 요한과 사도들, 곧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3절).[헨리]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이 오신 뒤에야 온전히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JFB]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립니다. 한쪽은 밭으로, 또 한쪽은 장사하러 가며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5절), 다른 한쪽은 종들을 붙잡아 죽이기까지 합니다(6절).[JFB] 세상 직업의 일과 이익이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됩니다.[헨리] 세상의 염려가 우리를 얽어맬 때, 그것은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됩니다.[칼빈] 시험 기간의 공부나 학원 일정, 좋아하는 게임처럼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은 것들이 마음의 자리를 다 차지해 버릴 때가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임금의 진노와 군대는 약 사십 년 뒤 로마인들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킵니다(7절).[헨리·풀핏] 앗시리아가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라 불렸듯이, 로마 군대도 여기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심판의 도구입니다.[공통] 그 뒤 한길 네거리에서 만나는 대로 불려 온 손님들은 이방인들을 나타냅니다(9~10절).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섞여 모인 무리는,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를 함께 끌어 모으는 복음의 그물과 같습니다.[헨리] 이 이방인의 부르심은 이미 신명기에서 예언된 말씀의 성취로 그려집니다.[칼빈]

그런데 잔칫집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11절). 이 사람은 교회 안에 있으나 참으로 속하지는 않은 위선자를 나타냅니다.[헨리] 임금이 직접 들어와 손님을 살피실 때 그가 발각되는 장면은, 심판이 각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JFB] 예복이 믿음이냐 거룩한 삶이냐를 따지는 것은 쓸모없는 논쟁입니다. 참된 믿음은 선한 삶과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칼빈] 중요한 것은 그 옷을 어떻게 마련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검사하실 때 오염된 채로 발견되는가입니다.[칼빈·풀핏]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그 사람은 스스로 정죄받은 셈입니다(12절).[JFB]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받은 사람은 적다." (마태복음 22장 14절)

이것이 비유 전체의 결론입니다.[칼빈]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과, 고백과 삶이 서로 어긋나는 사람을 빼고 나면 참으로 택함받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공통] 이것이 곧 좁은 문이요 좁은 길입니다.[헨리] SNS 프로필에 교회를 다닌다고 써 두는 것과, 실제로 예복을 갖추어 입는 것은 다른 일임을 이 한 절이 조용히 묻습니다.

15~22절 —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마태복음 22장 21절)

바리새인들이 헤롯 당원들과 손을 잡습니다(16절). 평소 서로 반대 방향을 보던 두 무리가 하나의 횃불로 만난 것처럼, 그리스도를 무너뜨리려는 목적 하나로 뭉친 것입니다.[헨리] 사탄은 서로 치명적으로 대립하는 분파조차 그리스도를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하나로 모읍니다.[칼빈] 그들은 진실하시다는 칭찬으로 말문을 열지만,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자는 하나님께 자신을 참되게 헌신할 수 없습니다.[칼빈]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추측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므로 그들의 마음속 교활함을 그대로 꿰뚫어 보십니다(18절).[헨리·칼빈] 그들이 가져온 데나리온은 로마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은화였습니다(19절).[칼빈·풀핏] 이 무렵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화폐가 없어 로마 주화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풀핏] 그런데 화폐를 발행하는 권한은 주권을 나타내는 표지여서, 통용되는 화폐를 쓰는 것 자체가 그 권력에 대한 묵시적 복종의 증거로 여겨졌습니다(20~21절).[헨리·풀핏]

예수님의 대답은 시민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을 분명하게 구별하면서도 서로 충돌시키지 않습니다.[칼빈] 우리의 지갑은 황제의 것이지만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의 것이며, 황제의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과 부딪칠 때에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해야 합니다.[헨리] 학교 규칙을 성실히 지키면서도 신앙의 자리를 함께 지키는 일이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짧은 대답이 알려 줍니다.

23~33절 — 부활 때에는 천사와 같다

부활 때에는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다. (마태복음 22장 30절)

이번에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나섭니다(23절). 이들은 오경을 최고 권위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바탕이 되는 초자연적인 것에는 걸려 넘어진, 합리주의자이자 회의론자였습니다.[풀핏] 그들이 든 일곱 형제 이야기의 배경은, 자식 없이 죽은 형을 위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 대를 이어 주던 옛 율법 규정입니다(24절).[풀핏] 그들의 조잡한 유물론은 지금 눈에 보이는 세계의 조건을 그대로 미래의 영적 세계로 끌어와 두 세계를 뒤섞은 것이었습니다.[풀핏]

예수님은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해 잘못 생각한다고 책망하십니다(29절).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이 모든 오류의 뿌리이자 원인입니다.[헨리·칼빈] 부활한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까닭은, 다시 죽지 않으므로 자손을 이어 갈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헨리·풀핏] 죽음의 법이 폐지된 곳에서는 출생의 이유도 함께 폐지되는 것입니다.[풀핏]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셨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마태복음 22장 32절)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랜 뒤에 주어졌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었다"가 아니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다"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 것은, 영혼이 죽지 않으며 몸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함께 증명합니다.[헨리·풀핏] 사람은 몸과 영혼이 함께 있어야 온전하므로, 몸의 부활이 반드시 뒤따라옵니다.[공통] 죽음과 그 뒤의 세계가 막연히 두려운 나이일수록, 나를 지금도 살아 있는 이의 하나님으로 붙드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옵니다.

34~40절 — 가장 큰 계명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첫째가는 큰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2장 37~39절)

이번 질문을 던진 율법사는 호의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35~36절).[헨리·칼빈] 당시 랍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율법에는 육백 개가 넘는 계명이 있었고, 학파들은 그것을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으로 나누곤 했습니다.[풀핏] 그런 배경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는 물음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드신 첫째 계명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한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능력을 기울인 강렬한 사랑을 가리킵니다.[풀핏]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은 첫째 계명 위에 기초를 두고 거기서 흘러나옵니다(39절).[헨리]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자기 사랑을 첫째 자리에 두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에게만 치우친 마음을 바로잡아 이웃을 나와 같은 자리에 놓으라는 뜻입니다.[칼빈] 나만 챙기던 시선을 옆 친구에게로 옮기라는 초대입니다.

온 율법과 선지자가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는 말씀은, 성경 전체가 결국 여기에 걸려 있다는 뜻입니다(40절).[풀핏] 사랑의 법은 확실한 곳에 박힌, 뽑히지 않을 못과 같아서 그 위에 모든 계시가 걸려 있습니다.[헨리·공통]

41~46절 — 다윗의 주는 누구인가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가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이 "다윗의 자손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마태복음 22장 42절)

계속 시험당하시던 예수님이 이번에는 먼저 물으십니다. 대답하기 쉬운 질문, 곧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를 물으신 뒤에, 대답하기 어려운 난제를 이어 던지십니다.[헨리]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내 주"라 불렀다면(44절),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이 인용의 목적은 메시아가 단순한 다윗의 인간 후손이 아니라, 다윗조차 "주"라 부른 신적 존재임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헨리·풀핏]

이 대목을 두고, 다윗이 이 시편을 지었다는 것을 부인하며 그리스도의 무지나 기만을 끌어내려 한 후대의 비평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저작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신 것이 아니라 당시 통용되던 견해를 따르셨을 뿐이며, 그 논거는 저자가 누구든 똑같이 유효하다고 설명하는 주석이 있습니다.[풀핏] 아무도 예수께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였고, 그날부터 감히 더 묻는 사람도 없었습니다(46절). 그들이 침묵한 것은 메시아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헨리] 그 침묵은 그들의 입을 막았을 뿐 마음을 돌이키지는 못했습니다.[헨리]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미루는 마음이, 그날 성전에 있던 사람들에게만 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연결된 말씀

  • 출애굽기 3장 —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32절의 부활 증명이 여기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에서 왔습니다.
  • 신명기 25장 — 사두개인이 24절에서 든 일곱 형제 이야기의 배경인 형사취수혼 규정이 이 장에 있습니다.
  • 신명기 32장 — 한길에서 이방인을 불러 모으는 9~10절이 이 장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됩니다.
  • 시편 110편 — 다윗이 그리스도를 "내 주"라 부른 44절 인용이 이 시에서 나왔습니다.
  • 로마서 8장 — 부활의 자녀로 입양된 우리의 실상이 마지막 날까지 감추어져 있다는 것과 이어집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22장은 초대를 받는 것과 그 초대에 참되게 응답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잔치에 몸만 들어온 사람과 예복을 갖추어 입은 사람이 나뉘듯, 부름받은 사람은 많아도 참으로 택함받은 사람은 적습니다.[공통] 세금과 부활과 계명을 두고 벌어진 네 번의 논쟁에서 예수님이 한결같이 드러내신 것은, 겉으로 던지는 질문 뒤에 숨은 마음을 그분이 다 아신다는 사실입니다.[헨리] 그리고 그 모든 논쟁의 끝에서, 성경 전체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계명에 달려 있다는 답이 우뚝 섭니다.[공통] 시험지의 정답을 맞히듯 신앙의 말을 잘 아는 것과, 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나는 잔치에 이름만 올려 둔 사람인가요, 아니면 마음을 다해 예복을 갖추어 입은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