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청소년어린이일반

창세기 14장 — 사랑으로 나선 전쟁과 멜기세덱의 축복

창세기 14장 · 청소년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창세기 14장은 성경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전쟁 이야기입니다. 아브람이 부름받아 가나안에 살던 시대의 일로,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가는 사건이 그 배경입니다. 옛 주석가들은 아브람과 롯이 여기 얽히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 전쟁 자체를 전혀 몰랐을 것이라고 말합니다.[헨리] 장의 내용은 크게 넷으로 나뉩니다. 네 왕과 다섯 왕의 전쟁(1~11절), 롯이 포로가 됨(12절), 아브람의 구출과 승리(13~16절), 그리고 귀환 이후에 이어진 멜기세덱의 축복과 소돔 왕과의 대화(17~24절)입니다.[헨리] 이 장이 선언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아브람이 칼을 든 유일한 이유는 탐욕이나 야망이 아니라 형제를 향한 사랑이었고, 승리 뒤에도 그는 세상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장의 흐름

  • 1~11절 — 조공에 지친 다섯 왕의 반란과 네 왕 동맹군의 원정. 싯딤 골짜기 전투에서 다섯 왕이 패주합니다.
  • 12절 — 소돔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이 재물과 함께 포로로 끌려갑니다.
  • 13~16절 — 소식을 들은 아브람이 훈련받은 종 318명과 동맹자를 거느리고 밤에 기습해 롯과 사람들을 모두 되찾습니다.
  • 17~24절 — 소돔 왕이 아브람을 맞이하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축복하며, 아브람은 소돔 왕의 재물을 거절합니다.

단락별 해설

1~11절 — 성경 최초의 전쟁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의 때에 이런 일이 있었다." (창세기 14장 1절)

이 전쟁은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전쟁입니다(1절).[헨리] 침략한 네 왕은 갈대아나 페르시아의 왕 본인이 아니라 그 이름을 딴 지역 우두머리였을 가능성이 높고, 방어한 다섯 왕 중에서 소알 왕만 이름이 빠진 것은 그가 미미하거나 악명이 높아 기록할 가치조차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2절).[헨리] 전쟁의 원인은 열두 해나 조공을 바치다 지친 다섯 왕의 반란이었습니다(4절).[헨리·JFB] 기름진 나라는 욕심의 먹잇감이 되고, 나태하고 사치한 나라는 손쉬운 먹잇감이 됩니다.[헨리] 결국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교만과 탐욕과 야망이라는 정욕이고, 채워지지 않는 이 우상들 앞에 수많은 사람의 피가 제물로 바쳐졌습니다.[헨리]

싯딤 골짜기는 오늘날의 사해입니다(3절). 지중해 수면보다 훨씬 낮고 소금기가 매우 강한 곳으로, 도시들이 멸망한 뒤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풀핏] 그런데 그 골짜기에는 검은 아스팔트가 고인 역청 구덩이가 가득했습니다(10절).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나다가 거기에 빠졌습니다. 옛 주석가는 이것을 두고 소돔 왕이 항복 대신 저항을 택한 결과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멸하시려는 자는 먼저 미치게 하신다"라는 옛말을 인용합니다.[헨리] 이 왕들이 두려움에 낙담한 나머지 적의 칼을 피하려고 스스로 구덩이에 몸을 던져 한 죽음을 다른 죽음으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하는 주석도 있습니다(10절).[칼빈] 풍성한 섭리의 선물을 탐식과 방탕으로 남용할 때, 하나님은 그 남용한 것을 심판으로 도로 빼앗아 가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공의입니다.[헨리]

12절 — 롯, 포로가 되다

"또 소돔에 살고 있던 아브람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도 빼앗아 가지고 갔다." (창세기 14장 12절)

롯이 소돔에 살고 있었다는 이 짧은 말은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12절). 처음에 벧엘을 떠나 양 떼를 몰던 모습에서, 이제 죄악의 도시 한복판에 정착하기까지 영적 생활에 상당한 타락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풀핏] 그의 재물조차 욕심에서 비롯한 요단 평야 선택으로 얻은 것이었습니다.[풀핏] 이 순간 롯의 양심이 얼마나 그를 괴롭혔을지 생각해 봅니다. 친절하고 경건한 친족 아브람을 제 손으로 떠나간 이기적인 어리석음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JFB] 여기서 배울 교훈은 무겁습니다. 우리가 의무의 길에서 벗어날 때마다 스스로 하나님의 보호에서 멀어지며, 자기가 선택한 길이 계속 복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JFB] 마치 부모님이 걱정하며 말리는 자리에 굳이 남아 있다가 그 자리의 위험을 함께 뒤집어쓰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롯을 다른 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고통은 선한 이와 악한 이에게 똑같이 임하며, 악하고 경건하지 않은 이들과 가까이 얽힐수록 그 채찍이 우리에게도 더 빨리 닿습니다(12절).[칼빈]

13~16절 — 사랑에서 나온 용기

"아브람은 자기 친족이 사로잡혔다는 말을 듣고, 자기 집에서 태어나 훈련받은 사람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다." (창세기 14장 14절)

이것은 아브람이 평생 관여한 유일한 군사 행동입니다(14절). 그런데 그 출정은 탐욕이나 야망이 아니라 순전히 사랑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헨리] 아브람에게는 자신에게 수고와 위험만 끼친 롯을 위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악을 악으로 갚는 대신 즉시 구출에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JFB] 그가 "히브리 사람"이라 불린 것도 뜻이 깊습니다(13절). 이 말은 강을 건넜다는 뜻이 아니라 에벨의 후손이라는 혈통의 이름으로, 그 타락한 시대에 참 종교의 고백을 이어 간 사람을 가리킵니다.[헨리·칼빈] 아브람은 이 일에서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했습니다.[헨리]

그가 거느린 318명은 "훈련받은" 종이었습니다(14절). 이들은 반드시 전쟁 기술을 배운 군인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길러지고 신앙 교육까지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헨리·칼빈·풀핏] 이 사실 하나가 아브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여 줍니다. 그를 섬기는 종이 많았으니 위대한 사람이고, 그들 모두를 하나님 섬김으로 가르쳤으니 선한 사람이며, 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종들을 전쟁에 대비시켰으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헨리] 거룩한 종교는 평화를 가르치지만 대비하는 것까지 금하지는 않습니다.[헨리] 게다가 이 큰 가솔은 318명을 내보내고도 양 떼를 돌볼 사람이 남을 정도였으니, 그의 집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JFB] 이 종들은 어릴 때부터 아브람의 믿음에 젖어 자랐기에 더 용감하게 싸웠습니다.[칼빈]

아브람은 이웃인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와 동맹을 맺고 함께 나섰습니다(13절). 모든 사람에게 존중과 친절로 대하는 것이 지혜이자 의무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도 필요할 때는 섭리가 허락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헨리] 그리고 그는 밤에 군대를 나누어 적을 쳤습니다(15절). 이 방식은 오늘날 아랍 족장들의 습격과 정확히 같은 양상으로, 당시엔 보초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사방에서 들이쳐 장막을 무너뜨리면 대개 상대가 공황에 빠져 싸움이 끝났습니다.[JFB] 부대를 나눈 것은 적에게 더 큰 공포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칼빈] 승리에 들뜬 대군을 작은 부대로 감히 공격한 것은 아브람의 믿음에 돌려야 하고, 별 어려움 없이 정복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돌려야 합니다.[칼빈] 진정한 군사적 재능이 직업 군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아브람이 보여 줍니다.[풀핏] 여기서 아브람의 고귀한 경건 세 가지가 드러납니다. 복수심이 전혀 없는 자기를 잊은 아량, 분노가 조카의 슬픈 운명에 완전히 잠긴 형제적 긍휼, 그리고 유약하지 않고 신속하고 단호한 능동적 선행입니다.[풀핏]

17~20절 — 멜기세덱의 축복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창세기 14장 18절)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 앞에 갑자기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살렘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18절).[헨리·풀핏] 그의 정체를 두고는 견해가 갈립니다. 노아의 아들 셈이라 보거나, 예수님이 미리 나타나신 것이라 보거나, 참 종교를 지켜 온 가나안 왕이라 보는 세 견해를 나열하며 명확한 결론을 아끼는 주석도 있습니다.[헨리] 반면 그가 실존한 가나안 제사장왕이라고 분명하게 결론짓는 주석도 있습니다.[칼빈·풀핏] 그러나 네 주석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멜기세덱이 왕이자 제사장으로서 훗날 오실 그리스도의 왕권과 제사장직을 미리 보여 주는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공통]

그가 가지고 나온 떡과 포도주는 왕으로서 선을 행하고 나누며 손님을 대접하는 행동이자, 하나님이 영적 갈등에 지친 사람을 위해 은혜 언약 안에 쌓아 두신 영적 양식의 상징입니다(18절).[헨리] 그는 승리를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 승리를 이룬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려고 나왔습니다.[JFB] 정당한 일에서 성공했을 때 우리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경건한 태도입니다.[JFB]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그분 안의 절대적 완전함과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주권을, "천지의 주인"은 그분이 모든 피조물의 합법적 소유자이심을 나타냅니다(19절).[헨리] 이렇게 하나님을 부르는 것 자체가 기도 안에서 우리의 믿음과 경외심을 크게 돕습니다.[헨리]

그러자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드렸습니다(20절). 이 십일조는 멜기세덱의 친절에 대한 답례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제물로, 제사장의 신적 직분을 인정하는 표시였습니다.[헨리·JFB] 이것은 훗날 모세 율법의 십일조 규정보다 앞선 관습입니다(20절).[JFB·칼빈·풀핏] 다만 그 십일조가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갈립니다. 대개는 전리품의 십분의 일로 담담히 받아들이지만, 아브람이 노획물에서는 실 한 오라기도 취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 이 십일조는 노획물이 아니라 본래 자기 소유에서 취했을 것이라 추측하는 주석도 있습니다(20절).[칼빈]

21~24절 — 실 한 오라기도 받지 않겠다

"그대의 것은 실 한 오라기나 신발 끈 하나라도 내가 취하지 않겠소. 그대가 '내가 아브람을 부유하게 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오." (창세기 14장 23절)

소돔 왕은 "사람은 내게 주고 재물은 그대가 가지시오"라고 제안했습니다(21절). 그 시대 전쟁 관습으로는 아브람에게 빼앗긴 재물을 가질 권리가 있었고, 소돔 왕도 그 권리를 인정한 것입니다.[JFB] 그러나 아브람은 그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직한 긍지와 너그러움으로 거절했습니다.[JFB] "내가 손을 들어"라는 말은 동방 특유의 강한 표현으로 "내가 맹세한다"라는 뜻입니다(22절).[JFB]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는 옛 맹세 의식입니다.[칼빈·풀핏]

아브람이 실 한 오라기도, 신발 끈 하나도 취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소돔 왕이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23절).[JFB] 이 관대한 거절은 살아 있는 믿음이 세상 재물을 거룩한 경멸로 바라보게 함을 보여 줍니다.[헨리] 연약한 양심은 작은 일에서도 죄를 두려워합니다.[헨리] 바로 이 지점에서 아브람은 롯과 뚜렷이 대조됩니다. 롯은 재물을 좇아 소돔으로 들어갔지만, 아브람은 그 재물을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물리쳤습니다.[풀핏] 마치 남들이 다 챙기는 상황에서도 정당하지 않은 몫에는 손대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다만 아브람은 자기 원칙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간 젊은 사람들이 먹은 것과 동맹자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몫은 받게 했습니다(24절). 옳게 행동하되 다른 이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처지를 존중하는 것도 덕의 적지 않은 부분입니다.[칼빈]

연결된 말씀

  • 시편 110편 —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예언. 18절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준다는 해설이 가리키는 본문입니다.
  • 히브리서 7장 —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십일조를 받았고 그가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밝히는 말씀. 18~20절 축복과 십일조의 의미를 풀어 줍니다.
  • 잠언 17장 — "형제는 환난을 위하여 났다"라는 말씀. 아브람이 형제 롯을 구하러 나선 13~16절의 사랑을 뒷받침합니다.
  • 마태복음 10장 —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씀. 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종들을 대비시킨 아브람의 지혜(14절)와 이어집니다.

마무리

창세기 14장은 아브람이 칼을 든 단 한 번의 전쟁이 오직 형제를 향한 사랑에서 나왔고, 승리 뒤에도 그가 세상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붙들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롯을 구했지만, 정작 자기가 받을 수 있는 전리품은 실 한 오라기조차 거절했습니다. 남들이 다 챙기는 자리에서 정당하지 않은 몫에 손대지 않기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억울할 때, 롯처럼 이익을 좇아 위험한 자리로 들어갈지 아브람처럼 손해를 감수하고 옳은 자리에 설지 우리도 매일 갈림길에 섭니다. 아브람의 용기는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두려움보다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정직 뒤에는 언제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있었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손해를 감수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인가요? 그리고 이익 앞에서 실 한 오라기의 유혹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JFB]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