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주석
청소년어린이일반

마태복음 26장 — 배신의 거래와 겟세마네의 잔

마태복음 26장 · 청소년판 쉬운 주석 · 근거: 퍼블릭 도메인 주석 5종 종합

요약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증명해 온 책입니다. 그 증명의 마지막 장면, 곧 십자가로 향하는 수난의 이야기가 26장에서 시작됩니다. 앞의 다섯 장 동안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마지막 가르침을 마치셨고, 이제 말씀을 다 마치신 뒤에야 자신의 죽음을 다시 예고하십니다. 이 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1~35절)은 수난에 앞선 예비적 사건들 — 수난 예고와 음모, 베다니의 기름 부음, 유다의 배신 거래, 유월절 식탁과 성찬 제정, 베드로의 장담입니다. 뒷부분(36~75절)은 수난 자체의 시작 — 겟세마네의 고뇌, 배신과 체포, 가야바 앞 재판, 그리고 베드로의 세 번 부인입니다. 사복음서가 모두 이 이야기를 다른 어떤 역사보다 자세히 기록할 만큼, 26장은 복음의 심장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장의 흐름

  • 1~16절 — 이틀 후 유월절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예수님, 관저에 모여 음모를 꾸미는 대제사장들, 값진 향유를 부은 한 여자, 은 삼십에 스승을 판 유다.
  • 17~30절 — 유월절 준비와 식탁, 배신자를 향한 예고, 빵과 잔으로 세우신 새 언약, 찬송을 부르며 나선 올리브 산.
  • 31~46절 — 흩어질 제자들과 베드로의 장담, 그리고 "이 잔을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세 번 엎드리신 겟세마네의 기도.
  • 47~56절 — 입맞춤이라는 신호, 칼을 빼든 제자, "네 칼을 도로 칼집에 넣어라"는 명령, 도망하는 제자들.
  • 57~75절 — 거짓 증언과 침묵, 신성모독으로 내려진 사형 선고, 그리고 닭이 울 때 통곡한 베드로.

단락별 해설

1~16절 — 음모와 향유, 그리고 배신의 거래

예수님은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신" 후에야 고난을 다시 예고하십니다(1절). 자신의 증언을 다 마치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쓰러지지 않는 법입니다.[헨리] 한편 대제사장들은 명절 동안에는 예수님을 잡지 않기로 의논합니다(5절).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백성의 소동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헨리]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전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이 결의를 끝까지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악한 사람의 계획은 이렇게 변덕스럽고 일관성이 없어서, 결국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칼빈]

예수께서 이를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아름다운 일을 하였다." (마태복음 26장 10절)

그런 음모의 한복판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7절). 제자들은 "이렇게 낭비합니까"라며 분개하지만(8절), 그 분개는 가난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마리아를 향한 무정함이었습니다. 나쁜 감정이 '자선'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얼마나 자주 숨는지를 이 장면이 보여 줍니다.[헨리] 예수님은 이 향유가 낭비가 아니라 자신의 장례를 준비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인정하십니다(12절).[공통] 그래서 한 여인이 나병환자의 집에서 은밀히 행한 이 일은, 페르시아와 인도와 먼 섬나라 사람들에게까지 복음과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풀핏]

그러나 같은 식탁에서 정반대의 마음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은 삼십을 받습니다(14~15절). 유다가 스승을 배신한 유일한 이유는 돈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돈의 부족이 아니라 돈에 대한 사랑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헨리] 게다가 은 삼십은 노예 한 명의 몸값이었으니, 그리스도를 이렇게 평가한 것은 스가랴 선지자가 미리 말한 "아름다운 값"이 그대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헨리·풀핏] 유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열두 제자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그 죄를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칼빈]

17~30절 — 유월절 식탁과 새 언약의 잔

저녁 식탁에서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넘겨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21절). 제자들이 몹시 근심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스승이 배신당한다는 것 자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유다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헨리] 위선자는 들키지 않을 뿐 아니라 의심조차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각 제자가 "저는 아니지요"라며 자신을 의심한 것은 겸손한 태도였지만(22절), 유다도 똑같이 말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됩니다.[칼빈] 겉으로 경건한 말과 행동은 위선자도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먹고 있을 때 예수께서 빵을 가지사 감사 기도를 드리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마태복음 26장 26절)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다. (마태복음 26장 28절)

예수님은 빵과 잔으로 성찬을 세우십니다(26~28절). "이것은 내 몸이다"라는 말씀을 두고, 빵이 실제 살로 변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은 세 주석 모두 잘못된 가르침으로 배격합니다.[공통]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의 변화가 아니라 성례적이고 영적인 의미입니다. 구약의 피는 소수를 위한 것이었으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십니다. 그래서 이 잔이 주는 죄 용서는 모든 참된 믿음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복입니다.[헨리] 시험 점수나 친구 관계로 마음이 무너진 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도 결국 이 죄 사함의 자리입니다.

31~46절 — 베드로의 장담과 겟세마네의 잔

올리브 산으로 가시며 예수님은 두 가지를 예언하십니다. 제자들이 모두 그 밤에 넘어지리라는 것과, 그럼에도 부활 후에 그들을 다시 모으시겠다는 것입니다(31~32절). 흩어진 자기 군대를 다시 불러 모을 줄 아시는 분입니다.[헨리]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마태복음 26장 34절)

베드로는 "저는 결코 넘어지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합니다(33절). 그러나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 유혹에 잘 견딘다고 여긴 바로 그 자신감이 그의 약함이자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자기 강함을 과신하는 사람이 종종 가장 빨리 넘어집니다.[헨리·칼빈] SNS에 "나는 절대 안 그래"라고 쉽게 적어 본 적이 있다면, 이 장면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할 수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마태복음 26장 39절)

이윽고 예수님은 겟세마네에 이르십니다(36절). '겟세마네'는 "올리브 압착기"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바로 이곳에서 짓밟혀 상하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신선한 기름이 흘러가게 하셨습니다.[헨리·풀핏] "할 수 있다면"이라는 기도는 그분이 참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이셨음을 보여 줍니다.[헨리] 그러나 그 기도는 자신의 고통을 솔직히 아뢰되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맡기는, 신자의 기도의 가장 완전한 모범이었습니다.[공통]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육신이 약하구나. (마태복음 26장 41절)

제자들은 그 시간에 세 번이나 잠들고 맙니다(40절, 43절). 예수님은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부드럽게 꾸짖으십니다(40절).[헨리] 그리고 깨어 있음은 기도가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41절). 이 권면은 옳은 것을 원하면서도 여전히 연약한 육신 아래 씨름하는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일반 규칙입니다.[칼빈]

47~56절 — 입맞춤의 배신과 칼을 거두라는 명령

유다는 입맞춤을 신호로 삼습니다(48~49절). 원래 입맞춤은 예수님이 허락하신 친밀함의 표현이었는데, 유다는 바로 그 친밀함을 반역의 도구로 악용합니다. 입에는 꿀을 담고 마음에는 독을 품은 것입니다.[헨리]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를 "친구"라 부르십니다(50절). 최대의 도발 아래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배신자를 더 나은 마음으로 돌이키려 하신 것입니다.[헨리·풀핏]

그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넣어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할 것이다." (마태복음 26장 52절)

한 제자가 칼을 빼어 종의 귀를 벱니다(51절). 그러나 예수님은 칼을 거두라 하십니다.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라는 말씀은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태초의 법을 다시 선포하신 것으로, 폭력과 복수는 좋은 결과를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형벌을 자초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풀핏] 그리스도의 나라는 힘으로 전진하거나 방어되는 나라가 아닙니다.[공통] 사실 예수님은 마음만 먹으면 열두 군단보다 많은 천사, 곧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늘의 군대를 즉시 부르실 수 있었습니다(53절).[풀핏] 그러나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지 못하기에, 스스로 그 힘을 쓰지 않으셨습니다(54절). 그때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합니다(56절).

57~75절 — 침묵하신 재판과 베드로의 세 번 부인

가야바 앞에서 거짓 증인이 많이 나왔으나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59~60절). 대제사장이 다그쳐도 예수님은 잠잠하셨습니다(63절). 이 침묵은 "곤욕을 당하여도 입을 열지 않는다"라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헨리·풀핏] 마침내 예수님이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시자, 대제사장은 옷을 찢으며 신성모독이라 정죄합니다(65절).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죄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도리어 신성모독자로 정죄받으신 것입니다.[헨리]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하신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나가 몹시 통곡하였다. (마태복음 26장 75절)

같은 시각 바깥뜰에서는 베드로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69~74절). 그의 죄를 무겁게 만드는 요인은 여럿입니다. 그가 사도였다는 것, 스승이 분명히 경고하셨다는 것, 그날 밤 엄숙히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 그리고 유혹이 두 여종의 말 정도로 오히려 약했다는 것입니다.[헨리] 그의 부인은 단순 부인에서 맹세로, 다시 저주로 점점 심해졌습니다(70절, 72절, 74절).[공통] 한 번 넘어진 죄인은 나쁜 데서 더 나쁜 데로 서둘러 내려가기 때문입니다.[칼빈] 그러나 닭이 울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 순간,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몹시 통곡합니다(75절). 이 회개는 은밀했고("밖으로 나갔다") 진지했습니다("몹시 통곡하였다").[헨리] 유다를 바라보실 때와 달리, 베드로를 바라보신 그 시선에는 성령의 은밀한 효력이 더해져 은혜의 빛이 그의 마음을 꿰뚫었습니다.[칼빈] 같은 밤에 넘어진 두 사람의 갈림은, 넘어졌느냐가 아니라 그 후에 어디로 향했느냐에 있었습니다.

연결된 말씀

  • 스가랴 11장 — "은 삼십"이라는 목자의 값을 미리 말한 예언입니다. 유다가 받은 배신의 대가(15절)가 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 출애굽기 21장 — 은 삼십이 노예 한 명의 몸값이었음을 알려 주는 율법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하찮게 평가되셨는지를 드러냅니다.
  • 이사야 53장 — "곤욕을 당하여도 입을 열지 않는" 종의 예언입니다. 재판에서 침묵하신 예수님(63절)이 그 성취입니다.
  • 스가랴 13장 —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지리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이 31절에서 직접 인용하십니다.
  • 시편 55편 — "입술은 기름보다 부드러우나 마음에는 전쟁이 있다"며 친구의 배신을 노래한 시로, 유다의 입맞춤(49절)을 미리 그립니다.
  • 창세기 9장 — 사람의 피를 함부로 흘리지 말라는 태초의 법으로,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52절)는 말씀의 뿌리입니다.

마무리

마태복음 26장은 십자가로 가는 길에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낱낱이 보여 줍니다. 음모를 꾸미는 대제사장들, 자선을 핑계로 분개하는 제자들, 은 삼십에 스승을 판 유다, 그리고 장담하다 무너진 베드로가 한자리에 있습니다. 그 모든 배신과 실패 한가운데서, 예수님은 배신자를 "친구"라 부르시고 잠든 제자를 부드럽게 깨우시며 끝까지 자비를 거두지 않으셨습니다.[헨리] 그리고 "이 잔을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세 번 엎드리신 뒤, 마침내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셨습니다. 나는 위선자처럼 의심조차 받지 않으면서 정작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인가요? 나도 "나는 절대 안 넘어진다"라고 장담하다 한 사람의 말 앞에서 무너지는 베드로는 아닌가요? 무엇보다, 넘어진 그날 밤에 유다처럼 돌아서지 않고 베드로처럼 밖으로 나가 통곡하며 그분의 시선을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참고한 주석: [헨리] [칼빈] [풀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