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on Psalms 123:1-4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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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합니다. 종의 눈이 주인의 손을 바라보며, 여종의 눈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듯이, 우리의 눈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가 멸시를 당하여 극도로 가득 찼나이다. 안일하게 사는 자들의 조롱과 교만한 자들의 멸시로 우리 영혼이 극도로 가득 찼나이다.
**I.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해 믿음과 소망을 공적으로 고백함 (시 123:1-2)**
1. 하나님께 드리는 칭호. "하늘에 거하시는 주여"라고 불렀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이 거기에 갇혀 계신 것이 아니라, 왕이 궁정에서 영광을 나타내시듯 하늘에서 특별히 그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뜻이다. 하늘은 전망의 장소이자 능력의 장소이다. 거기 거하시는 분은 그곳에서 자기 백성이 당하는 모든 환난을 내려다보시고, 그곳에서 구원을 보내실 수 있다. 때로 하나님은 땅을 버리신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은 "너희 하나님이 지금 어디 있느냐?" 하고 묻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위로를 삼을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 "하늘에 앉아 계신 주여"(일부 번역)라고도 한다. 재판장으로서 거기 앉아 계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베푸셨으니, 억울한 자들이 그 보좌에 호소할 수 있다.
2. 하나님을 향한 시선. 시편 기자 자신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선한 사람의 눈은 항상 여호와를 향한다(시 25:15). 모든 기도에서 우리는 영혼을, 곧 영혼의 눈을 하나님께로 들며, 특히 환난 중에는 더욱 그렇게 하는데, 이 시편의 상황도 그러하다. 백성의 눈이 여호와를 기다린다(시 123:2). 사람의 눈이,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향할 때 긍휼이 백성에게 임한다(슥 9:1). 몸의 눈은 하늘을 향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늘을 향해 선 얼굴을 주셨으니, 이는 마음의 눈도 같은 방향을 향해야 함을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의 눈이 주를 기다린다. 이는 소원과 기도의 눈, 구하는 눈이며, 의뢰와 소망과 기대의 눈, 사모하는 눈이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주님으로, 우리의 하나님으로 바라보며, 그분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실 때까지 그 앞에 머문다. 우리는 그분의 긍휼을 원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리라 소망하며, 그 긍휼이 임할 때까지 그분 앞에 나아가기를 계속한다.
이는 비유로 설명된다(시 123:2). 우리의 눈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은 마치 종의 눈이 주인의 손을, 여종의 눈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종의 눈은 다음을 바라본다.
(1) 주인의 지시하는 손. 주인이 할 일을 지정해 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2) 주인의 공급하는 손. 종들은 때를 따라 먹을 양식을 주인이나 여주인에게 기대한다(잠 31:15).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충분한 은혜를 기대하며,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3) 주인의 돕는 손. 종이 스스로 일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어디서 도움을 구하겠는가? 오직 자신을 부린 주인에게서이다. 우리도 주 하나님의 힘 안에서 나아가고 또 나아가야 한다.
(4) 주인의 보호하는 손. 종이 일 중에 반대를 만나거나, 하는 일 때문에 추궁을 받거나, 억울하게 해를 당할 때, 그를 옹호하고 억울함을 풀어 줄 분은 그에게 일을 맡긴 주인이다. 박해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주인께 호소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5) 주인의 징계하는 손. 종이 주인을 노엽게 하여 매를 맞게 되었을 때, 그는 주인을 대적하여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치는 손을 바라보며 "그만하시면 되었습니다. 나는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겠습니다" 하는 말씀을 기다린다. 하나님의 백성은 지금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있었다. 자신들을 치신 분께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사 9:13)? 그분이 아니고서 누구에게 간구하겠는가? 그들은 하갈처럼 여주인이 좀 힘들게 했다고 도망가는 짓을 하지 않는다(창 16:6). 오히려 하나님의 강한 손 아래 자신을 복종시키고 낮춘다.
(6) 주인의 상 주는 손. 종은 주인에게서 삯을, 곧 "잘했다"는 칭찬을 기대한다. 외식하는 자들은 세상의 손을 바라보고, 거기서 상을 받는다(마 6:2).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에게 상 주시는 분으로 바라본다.
**II. 하나님의 백성이 환난 중에 그분께 드리는 겸손한 간구 (시 123:3-4)**
1. 그들은 긍휼을 구한다.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지정하거나, 해주셔야 할 자신들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하고 간구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별로 긍휼을 얻지 못한다. 그들의 인자함조차 잔인하다. 잔인한 조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위로이다. 여호와 안에는 긍휼이 있다. 우리를 도와 평안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뿐이다. 교회의 환난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긍휼은 확실한 치료약이다.
2.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아뢴다. "우리가 멸시를 당하여 극도로 가득 찼나이다." 수치와 조롱이 그들이 호소하는 상처요 짐이다.
(1) 누가 조롱을 받는가. "주를 향해 눈을 든 우리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멸시당하고 짓밟히는 일이 흔하다. 어떤 학자들은 "안일하게 사는 자들"과 "교만한 자들"을 조롱받고 멸시당하는 편으로 해석한다. "우리 영혼은 평화로운 자들과 탁월한 자들이 조롱과 경멸을 받는 것을 보고 괴로워합니다." 성도들은 평화로운 백성인데도 학대를 받으며(시 35:20), 세상의 존귀한 자들인데도 무시당한다(애 4:1-2).
(2) 누가 그들을 조롱하는가. 우리가 읽는 대로라면, 쾌락을 좇아 안일하게 사는 육신적이고 감각적인 사람들이다(욥 12:5). 조롱하는 자들은 자기 욕심대로 행하며 배를 섬기는 자들이고,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 자체에도 도전하며 스스로 높이 여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으면서 스스로를 높인다고 생각했다.
(3) 어느 정도로 조롱을 받았는가. "우리가 가득 찼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극도로 가득 찼습니다." 원수들은 아무리 비웃어도 성에 차지 않고 그들을 가능한 한 경멸스럽게 만들려 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일을 마음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뼈에 사무치는 칼이었다(시 42:10).
[1] 조롱과 멸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몫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조롱했는데, 이를 박해라고 부르며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갈 4:29).
[2]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상황에서, 하나님 안에 긍휼이 있다는 것이 위로의 근거이다. 우리의 명예가 잔인하게 짓밟힐 때, 그 명예를 향한 긍휼이 하나님께 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소서. 우리가 멸시를 받았나이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mhm-psa-123-1-4(Matthew Henry, PD) - CC0-1.0 · Sonnet 위탁 번역 · 성경 인용은 WEB(PD) 기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