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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on Job 39:1-12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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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 세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그리고 광야에서 자유로이 뛰어다니며 하나님의 섭리 아래 살아가는 길들지 않은 피조물들에 대해 얼마나 알지 못하는지를 하나님께서 욥에게 보여 주신다.

**I. 야생 염소와 암사슴.** 이 동물들에 관해 주목할 점은 새끼를 낳고 기르는 일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각 개체를 먹이듯, 모든 동물 종도 보존하시며, 오늘날까지 어떤 종도 멸종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 새끼 출산에 관하여. (1.) 인간은 암사슴이나 야생 염소가 언제 새끼를 낳는지 그 시기를 전혀 모른다 (욥 39:1-2). 암사슴의 임신 기간도 모르면서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들, 곧 하루가 무엇을 가져올지 안다고 자처할 수 있겠는가? (2.) 이 짐승들은 큰 고통과 수고로 새끼를 낳으나 사람의 도움 없이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로 새끼들이 안전하게 태어나고 그 수고와 고통은 잊혀진다 (욥 39:3). 어떤 이들은 시편 29편 9절이, 하나님께서 천둥으로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도우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암사슴도 새끼를 낳도록 도우신다는 사실은, 해산하는 여성들에게 위로가 된다. 하나님과 언약 안에 있는 자녀들을 더욱 돌보시고 구원하지 않으시겠는가?

2. 새끼의 성장에 관하여 (욥 39:4). 새끼들은 건강하게 자라나고, 어미가 젖을 먹인 후에는 들판에서 스스로 살아가며 더 이상 어미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자녀들이 성장한 후 항상 부모에게 매달려 요구하지 말고 스스로 생계를 꾸리며 부모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II. 야생 나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 짐승은 길들이기 어렵다고 한다. 사람은 야생 나귀 새끼처럼 태어나서 다스리기 어렵다고도 한다. 하나님의 섭리가 야생 나귀에게 두 가지를 정하셨다.

1. 제한 없는 자유 (욥 39:5). 오직 하나님만이 야생 나귀를 자유롭게 내보내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런 성향을, 그리고 그 허가를 주셨다. 길든 나귀는 노동에 매여 있고, 야생 나귀는 묶여 있지 않다. 서비스로부터의 해방과 마음껏 돌아다니는 자유는 야생 나귀의 특권에 불과하다. 사람의 자녀들 중 누구라도 그런 자유를 탐내거나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는 일 없이 떠돌며 아무 쓸모가 없는 것보다 수고하여 보람 있는 것이 낫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서도 섭리가 어떤 이들에게는 자유와 편안함을 주고, 다른 이들에게는 종살이를 허락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짐승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2. 경계 없는 거처 (욥 39:6). 하나님께서 광야를 그의 집으로 삼으셨다. 거기서 그는 마음껏 돌아다니며 바람을 맡을 수 있다. 야생 나귀는 예레미야 2장 24절에 나오듯 바람으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거친 땅이 그의 거처다. 수고하며 사람에게 유익한 길든 나귀는 풍요로운 땅에서 주인의 여물통으로 돌아가 먹이와 피난처를 얻는다. 그러나 자유를 고집하는 야생 나귀는 거친 땅에서 그 자유를 누려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일하는 자는 자기 손으로 번 것을 먹고 또 궁핍한 이들에게도 나눌 수 있다.

야생 나귀의 자유와 삶에 대한 더 자세한 묘사는 욥 39:7-8에 나온다. (1.) 그는 주인도 없고 복종하려 하지도 않는다. 도시의 군중을 멸시한다. 무리로 그를 에워싸려 해도 금방 피해 버리고, 몰이꾼의 고함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광야에서 자신이 더 행복하다 여기며 도시의 소란과 북새통 속에 사는 이들을 비웃는다. 사물의 가치는 바라보는 눈에 달려 있다. (2.) 주인도 없으니 먹이를 챙겨 주는 이도 없고, 아무 준비도 없이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산의 광야가 그의 목장이고, 거기서 여기저기 초록 풀을 찾아 헤맨다. 반면 일하는 나귀들은 그런 수고 없이도 풍성한 초록 풀을 얻는다. 이 짐승과 다른 짐승들의 길들여지지 않음은, 야생 나귀 새끼도 다스리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에 법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III. 들소.** 강한 피조물(민 23:22)이자 당당하고 자존심 강한 짐승(시 112:10)이다. 섬길 능력은 있으나 섬길 의지가 없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를 강제하도록 도전하신다. 욥은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랐다. "네가 모든 것을 네 지배 아래 두겠다고 주장한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들소부터 시작하여 그 위에 네 기술을 발휘해 보아라. 네 소와 나귀가 다 사라졌으니, 들소가 자발적으로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인지 (욥 39:9), 네 여물통 곁에 머물 것인지 시험해 보라."

1. "너는 그를 길들이지 못하고, 그를 끈으로 묶지도, 쟁기에 세워 이랑을 갈게 하지도 못한다" (욥 39:10). 기꺼이 사람을 섬기고, 심지어 섬기는 것을 즐거워하며 주인을 사랑하는 듯 보이는 피조물들이 있다. 그러나 결코 섬기지 않으려는 것들도 있으니, 이것은 죄의 결과다. 사람이 창조주께 대한 복종에서 벗어났으므로, 열등한 피조물들이 사람에 대한 복종에서 벗어나는 정당한 벌을 받은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선하신 뜻의 표시로, 여전히 사람을 섬기는 것들이 있다. 야생 들소가 섬기려 하지 않지만, 쟁기를 거부하지 않는 길든 황소들과 다른 순한 짐승들이 있다. 주님, 당신이 이처럼 사람을 기억하시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런 돌보심을 받습니까?

2. "너는 그를 신뢰하지 못한다. 비록 그의 힘이 크더라도, 어린아이도 이끌 수 있는 나귀나 소에게 하듯 모든 수고를 그에게 맡기지 못한다. 들소가 추수 일에 나타나, 더 나아가 씨앗을 거두어 곳간에 넣을 것이라 의지할 수 없다" (욥 39:11-12). 곡식에 쓸모없으니 잘 먹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쟁기를 끌지 않는다. 그를 만드신 분이 그 일을 위해 설계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노동할 성향은 그 능력만큼이나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섬길 힘을 주실 때, 그 마음도 함께 주시는 것은 큰 자비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하고 스스로 이성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 짐승들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짐승들 중에서처럼 사람들 중에서도, 수고하거나 선을 행할 마음이 없는 이들은 마땅히 야생의 황무지에 버려진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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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on Job 39:1-12 translated_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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