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on Genesis 23:1-2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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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죽음. 기원전 1857년.
"사라는 백이십칠 년을 살았으니, 이것이 사라가 누린 생애의 햇수였다. 사라가 가나안 땅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죽으니, 아브라함이 들어가 사라를 위하여 애통하며 슬피 울었다." (창 23:1~2)
이 본문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볼 수 있다. 첫째, 사라의 나이(1절)이다. 거의 사십 년 전 사라는 스스로를 노인이라 불렀다(창 18:12). 노인이라 여기는 것이 죽음을 앞당기지는 않지만, 보다 잘 죽음을 맞이하게 할 수 있다. 둘째, 사라의 죽음(2절)이다. 가장 오래 사는 사람도 결국에는 죽는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오랜 세월을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나, 죽음은 아무것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하늘의 특별한 친구들이요 총애를 받는 자들도 죽음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라는 육십 년 넘게 나그네로 살았던 가나안 땅에서 죽었다. 셋째, 사라를 위한 아브라함의 애도이다. 그는 진정한 슬픔을 드러낸 애도자였다. 단지 당시 풍습에 따라 애도의 예식만 행한 것이 아니라, 선한 아내를 잃은 큰 상실을 진심으로 애통해하며 마지막까지 그녀를 향한 사랑의 변함없음을 증거하였다. 본문은 두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애통하며" 또한 "슬피 울었다." 그의 슬픔은 겉으로만 꾸민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었다. 그는 사라의 장막으로 나아가 시신 곁에 앉아 눈물의 예를 드렸으니, 이는 눈에 보이는 것이 마음에 감화를 주도록, 또 떠나간 이의 기억을 더욱 존중하기 위함이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합법적일 뿐 아니라 의무이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이요, 마땅히 공경받을 자에게 공경을 드리는 것이다. 눈물은 우리가 죽은 이에게 드리는 마땅한 예물이다. 씨가 뿌려질 때는 물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소망 없는 자들처럼 슬퍼해서는 안 된다.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선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mhm-gen-23-1-2(Matthew Henry, PD) - CC0-1.0 · Sonnet 위탁 번역 · 성경 인용은 WEB(PD) 기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