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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es 3.20.8 — OF PRAYER—A PERPETUAL EXERCISE OF FAITH. THE DAILY BENEFITS DERIVED FROM IT.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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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해야 할 세 번째 기도 규칙은, 이처럼 낮아지고 진정으로 겸손해진 사람도 기도가 들릴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으로 담대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느끼는 것과 그분의 은혜에 대한 굳건한 확신 사이에는 겉으로 보기에 모순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죄에 압도된 자들을 들어올리는 것이 하나님의 순전한 선하심이라면 둘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왜냐하면 앞서 보였듯이(3권 3장 1, 2절) 회개와 믿음은 불가분의 끈으로 연결되어 손잡고 나아가는 것으로서, 하나는 두려움을, 다른 하나는 기쁨을 가져다주며, 기도에서도 둘 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 일치를 몇 마디로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하심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시 5:7).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 아래 믿음을 포함시키면서도 두려움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위엄이 우리의 경외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불가함도 모든 교만과 자신감을 빼앗고 우리를 두려움 속에 붙들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확신은 마음의 모든 불안을 없애고 달콤하고 완전한 안식으로 달래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 안식은 모든 일이 뜻대로 흘러가고 어떤 근심도, 후회도, 두려움도 없는 자들에게만 해당한다. 그러나 성도들이 기도하는 최고의 자극제는, 자신의 필요로 인해 가장 깊은 불안 속에서, 거의 절망에 이르는 지경에서 느끼는 것이다. 그때 믿음이 때맞춰 구원자로 찾아오는데, 그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들에게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현재의 재난 무게에 눌려 신음하고 더 큰 재난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중에도, 그들은 이 선하심을 신뢰하고, 이로써 인내의 어려움을 가볍게 하고 마침내 구원받으리라는 소망 속에서 위로를 얻는다. 따라서 신자의 기도는 두 가지 감정의 결과이고 두 가지의 영향을 보여야 한다. 즉, 현재의 악에 신음하고 더 큰 악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 달려가 그분이 도움의 손길을 펼치실 준비가 되어 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선하심에서 기대하지 않는 것을 구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분노하시는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도의 본성에 가장 일치하는 것은, 기도가 아무렇게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확고한 규칙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원칙으로 우리 모두를 이끄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그분은 다른 곳에서도 같은 것을 선언하신다. "너희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받을 것이라"(마 21:22). 이와 일치하는 것이 야고보의 말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 1:5). 그는 믿음의 능력을 의심에 대조시켜 적절하게 표현한다. 그의 덧붙이는 말도 주목할 만하다. 의심하고 망설이는 마음으로, 들으실지 아닐지 확신하지 못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기도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그는 바람에 밀리고 요동하는 바다 물결에 비교한다. 따라서 다른 곳에서 그는 참된 기도를 "믿음의 기도"라고 부른다(약 5:15). 또한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따라 주신다고 자주 선언하시는 것은, 믿음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믿음이야말로 기도로 허락되는 모든 것을 얻게 한다. 이것이 둔한 사람들이 너무 가볍게 여기는 바울의 잘 알려진 구절의 의미이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4, 17). 점차 기도의 근원을 믿음에서 이끌어 내면서,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와 기꺼이 베푸심이 복음의 설교를 통해 알려지고, 아니 친밀하게 설명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부를 수 없다고 분명히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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