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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18N

Institutes 2.1.4 — THROUGH THE FALL AND REVOLT OF ADAM, THE WHOLE HUMAN RACE MADE ACCURSED AND DEGE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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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그토록 혹독한 형벌을 내리신 그 행위는 사소한 잘못이 아니라 큰 죄악이었을 것이므로, 아담의 타락을 낳고 하나님께서 이토록 무서운 복수를 인류 전체에 내리도록 촉발한 죄의 특별한 성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감각적 방종이라는 흔한 생각은 유치하다. 모든 덕의 총화가 풍성한 일반 음식들 가운데 단 하나의 열매를 삼가는 데 있을 수 없었다. 땅은 행복한 풍요로 풍성함뿐 아니라 끝없는 다양함도 제공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각적 방종보다 더 깊이 살펴야 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지지 말라는 금지 명령은 순종의 시험이었다. 아담이 그것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기꺼이 복종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로 그 명칭 자체가 이 명령의 목적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고 그것을 오만하게 넘어서도록 열망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보여 준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한 영원한 삶의 희망을 주는 약속과, 반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맛보는 즉시 죽음을 선언하는 무서운 위협은 그의 믿음을 증명하고 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아담이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샀는지를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도 교만이 모든 악의 시작이라고 말할 때(시편 19편)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의 야심이 허용된 한계를 넘지 않았더라면 처음 상태에 계속 머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정의는 모세가 묘사한 유혹의 종류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악마의 간계로 여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불신앙으로 저버렸을 때, 그녀의 타락은 분명히 불순종에서 비롯되었다. 바울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멸망했다고 말할 때 이를 확인한다. 동시에, 첫 번째 사람이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한 것은 악마의 계략에 빠진 데만 그치지 않고 진리를 무시하고 거짓으로 돌아선 데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 때 그분에 대한 모든 경외심은 사라진다. 우리가 말하자면 그분의 말씀에 매달리지 않는 한, 우리 가운데 그분의 위엄이 마땅히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도 없고 그분의 예배가 온전하게 유지될 수도 없다. 따라서 불신앙이 반역의 뿌리였다. 불신앙에서 다시 야심과 교만이 솟아났고, 감사함도 없어졌다. 아담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을 갈망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를 풍요롭게 하신 그 큰 관대함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에서 난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여기고 하나님과 동등해지려 한 것은 참으로 무서운 불경건이었다. 만약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신 분의 권위에서 물러나고 나아가 방자하게 그분에 대한 충성을 떨쳐 버리는 배교가 추악하고 저주받을 죄라면, 아담의 죄를 가볍게 보는 것은 헛된 일이다. 더욱이 그것은 단순한 배교가 아니었다. 하나님께 대한 추악한 모욕도 함께 따라왔다. 사탄이 하나님을 악의와 시기와 거짓으로 고발했을 때 그 죄 있는 두 사람이 사탄의 비방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불신앙이 야심의 문을 열었고, 야심은 반역의 부모가 되어,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던지고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분출했다. 따라서 베르나르가 오늘날 우리에게 복음을 귀로 받아들일 때 구원의 문이 열린다고 말한 것은 옳다. 이는 같은 문이 사탄에게 열렸을 때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더라면 결코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의를 기르는 것이 가장 선하고, 그분께 사랑받는 것이 가능한 최고의 행복이라는 믿음이야말로 그의 모든 감정을 마땅히 억제하는 가장 강한 고삐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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