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uk-23-42-42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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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42.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세상이 창조된 이후 이처럼 현저하고 놀라운 믿음의 본보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처럼 웅장한 성령의 은혜가 드러났으니 더욱 경탄이 마땅하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훈련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가증스러운 살인에 몸을 바침으로써 모든 양심의 감각을 말살하려 한 강도가, 사도들과 주님이 친히 가르치신 다른 제자들 모두를 단번에 능가한다. 그뿐 아니라 교수대 위에 달린 왕을 경배하며, 충격적이고 더없이 혐오스러운 비하 속에서 그분의 왕국을 선포하고, 죽어 가는 그분을 생명의 창시자라 선언한다.
전에 바른 믿음을 가졌고 그리스도의 직분에 관해 많은 것을 들었으며 이적으로 확증되기까지 했다 해도, 그런 치욕적인 죽음의 짙은 어둠에 의해 그 지식이 압도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지하고 교육받지 못한 데다 마음이 완전히 타락한 사람이 처음 받는 가르침으로 단번에 저주받은 십자가에서 구원과 하늘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왕권의 표시나 장식을 보았기에 그의 왕국으로 마음을 들어올릴 수 있었는가? 참으로 이것은 말하자면 지옥의 깊은 곳에서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육신에게는 멸시받고 버림받은(이사야 53:3) 자,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던 자에게 세상의 모든 제국보다 더 높은 지상의 왕국을 돌리는 것은 황당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마음의 눈이 얼마나 예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죽음 안에서 생명을, 멸망 안에서 높임을, 수치 안에서 영광을, 파멸 안에서 승리를, 종살이 안에서 왕국을 바라보았다. 이제 강도가 그의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마치 저주에 덮인 것처럼 보이는 그분을 하늘 보좌로 높였다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그분을 경외심으로 바라보지 않는 우리의 나태함은 저주받아 마땅하다. 그분의 부활에서 우리 생명의 소망을 고정하지 않는다면, 그분이 들어가신 하늘을 향해 목표를 두지 않는다면.
또한 그가 그리스도의 자비를 간구할 때 처한 형편을 생각하면 그의 믿음에 대한 경탄은 더욱 높아진다. 몸이 상하여 거의 죽게 된 채로 사형 집행인의 마지막 일격을 기다리면서도 그는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의지한다. 먼저 용서의 확신은 어디서 온 것인가? 다른 모든 이들이 혐오스럽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세상의 죄를 속죄하는 데 효력이 있는 향기로운 제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고 숨겨진 생명의 소망과 갈망으로 이끌려 가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에게 육신의 교만을 겸손하게 하도록 세우신 이 교사에게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육신의 죽음, 인내, 믿음의 고양, 소망의 견고함, 경건의 열심을 배우자. 그를 더 열심히 따르는 자일수록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cal-luk-23-42-42(Calvin, PD) - CC0-1.0 · Sonnet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