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jer-51-18-18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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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우상을 거짓이라 불렀듯, 이제 같은 뜻으로 그것들이 허망함이라고 선언하니, 곧 그것들이 아무 실제도 아니요 헛된 과시 곧 환영 곧 가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이후에, 그것들이 미혹의 일이라고 말함으로써 자기를 더 분명히 표현한다. 그러나 그가 "토르임"(toroim)이라는 단어를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취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가, 그것이 사람들에게 올무가 된 기만적 일이었음을 뜻한다. 마치 그가, 그것들이 사기 곧 사기들의 일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 구절과 이와 같은 구절들이 정성껏 주목되어야 하니, 교황주의자들이 자기들의 형상이 예배받아서는 안 되나 무식한 자들의 책이라고 고백할 때에 자기에게 도망할 길을 찾은 듯하기 때문이다. 견해에서 온건한 자들이 이 회피에 호소한다. 이것이 한때 그레고리우스에 의해 시사되었으나 매우 어리석게 그러하였고, 교황 제도 아래서 다른 자들보다 더 깨인 것처럼 보이려는 자들이 같은 말, 곧 형상이 무식한 자들의 책이므로 용인되어야 한다고 되풀이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성령께서 여기서, 또한 하박국 선지자로 무엇을 선언하시는가? 그것들이 사기들의 일, 곧 한낱 올무 곧 덫이라는 것이다(합 2:18). 그러므로 신상이나 그림에서 가르침을 구하는 모든 자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사탄의 올무에 얽혀 사기 외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의심 없이, 우리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묵상에서 떠나게 하는 무엇이든 정당히 사기 곧 기만으로 여겨져야 하니, 누가 그림이나 신상을 봄으로 참 하나님에 대한 바른 관념을 형성할 수 있겠는가? 그분에 관한 진리가 이렇게 거짓으로 바뀌지 않는가? 또 그분의 영광이 이렇게 비하되지 않는가? 우리가 그분을 홀로 하나님으로 여길 때에, 하늘과 땅을 채우는 무한한 본질을 그분께 돌릴 때에, 그분을 영으로 인정할 때에, 요컨대 합당히 말하자면 그분만이 존재하시고 하늘과 땅과 그것들이 담은 모든 것이 그분의 권능으로 존재함을 알 때에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지기 때문이다. 돌이나 나무가 우리에게 이것들을 가르칠 수 있는가? 아니다. 도리어 나는 돌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장소에 고정되고 갇히셨다고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이 돌이나 나무에 나타나는가? 게다가 몸이, 그것도 생명 없는 몸이 무한한 영과 무슨 닮음을 가지는가? 그러므로 이사야가 기록한 대로 그분께서 자기가 이렇게 온전히 비하되었다고 한탄하시는 것이 이유 없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느냐? 내가 땅을 내 주먹에 담거늘 너희가 나를 나무나 돌에 가두는도다"(사 40:12). 요컨대 사람들의 마음이 우상에게서 하나님이 형체를 가지셨다는 생각 외에 아무 다른 오류도 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보다 더 거꾸로 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선지자가 여기, 모든 우상이 허망함이요 사기 곧 기만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유 없는 것이 아님을 본다. 그가 마지막으로, 모든 거짓 신이 형벌의 때에 망하리라고 더한다. 이 어구에서 그가 신실한 자들에게 인내를 권면하고,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마음을 떠받쳐 그들이 낙심하지 않게 한다. 바벨론 군주국이 번성하는 것을 보는 것이 작은 시련이 아니었기 때문이니, 그것이 우상의 보호 외에 아무 다른 보호도 없었을 때에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바벨론 사람들이 거짓 신들이 자기들의 안전의 보호자요 변호자라고 생각하였고, 또 그것들을 통하여 자기들이 모든 이웃을 정복하였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그들이 자기 미신에 더욱더 빠져, 그 보상을 자기들의 모든 재물과 권세로 여겼다. 경건한 자들의 마음이 그러한 시련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으므로, 선지자가 여기 그들을 떠받치고 우상이 망할 형벌의 때를 기다리라 일깨운다. 그러나 그가 "그들이 그들의 형벌의 때에 망하리라"고 말할 때에 우상에게뿐 아니라 바벨론 사람들에게도 가리킴이 의도되었을 수 있으니, 곧 갈대아 사람들이 형벌받을 때이다. 그러나 형벌의 때가 여기 특히 우상에게 관련됨이 개연적이니, 선지자가 앞서 모든 악인과 버림받은 자에 관하여 말하였기 때문이다. 어떠하든 우리는 그의 목적이, 우상 숭배자가 한동안 아무리 형통할지라도 합당한 때, 곧 여기 형벌의 때라 불리는 때가 올 때까지 하나님의 손이 인내로 견뎌져야 함을 보이는 것이었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은유가 사람들의 관념에 관련되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한가로이 거하시며 우리에게서 눈을 돌리시는 동안 경건치 않은 자들을 아끼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형벌이라 부르니, 그분께서 그때에 참으로, 분명한 증거로, 자기가 사람들의 일을 무시하지 않으심을 보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이어진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cal-jer-51-18-18(Calvin, PD) - CC0-1.0 · Sonnet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