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jer-41-10-10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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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이 처음부터 이 계획을 가졌는지, 혹 자기가 버틸 힘이 없음을 보았을 때 암몬 왕과 함께 거하려고 포로들을 데려간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이전의 결심을 따라 행해졌고, 그가 그달리야를 죽이기 전에 그 남은 자를 그 나라로 끌고 가기로 결정되었음이 그럴듯하다. 아마 암몬 왕이 자기 자신의 백성 가운데 일부를 유다에 보내 거하게 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유다의 통치자가 되기를 바랐고, 또한 바벨론 왕의 속국이 됨으로 그를 진정시키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토록 비옥한 땅을 차지하는 것은 큰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하였든 암몬 왕이 그달리야의 죽음 후에 무언가 큰 것을 바랐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런 까닭으로 유다에 거처가 허락된 백성이 끌려갔음이 그럴듯하다. 선지자는 이제 우리에게, 이스마엘이 백성의 남은 자를 포로로 데려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짧은 시간에 처음보다 더 큰 군세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적은 자로 백성을 모을 수 없었으니,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남겨진 자의 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많은 마을에 흩어져 있었으니, 이스마엘이 다만 자기 명령으로 그들을 설득하여 암몬 땅으로 옮기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그달리야를 죽인 후에 그의 야만이 그들 모두를 두렵게 하였고, 의심 없이 많은 자가 그에게 합류하였다. 불경한 파당은 어떤 희망이 그들에게 제시될 때 늘 많은 추종자를 찾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 가운데 비참한 모든 자가 그를 자기들의 지도자로 따랐고, 그리하여 그가 온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 질문이 일어나니, 곧 왕의 딸들에 관한 것이다. 가난하고 무명한 자, 곧 가장 낮은 계층의 자들만 남겨졌고,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왕족은 끌려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읍이 포위될 때 왕의 딸들 가운데 일부가 벗어났음이 그럴듯하다. 이스마엘 자신도 왕족이었으나 성읍이 점령되기 전에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이 그를 포로로 가질 수 없었다. 왕의 딸들의 경우도 같았으니, 시드기야가 그들을 어떤 안전한 곳으로 보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달리야가 그 후에, 위험이나 의심을 일으킬 모험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음을 보았을 때 그들을 함께 모았다. 그가 참으로 우리가 전에 본 바와 같이 느부사라단에게서 이 권한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달리야가 가난한 자들과 명망 없는 자들을 다스렸을지라도, 더 조용한 곳으로 옮겨졌던 왕의 딸들이 그 후에 그와 함께 거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다른 군대의 지휘관들이 그에게 왔으니, 그 이유가 같았다. 그러나 다시 반복되니, 느부사라단이 그달리야에게 맡긴, 혹 우리가 전에 본 바와 같이 그달리야를 그 위에 세운 미스바에 남은 모든 백성이라 한다. 그러나 그 반복은 까닭 없이 된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가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을 다시 표현하였으니, 곧 이스마엘의 광포와 폭력이 너무도 커서, 느부갓네살의 마음이 진정될 수 없을 만큼 격노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가 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광기가 너무도 광포하여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다른 자들에 대해서도 아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백성을 포로로 데려갔고, 암몬 자손에게로 넘어가려고 갔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처지가 포로로 쫓겨난 것보다 훨씬 더 나빴다. 암몬인들이 갈대아인들보다 조금도 더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들은 우리가 이후에 보게 될 것처럼 거기서 더 큰 비난에 노출되었다. 참으로 그들이 이렇게 가장 비참한 포로로 옮겨지기보다 단번에 죽임당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낫고 더 견딜 만하였을 것이다. 이로써 이스마엘이 모든 인간적 정을 전혀 결여하였음이 드러나니, 이렇게 아브라함의 자손을 배반하는 불경을 능히 행하였기 때문이다. 야심이 있는 곳에는 흔히 통치에 대한 정욕이 사람들을 큰 흉악의 행위로 몰아간다. 그러나 불행한 백성을 암몬인들에게로 끌고 가는 것은 분명히 괴물보다 더한 행위였다. 백성에 관하여는, 우리가 이후에 그들이 자기들의 모든 비난과 비참함을 받아 마땅하였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재앙이 하나님의 의로운 섭리를 통해서가 아니고는 그들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가 보게 될 것처럼 가레아의 아들에 의하여 자유롭게 되었을지라도, 그들이 거기로 옮기면 가하실 선지자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곧 이집트로 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비열하고 괴물 같은 잔인함이 여기 우리 앞에 제시되었을지라도, 유대인들이 포로로 쫓겨나고 온갖 비참함에 굴복하기에 마땅하였음을 알자. 오, 비참한 선고여! 그달리야의 손에서 칠십 명이 죽임당하였다고 말해질 때 그러하다. 어떤 이들은 내가 주목한 바와 같이 "손"을 "그달리야로 인하여"라 옮기고, 다른 이들은 "그달리야를 대신하여"라 옮긴다. 그러나 이 설명이 억지스러워 보이므로, 우리는 손을 타격이나 상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적합한 뜻으로 보이니, 손이 성경에서 흔히 그렇게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달리야의 상처에서 죽임당하였으니, 곧 그가 받은 상처에 더하여 마치 그와 같은 방식으로 죽임당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나아가자.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cal-jer-41-10-10(Calvin, PD) - CC0-1.0 · Sonnet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