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jer-40-5-5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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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같은 담론을 계속하니, 느부사라단이 자기에게 후하게 대하여 자기가 원하는 어디로든 가도록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로써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의 정직과 올바름을 온전히 확신하였음을 결론짓는다. 그는 그가 자기 백성 가운데 어떻게 여겨지는지, 또 그가 올바르고 조용하지 않으면 큰 소란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의 성품에 관하여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자기가 원하는 어떤 성읍에서든 자기 거처를 택하거나 자기에게 좋아 보이는 어디로든 옮기는 자유로운 자유를 그에게 주기를 바랐다. 바벨론으로 가라는 초청이 그에게 주어졌고 호의의 약속이 더해졌으나, 자기 자신의 나라에 머무는 것도 그에게 더 허락되었다. 나는 이것이 신적 목적을 따라 행해졌다고 말하였으니, 선지자가 자기 신앙의 증거를 주게 하려 함이었다. 만일 그가 갈대아로 갔더라면, 많은 자의 확신이 그들에게서 사라지고 약속에 대한 믿음이 소멸하였을 수도 있다. 선지자가 거기로 갔더라면 그들이 그것을 절망적인 낙담의 표로 생각하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약한 마음들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자기 자신의 나라에 머무는 것을 자기 의무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의 마음과 그의 지휘관들의 마음을 기울이셔서, 거룩한 선지자에게 유다에 머물 자유를 주게 하셨으니, 마치 포로된 자들을 위하여 깃발을 세우고 칠십 년 후에 그들의 귀환을 이루려는 목적과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곧, 그가 다른 곳으로 끌려갔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예언을 조금도 좌절시키지 못하였으니, 난폭한 자들이 그를 포로로 끌고 갔고 그가 마침내 이집트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뜻으로 유다를 떠나지 않았으니, 비록 거기서 슬픔과 비탄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였을지라도 그러하였다. 그는 자기를 만족시키지 않았고, 고기와 음료의 풍성함 가운데 어떤 쾌락에도 빠질 수 없었으며, 도리어 늘 자기 자신의 민족의 멸망, 특히 성전의 파괴를 애통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유다를 다른 모든 나라보다 더 좋아하고 그토록 많은 비참함의 끊임없는 목격자가 되기를 감수하였으므로, 그가 자기 믿음과 인내의 주목할 만한 증거를 주었고, 그리하여 비참한 포로들의 믿음을 강건케 하여 그들이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기 백성에게 자비로우시고 호의를 베푸시리라는 것을 알게 하였다. 그는 느부사라단의 말을 계속하나, 이 절을 삽입한다. 그가 아직 돌아가지 않았으니, 곧 그가 아직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느부사라단이 말하기를, "그달리야에게로 돌아가라, 곧 네가 나를 따르기보다 여기 살기를 더 좋아하면 그달리야에게로 가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느부사라단은 자기가 예레미야를 어떻게 그 땅, 곧 아직 강도들의 소굴 같은 땅에서 안전히 살게 하려는지를 보이니, 곧 그가 그달리야와 함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느부사라단이 선지자의 생명을 보존하는 데 얼마나 마음을 썼는지를 본다. 그는 자기가 전에 간략히 말한 대로 그달리야가 그의 보호자가 되기를 바랐으나, 이제 그 일을 더 충분히 또 더 상세히 그 앞에 제시한다. 그는 말하기를, 바벨론 왕이 유다 성읍들 위에 세운 그달리야에게로 돌아가 그와 함께 거하라 한다. 그가 시사하는 바는, 예레미야가 그달리야와 함께 거하면 위험이 없으리라는 것이니, 그가 바벨론 왕에 의하여 유다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가 전에 본 것, 곧 그달리야에게로 가든지 다른 어디로든 가는 것이 선지자의 능력 안에 있었다는 것이 반복된다. 그는 말하기를, 네 눈에 옳게 보이는 어떤 곳으로든 가라, 거기로 가라 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 어떤 정해진 곳을 할당하지 않고 어디로든 갈 권한을 주었다. 그리하여 선지자가 유다 안이든 유다 밖이든 자기 거처를 스스로 택하게 하였다. 이어지기를, 그가 그에게 양식을 주었다고 한다. 나는 아르하(ארחה)를 그렇게 옮기는데, 어떤 이들은 "예물"이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양식을 뜻하니, 우리가 이후에 오십일 장에서 보게 될 것처럼 예레미야가 날마다의 빵에 관하여 말한다. 둘째 말 마사(משאה)는 선물 또는 예물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느부사라단이 하나님의 종에게 양식과 다른 선물을 베풀었다. 양식에 관하여는 선지자가 그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성읍이 점령된 후에 그가 모든 것이 부족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그는 매일 빵 한 조각만 가지고 매우 빈약하고 비참하게 살았다. 그리고 이제 느부사라단이 그에게 양식을 공급하였을 때, 그 거룩한 사람이 그러한 궁핍 가운데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받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그 선물에 관하여는 예레미야가 자기를 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에게서 자기 교훈에 대한 선물이나 예물을 받는 것이 그에게 수치였기 때문이다. 선지자에 대한 이 자비와 후함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느부사라단이 그의 예언이 자기 자신의 민족의 멸망을 가리켰음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까닭으로 그가 그 거룩한 사람에게 상 주기를 바란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가 이 선물을 거절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많은 돈이나 값진 물건으로 부유해진 것은 아님이 그럴듯하다. 느부사라단은 다만 그에게 어떤 자비의 표를 주었을 뿐이며, 선지자는 의심 없이 그 선물을 자기 교훈에 대한 상으로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것의 확증으로 받았을 수 있다. 유대인들이 그가 자기들 가운데서 자기 수고를 신실하게 쏟는 동안 그의 원수였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을 쓰라리게 책망하였을 때 그의 다른 목적은 다만 그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유대인들에게 그토록 비인간적으로 대우받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 자랑한 아브라함의 자손보다 이방의 야만 민족에게서 그에게 더 많은 인간미가 보여지기를 의도하셨다. 그러므로 이런 까닭으로 예레미야가 느부사라단의 손에서 선물을 받은 것이다. 이어진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cal-jer-40-5-5(Calvin, PD) - CC0-1.0 · Sonnet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