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jer-40-14-14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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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들이 와서 말하기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암몬 왕에게 매수되었다고 하였다. 암몬 왕이 유다의 왕이 되기를, 혹 갈대아 군대가 떠난 후에 그 온 땅을 자기 것으로 가지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기대가 좌절되었으므로, 그가 다른 일을 꾀하기 시작하였으니, 곧 소란을 일으켜 그 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가 이스마엘을 꾀어 그달리야를 죽이는 불경하고 가증한 행위를 떠맡게 한 까닭이었던 것 같다. 그달리야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은 것에 관하여,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일어날 수 있으니,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그토록 드문 덕을 갖춘 이 거룩한 사람이 배반자요 암살자에게 비열하게 죽임당하도록 허락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비록 우리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의로우심을 참된 것으로 붙들어야 한다. 참으로 언뜻 보기에, 마치 죽음에서 벗어나 갈대아인들에게 호의를 얻은 그달리야가 죽임당한 것은 매우 이해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를 자기에게로 데려가시고, 동시에 백성에게 자기 진노를 끝까지 시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우리는 남겨진 자들이 하나님의 호의에 전혀 합당치 못하였음을 보게 될 것이며, 또한 그들이 미친 들짐승처럼 죽음으로 곤두박질쳐 달려가고 자기들을 거스르는 하나님의 진노를 자극하기를 결코 그치지 않았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을 이 세상에서 부르실 때 그들의 구원을 돌아보시므로 죽음이 그들에게 유익이 됨을 배우자. 그달리야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백 번의 죽음보다 더 쓰라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으리라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슬픔에 압도되기 전에, 때맞춰 그를 데려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백성이 자기들의 최후의 멸망이 올 때까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거슬러 완고하게 다투는 것을 보는 것은 적지 않은 슬픔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완고함이 그 거룩한 사람에게 믿을 수 없는 슬픔의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를 때맞춰 데려가셨다. 그동안, 내가 말한 바와 같이, 그가 자기 진노에 길을 여셨으니, 구원받은 남은 자가 자비에 전혀 합당치 못함이 분명해진 후에 그들이 나머지와 함께 멸망당하게 하셨다. 그러나 둘째, 우리는 그달리야에게 덕과 섞인 결함이 있었음을 본다. 사랑은 참으로 바울이 말하는 대로 의심하지 않으며 고발을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전 13:5).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기의 죽음이 온 백성의 멸망을 가져왔으므로 신중했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가 더 조심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로써, 특출한 덕을 갖춘 가장 훌륭한 사람들마저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처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배운다. 그달리야가 이스마엘이 그토록 신의를 저버리고 그토록 사악하리라 의심하지 않은 것은 칭찬할 만한 단순함이었으나, 이 경우에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공공의 안전에 대해서도 아무 마음을 두지 않았으므로 책망받을 만하였다. 그러나 내가 말한 바와 같이, 그를 자기 안식으로 데려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으니, 그가 살았더라면 백 번이라도 곤란에 압도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경한 자들은 그 거룩한 사람의 기억을 비방할 수 있으니, 그가 그토록 우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가 이쪽이나 저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스마엘이 유죄로 밝혀지기까지 고발되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그달리야의 유일한 실수는 자기가 경고받은 배신을 무시한 것이었다. 이제 이어진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cal-jer-40-14-14(Calvin, PD) - CC0-1.0 · Sonnet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