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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jer-38-4-4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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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방백들이 덧붙인다. 이 사람을 죽일지니, 이런 방식으로, 곧 그의 나쁜 권고로 인하여 그가 군사들의 손을 약하게 한다 등이라 한다. 여기서 손은 용맹을 뜻하니, 행위가 주로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손을 풀거나 약하게 한다는 것은 사람을 무력하게 하거나,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만큼 게으르게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방백들이 이런 이유로 예레미야를 고발하였으니, 그가 군사들을 두렵게 하여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고발이었으나 그 비방에는 그것을 뒷받침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예레미야가 그들 모두로 하여금 구원을 절망하고 자진하여 원수에게 항복하게 하려고 그들에게 도망치라고 간곡히 권면하고 백성에게 아무 희망도 주지 않았다고 하여 조국의 공적으로 정죄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일어날 수 있으니, 사사로운 개인이 백성에게 자기 왕이나 군주에 대한 충성 서약을 어기도록 설득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선지자들을 사사로운 사람들이라 부르는데,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시민적 질서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참으로 공적 성격을 지녔으니 하나님의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읍의 통치에 관하여는 그가 사사로운 개인, 곧 백성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백성에게 배반하도록 설득하였을 때 옳은 것의 한계를 넘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왕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나는 답하기를, 선지자가 특별한 명령을 받았으므로 무엇이든 주제넘게 또는 경솔하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백성이 끝까지 왕에게 신의를 맹세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제 성읍을 갈대아인들에게 넘기셨으므로 그 맹세의 의무가 그쳤다. 통치가 바뀔 때에는 백성이 약속한 무엇이든 더 이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나라에 군주가 있을 때 그는 온 백성을 맹세로 자기에게 묶어 그들 모두가 충성에 머물게 한다. 누가 그 나라를 침략할 때 백성이 약속한 대로 나아와 자기 군주를 돕지 않으면 신의를 저버린 죄를 짓는다. 그러나 외국의 원수가 온 땅을 차지하면 그 맹세의 의무가 그치니, 군주를 세우는 것은 백성의 권한에 있지 않고 다스림을 자기 뜻대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권한이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므로, 군주가 다스리는 동안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기들 위에 세우신 합법적 군주인 그에게 굳게 계속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그때 유대인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갈대아인들이 아직 성읍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 주인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은 갈대아인들이 성읍에 침입하여 집들을 불사르고 마주치는 모든 자를 죽일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선지자의 예언이 곧 그들을 갈대아인들에게 넘기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선고였다는 것으로 그들에게 충분하였어야 했다. 예레미야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모든 자에 관한 질문에 이제 답이 되었다. 누가 다만 어떤 위험이 가까이 있음을 볼 때에는 그로 인하여 백성에게 자기 군주를 버리도록 설득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고자 하는 모든 자는 자기 왕을 지키다가 자기 목숨을 걸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회의에 부름받을 때 그는 유익하고 옳은 것을 권하겠으나 소동과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그는 자기의 권고나 영향으로 백성을 배반하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백 번 죽기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예레미야의 경우는 특별하였다. 하나님께서 갈대아인들에 관한 자기의 목적을 알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자기가 필요하다고 여긴 것을 백성에게 신중히 설득하였을 뿐 아니라 선지자로서 자기 직분을 신실하게 수행하였다. 또한 그는 명령받은 것 외에 다른 권고를 주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권위로 그들에게 갈대아인들에게로 넘어가라 명하였으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백들은 그가 손을 약하게 한다 등의 이 고발을 그에게 가하였고, 또 덧붙이기를 그가 이렇게 말할 때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않는다(여기서 평안은 선하거나 유익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고 도리어 악을 구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비방으로 덧붙였으니, 예레미야는 할 수 있는 한 공익을 도모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성읍이 안전히 계속되기를 바랐고, 자기 능력 안에 있었다면 모든 갈대아인들을 패주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갈대아인들이 그 깃발 아래 싸우는 하나님과 더불어 전쟁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백성의 선을 구하였으나 하나님을 거역할 수는 없었으므로 하나님의 명령에 양보하였다. 그는 이 외에 다른 치료책을 보지 못하였으니, 곧 유대인들이 일시적 형벌을 받고 포로로 징계받아 그 후에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내가 말한 바와 같이 가능하였다면 그는 백성을 모든 해에서 지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실현될 수 없었으니, 유대인들이 칠십 년의 포로로 징벌받을 때까지 나라와 성읍이 끝났다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선 곧 유익이 있었으니, 비참한 자들에게 포로가 더 견딜 만하게 되고 사로잡힘이 더 부드럽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선은 자진하여 느부갓네살 왕에게 와서 자기들이 갈대아인들에게 끌려가도록 내어 맡기는 것이었다. 이것이 두 번째 선이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성읍과 나라와 성전이 서지 못할 것을 보고, 적어도 성읍이 그대로 계속되고 그동안 거민들이 다른 땅으로 옮겨졌다가 그 후에 다시 그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남은 일을 온 힘을 다해 촉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것이 백성에게 최선이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를 포로로 몰아내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백성의 선을 구하지 않고 그들의 멸망을 구하였다는 이 부당한 고발을 그에게 가하는 것은 부조리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어제 말한 바와 같이 성도들의 모든 말과 행위는 항상 부당하게 정죄받아 왔다. 그리고 오늘날 같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거든 인내로 견디자.

원주석

엣지 (그래프 연결)

들어오는(in)
Calvin's on Jeremiah 38:4 translated_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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