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jer-38-14-14 (ko)
I18N language_pack · status:draft · license:CC0-1.0
여기에 또 다른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곧 시드기야 왕이 다시 예레미야를 성전, 곧 성전의 뜰로 자기에게 오라고 보냈다. 왕이 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합당하지 않았고, 뜰이 흔히 성전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입구가 많았다. 가장 큰 문은 동쪽을 향하였으나 다른 쪽에도 문들이 있었다. 뜰에도 서로 분리된 여러 부분이 있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은밀히 말하려고 뜰의 셋째 입구에 와서, 거기서 선지자에게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신실하게 설명해 달라고 청하였다. 시드기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 예레미야에 대하여 더 높은 존중을 품게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참으로 선지자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왕의 마음은 의심스러운 상태에 있었으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의 어떤 씨가 자기 안에 남아 있어 동요하고 끊임없이 변하며 견고하고 고정된 것이 없는 저 위선자들과 같았다. 그들은 참으로 감히 하나님이나 그의 종들을 멸시하지 못한다. 도리어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고 그의 말씀이 덧없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핑계를 대고 마치 하나님의 본성을 바꾸려 한다. 시드기야의 성품이 그러하였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노골적으로 또 공공연히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 중 하나가 아니었으니, 세상이 종교를 우화로 여기는 에피쿠로스주의자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시드기야는 그런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어떤 두려움을 지녔다. 도리어 그는 선지자에 대한 존중마저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께 복종하고 선지자의 권고를 따르기를 꺼렸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두 의견 사이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예레미야의 목숨을 구하였으므로 어떤 희망을 품었음이 그럴듯하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이 진정되셨거나, 위선자들이 항상 자기를 위로하듯이 하나님이 어느 정도 자기의 엄격함을 누그러뜨리시리라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그들은 가장 작은 일이라도 행하면 하나님의 손에서 무언지 모를 어떤 호의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는 거룩한 선지자를 구해 내고 가장 큰 기근 중에 그를 먹였을 때, 이 봉사가 하나님께 받으실 만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부분적으로 받으실 만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것을 일종의 속죄로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선지자를 부른 것이다. 그는 어떤 호의적인 응답, 곧 하나님의 진노가 진정되었거나 적어도 누그러졌다는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나머지는 내일까지 미루어야 한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cal-jer-38-14-14(Calvin, PD) - CC0-1.0 · Sonnet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