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jer-37-21-21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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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부당하게 노출된 비참함을 돌아보셨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고 왕은 의심 없이 예레미야에게 인자하게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옳고 바른 것을 향하여 돌리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으로 어제, 왕이 기질상 잔인하거나 피를 좋아하는 자가 아니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영의 은밀한 역사에 영향을 받지 않았더라면 선지자에게 그토록 쉽게 간청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로써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 자기 종들을 어떻게 도우시며 그들의 연약함을 돌아보시는지를 본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선지자가 자기 집으로 자유로이 돌아가도록 허락될 만큼 자비롭게 다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처지가 더 견딜 만한 다른 옥으로 옮겨졌음을 본다. 그러므로 그는 옥의 뜰에 있었다. 그는 떡 한 덩이가 자기에게 날마다, 곧 매일 주어졌다고 말한다. 케카르(ככר)라는 말은 어떤 이들이 "덩어리"로 옮기며 때때로 큰 빵을 뜻한다. 그러나 그토록 큰 기근 중에 선지자가 빈약한 양식을 누렸음이 그럴듯하다. 그러므로 그는 떡 부스러기나 한 조각의 빵을 매일 가졌다. 우리는 그의 양식이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를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흔히 이런 방식으로 자기 종들을 시험하시며 이 세상의 모든 진미를 그들에게서 거두신다. 떡 만드는 자들의 거리로부터라는 말이 덧붙여진다. 내 생각에 이 말로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 부자들이 먹던 고운 가루로 만든 것이 아닌 거친 빵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입은 거칠고 투박한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는 보통의 빵으로 만족하였다. 왕과 그의 모사들은 자기들의 떡 만드는 자들이 있었으나, 선지자에게는 떡 만드는 자들의 거리, 곧 흔한 곳에서 빵이 가져와졌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토록 큰 기근 중에 팔리던 빵은 의심 없이 검은 빵이었다. 우리는 이로써 그것이 어떤 종류의 빵이었는지를 본다. 백성의 흔한 사용을 위하여 팔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지자는, 비록 어떤 완화가 자기에게 허락되었을지라도 여전히 옥에 갇혀 있었고 또한 어떤 고기나 진미도 주어지지 않고 다만 떡 한 조각만 주어졌음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호의를 기념하니, 그토록 큰 기근 중에 자기가 빵 없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양식이 떨어질 때까지 날마다의 빵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로써, 하나님께서 흔히 자기 종들을 위하여 그들을 버리신 것처럼 보이도록 공급하시면서도, 바로 그때 특별히 그들을 돌보시며 그들의 부양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을 배운다. 예레미야가 집에 있었더라면 언제든지 백성에게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으니, 굶주린 사람들을 그에게 충동질할 자들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집에서 매 순간 목숨의 위험에 처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옥에서는 안전하였고 아무도 그를 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집에 있었더라면 많은 자들이 그를 약탈하여 그에게 생명을 보존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나, 옥에서는 날마다의 분깃을 가졌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흔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놀라운 방식으로 자기 종들을 인도하시며, 그동안 한 가정의 가장처럼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신다. 요컨대 선지자는 여기서 자기가 하나님께 돌보심을 받아, 온 백성 가운데 기근과 결핍이 있을 때에도 자기는 구걸할 수도 없는 처지에 빵이 주어졌음을 시사한다. 그가 노동으로나 근면으로나 구걸로나 돈으로나 스스로 빵을 구할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셔서 그 곤경 중에 그를 먹이셨음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옥의 뜰에 있었다고 덧붙이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인내를 시험하셨음을 보이기 위함이다. 옥은 치욕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모든 사람의 비난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백들은 흔히 그를 위험으로 위협할 수 있었고, 또한 우리가 이후에 보게 될 것처럼 그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선지자에게 어느 정도만 도움을 베푸셨으니, 그를 온전히 구원하시는 것이 그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극한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으셨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cal-jer-37-21-21(Calvin, PD) - CC0-1.0 · Sonnet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