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gen-47-3-3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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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종들은 목자입니다." 이 고백은 야곱의 아들들에게, 특히 요셉 자신에게도 굴욕스러운 것이었다. 이집트인들에게 목축은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셉은 왜 형제들을 농부나 다른 정직하고 품위 있는 직종에 종사하는 자들로 소개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목축에만 치우친 나머지 농업에 전혀 무지하거나 다른 생계 방식에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왕의 관대함도 그들을 돕기에 충분하였다. 실로 그들이 궁정의 직무를 맡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요셉은 형제들을 알면서도 굳이 불명예스러운 처지에 노출시켜, 자신에게도 수치가 돌아오게 하였는가? 그것은 세상의 경멸을 피하고자 하는 집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화려하게 사는 것은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였겠지만, 그의 가족은 위험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생활 방식이 오히려 이집트인들과의 분리 장벽이 되었다. 요셉은 자신이 얻은 귀족적 지위를 단번에 떨쳐 버리고, 자신의 후손이 이집트 사람들 속에 흡수되지 않고 조상의 가문에 남아 있게 하려는 듯 보였다.
설령 이러한 고려가 그들의 마음에 없었다 하더라도, 의심할 여지 없이 주님께서 그들의 혀를 인도하사 해로운 혼합을 막고 교회의 몸을 순결하고 구별되게 지키셨다. 이 본문은 또한 세상의 경멸과 비난을 견디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들과 거룩한 연합을 이루는 것이, 궁전 한가운데에서 거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지를 가르쳐 준다. 마치 요셉이 이집트의 온갖 호화로움보다 이 연합을 더 소중히 여긴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세상을 역겹게 하지 않고서는 순결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 어리석음은 마땅히 물리쳐야 한다. 하나님의 설계는 가나안 땅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까지 야곱의 아들들을 비천한 처지에 두는 것이었다. 따라서 약속된 구원이 임할 때까지 그들이 하나로 뭉쳐 있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이 목자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허한 명예욕에 들뜨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훈련 아래 두심으로써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시 동안 명예 없이 지내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라. 그리하면 훗날 천사들이 우리를 영원한 영광의 참여자로 맞아들일 것이다.
형제들의 남은 고백(창세기 47:4)에도 수치스러움이 없지 않았다. 그들은 기근에 쫓겨 이집트에 왔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로써 얻는 유익도 결코 작지 않았다. 그들이 소수에 굶주린 자로, 그것도 거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낙인찍힌 자로 내려왔던 것이기에, 그로부터 세 번째 세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대한 민족으로 기이하게 이끌어 내셨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 어둠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cal-gen-47-3-3(Calvin, PD) - CC0-1.0 · Sonnet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