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exo-30-23-23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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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되는 향품들을 가져다가.** 여기서 다루어지는 기름은 제사장들의 기름 부음을 위해서만 아니라 성막, 언약궤, 제단들, 그리고 모든 기물들의 기름 부음을 위해서도 정해졌으나, 거룩한 기름 부음을 논하기에 그것이 의존하는 제사장직과 연결하여 다루는 것보다 더 적합한 자리는 없다.
먼저 그것의 성분이 묘사되는데, 비용과 향기 면에서 모두 탁월하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이 나타내는 것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그 탁월함과 귀함 자체에서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여러 번 보았듯이 이 조야한 백성 앞에 거룩한 상징들에서 그들의 외적 감각에 영향을 미칠 화려함이 놓였으니, 마치 계단처럼 그들을 영적인 것들의 지식으로 높이기 위함이었다.
이제 제사장뿐 아니라 모든 기물들과 성막의 다른 부분들에도 왜 기름 부음이 필요하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논쟁의 여지 없이 귀한 향품들과 섞인 이 기름은 성령의 표상이었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선지자들이 성령의 능력, 효과, 은사들을 표현하고자 할 때 기름 부음의 비유가 도처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왕들에게 기름 부음으로써 분별, 용기, 관용, 정의의 영으로 그들을 충만케 하실 것을 증언하셨음에는 의심이 없다.
따라서 이로부터 쉽게 알 수 있다. 성막이 기름으로 뿌려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령의 은밀한 역사 없이는 경건의 모든 훈련이 아무 유익도 없음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나아가 더 많은 것이 보여졌으니, 즉 성령의 효력과 은혜가 그림자들의 진리 자체 안에 존재하고 다스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에서 파생된 모든 선이 믿는 자들의 유익을 위해 같은 성령의 선물에 의해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제단에서는 화목이 구해지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비로우시도록 해야 하였다. 그러나 사도가 증언하듯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희생이 성령에 의해 드려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화목시키는 데 효력이 없었을 것이다. (히브리서 9:14) 그리고 베드로가 가르치듯이 같은 성령이 한 번 흘린 피로 우리의 영혼을 씻기지 않는다면, 그 열매가 지금 어떻게 우리에게 이르겠는가? (베드로전서 1:2) 성령 외에 누가 우리의 기도를 거룩하게 하는가? 말할 수 없는 탄식을 불러일으키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시는 분이 (로마서 8:15) 바로 성령이 아닌가? 나아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하게 하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같은 성령에게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사장의 기름 부음을 고찰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직무 수행을 위해 하나님의 영으로 거룩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사야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그가 예언의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선언하고 (이사야 61:1), 다윗도 왕의 영에 관해 같은 것을 확언하듯이 (시편 45:7), 다니엘은 제사장의 기름 부음이 마침내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관해 우리의 가장 좋은 해석자요 증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예언이 봉인될 시기가 "지극히 거룩한 이에게 기름 부음을 위해" 정해졌다고 말할 때 (다니엘 9:24), 그는 분명히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성소에 해당하는 영적인 원형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는 믿는 자들이 이 그림자들이 단순히 빈 것이 아니었음을 실제로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제 우리는 왜 아론이 기름 부음을 받았는지 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도록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또 왜 성막과 그 기물들이 같은 기름으로 뿌려졌는지도 안다. 우리가 오직 성령의 선물과 역사로써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cal-exo-30-23-23(Calvin, PD) - CC0-1.0 · Sonnet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