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act-1-18-18 (ko)
I18N language_pack · status:draft · license:CC0-1.0
칼빈은 이 유다의 죽음에 대한 서술이 누가 자신이 삽입한 것으로 보아, 괄호 안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드로가 이미 알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 내용을 굳이 열거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겔다마"라는 히브리어 표현을 그리스어로 설명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에서 "얻다"는 말은 그가 직접 밭을 샀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죽고 나서 그 돈으로 밭이 샀기 때문이다. 누가의 의미는 그의 장례가 그의 배신과 악한 행위에 대한 영구적인 수치의 표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돈을 즐기지 못했다. 다만 그 밭만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 밭의 이름 자체가 제사장들에게도 무고한 피를 대가로 치른 수치가 되었다. 유다 이후에 산 것은 제사장들이었다. "아겔다마"를 설명한 것은 누가 자신이 헬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히브리어"라고 부르는 것은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인들이 사용한 언어로, 아시리아어와 칼데아어가 혼합된 것이다.
"시편에 기록되었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베드로는 성경의 권위로 유다의 타락으로 인한 걸림돌을 제거한다. 그러나 이 구절을 특정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지나친 해석처럼 보일 수도 있다. 다윗은 단수형이 아닌 복수로 자신의 원수들을 저주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윗의 원수들에 관한 말씀이 유다에게 적용되는 것도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칼빈의 답은 이렇다. 그 시편은 다윗이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나라 전체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시편에는 온 교회의 공통된 이미지가 담겨 있으며,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의 몸이다. 따라서 그 내용은 먼저 머리이신 분 안에서 성취되어야 했다. 다윗은 교회에서 분리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분의 형상을 취하여 그분의 이름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게 예표된 모든 것이 그에게 적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교회 전체를 가리키더라도, 그것은 머리이신 분에서 시작하여 그분이 악인들로부터 당할 것을 묘사한다.
시편의 저주가 예언이 아닌 단순한 저주처럼 보인다는 반론에 대해, 칼빈은 이렇게 답한다. 다윗은 육신의 부패한 감정에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기도했다. 따라서 성령의 감화로 드린 기도는 예언과 같은 힘을 지닌다. 성령은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약속하신 것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두 가지 다른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도 설명된다. 첫 번째는 유다와 그 이름과 족속이 완전히 소멸되어 그의 자리가 비어야 함을 의미하고, 두 번째(시 109편)는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워야 함을 의미한다. 이 둘이 모순처럼 보이지만, 첫 번째 구절은 교회의 대적들이 제거되어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자리가 비어야 한다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이 나중에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원주석
- 번역원본
commentary-section/cal-act-1-18-18(Calvin, PD) - CC0-1.0 · Sonnet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