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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1jn-1-1-1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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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이 생명은 비교할 수 없는 선이므로, 그것을 향한 놀라운 열망과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능력을 일깨우고 불태워야 한다고 말한다. '생명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간결하고 평이한 말로 선언되었지만, 우리가 죽음의 처참하고 끔찍한 상태를 생각하고, 또 불멸의 나라와 영광이 무엇인지를 헤아린다면, 이 말이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도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무한한 선, 곧 유일하고 참된 행복을 우리 앞에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생각을 높이 들어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주제의 위대함은 진리가 확실하고 충분히 증명되어야 함을 요구하기에, 이것이 여기서 많이 강조된다.

'우리가 보고, 우리가 들은 것, 우리가 주목하여 본 것'이라는 표현들은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사도가 이토록 많은 확언을 하는 것은 이유가 없지 않다. 우리의 구원이 복음에 달려 있으므로 그 확실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믿는다는 것은 가볍게 의견을 형성하거나 단순히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증명된 진리에 기꺼이 서명할 수 있을 만큼 굳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다.

**처음부터 있었던 것** —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리킨다.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처음부터 계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항상 생명이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신 분은 때가 차매 사람으로 나타나셨다. 이어지는 내용, 즉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것에 관한 말씀은 그분의 인성을 가리킨다. 그러나 두 본성은 하나의 인격을 이루고, 그리스도는 하나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나와 우리의 육신을 입으셨으므로, 사도는 그분이 동일하신 분이요, 이전에는 보이지 않으시다가 이후에 보이셨다고 정당하게 선언한다.

이로써 세르베투스의 어리석은 주장, 즉 신성의 본질이 육신과 하나가 되어 말씀이 육신으로 변형되었다는 주장은 논박된다.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 육신 안에서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의 이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육신 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실제로 증명하신 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으신 분은 항상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말씀이셨다. 그분은 여기서 세상의 시작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다.

**우리가 들은 것, 우리가 본 것** — 이것은 소문을 듣는 것이 아니었다. 요한은 자신이 스승으로부터 그가 가르치신 것들을 충실하게 배웠음을 의미한다. 교회에서 적합한 교사가 될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제자가 되어 그분의 학교에서 올바르게 훈련받은 자이다. 오직 그분의 권위만이 지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중복이 아니라, 증폭을 위한 더 충분한 표현이다. 요한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주목하여 본 것, 우리 손이 만진 것'을 덧붙인다. 이 말씀들을 통해 그는 자신이 실제로 알려진 것만을 가르쳤음을 보여준다.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 여기서 속격은 형용사 용법으로 '생명을 주는'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된 것처럼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구별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두 가지 이유로 속한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에 생명을 불어넣으셨고, 이제 아담의 죄로 꺼져버린 생명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신다. 또한 '말씀'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거나 복음의 교훈을 가리키는 것으로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복음을 통해서도 구원이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그리스도이시다.

원주석

엣지 (그래프 연결)

들어오는(in)
Calvin's on 1 John 1:1 translated_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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